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聖의 끝, 人性의 시작 - 14
인도의 갠지스 강 유역에서는 7천 여 년 전부터 드라비다인들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화를 꽃피웠으나 4천 3백여 년 전 아리안어족의 지파가 침략하여 북인도 전역을 장악하고 그 위세를 남인도 지역까지 떨쳤으나 통일제국을 수립하지는 못했고 오랫동안 수많은 왕국과 토후국이 난립하여 분쟁을 일삼았다. 후일 페르시아제국이 갠지스 강 일원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며, 알렉산더 대왕이 갠지스 이동 지역까지 진군했다. 이런 와중에 인도에서도 갠지스 유역에서 일어난 문명이 5인도五印度 전역으로 전파되어 각 지방의 특수한 풍토와 환경에 상응하는 독특한 문명으로 분화발달 했다.
중앙아시아의 타림 분지에서는 8천 년 전에 한인漢人이라는 농경민족이 정주하기 시작해서황하 유역에 무수한 도시를 건설하고, 양자강 유역에서는 묘족苗族이 정착해 역시 많은 도시를 건설했다. 이 두 민족이 처음에는 교류가 없이 각기 독자적으로 발전해오다가 차츰 문물의 교류가 이루어져 묘족의 대부분이 한족에게 동화되어 중화문명을 이루었지만 북방과 남방이 저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중화문명이 융성하면서 복희伏羲가 문자를 만들어 결승結繩을 대신하게 되어 기록문화가 정착해 방대한 지식의 축적과 전승이 가능해져 비약적인 문명의 창달이 이루어지고, 신농神農은 의약의 발명과 농경 기구의 개량을 통해 생산력을 증대하고, 시장 교역의 제도를 확립했다. 황제黃帝에 이르러 배와 수레, 교량을 만들고, 도로를 개설하자 문명이 더욱 융성하게 되었으니 이 시대의 군장君長을 황제黃帝, 전욱 頊, 제곡帝, 당요唐堯, 제순帝舜을 오제五帝라 부르고 그 이후의 왕조 하夏, 은殷, 주周를 삼왕三王이라 해 5제3왕의 시대를 중국문명의 황금시대로 불렀다.
이제까지 기술한 문명의 여러 중심지의 북방인 라인 강으로부터 태평양 연안까지의 지역에는 여러 북방형 민족과 몽골 민족이 금속문명을 발달시키고 남방의 여러 민족이 정착생활을 통해 높은 문명을 건설했음에 반해 대평원 지역에서는 제 민족이 이동성을 증대해 재래의 완만한 표랑생활로부터 계절에 부응하는 유목생활방식을 고착화했다.
아프리카의 중.남부 지역에서는 흑인들이 지중해 문명의 영향을 받아 금속의 사용방법과 농경기술을 습득했으나 그 발달과정이 몹시 완만했다.
동인도제도의 경우 구석기 시대부터 거주해온 소수의 호주 원주민들이 해안 지역에 흩어져 살다가 약 3천 년 전에 양석문화민족陽石文化民族이 동남아시아 해안지역으로부터 이주 해와 각 섬에 혼거하기 시작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베링 지협이 무너져 신·구 양 대륙의 연락이 두절됨에 따라 구대륙에서 건너온 몽골계의 여러 민족이 완전히 고립된 채 남쪽으로 이동해 옥수수를 기본 작물로 한 농업을 일으키고 마야 문자를 만들어 멕시코와 페루 지역에 각기 문명을 건설했다.
이 처럼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지역에서 발상한 문명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각기 다른 풍토와 환경에 따라 저마다 다른 사상과 언어, 문화를 형성하면서 수천 년에 걸쳐 분화를 계속해 오는 동안 어느 지방에서는 윤리 사상을 중심으로, 어느 지방에서는 신비사상을 중심으로, 어느 지방에서는 철학을 중심으로, 또 어느 지방에서는 현실을 중심을 발달 해 서로 다른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지역과 나라 사이의 장벽이 열려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각 지방의 특이한 문명들이 서로 교호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언어, 문자, 학술, 기예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로인해 각 지방의 특이한 문명들이 그 분화작용을 끝내고 서로가 서로를 수용하는 혼융통합의 문명으로 그 발전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이 같은 추세로 미루어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언어와 문자까지도 하나가 되는 새로운 대통일 문화가 건설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인류의 문명이 마침내 분열발달과정을 지나 통합수장과정에 진입하는 교차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