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神聖의 끝, 人性의 시작 - 39

이 영옥(李永玉) 2013. 2. 15. 09:23

 

 갑오동학혁명은 비록 실패한 혁명이었으나 당시 조선의 사회적 병폐의 근원인 유교에 대한 부정, 사회 계급의 타파, 고루하고 편협한 사상의 해방 등 그 때 까지 일어난 어떤 변혁운동도 이루지 못한 많은 성과를 거뒀다. 동학혁명 이후 우리의 사상계는 드디어 유교사상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사유와 학문의 자유를 누리게 되어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위대한 파괴적 인격인 최제우의 출현으로 선행종교의 낡은 개념은 모조리 파괴되었으나 아직 그를 대신할 건설적 인격이 출현하지 않아 새로운 종교적 개념이 구상화具象化되지 못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사상적·종교적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이 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종교적 파괴운동은 곧 범세계적인 종교 파괴운동의 선도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세계적인 종교 신생운동의 시발점이 될 중계적 계시자로서의 새로운 인격의 출현이라는 인류 공통의 여망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동학혁명은 우리 사상계에 대탐색시대大探索時代를 초래했다. 이 대탐색시대를 지나는 동안 비록 세상을 모두 아우를 위대한 사상은 출현하지 않았으나 독자적인 입장을 천명한 두 가지 사상이 나타나 3교합일설에 보강 작용을 했으니 그 하나는 김재일(호號 일부一夫)이 역학적易學的 견지에서 주창한 4운질대세계관四運迭代世界觀이며 또 다른 하나는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이다.

  김재일은 주역 팔괘의 기존 배치도와 다른 새로운 배치도를 작성하고 이를 부연해 1년이 춘·하·추·동 네 운수로 반복 교체되는 것과 같이 이 세계 또한 木· 火· 水· 金의 네 운수가 반복 교체되는 데 현대는 火가 金으로 바뀌는 때 곧 가을의 운수가 처음 돌아오는 시기로 가을에 모든 초목이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현대는 인류의 문화가 그 열매를 맺는 시대인즉 유儒·불佛·선仙 3교가 통일·집성될 것이 필연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이론인 4운질대세계관으로 최제우의 3교합일설에 운명론적 설명을 더했다.

  우리의 종교와 사상계에 도래한 대탐색시대의 산물인 『3교 합일』『4운질대세계관』『인내천』의 세 가지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로 다른 종교의 질적 차이는 각 종교가 새롭게 출현할 당시의 시대적 결함인 문화요소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그 종교가 생성되던 시대 또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특정한 기간 내에서만 그 존립의 의의가 인정되며 독특한 사명이 발휘될 수 있으므로 그 특정 기간이 경과된 다른 시기에는 존립의의가 상실되기 마련이다. 그 다른 특정기간의 새로운 결함에 의해 또 다른 종교의 신생 운동이 전개되므로 이것이 바로 종교 진화의 역사적 타당법칙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어느 종교가 그 존립의의가 인정되는 특정기간이 지난 다른 시기에 다시 그 부흥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곧 종교 진화의 역사적 타당법칙을 위배할 뿐 아니라 시대적 사명을 거스르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제우는 수 천 년 간 동양 문화의 절대적 지도 권위였던 유儒·불佛·선仙 3교가 모두 부패하였으므로 이 3자를 합일하면 새로운 종교력을 획득할 것으로 믿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3교 모두가 그 존립 의의가 인정되었던 시기가 이미 지나버렸고 또 현대의 결함은 세 종교 중 어느 종교의 신생기의 시대적 결함과도 같거나 유사하지 않으므로 이 세 종교를 합일한다 해서 그 존립의의의 한계가 연장될 수 없다. 각기 개별적으로 부패한 것은 아무리 그것을 하나로 합쳐 그 외양이나 내용을 새롭게 만든다 해도 부패+부패+부패=3부패 나 부패×부패×부패=부패³의 귀납적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뿐 새로운 질적 변화를 이룩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3교합일설』은 눈앞의 잘못된 현상을 타파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언정 새로운 종교적 이상이나 지도이념의 내용으로는 그 효용성이 전무하다 해야 할 것이다.

  『4운질대세계관』은 지구의 빙하반복교체설과 비슷해 흥미로운 견해라 할 수 있으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그 논리적 근거를 두고 있는 가설로써 이론적으로 엄정하고 명확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인내천』사상 또한 손병희가 최제우의 교의 안에 내재되어 있던 것을 도출해 표방한 것으로 그 근원을 유교의 사상에서 찾을 수도 있으니 예기禮記의 『인성천야人性天也』 와 『인심즉천야人心卽天也』나 순자荀子의 『인즉천야人卽天也』를 인용 부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서구의 유일신 개념을 보다 인간화 한 신관神觀의 혁명적 전환은 인정할 수 있으나 종교적 이상의 권위화가 불가능하므로 역시 새로운 종교적 이상의 개념이나 내용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

  이상의 세 가지 사상은 종교와 사상의 대탐색과정에서 비록 대표이념으로 자리하지 못했으나 기존의 종교와 사상을 대체할 새로운 개념의 표상적 계시로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해 한 시대를 풍미했으니 김일부의 교단은 4운運의 교체반복과 3교합일을 표방하고, 동학의 각 교단은 인내천이나 3교합일을 내세우고 또는 둘 모두를 표방하는 등 우리의 종교·사상계는 전례 없이 복잡한 양상을 보였으나 그 한 편에서는 현대의 시대적 결함을 극복할 새로운 지도이념, 종교적 이상과 내용이 태동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의 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