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生의 길목에서 - 관계론적 자아
- 나의 본래 모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드러난다. 관계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자기 본래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되는 자신의 모습,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을 신뢰하고 중시한다. 다시 말해 타인과의 관계, 관계의 작용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기를 원하고 그 형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방기하거나 스스로 흡족해질 때 까지 수정하려 한다. 자신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은 이미 나는 어떠해야 한다는 일정한 틀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같은 틀을 갖는 순간 나의 본질과 본모습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나 되어야 하는 모습, 혹은 되지 말아야 하는 모습을 자기 안에 품어 안는 순간 어떤 관계 속에서도 이미 자기 본래의 모습은 접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야 말로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사유와 인식을 위한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특정한 순간에 자신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참 모습을 아는 일이 다른 어떤 일 보다도 힘들다.
- 타인과의 관계는 불필요한 번민과 고통을 불러온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관계 속에 이런 긴장이 없다면 모든 관계는 마치 편안한 수면 같은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편안한 관계를 원한다. 갈등은 원한에 대한 갈망과 실상, 환영과 실제 사이에서 생긴다. 환영을 깨달으면, 이것을 제거하고 관계를 이해하는데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안정만 추구하면 위안과 환영은 더욱 커진다. 관계의 위대함은 바로 그 불안정성에 있다. 그러므로 관계 속에서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은 곧 관계의 역할을 저해하며 이로 인해 관계의 파탄에 이른다. 관계는 우리의 전체적인 존재 상태를 드러낸다. 곧 자기를 드러내고 알아가는 과정이다. 물론 이런 과정에는 일정한 고통이 따르고 생각이나 감정의 유연성과 지속적인 적응이 요구된다. 결국 모든 관계는 고통이 수반되는 투쟁의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관계로 인해 야기되는 긴장을 무시하고 의존성을 충족시키는 위로, 편안함, 안전한 은신처를 더 선호한다. 그러나 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불안정해지면 지속적인 안정을 원하는 까닭에 보다 안정적인 새로운 관계를 선호하고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기존의 관계 속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면 이런 의존성이나 안정 지향성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낳기 마련이다. 안정과 두려움의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관계도 우리를 구속하는 장애와 무지가 될 뿐이다. 그럴 경우 우리의 삶 전체는 무자비한 투쟁과 고통의 무대가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