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나라가 나라다워야만 하는 몇 가지 이유 14
이 영옥(李永玉)
2021. 4. 2. 11:20
우리 헌법과 법률은 대통령에게 매우 강력하고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잘 모르는 권한이 바로 대통령에게 주어진 긴급재정명령권이다. 경제상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긴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초법적 행위로 선조치 후 입법을 통해 법률적 당위성을 부여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하면서 발동한 적이 있다. 취임과 동시 이경식 경제부총리에게 극비리에 준비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경제수석 조차도 발표시점까지 몰랐다. 이 조치는 부가가치세 도입과 함께 우리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하경제의 규모를 축소시켜 막대한 추가세원을 확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우리가 중시하는 이념이나 신념까지도 하릴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클린턴의 일갈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민주주의 국가에 가장 우선해야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경제부문에서 공정과 정의가 실종되었을 때 그 나라는 이미 민주국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통령들은 긴급재정명령권을 행사하는데 몹시 인색했다. 모든 경제이론과 정책은 선도적 예방조치가 아니라 사후 약방문격 후속조치다. 경제현실 자체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적 현상인 까닭이다. 경제 각 부문에서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현상의 고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인의 규명과 대안을 마련해 정책으로 확정 실시할 때는 이미 경제현실은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이되어버린다. 이런 경우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재정명령권이 부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통령들은 이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국민의 복리민복에 소홀한 국가는 국가로서의 존재이유를 잃어버린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를 등한시하는 정권 담당자는 정말 거지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