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에서 보내는 아빠의 작은 이야기 - 26
세일아! 일전에 얘기하던 文化와 관련해서 말을 이어보려 한다. 대지大地와 여성女性에게는 마력이 있다. 생명을 포태하고 출산하고 먹여 기르는 힘이다. 옛 신화나 전설에 따르면 모든 보살핌과 생육은 여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땅을 파헤쳐 씨앗을 묻고 생명을 기르는 최초의 경작 또한 여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쟁기로 땅을 갈아엎는 행위가 남녀의 성적 결합을 상징하게 되면서 여자는 풍요로움까지 의미하게 되었다. 이 같은 상징체계는 어느 시대 어떤 조직에서든 나타난다. 다만 삶을 지배하는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르게 표현될 뿐이다. 가령 수렵 생활권에서 사냥꾼의 의식은 늘 외부의 사냥감을 향한다. 그래서 사냥꾼의 의식은 항시 외계 지향적이다. 그러나 농경생활권에서 농사꾼의 의식은 늘 내부 지향적이다. 씨앗을 묻고 씨앗이 죽고 이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이 움트는 경작 과정 자체가 내부 지향적이다.
수렵 문화권에서는 모든 지식과 권능이 숲과 동물로부터 비롯된다. 농경 문화권에서는 식물 자체의 생멸生滅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삶과 동일시되고 생명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전승된다.
동물은 완벽하게 독립된 개체다. 동물에게는 생멸生滅이 곧 나타남과 사라짐이다. 사라짐은 완전한 소멸이다. 그러나 식물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의 생명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의 죽음은 다음 생명의 생장을 북돋운다. 식물의 생명은 소멸하지 않고 영속된다. 농경문화에서는 죽음이 종국적인 것으로서의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존재한다. 새로운 생명으로 재현되는 셈이다.
세일아! 문화란 생명生命의 생멸, 영속, 전승을 내포한 채 다른 삶과의 연계성 위에서 생성되고 현현顯現한다. 지금 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다. 그 너머에 내밀하게 존재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네 앞의 현상現像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