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나라가 나라다워야만 하는 몇 가지 이유 24
이 영옥(李永玉)
2021. 4. 23. 08:49
정치란 본시 개인과 집단, 사회가 지닌 잠재력을 정확하게 파악 그 역량을 결집하고 극대화해서, 막힌 곳은 뚫고 굽은 곳은 바르게 펴, 위와 아래 옆이 두루 잘 통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같은 정치 본래의 의미와 권력 담당자의 국정운영 의지가 부합될 때 그가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책과 제도가 비로소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감과 동의를 얻어 자발적으로 준수되고 시행될 수 있다. 이런 권력은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실패하지도 않는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력은 정보의 점유와 분배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창출되고 행사되어 왔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자기 이외의 모든 것들을 자의적으로 통제하고 제어하고자 하는 유·무형의 힘과 의지다. 이때의 힘은 물리적인 것까지를 포함한다. 특히 전제적 권력은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를 특정 대상에게만 선별적으로 배분한다. 그것이 바로 권력의 남용이다. 따라서 필요한 정보가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수집되고 합리적으로 배분되는 사회를 우리는 공정한 사회라고 일컫는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상상 속에서만 그려오던 그런 사회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시대의 요구이며 역사적 필연이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함인지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더없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사회의 구현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의 약속과 다짐이 우리에게는 절대 실현되지 않을 공허한 외침으로만 들리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우리 앞에 놓인 문제적 사안들에 대해 모범답안처럼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말을 늘어놓을 뿐, 확고한 실천의지가 포함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은 실제가 아니다. 말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너무 복잡하게만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가장 확실한 해법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토록 분명한 사실을 그들만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주변에서만 손쉽게 답을 구하려 한다. 그들의 주위에는 먹이를 탐하는 짐승처럼 무리지어 모여든 권력에 허기진 폴리페서들로 가득하다. 하기는 그것이 우리의 지적 전통이기는 하다. 이미 역사적인 평가가 끝난 사안은 서로 분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공功은 공功대로 과過는 또 과過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현저한 공功이 있으므로 그 어떤 허물이라도 대속하거나 상쇄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자들에게 역사란 얼마든지 반복되어도 그만인, 그저 단순히 지나간 세월에 불과한 것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와 교언영색巧言令色이야 말로 근대 이래로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 지식인들의 의식을 관장해온 덕목이며 면면히 전승되어 온 지적전통이다.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제반 현상에 대한 객관적 입장과 그 변화를 가감 없이 담아낼 수 있는 통찰력이다. 사회의 변혁기에는 이 같은 요구가 더욱 절실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식인들은 자신이 축적한 남다른 지식을 활용해 세상의 모든 불의한 일과 부당한 일에 스스로 나서서 협력해왔다. 그런 자들에게서 긴박하고 위중한 문제의 해解와 답答을 구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지금 여의도와 권부를 담당하고 있는 자들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 지식인들은 거지보다 더 비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