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18
6.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드라의 그물”에는 각각의 그물코마다 영롱한 보석이 붙어있고 그 보석에는 다른 그물코에 매달린 모든 보석들의 형상이 맺힌다. 모든 보석에 맺히는 모든 영상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도 담겨있다. 그것이 다시 다른 보석에 맺히고, 당연히 자신의 모습도 중첩해서 맺히는 다중구조야 말로 이 세계의 참된 모습이다. 따라서 “연하여” “일어나는” 상생相生의 관계는 공간적이고 정태적인 개념이다. 두 개의 나무를 계속 문지르면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경우 연기는 나무로 인해 생성된다. 그러므로 나무가 사라지면 연기 또한 사라진다. 고로 연기는 나무와 상존한다. 이 둘의 관계는 실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관계에 의한 생성生成이다. 연기는 결과고 나무는 원인이다. 나무는 물과 햇빛과 흙의 결과로서 물과 햇빛과 흙이 사라지면 나무도 사라지고 연기도 사라진다. 이처럼 원인과 결과는 하나가 아니면서도 서로 다르지 않고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의 실상이며 본질이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에 의해 의미 지워지고 존재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거듭 말하지만 사랑은 소유하기보다 서로 나누고 교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없으면 자신도 존재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려 한다. 현재에 대한 불확실성과 비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소유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하면 불가피하게 알 수 없는 슬픔과 적대감에 휩싸이게 된다. 기꺼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은 포기나 강요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다.
지혜로움은 실제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결국 사랑은 주변의 모든 이들과 서로 나누고 교감하는 것이다. 사랑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자신을 위한 사랑과 세상을 위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깊은 신뢰와 지지를 얻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신을 향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에 다름 아니다. 남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고, 주변에 무관심하지 않고, 무엇을 보든 그 내면의 참모습을 찾는 마음가짐은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기인한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사랑이야말로 자신과 세상 모두를 위하는 근원이다. 그런 사랑이 충만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더욱 성숙된다. 이런 변화에 의해서 사회도 변한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온다.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온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으로부터는 변화를 초래하고 미래를 담보하는 어떤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성숙한 민주주의는 화해와 용서와 타협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확고한 신념이다. 평등과 평화, 인권에 대한 꿈을 끝까지 간직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다. 이런 일들이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나라, 그런 사회에서 사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변함없는 소망이며 열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