내 生의 길목에서 - 변화와 변신, 그리고 나
-모든 것,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까지 모두가 덧없고 부질없음을 안다 해서 욕망의 그물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대지大地가 씨앗을 받아들여 생명을 품어 안듯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매 순간 순간마다 마음에 비치는 것과 미세한 움직임까지 모두 이해해야 한다. 마음을 비우는 일에 성공하면 ‘모든 변화는 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는 일은 연마해서 이룰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本性이고 애써 추구하거나 기다리지 않아도 그럴 자세만 갖추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다.
-바른 인식은 철저한 자기인식과 함께한다. 자신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생각도 진실하지 않다. 나와 이 세계는 다른 문제를 지닌 별개가 아니라 하나다. 나의 문제는 곧 이 세계의 문제다. 나와 세계는 언제나 함께한다. 나는 특정한 성향과 영향의 결과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세계와 다르지 않다. 아주 비슷하다. 탐욕과 편견과 이념 같은 인위적인 장벽들이 나와 세계를 갈라놓고 있지만 본시는 하나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곧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이 세계의 중심은 바로 ‘나’이므로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세계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성적으로는 이 같은 일체성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 같은 인식과 느낌을 서로 다른 곳에 격리시켜둔 까닭에 자신과 이 세계가 공유하는 일체성을 경험하지 못한다.
-자기인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는 순간 일어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우리는 무엇이 보이면 그 즉시 판단하고 평가하고 비교하고 부정하거나 인정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주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곧잘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제한되고 조건화된다. 우리의 마음이 모든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그 같은 조건들에 의해 확대된 결과가 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일반적인 생각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 타인과의 관계 속에 비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우리가 아는 매일의 삶은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어렵고 힘들 때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당면한 목표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존재의 의지는 곧 무엇인가 되려고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반응하며 이름하고 기록하는 다양한 상태, 다양한 의식과 함께 무엇인가 되려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처럼 무엇인가가 된다는 것은 곧 힘겨운 투쟁과 그에 따른 고통을 수반한다. ‘이런 나’에서 ‘저런 나’가 되려는 투쟁, 변화와 변신을 이루려하는 욕망의 발현, 자기투사의 결정이기도 하다. 현존재로서의 ‘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상적인 원념체寃念體에 투영시킨 자아의 형상과 의미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려는 자에게는 당연히 그만한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자기 안에 스스로 형상화해 자기만이 아는 모습이 있다. 그 같은 모습은 바로 자기 욕망의 투영물이다. 이 투영물은 확장된 자신의 실체이기도 하다. 확장된 실체는 왜곡된 모습이 아니라 수정되고 변형된 자신의 연장이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번민하고 투쟁하는데 이때의 ‘무언가’는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다. 자신이 꿈꾸고 열망하며 희구하는 이상까지도 사실은 자기 모습의 또 다른 투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실제의 자신과 이상을 분리시키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다. 스스로에게 가하는 이 같은 속임수를 알아차리게 되면 거짓을 거짓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이상이나 환영을 분별하기 위한 번민과 고뇌는 분열의 요인이다. 결국 무엇이 되기 위한 투쟁은 자신의 실제를 깨닫는 것과 무엇이 되기 위한 노력의 상충에서 오는 자기 분열의 결과다.
-무슨 말이든 그 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그렇다 해서 남의 말에 너무 민감해질 필요는 없다. 말의 의미에 휘둘리지 말고 그저 고요히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남의 말과 행동에 상관없이 자신의 정신이 천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천박함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그것을 직시하게 되면 그로 인해 변하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어리석다고 느낄 때 우리는 흔히 보다 지혜로워지고자 하는데, 그 같은 노력은 사실 더 큰 어리석음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리 지혜로워진다 해도 나의 어리석음은 그대로 남는다. 매일의 삶 속에서 어리석음이 드러날 때 마다 그것을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야만 비로소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