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깨알 생각 763

이 영옥(李永玉) 2018. 8. 28. 09:48



  우리는 느낌을 통해서만 사랑을 알 수 있다. 느낌은 생각과 같다. 느낌은 지각이다. 꽃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꽃에 반응한다. 좋거나 싫은 느낌이 생긴다. 좋거나 싫은 느낌은 생각으로부터 비롯하며, 생각은 그 배경이 되는 기억의 반응이다. 그 결과 우리는 "나는 저 꽃이 좋아", "나는 저 꽃이 싫어", "나는 이런 느낌이 좋아", "나는 그런 느낌이 싫어"와 같이 특정 대상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느낌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느낌은 분명 지각이다. 좋고 싫음, 옳고 그름,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지각과 같다. 이 같은 느낌이 우리네 사랑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자기와 무관하거나 밀접한 것들을 꼭 같이 무심하게 주시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느낌과 사랑의 연관성을 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경험하지 않았어도 그저 안다. 우리 모두 경애하고 숭배하는 성인들에게도 그 같은 느낌은 존재한다. 그들에게 열정은 곧 섹스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열정을 거부하고 같은 이유로 무후한 아름다움까지도 부인한다. 자신의 평정심을 뒤흔드는 것들을 무시하기 위해서 부인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감각을 통해 사랑을 부인한다. "감각은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 나는 성욕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욕을 억제해야한다. 할 수만 있다면 아주 없애야 해" 이런 생각들로 인해 우리는 섹스를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이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느낌을 그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통해서 알아야 한다. 느낌의 전체성을 통해서만 사랑의 본질을 접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래야 변함없이 늘 푸르른 나무의 아름다움, 이웃 아이가 짓는 작은 미소의 찬란함, 도시의 경계 너머로 펼쳐지는 해질녘에 더욱 붉어지는 핏빛 석양의 처절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며, 우리가 갖는 느낌의 전체를 조망하고 나아가 사랑의 본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