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生의 길목에서 - 이미지와 관계, 그리고 가능성
- 우리는 어떤 사람이건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바라본다. 이런 이미지는 모두 일정한 관계를 통해, 혹은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두려움이나 바램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흔히 상대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즐거움, 분노, 칭찬, 위로를 통해 일정한 이미지를 생성한다. 우리는 그 이미지로 상대를 바라보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나와 그들 간의 관계는 사실 이 두 이미지 사이의 관계와 같다. 이것은 매우 엄정한 사실이다. 아주 확연한 생각이나 느낌으로부터 비롯한 두 이미지가 어떻게 애정이나 사랑의 감정을 내포할 수 있겠는가? 친밀한 관계든 소원한 관계든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는 이미지, 상징, 기억들 간의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객관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겠는가?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기존의 관계를 파괴하지 않는 자각이 필요하다. 이 같은 자각에 의해 기존의 관계는 더욱 긴밀하고 의미 있게 변한다. 그에 따라 진정한 애정도 가능해진다. 단순한 감상이나 감각이 아닌 따뜻하고 친밀한 감정이 우러난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다가가 관계를 맺으면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도 쉽게 해결된다. 우리는 흔히 자기 소유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잘못을 범한다. 이는 돈을 지닌 사람이 곧 돈이 되는 것과 같다. 자신을 재물과 동일시하는 사람은 곧 재물이 되고, 집이나 가구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사람은 역시 집과 가구가 된다. 생각과 사람을 동일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소유욕이 절제되지 않는 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맺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소유욕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소유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구나 재물, 지식 같은 것들로 자기의 삶을 채우지 않으면 자신이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한 우리는 소유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 텅 빈 껍데기를 우리는 삶이라 부르고 그 껍데기에 만족한다. 따라서 이것이 망가지거나 와해되면 깊은 슬픔에 잠긴다. 그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실상, 곧 별 의미도 없는 텅 빈 껍데기와 같은 자기 삶의 실상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하는 것은 관계의 전체적인 내용과 본질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만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그 밖의 모든 것들과 맺는 관계의 가능성, 그 엄청난 깊이와 큰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파악할 가능성에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 관계가 없으면 나라는 존재도 없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타인과 특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사람과의 관계든 여러 사람과의 관계든 타인과의 관계가 곧 나의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파생된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나의 본래 모습과 내가 투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소위 말하는 대중이나 군중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가족이나 친구들, 아내, 아이, 이웃들과의 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거대한 조직체들, 사람의 동원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운동이 가능한 세계에서 우리는 작은 단위로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하고 하찮은 존재로 치부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잘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중 운동에 참여해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좌절 한다. 그러나 진정한 혁신은 대중 운동이 아니라 관계의 내적인 재평가를 통해서만 일어난다. 이것만이 진정한 개혁이고, 신속하고 지속적인 혁신이다. 그러나 우리는 섬소하고 작은 단위에서부터 시작하기를 두려워한다. 대부분의 문제가 너무 거대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거대한 조직체계를 갖춘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분명 아주 작은 단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작은 단위야말로 바로 “나” 그리고 “여러분”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할 때, 이런 이해에서 비로소 사랑이 샘솟는다.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이런 사랑의 요소가 결여되어있다. 관계 속의 애정과 사람만이 갖는 온기가 부족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맺고 있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는 이런 사랑과 부드러움, 관대함, 자비가 결여되어 있는 까닭에 우리는 혼란과 불행을 더욱 가중시키는 대중행동 속으로 도피한다. 우리는 곧잘 세계의 개혁에 대한 청사진으로 가슴을 채우면서도 정작 사랑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에 눈을 돌리는 데는 터무니없이 인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