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나라가 나라다워야만 하는 몇 가지 이유 30

이 영옥(李永玉) 2021. 5. 10. 10:16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무엇이라도 팔아치우는 사회로, 팔리지 않는 것은 가차 없이 폐기되고 오로지 팔리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한다. 곧 상품가치와 자본논리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되고 제어되는 사회다. 그러면서도 현대사회의 상행위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판다. 따라서 비싼 값에 산 물건일수록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상인들은 어떻게 하면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고 가격과 상관없이 물건을 사게 할 것인가에만 마음을 쏟는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의 상품과 상술에는 어떤 감동도 없다.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현대 사회는 사람의 가치까지도 이윤의 유무에 의해서 평가하고 인정한다. 사람이 그렇게 밖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이론에 장악된 시장중심의 자본주의 사회다. 모든 인간관계가 상품과 자본에 의해 일회적으로 소모되어 버리는 사회는 사실상 일체의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소멸된 사회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서로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소통하지 못하는 까닭에 모든 사람이 타인으로만 존재하는 곳,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고 어떤 교감도 불가능한 황무지와 같은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능멸하며,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에게 오만하고, 간사한자는 어리석은 사람을 즐겨 속이는 까닭에 불필요한 다툼과 분란이 그치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세상의 파멸을 바라지 않는 이상 아무리 작은 희망의 싹이라 해도 힘써 찾아 움틔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는 인간관계에 의해 존속된다. 인간관계의 지속적인 유지가 바로 이 사회의 본질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지속되어야 만남이 이루어지고, 만남이 지속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고 스스로 삼가는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와 사랑이다. 예의와 사랑은 상대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비롯한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남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부끄러움은 남과 나를 동일하게 대하는 마음의 근원이며, 나 이외의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연대감의 발로다. 사랑은 소유하기보다 서로 나누고 교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없으면 자신도 존재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려 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성이 우리의 소유욕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두려움은 포기나 강요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과 운명공동체라는 깊은 연대감과, 그들 모두에 대한 예의와 사랑, 그 모든 것들과 굳게 맺은 관계를 통해서 현재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인식의 전환,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고하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서만 미래를 조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깊은 천착과 성찰 없이는 어떤 꿈이나 희망도 이룰 수 없다. 이 같은 인식의 대전환을 통해서만 이 땅을 어떤 높낮이도 없이 사람들이 혼자서나, 무리지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래야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여전히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