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神聖의 끝, 人性의 시작을 끝내면서

이 영옥(李永玉) 2013. 6. 19. 10:58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사상思想은 서구의 대립적 세계관이었다. 이 대립적 세계관은 지배와 피지배, 침략과 복속,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함으로써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그로부터의 해방은 인류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쟁취해야 할 초미의 과제가 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사상은,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은 서구가 아니라, 수 세기에 걸친 서구의 가혹한 침탈에 시달리면서도 한 가닥 끈기로 그 고통을 견뎌낸 동양의 문화적 유산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 되었다.

  따라서, 오랜 세월에 걸쳐 동양 문화의 창달과 전승의 중심 민족으로 자부해온 우리가 자신의 문화적 전통과 유산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새롭고 위대한 사상의 씨앗을 찾기 위해 깊은 탐색探索과 궁구窮究를 거듭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해원解愿과 상생相生, 대전협동大全協同의 전일체계全一體系를 수립해 대동사회大同社會라는 새로운 이상향理想鄕을 건설하고자 했던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의 사상을 주목하게 된 것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증산사상甑山思想에 대한 제대로 된 입문서나 개론서하나 없는 것이 증산교계의 실정이다. 증산甑山의 사상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서로는 고故 이 정립李正立 의『대순철학大巡哲學』이 있으나 1947년에 집필, 간행된 까닭에 국한문 혼용의 문어체가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어려운 한자와 숙어가 많아 일반인은 그 내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마저도 오래 전에 절판되어 전문 연구자들조차도 책을 구하기가 힘든 열악한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그 본래의 뜻을 크게 왜곡하거나 호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장을 쉬운 말로 바꾸고 주석을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새롭게 편술編述하기로 했다. 본고本稿는『대순철학大巡哲學』초판본을 텍스트로 삼았으며 그 중에서『의통醫統』편을 삭제하는 대신『대순전경大巡典經』에 수록된 증산甑山의 교훈敎訓 가운데 비교적 우리네 일상日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법언法言』편의 내용을『사람 사는 세상의 참살이와 모듬살이』라는 이름으로 덧붙였다. 그 이유는『의통醫統』편編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증산사상甑山思想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은 쉬이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순철학大巡哲學』을 저술著述한 고故 이정립李正立의 호號는 남주南舟 본명本名은 성영成英으로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서 1895년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목포 영흥소학교·중학교를 거쳐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지리역사학을 전공했다. 1919년 형兄 상호(祥昊)의 권유로 그가 신봉하고 있던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잡지『보광普光』의 주필 및 사장직을 맡았으며, 1924년 보천교에서 인수하려 했던『시대일보時代日報』주필을 지냈다. 그러나 이후 보천교의 교주敎主였던 차경석車京石과 뜻이 맞지 않아 그 자리를 사퇴하고 그 뒤 10여년 에 걸쳐 중국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사학·철학·증산사상 등을 깊이 연구했다. 1942년 11월 임경호林敬鎬, 문정삼文正三 등과 일본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견하고 수운水雲·증산甑山 양 교계敎界의 각 교단을 연합하여 광복 후 민족 신앙의 중추적인 지도세력을 양성하기위해 1943년 동아흥산사東亞興産社를 설립했으나 일본 경찰에 붙잡혀 대구형무소에 3년간 수감되었다가 광복 후 출옥했다. 8·15광복이 되자 형 상호와 함께 서울에서 대법사大法社를 조직해 증산교의 보급에 진력했다. 1949년 주간 국민신보를 창간해 경영하였고, 1952년 전북 전시연합대학 강사를 지냈다. 1967년 형이 사망하자 증산교의 교주가 되어 종단을 이끌었다. 형兄 상호와 함께 수집, 편찬한 『대순전경(大巡典經)』은 증산교의 기본 경전이 되었으며, 그가 집필한『대순철학』은 증산사상을 철학적 차원에서 해석한 최초의 책으로 증산사상甑山思想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로 인정받고 있다. 그 밖에도 『종교학신론』·『민족적종교운동』·『금산다화金山茶)』·『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증산교사』와 미출판 원고로 『대순전경해설』·『증산교교리학』·『연력학(鍊力學)』 등의 저술이 있으며 1968년 11월 30일 몰歿했다.

  특히 그는 일생에 걸쳐 깊은 연구와 천착을 통해 증산사상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정립하였으며, 단군-수운-증산으로 이어지는 삼단신앙체계三段信仰體系를 수립, 민족종교의 주체성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 말기의 역사적인 격동기에 척박하고 피폐한 이 땅에 태어나 해원解寃과 상생相生, 후천개벽後天開闢을 통해 만인萬人이 함께 잘사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건설을 희구했던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의 큰 뜻과 열망을 알아차리는데 이 글이 터럭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끝으로 원문原文을 바꾸어 옮기는 과정에서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함의含意와 원뜻을 그르친 부분이 있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편술자의 몫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1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