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세상 밖에서 보내는 아빠의 작은 이야기 - 48

이 영옥(李永玉) 2012. 8. 9. 08:26

 세일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우리의 오감五感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 초감각의 세계가 있다. 해질 무렵의 아름다움이나, 노을에 물든 강과 호수, 저녁 안개를 두른 산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춘 사람은 자연과 존재의 경이로움, 그것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에 젖어 벌써 이 세계의 신비에 몸담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은 매일매일 새롭게 이 같은 경험을 한다. 우리가 소속된 사회나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훨씬 위대한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체험을, 자연의 힘을 신인동형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으로 인격화하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서구인들의 초절한 신神 '여호와'도 이 우주에 가득한 에너지와 경이의 종국적인 근원이며 본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일하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신神을 비인격적인 에너지 그 자체의 드러남(顯現)이자 공급자로 파악한다. 이들에게 신은 우주적 에너지의 본원이 아니라 그것을 나르는 수레에 불과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에너지의 경이로움이나 힘과 질에 따라 신의 성격과 기능이 결정된다. 그래서 수많은 신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과 폭력의 신, 자비의 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 연계의 신 등 무수한 신들이 존재한다.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처럼 우리를 이끌고 인도하는 모든 충동을 형상화하고 의인화한다. 신들을 의인화 하다보면 인간은 보다 경이로운 삶에 대한 경험을 얻게 된다.

 

 신은 어쩌면 우주에 충만한 에너지의 또 다른 이름과 형상으로 우리의 삶이 비롯하는 그곳에 깃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같은 자각은 명상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명상이란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사유행태다. 명상에서는 어떤 생각도 가능하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은 사실 별로 다르지 않다. 돈에 관한 명상도 좋은 명상일 수 있다. 명상 자체를 위한 명상도 가능하다. 명상의 위대함은 바로 그 격식 없음과 무한대한 자유로움에 있다. 묵주나 염주를 굴리면서 같은 말과 내용을 반복하는 명상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마음과 뜻이 아주 쉽게 한곳에 모이게 된다. 이런 명상법을 '자파(japa)'라고 한다. '거룩한 이름을 되풀이해서 부름'이라는 뜻이다. 어떤 한 곳에만 마음과 뜻을 집중시키면 궁극에는 온갖 신비한 체험까지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세일아! 정말 명상을 통해서 광명 궁극의 자리에 든다면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풍요롭고 충만해지지 않을까? 알 수 없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