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나라가 나라다워야만 하는 몇 가지 이유 18

이 영옥(李永玉) 2021. 4. 15. 08:25

 우리의 자본주의는 서구처럼 토지자본의 잉여자본이 상업자본으로 그 상업자본의 잉여자본이 다시 산업자본으로 전환되는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이행단계를 건너 뛰어 압축성장이라는 비상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근대농경사회에서 현대산업사회로 단숨에 도약했다. 그 같은 성과는 상품생산 이외의 모든 분야를 희생하는 자본의 집중과 농촌경제의 파괴를 통해서 가능했다. 이 시기의 공장(봉제, 가발, 신발, 피혁, 합판)들이 생산하는 상품은 대부분이 노동집약적인 제품들이었고 따라서 공장마다 저임금 노동력의 지속적인 대량공급을 필요로 했다. 이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정부는 생산원가에도 미달하는 저곡가 정책을 견지함으로써 농촌경제와 사회를 붕괴시켜 대규모 이농현상을 촉발했고, 이는 대도시에서의 저임금 단순 노동력의 무한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이 시기의 상품 생산자들은 공장 부지의 확보와 생산시설에 필요한 자금을 국가로부터 장기 저리로 공급받았고, 저가 수출로 입는 손실을 국내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것으로 보전 받았다. 삼성과 현대가 소규모 미곡상으로부터 시작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집단을 이룩했다는 점은 우리의 기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했는지 시사 하는바가 크다. 국가의 전폭적 지원과 다수국민의 경제적 희생을 통해 그들은 산업화에 필요한 대규모 자본의 축적과 문어발식 기업 확장이 가능했다. 오늘날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몸집을 키운 우리의 재벌, 대기업은 국민과 사회에 대해 지고 있는 부채의 질과 규모에 있어 구미의 기업들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해야 할 사회적 책무 또한 비할 바 없이 크다. 그런 면에서 재벌은 거지보다 더 탐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