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聖의 끝, 人性의 시작 - 통합본
神聖의 끝, 人性의 시작
李 正 立 지음
李 永 玉 옮김
제 1장 도입
1.우주 무한성의 제한
유사有史 이래 인간의 이성理性은 우주의 무한성을 그대로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모색과 천착을 거듭한 끝에 어떤 한계를 설정하거나 발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이 같은 노력은 지역의 다름과 문명文明이나 문화文化의 차이를 떠나 인류 전반의 공통적인 노력이었다. 우주에 유한성有漢性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은 일상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헛된 수고처럼 생각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으니『위치개념 = 위치 B에서의 무한보다 A에서의 무한은, 위치 B에서의 무한보다 A에서 B까지의 거리만큼 더 크다는 관념』과,『시간관념 = 시간 A에서의 무한은, 시간 B에서의 무한보다 A에서 B까지의 시간만큼 더 길다는 관념』이 그런 노력에 다소의 논리적 개연성을 부여했다. 우주가 지닌 무한성의 유한화有限化라는 노력이 처음에는 가상적이고 피상적인 설정에 그쳤으나 인류의 이지理知가 발달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공간적으로 태양계 우주의 유한화와, 시간적으로 지구상에서 빙하기의 교체와 반복의 유한화라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게 되었다.
공간적인 면에서 우주에 관한 생각은 세계의 각 지방과 민족에 따라 서로 달랐다.
중국인은 땅의 넓이가 9만 리, 지표면地表面에서 하늘까지의 거리가 9만 리라는 입체적 우주관을 정립하고 천원지방天圓地方, 천개지반天蓋地盤, 천동지정天動地瀞이라 하여 태양은 동쪽의 부상扶桑이라는 곳으로부터 나와 곤륜산 산마루 느릅나무 숲 사이에 잇는 함지咸池라는 큰 연못에 빠진 뒤 밤에 땅 밑을 지나 다음날 아침 다시 부상을 통해 나온다 하고, 달은 태음太陰이라 해 태양에 상반되는 것으로 태양과 같은 방법으로 운행 한다 하고, 해와 달 이외의 금성, 목성, 수성, 화성, 토성 5대 행성 역시 꼭 같은 방식으로 운행하며, 무수한 소혹성들은 천개天蓋에 붙어있는 까닭에 낮에는 숨고 밤에만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인도인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4대륙의 세계가 동서남북으로 펼쳐져 33중천三十三重天에 9요九曜와 28성二十八星이 운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거리와 관해서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부처님의 나라까지 10억 불토佛土라 하였는데, 불토는 대지를 작은 가루로 만들어 그 무수한 가루를 길게 늘어놓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한 것이라고 했으니, 이 관념은 숫자상으로는 고대인들의 수數 개념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을 비롯한 서구인들의 공간개념은 중국인이나 인도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으며 그들의 우주관에 의하면 땅에서 하늘까지의 거리가 3천 리 쯤 되는 것으로 짐작되고, 하늘은 땅 위에 커다란 종鐘을 엎어 놓은 것이거나, 혹은 장막을 친 것이라 생각하고, 태양은 동쪽의 사막가운데서 나와 대서양 밖 화탕해火湯海에 빠진 뒤 밤에 땅 밑을 지나 다음날 다시 사막에서 떠오른다고 믿었다.
이와 같이 각 지방 사람들의 우주관이 모두 비슷하여 큰 차이가 없었으나 그리스인만 이 세계가 둥글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도 우주를 거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까닭에 태양, 달, 별들이 모두 소위 대정권大晶圈 안에서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생각했다. 그 중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도 있었으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공인받지는 못했다.
시간적 우주에 대한 생각도 역시 각 지방이 서로 달랐으니 서양인은 1779년 런던의 서적조합에서 출판한『만국사』에 세계는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 오전 추분秋分에 창조되었고, 인류는 천지창조의 극치라 할 수 있으니 유프라테스 강가의 바즈라 로부터 상류 쪽 이틀거리에 있는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생각은 기독교 성서의 기록을 그대로 해석한 주장이다.
중국인은 태을수 太乙數의 기초이론에 해와 달이 나누어지고 5성五星이 구슬처럼 늘어선 추상적인 시간을 추산의 기점으로 하여 2010년 까지 10,159,947년을 산출하고 송宋나라 유학자 주염계周廉溪, 소강절邵康節은 129,600년 만에 천지가 한 번씩 개벽된다고 주장했다.
인도인은 금․수․풍金水風 3륜기三輪期를 세계의 창시기創始期라 하면서도 구체적인 연대를 말하지 않고 무량겁無量劫이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상의 수數로만 표현했다. 결국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고대인들의 시時․공空 관념 가운데서는 인도인의 것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매우 작은 우주관이 오랜 세월동안 인류의 사고思考를 지배해 오다가 15세기 컬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설을 주장하고 마젤란이 세계를 일주하자 그때까지의 공간 관념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과 지동설이 확인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 갈릴레이에 의해 망원경이 발명되고, 1784년에 독일의 프라운 호펠이 분광기를 발명하자 천문학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그동안에는 측정할 수 없었던 아득한 우주 공간의 심연과 육안으로는 관측이 불가능했던 사안들까지 포착하게 되어 우주와 시․공간에 관한 새로운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공간적 관념의 변화는 우선 지질학과 생물학적 의문과 연구로터 시작되었다. 이 부문에서는 오래 전부터 학자들의 주의를 끈 두 가지 사실이 있으니 바로 다음과 같다. 그 하나는 세계도처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지층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지층은 서로 다른 성분의 암석대들이 차곡차곡 규칙적으로 쌓여있고 어느 부분은 굽어지고, 비틀리고 깨어지기도 한 것이 그 같은 모양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거대한 힘이 지속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그런 지층 속에에서 발견되는 뼈, 두개골, 기타 유물, 발자국 등의 화석들로 특이한 점은 그것들을 정밀하게 분석해 보면 현존하는 동물들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수세기 이래 크게 확장되어 온 우주에 관한 새로운 관념의 내용을 간략하게 약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끝없이 무한한 우주 공간 가운데 빛과 열을 내는 무수한 중심점들이 아주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반짝이고 있으니 이것이 곧 항성이다. 그 무수한 항성들 가운데 우리 지구와 가장 가까운 것이 태양으로 지구로부터 149,504,200Km, 지름은 1,390,000Km, 부피는 지구의 1250,000배쯤 되는 고온으로 불타고 있는 핵융합체이다. 항성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실은 초속 20 Km로 이동하고, 25일 주기로 자전을 하고 있지만 육안으로 쉽게 분간할 수 없다.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해왕성, 명왕성 등 아홉 개의 행성이 회전하는데 태양으로부터 수성은 57,872,900Km, 금성은 108,141,000Km, 지구는 143,504,200Km, 화성은 227,797,700Km, 목성은 777,848,900 Km, 토성은 1,426,097,100 Km, 천왕성은 2,869,131,800Km, 해왕성은 4,495,691,800Km, 명왕성은 5,899,051,500 Km 떨어져 있다. 또한 화성과 목성 중간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행성군行星群이 있으니 이것이 태양계의 실체로 무한한 우주로부터 반경 약 59억Km의 공간이 유한화有限化 되었다. 이토록 광대한 공간에 넓게 펼쳐진 태양계도 전체 우주 가운데 은하계라는 소우주 성단星團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은하계 또한 전 우주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까지의 거리만 해도 1,242,022,700,000Km이니 이러한 우주 공간의 광활함은 수백 년 전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공간개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천문학과 현대 물리학은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의 공간개념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공간지각 능력과 개념이 얼마나 확장될 것인지는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다.
지질학자는 지층의 퇴적 속도와 그 두께를 측정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지각형성연대를 추산하고, 고생물학자는 화석의 경도와 종鍾의 진화정도에 따른 시간성으로 추산하고, 천문학자와 수학자는 천체의 냉각 속도와, 확산 현상과 원자 변화의 여러 과정을 통해서 지구의 생성 연대를 계산한다. 이 같은 여러 추정치를 종합 절충할 때, 지각이 최초로 굳어지기 시작한 시기로부터 현재까지 약 1억년이 경과되었다 하며 지질연대 상으로 지구에 아무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던 무생대無生代를 8천만 년 전까지라고 한다. 또 지층과 암석을 조사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지구는 100,000년 내지 150,000년 만에 한 번씩 그 지표면이 얼음으로 뒤덮여 왔으며, 지각형성 이래 지금까지 네 차례의 빙하기가 있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즉 우주의 시간적 무한성에서 지각 형성 이래 빙하기가 반복 교체된다는 것만은 유한화 된 것이다.
인간의 지적知的 능력은 유한有限하고 우주는 무한無限한 까닭에 유한으로 무한을 탐구한다면 그 결과는 필시 유한한 지적 결과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능력이 비록 개별적으로는 유한하고 또 순간적으로도 유한하지만, 집단적으로나 지속적으로는 무한하며, 우주는 무한하지만 부분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유한한 까닭에 인간이 무한성을 획득한 지적 천착을 통해 우주의 유한성을 탐구한다면 공간적으로는 우주의 모든 천체들이 차례로 구명될 것이며, 시간적으로 지구상의 빙하시대의 유한한 내용이 구명되어 필경 대大 과거過去와 대大 미래未來에 이르는 영겁永劫까지도 구명究明될 수 있을 것이다.
2. 우주의 시간 법칙
우주의 모든 것이 분산원리와 통합원리에 입각해 일사불란하고 질서 정연하게 연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이행하는 까닭에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운행하며, 모든 생물은 그 번식을 통해 무한한 진화 과정을 겪으며, 일체의 문화는 그 역사 속에서 유구한 발달 과정을 밟는다.
천문학과 지질학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데 있어 그 궤도상의 궤적이 365° 5″ 48/47초이고 이 5″ 48/47초의 여격을 세차歲差라고 말한다. 이 세차로 인해 공전궤도상에서 지구의 위치가 변하는 것이며, 각 행성도 모두 세차를 지니나 서로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어느 시기에는 각 행성의 위치가 한 방향으로 모이고 어느 시기에는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한 방향으로 모이는 시기를 취회과정聚會過政 이라 하고, 사방으로 흩어질 때를 분산과정分散過政이라 한다. 각 행성의 궤도는 행성 상호간의 인력引力으로 균형을 유지하는데 취회과정에서는 인력이 한 방향으로 편중되어 궤도가 타원형朶圓形을 이루고, 분산과정일 때는 인력이 사방으로 분산되므로 궤도가 거의 정원형正圓形을 이루게 된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楕圓을 이루는 시기에는 태양과의 근일점近日点과 원일점遠日點의 차이가 커 1년 중 근일점을 통과해 기온이 상승하는 온난한 시간이 짧고, 원일점을 통과해 기온이 내려가는 시간이 많아지므로 그 한랭기에 얼어붙은 얼음이 다음해 온난기溫暖期에 다 녹지 못하고 다음 한랭기寒冷期를 맞아 다시 얼게 되므로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매년 확대되어 점차 한대 지방을 덮고, 끝내는 적도 지방까지 얼음으로 덮여 지구 전체가 얼어붙는 시기를 빙하기氷河期라 부른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정원형正圓形을 이루는 시기에는 근일점과 원일점의 차이가 적어 1년 중에 원일점을 통과해 기후가 따뜻해지는 시간이 길어지므로 한랭기에 얼었던 빙하를 온난기에 녹이고도 오히려 전년도의 얼음까지 더 녹이게 되어 적도부근의 빙하부터 녹기 시작해 점차 온대 지방이 녹고, 한대 지방이 녹아 마침내 빙하가 남․북극의 극점極点으로 물러가게 된다. 이렇게 지구가 타원형으로 운행할 때는 빙하기가 되며, 정원형으로 운행할 때는 해빙기가 된다. 이 같은 해빙기에는 기후가 온난해져 지구상에 각 생물의 종種이 발생해 분열分裂과 발달發達을 거듭하고 그 번영이 극치에 이르렀다가 빙하기에 접어들면 다시 기후가 한랭해져 모든 생물이 쇠잔해져서 그 종種과 목目이 서로 통합수장統合收藏되어 죽음과 멸절에 이르게 된다.
분산과정으로부터 취회과정으로 이행하는 기간, 즉 지구 표면의 빙하가 녹기 시작한 때로부터 다시 얼음이 얼기 시작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략 10만 년에서 15만년에 이르기까지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주장하고 있으나 송대宋代의 유학자 주돈이, 소강절 등은 그 중간적 수치인 129,600년이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해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갖고 있기에 본고本稿에서는 그가 주장한 수치에 동의하기로 한다. 주돈이와 소강절이 제시한 12만9600년이란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에 생멸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총체적 생존주기라 할 수 있으며 그 전반기는 분산과정으로 모든 생명체가 분열 발달하는 시기이고, 그 후반기인 취회과정은 무수한 종種과 목目으로 나뉘어 번식했던 생명체들이 통합수장되는 시기다. 곧 12만9600년은 지구상에 있어 생명체의 생존에 있어 분산원리와 통합원리가 공존하는 변화의 기본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생물의 일종인 원생세포동물은 각 개체가 분열을 거듭해 특정한 수에 이르게 되면 그동안 생장한 세포 모두를 감싸는 표피와 변별선이 출현해 그 안으로 각 개체들을 군집시킴으로써 독자적 생존을 확보한다. 이 원생세포의 생성과정 또한 생명체의 분열과정과 통합과정을 공유하는 생명주기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탄생과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으니 난세포의 수정 분열로부터 생명의 태동이 시작된다. 수정된 세포는 스스로 성장해 두개로 분열되고 다시 기하급수적으로 분열해 약 400조에 이르는 개체 세포들로 불어나고 그 통합이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각개 세포의 생장과 사멸은 오로지 분열발달과정과 통합수장과정의 연속과 반복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광대한 우주의 운행법칙과 섭리로부터 지극히 작은 생명의 탄생 소멸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분산원리와 통합원리, 즉 분열발달과정과 통합수장과정의 연쇄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다. 그 같은 관점에서 살펴볼 때 지구를 온통 뒤덮었던 빙하가 물러가기 시작한지 이제 5만5000년∼6만5000년이 되었다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는 바로 생물의 생멸주기 가운데 전반기인 분열발달과정이 모두 지나가고 그 후반기인 통합수장과정으로 접어드는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제반사항을 인류의 문화, 문명사적 발달과정과 작금의 세계정세를 연계해서 면밀히 분석하고 검토한다면 향후 우리가 지향해야할 삶의 지표와 보다 분명한 행동수칙을 정립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3. 시간법칙의 제약을 받는 생물세계
지질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때 지구는 지각이 형성된 뒤 1억년이 지날 때까지는 지구 자체의 열이 식지 않아 비록 취회과정에 접어들었더라도(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형이 되었을 때) 지표면이 얼어붙지 않았다. 지구가 냉각되어 지각이 점차 두꺼워지고 지표면이 얼음으로 덮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초의 빙하기氷下期는 70만년 전에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때의 빙하기를 제1 대빙하기大氷下期라 하고, 그 다음을 제1 간빙하기間氷下期, 제2 대빙하기, 제2 간빙하기, 제3 대빙하기, 제3 간빙하기 가장 최근에 있었던 빙하기는 제 4 대빙하기라 하므로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빙하기는 제4 간빙하기라 하겠다.
생물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0만년∼3000만년 전의 시기에 발생했다 하며 이 시기를 시생대始生代라 부르는데 시생대 지층에서 발견되는 식물은 말류 類, 동물은 방사충이라 부르는 가장 간단한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3600∼2600만년 사이를 초기 고생대古生代라 부르며, 이 시기 지층 속에서는 식물로 각종 해초류, 동물로는 해류蟹類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삼엽충과, 바다전갈이라 부르는 비교적 큰 수생동물, 패류와 비슷한 완족류腕足類등 수심이 얕은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 2600만년∼1400만년 까지를 후기 고생대라 부르는데 이 시대는 어류, 양서류와 늪지 수풀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이다. 1400만년∼400만년까지를 중생대라 하는데 이시기는 검룡, 공룡, 삼기룡 등 파충류가 크게 번성하던 시대다. 400만 년 전부터 제1빙하기까지를 신생대라 부르는데 이 시기에는 포유류, 각종 초목, 육상의 삼림이 크게 번성해 울창한 숲이 우거진 시대이며, 제1 빙하기로부터 현재까지를 최신세最新世라고 부르는 바 동․식물이 현재와 같이 대규모로 분열 발달한 시기다.
지금으로부터 400만 년 전에 있었던 중생대와 신생대의 교차기에 무생물기無生物期가 있었으니 이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궤도로 접어들어 기후가 한랭해지고 생명들 또한 분열발달기로부터 취회과정으로 접어들어 파충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들의 멸절이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본시 인류의 시원始原은 신생대에 원인猿人이라 부르는 유원인종類猿人種에서 찾아야 할 것이나 이 유원인종은 제1대빙하기에 사멸하였고 제2대빙하기에 원인原人이 출현하였으나 제3 대빙하기에 소멸했고, 제3 간빙기 이후 구인舊人 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제4 대빙하기가 끝난 3만 5000년∼4만 년 사이에 신인新人이 출현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현대 인류의 조상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장구한 시일에 걸쳐 지구는 취회과정에서는 반드시 지표면이 얼어붙고 분산과정에서는 얼음이 녹아 생물이 발생 분화 발달하다가 빙하기氷河期에 이르면 쇠락衰落하는 통합수장의 단계를 거쳐 사멸死滅되고는 했다. 곧 모든 생물세계 또한 우주의 시간법칙에 따라 그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으니 행성들의 분산과정은 생물들의 분열발달과정이고, 행성간의 취회과정은 생물계의 통합수장과정이라 생각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살펴볼 때 현 시점은 제4 대빙하가 녹기 시작한지 5만 5천∼6만 년이 지났고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예지인新人이 출현한 것이 3만 5천∼4만 년 전이니 분열발달시기와 통합수장시기의 교차기로 가늠할 수 있다.
4. 인류의 분화 발달 과정
지금으로부터 약 6만 년 전에 우주가 분산과정에 접어들어 지구의 궤도가 타원형으로 바뀌기 시작하자 기후가 점차 따뜻해져 적도赤度 부근에서 얼음이 녹아 지표면의 빙하가 점차 양 극점으로 물러가는 동안 해빙된 지대에서부터 생물이 발생해 분열발달을 계속했다. 이 시기에 적도 부근의 열대지역은 광활한 초원이 조성되고, 남아시아와 인도양, 동·서 두 개의 호수로 둘러싸인 지중해 분지에서 수렵인종이 나타났다. 빙권氷圈이 점차 축소됨에 따라 식물이 번성하게 되니 풍성한 목초지가 형성되고 야생마와 들소, 순록의 무리가 먹이를 따라 전 세계로 그 영역을 확대함에 따라 초식동물을 사냥해서 식량을 구하던 인류도 자연히 먹이를 쫓아 이동하게 되니 남으로 아프리카, 북으로 유럽, 동으로 소아시아에 걸친 지역과, 인도양 연안을 중심으로 한 중앙 및 동북아시아, 베링지협을 거쳐 아메리카 남·북 대륙에 걸치는 지역이 모두 이 수렵인종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 이 인종이 약 2만 년에 걸쳐 번성했으나 특정한 지역에 정착해 살지 않고 먹이가 되는 동물을 따라 끝없이 유랑했던 까닭에 특수한 풍토의 영향을 받아 특화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인류 최초의 발생지發生地인 인도양 연안과 지중해 분지에서 1만 6천 년 전부터 겨우 목축과 간단한 목초 재배에 의한 생활방식의 변화가 일어나 식물의 채집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빙하가 완전히 물러가고 대우기大雨期가 도래해 바다의 수위가 갑자기 높아져 인도양과 대서양 연안의 저지대가 모두 바다로 변하고, 지부롤터 지협이 무너져 지중해 분지가 바닷물에 잠기게 되고, 북쪽 발트해로부터 유럽, 러시아를 거쳐 카스피 해, 아랄 해, 투르키스탄 사막을 연결하는 광대한 지역이 바다로 변했으며, 페르시아 만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북쪽인 시리아까지 이어졌고, 아시아에서는 오늘날의 고비사막이 중앙아시아로부터 동북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또 대우기大雨期 이후 삼림森林이 무성해져 각지의 초원이 모두 삼림지대로 변하자 야생마, 들소, 순록 등 수렵인들의 식량이 고갈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의 창궐로 이 인종 또한 사멸했다.
지중해 분지에서 발생한 새로운 생활양식, 곧 정착생활을 통해 상당한 문화를 건설했던 목축인牧築人은 홍수의 급습으로 인해 그 대부분이 사멸했으나 변방의 고지대에 살던 자들은 목숨을 건져 사방으로 흩어져 존속하니 일부는 북쪽의 유럽대륙으로, 일부는 동쪽의 소아시아로 일부는 남쪽의 아프리카로 진출하여 원주 수렵인과 공생하거나 원주민을 구축 섬멸했으며, 인도양 연안의 저지대에 살던 사람들도 해일을 피해 중앙 및 동북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목축인牧畜人이 수렵인과 교체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 각기 적당한 지역에 자리를 잡고 정착생활을 하게 되자 큰 산맥과 큰 바다, 호수와 같은 자연적 장벽으로 차단되어 서로의 왕래와 교통이 끊어져 고립된 채로 시간이 지나면서 각 지역의 특수한 풍토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결국 목축인들은 각 지방에서 각기 다른 기후, 다른 지형, 다른 음식, 다른 환경에 적응하면서 독자적인 수정과 점진적 분화작용을 통해 종족별로 특수한 모습, 언어, 문자, 사상, 인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특화된 인종을 모습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1) 유럽, 지중해 지방, 서아시아에는 수천 년 이래 백색 인종 즉 코카서스 인종이 살았는데 이를 세분하면 a. 북방 형 : 흰 피부, 노랑머리, 푸른 눈. b. 남방 형 : 갈색을 띤 흰 피 부에 검은 머리. 검은 눈의 지중해 형의 이베리아인종. c. 알프스 형 : 북방 형과 남방 형의 중간형으로 구분됨.
2) 동북아시아 및 아메리카에 사는 누런 피부, 검은 머리의 몽골리안.
3) 아프리카의 흑색 인종
4) 호주, 뉴기니아에 사는 갈색의 호주 인종
이상 4종의 분류는 외모를 기준으로 한 것이나 이 기준 내에서도 더욱 더 자세하게 분류하자면 수백 수천의 종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를 다시 그 사용 언어에 따라 분류하자면
1) 불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아르메니아어, 페 르시아어, 인도어는 공통어근을 갖고 있으며 문법 구조가 비슷하므로 이들을 통틀어 아 리안 어족이라 하며.
2) 히브리어, 아라비아어, 아비시니아어, 고대 아시리아어, 고대 페니키니아어 등을 샘 어족
3) 고대 이집트어, 콥트어, 동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어, 갈라티아어 소말리아어 등을 햄 어족.
4) 랩란드인의 랩어, 시베리아의 사모예드어, 핀란드어, 마잘어 터키어, 타타르어 만 주어, 몽골어, 한국어, 일본어 등을 우랄알타이어족.
5) 중국어, 버어마어, 태국어, 티베트어 등을 인도지나어족(고립어임).
6) 전 아메리카 인디안 모든 종족의 언어군인 아메리카 인디안 어족.
7) 아프리카의 적도 일대로부터 남아프리카 일대에 거주하는 반투어족.
8) 남인도의 드라비다어족.
9) 인도 북·중부로부터 폴리네시아까지 분포된 인도어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같이 대략 9종의 공통어군語群으로부터 복잡 다양한 언어로 발달함에 따라 인류 또한 무수히 많은 민족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자연적, 인위적 장벽이 무너지고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각 민족이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다른 지역에 가서 교육을 받고 거주하며 현지인과 국제결혼을 하고, 학문과 기술, 예술 등 서로 다른 문화가 교호해 혼융통합작용混融統合作用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머지않아 모든 민족이 서로 혼합되고, 언어도 세계 공통어가 생기고, 마침내 전 지구적 문화가 건설되어 현재와 같은 민족의 구별과 나라의 구분이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되새겨보면 현시점이 인류학적으로나 문명사적으로 분열발달과정을 지나서 통합수장과정에 진입하려는 교차기 임을 알 수 있다.
5. 세계 문화의 발달과정
고고학자들은 고대의 문화과정을 시기적으로 구분하여 원인(原人ㆍ피테칸트로푸스)은 조잡한 석기를 사용하였으므로 이를 전기 구석기시대로, 수렵원인(舊人ㆍ네안데르탈인)은 보다 발달된 석기를 사용하였으므로 이를 후기 구석기시대로, 목축지인(牧畜智人ㆍ新人ㆍ크로마뇽인)은 훨씬 더 정교한 석기를 사용하였으므로 이를 신석기시대로, 이후 인류가 맨 처음 유목과 농경을 시작한 시대를 청동기시대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8천 년 전에 인류의 사회조직과 생활양식이 현저하게 발달되면서 인류의 신석기 문명은 두 유파로 갈라졌다. 중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원시적인 신석기시대의 생활이 점차 발달해 유목생활로까지 변화했으나, 이집트를 위시한 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지방과, 중앙아시아와 타림분지와 곤륜산맥으로부터 비롯한 황하 강변과, 양자강 유역에서는 비옥한 토지에 정착한 정주문명定住文明이 발생했다.
본시 문명文明은 사람이 특정한 토지를 장기간 점유하여 지속적으로 경작하고, 일정한 지역에 장기간 거주하며 정착생활을 영위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문명을 건설하기위한 정착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사시사철四時四節 물과, 목초와 식량, 건축자재의 공급이 원활해야할 뿐 아니라 외적의 침탈로부터도 안전한 곳이어야만 했다. 이 같은 요건을 구비한 지역으로는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평원, 인도의 갠지스 강 유역, 황하와 양자강 상류 지역을 들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일찍이 사람들이 정착 상주하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가옥 또한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해지고 물산이 풍족해져 인근 지역과의 교류가 늘어나 불필요한 충돌이나 갈등이 해소되어 사람들이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한편 토지가 척박하고 계절에 따라 한서寒暑의 차이가 심해 생존조건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게 행동이 민첩하고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사람들이 거주했으니 이들이 곧 원시유목민족이다. 이 유목민족은 목축을 주요 생활수단으로 삼았으며 정착농업민족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난폭한 성정을 지니고 있어 목축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부족을 침탈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
정착민족이 생활에 필요한 기구를 점차 정교하게 개량하는 가운데 여러 금속의 제련법을 발견하고 이것을 전래받은 유목민족은 이를 무기 제작에 활용해 청동기와 철제 무기로 무장하면서 그 전투력과 활동영역이 극대화되었다.
인간은 원래 식량자원을 찾아 떠도는 유랑자였지만, 우연히 상당기간 머물게 된 지역의 자연환경에 따라 영농을 위주로 생활하는 정주민이나 가축의 축양에 필요한 목초지를 따라 유랑하는 유목민으로 분화 되었다. 정주민은 토지에서 산출되는 곡식을 주식으로 하고, 유목민은 가축의 고기와 우유를 주식으로 하게 되어 소와 양을 많이 사육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생활양식으로 인해 정주민과 유목민은 자주 충돌하게 되었고, 정주민 측에서는 유목민을 난폭한 야만인이라고 생각하고 유목민은 정주민을 유약한 종족으로 약탈에 가장 적합한 대상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정주민의 영역 밖에 거주하는 굴강하고 호전적인 유목민족과 평야지대에 도시를 건설한 정주민족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분쟁과 침탈이 반복되었다. 유목민과의 전쟁 초기에는 정주민의 수가 많아 유목민이 침략해도 약탈이 끝나면 바로 돌아갔으나 이후로 유목민이 부족 간의 통합을 통해 강대한 세력을 구축하게 되자 정주민의 촌락과 도시를 모조리 정복한 뒤에도 정복지역에 머물며 직접통치를 시작하니, 원래 그곳에 살던 정주민들은 산물을 생산해 조세를 바치는 서민이나 노예가 되고 정복자인 유목민은 왕과 제후와 같은 귀족 지배계급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정복자이던 지배계급은 원주민의 정교한 기술, 고아한 풍속, 습관 등에 심취해 그들의 생활방식을 본받게 되니 본래의 굴강한 성정도 사라지고 원주민과 혼혈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종교와 사상까지 변화되어 원주민의 문화에 융화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사이 산간지역에 잔류하였던 유목민은 또다시 이합집산을 통해 강성한 세력을 형성하고 평지에 정착 동화된 세력에 대한 침략을 자행한다. 유목민의 이 같은 정복, 정착, 확산, 문명화와 또 다른 정복, 정착, 확산, 문명화가 반복되면서 인류의 문명은 이웃에서 이웃으로 계속 전파되어갔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최초에 수메르 민족이 정주하여 수많은 농업도시와 촌락을 건설했는데 수리사업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또한 벽돌로 주택과 사원을 건축하고 문자를 창제하였으며, 군인은 긴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밀집전투와 같은 발달된 보병전술을 사용했다. 초기에는 다수의 도시국가로 분립하여 서로 패권을 다투다가 후에 에릭 이라는 승려가 도시국가를 통합해 강력한 통일국가를 건설했다. 이 수메르 제국이 약 3천 년간 존속하다가 지금으로부터 4700여 년 전에 셈족의 추장 싸곤에 의해 패망했다. 수메르 제국을 멸한 싸곤은 정복전쟁을 계속해 그 영토를 동쪽으로 페르시아만, 서쪽으로는 지중해 지방까지 확장해 수메르-아카드 제국을 건설, 약 200년간 존속했다. 그 후 동방의 유목민 엘람인과 서방의 유목민 아모리인이 동·서에서 동시에 공격해 수메르-아카드 제국을 양분하고, 이어 양 민족 간에 100여 년에 걸친 전쟁이 계속되다가 아모리국 국왕 함무라비가 엘람인을 구축하고 제1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했으나 이후 100년도 안되어 전차와 기병을 앞세운 동방의 유목민인 아시리아인에게 병탄 당해 아시리아 제국이 성립되었다. 이 와중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생한 문명은 점차 인근으로 전파되어 전 소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고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의 지방색을 띠고 분화발달 했다.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에서는 7천 년 전 신석기시대에 이집트인이 아라비아반도로부터 이주해 건축물에 벽돌과 목재를 사용하고 거석 구조물을 축조하는 한편, 청동기 시대에는 회화문자를 만들어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거대 왕국을 건설했으나 종교적 이유로 다수의 왕국으로 분열되어 내란이 자주 일어났다. 약 4천 년 전 고古 이집트 왕국은 동방으로부터 침입한 셈족이 정복해 통치했으나 BC 3500년 경 민중의 봉기로 셈족이 쫓겨 가고, 신新 이집트 왕국이 성립, 강역의 통일을 이루고 멀리 국위를 떨치니 원정군을 유프라데스 강 유역까지 보내 아시리아 제국과 수대에 걸쳐 패권을 다투는 한편 남南으로 이디오피아 지방까지 국토를 확장했다. 그 후 시리아 인이 일시 이집트를 정복했으나 곧 구축되고, 2900년 전 상上나일 지방으로부터 이디오피아인이 침입 약 3백 여 년 간 지배했다. 그 후 프상데리커스 1세가 다시 이집트 제국을 건설하고 네코 2세가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영토를 잠시 회복하였으나 곧 칼데아국의 네브카드 네자르 대왕에게 국토를 탈취 당했다. 이후 이집트는 페르시아에 정복되었다가 일시 독립왕국을 세우기도 했으나 2천 여 년 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다시 정복되었다. 이집트인이 5천 여 년 동안 수없이 많은 이민족의 침탈에 시달리고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는 동안 나일 강 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은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과 홍해 연안 및 그리스, 에게 해海 등지로 확산되고, 나일 문명이 전파된 지방에서는 저마다의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문명으로 분화발달 했다.
인도의 갠지스 강 유역에서는 7천 여 년 전부터 드라비다인들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화를 꽃피웠으나 4천 3백여 년 전 아리안어족의 지파支派가 침략해 북인도 전역을 장악하고 그 위세를 남인도 지역까지 떨쳤으나 통일제국을 수립하지는 못했고, 오랫동안 수많은 왕국과 토후국이 난립하여 분쟁을 일삼았다. 후일 페르시아제국이 갠지스 강 일원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며, 알렉산더 대왕이 갠지스 이동 지역까지 진군했다. 이런 와중에 인도에서도 갠지스 유역에서 일어난 문명이 5인도五印度 전역으로 전파되어 각 지방의 특수한 풍토와 환경에 상응하는 독특한 문명으로 분화발달 했다.
중앙아시아의 타림 분지에서는 8천 년 전에 한인漢人이라는 농경민족이 정주하기 시작해서황하 유역에 무수한 도시를 건설하고, 양자강 유역에서는 묘족苗族이 정착해 역시 많은 도시를 건설했다. 이 두 민족이 처음에는 교류가 없이 각기 독자적으로 발전해오다가 차츰 문물의 교류가 이루어져 묘족의 대부분이 한족에게 동화되어 중화문명을 이루었지만 북방과 남방이 저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중화문명이 융성하면서 복희씨伏羲氏가 문자를 만들어 결승結繩을 대신하게 되어 기록문화가 정착해 방대한 지식의 축적과 전승이 가능해져 비약적인 문명의 창달이 이루어지고, 신농神農은 의약의 발명과 농경 기구의 개량을 통해 생산력을 증대하고, 시장 교역의 제도를 확립했다. 황제黃帝에 이르러 배와 수레, 교량을 만들고, 도로를 개설하자 문명이 더욱 융성하게 되었으니 이 시대의 군장君長을 황제黃帝, 전욱 頊, 제곡帝, 당요唐堯, 제순帝舜을 오제五帝라 부르고 그 이후의 왕조 하夏, 은殷, 주周를 삼왕三王이라 해 5제3왕의 시대를 중국문명의 황금시대로 불렀다.
이제까지 기술한 문명의 여러 중심지, 곧 라인 강으로부터 태평양 연안까지의 지역에는 여러 북방형 민족과 몽골 민족이 금속문명을 발달시키고, 남방의 여러 민족이 정착생활을 통해 높은 문명을 건설했음에 반해 대평원 지역에서는 제 민족이 이동성을 증대해 재래의 완만한 표랑생활로부터 계절에 부응하는 유목생활방식을 정립했다.
아프리카의 중·남부 지역에서는 흑인들이 지중해 문명의 영향을 받아 금속의 사용방법과 농경기술을 습득했으나 그 발달과정이 몹시 완만했다.
동인도제도의 경우 구석기 시대부터 거주해온 소수의 호주 원주민들이 해안 지역에 흩어져 살다가 약 3천 년 전에 양석문화민족陽石文化民族이 동남아시아 해안지역으로부터 이주 해와 각 섬에 혼거하기 시작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베링 지협이 무너져 신·구 양 대륙의 연락이 두절됨에 따라 구대륙에서 건너온 몽골계의 여러 민족이 완전히 고립된 채 남쪽으로 이동해 옥수수를 기본 작물로 한 농업을 일으키고 마야 문자를 만들어 멕시코와 페루 지역에 각기 문명을 건설했다.
이 처럼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지역에서 발상한 문명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각기 다른 풍토와 환경에 따라 저마다 다른 사상과 언어, 문화를 형성하면서 수천 년에 걸쳐 분화를 계속해 오는 동안 어느 지방에서는 윤리 사상을 중심으로, 어느 지방에서는 신비사상을 중심으로, 어느 지방에서는 철학을 중심으로, 또 어느 지방에서는 현실을 중심을 발달 해 서로가 다른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지역과 나라 사이의 장벽이 열려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각 지방의 특이한 문명들이 서로 교호하는 가운데 다른 언어, 문자, 학술, 기예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로인해 각 지방의 특이한 문명들이 그 분화작용을 끝내고 상대를 수용하는 혼융통합의 문명으로 그 발전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이 같은 추세로 미루어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언어와 문자까지도 하나가 되는 새로운 대통일 문화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인류의 문명이 마침내 분열발달과정을 지나 통합수장과정에 진입하는 교차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6. 변국變局과 인격人格
우주의 운행과 변화의 모든 과정에는 반드시 비약단계가 있고 이는 양적 변화의 최고점에서 질적 변화로 이행되는 순간을 뜻한다. 행성의 궤도가 타원형으로 신장되어가다가 그 극점에서 다시 정원형으로 수축되기 시작하는 순간, 즉 취회과정에서 분산과정으로 바뀌는 시기와 정원형으로 수축되다가 그 극점에서 다시 신장되기 시작하는 시기, 즉 분산과정에서 취회과정으로 바뀌는 순간을 비약단계라고 부른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도 일어난다. 빙하기에 빙권氷圈의 확산이 최대점에 이르렀다가 해빙기를 맞아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순간과 빙권이 축소된 최소점에서 다시 얼어붙기 시작하는 시점에 비약현상이 나타난다. 이 비약원리는 우주의 운행질서나 자연현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세계에 까지도 적용된다. 모든 생명체의 생멸주기 또한 이 원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곧 통합수장과정의 극점에서 분열발달과정으로의 전환기와 분열발달과정의 최정점에서 통합수장과정으로 바뀌는 교대기에 이르면 역시 같은 비약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비약현상은 우주의 시간법칙 아래서 일어나는 대大 비약현상이지만 각 과정의 진행 도중에도 매 단계마다 무수한 소小 비약단계가 있다. 하루 가운데 자정과 정오가 소 비약단계이고, 하늘에 떠 있는 달의 그믐과 보름이 소 비약단계이며, 일 년 가운데 동지와 하지가 각각의 비약단계에 해당한다. 두 비약단계의 사이에 있는 양적 변화과정을 점진적비약단계라 하며, 이 단계의 반복과 연계에 의해 우리 인류의 문화 역시 그 과정이 진폭 율동하며, 역사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약단계를 변국變局이라 한다. 그러나 유사 이래 지금까지 전개된 변국의 양상이 서로 다르니 사상적 변국과 정치적 변국, 경제적 변국이 바로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이 같은 변국이 어느 특정지역에 국한되기도 하고,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계되어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분열 발달과 통합수장의 교대기적 변국變局에 해당하므로 현대는 세계의 각 지방, 각 민족이 연계된 범세계적 변국이라 할 수 있다. 곧 인류 문화의 각 부문을 망라한 종합적 변국이 도래한 시점으로 인류의 문명사 전반기 6만 년이나 후반기 6만 년을 통틀어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미증유의 대 변국이라 할 수 있으니 과거나 현재는 물론 미래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례나 추론으로도 이를 예증하거나 미루어 짐작할 수 가 없다.
인류의 역사는 변국變局의 기록이며 또한 인격人格의 기록이다. 따라서 인류 역사의 점진적인 변화 단계의 기본적인 질서와 규범에 결함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대중의 공통적인 이상理想이 변해 그에 걸 맞는 새로운 질서와 규범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옛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출현하기를 바라는 대중大衆 중심의 비약운동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이 같은 요구와 바램의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인격이며, 새로운 이상을 구체적 형상으로 개념화한 지도적 표현 또한 인격이므로, 전자는 기존질서의 결함으로 인한 모든 악폐와 구습을 혁파하는 파괴적인 지도권위이며, 후자는 새로운 이상의 구체적 내용을 낱낱이 밝혀 새롭게 정립한 질서와 규범을 생성하는 건설적 지도권위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격은 한 개인의 가치표현이라기 보다는 역사의 사도使徒이며, 시대의 일꾼이고 대중의 방장쇠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변천에 있어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것이므로 정치적 변국에는 정치적·정략적 인격이 출현하고, 경제적 변국에는 경제적 인격이 출현하고, 사상적 변국에는 사상적 인격이 출현하며, 작은 변국에는 작은 인격이, 큰 변국에는 큰 인격이 출현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와 상황에 부응하는 시대정신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바야흐로 현대는 이 세계가 분열발달 과정으로부터 통합수장 단계로 바뀌는 전대미문의 종합적 대변국이 전개되는 순간이 분명하므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대인격의 출현은 바로 역사와 시대의 요구라 할 수 있겠다.
7. 종교 문제
인류는 일찍이 무리지어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담보했던 까닭에 모든 구성원의 습관이나 감정, 의식까지도 함께 연대하는 생활방식 곧 공동생활, 공동행동을 삶의 기본가치와 기준으로 삼았으며, 이 같은 생활양식을 더욱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규범과 의례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종교다. 이 종교로 인해 인류의 문명이 발달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종교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 문명의 발달에 근원적인 추동력으로 작용했고 영도적 권위가 되어왔다는 것 또한 지나간 역사가 증명한다. 따라서 종교의 본질을 밝혀 그 올바른 정의를 내리는 것은 인류문명과 문화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밝히고 올바르게 인식하는 지름길이라 하겠다.
로마인이 지중해 연안을 로마제국의 강역으로 통합하고 그 때까지 지중해 일대의 선도적 문명이었던 그리스 문명의 계승자로 부상하자 학문은 물론 문화, 철학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로마인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따라서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뒤에는 기독교 교역자가 모든 학술연구의 중심이 되었고, 여타의 학문은 물론 철학, 종교까지도 기독교의 교의敎義에 사역使役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종교의 본질과 특성을 「신과 인간의 관계」「절대 귀의」「경험 통일」의 유무에 따라 정의하게 되었다. 이 같은 인식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진리로 자리 잡았다.
이후 16세기에 이르러 유럽과 아시아의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자 유럽의 학자들도 인도와 중국의 학문과 종교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유교, 불교, 도교와 같은 동양의 종교들은 그 교리에 초절적 신神에 대한 명확한 믿음은 없으나, 윤리관이나 인생관에 있어서는 기독교에 비해 상대적인 수월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동안 불변의 진리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기독교 지상주의에 입각한 종교의 정의에 대해서도 새로운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동양의 종교와 기독교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 연구한 끝에 서로 다른 두지역의 종교가 지니고 있는 공통분모와 접점을 찾아 종교란 『수도단체』『인격완성』이라는 일차적 정의를 내릴 수 있었고, 이때에 이르러서야 철학과 종교는 기독교적인 것만 허용되던 그동안의 독단적 사유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어 독자적인 견해와 입장을 견지하며 그에 부합되는 긍지와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서 제반 종교에 대한 자유로운 연구와 비판이 가능해지게 되어『종교적 세계질서의 반영』『종교적 선험성의 충동』『정신생활』『성스러움의 추구』와 같은 새로운 명제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그 양태와 형질이 다양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내용과 요소를 지닌 채 오랜 세월에 걸쳐 독자적으로 발전되어 온 까닭에 각각의 특성에 대한 깊은 고려와 모색을 통해서만 그 본질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정의가 가능하다 할 것이다.
이제까지 이루어진 종교에 대한 정의를 개략적으로 정리해보면『신과 인간의 관계』나『절대귀의』는 신神을 공경하는 신앙심을 근거로 세워진 논리이고,『수도단체』와『인격완성』은 신앙의 수행적 요소를 바탕으로 성립된 논리이며, 『경험통일』은 유일신적有一神的 이론에 입각한 논리요,『종교적 세계질서의 반영』은 범인류적인 이상의 반영이고,『종교적 선험성의 충동』은 인간의 심리현상의 투영이며,『성스러움의 추구』란 개인적 이상치를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유교나 도교, 불교 등 신神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종교도 존재하므로 모든 종교를 『신과 인간의 관계』『절대귀의』와 같은 개념으로 규명할 수 없으며, 무도(巫道:무격신앙)나 신도(神道:귀신을 믿는 신앙) 같은 원시종교들을 『수도단체』나『인격완성』같은 정의를 통해 자리매김 할 수 없다. 그 밖에 태양교, 바라문교 등 다신多神 숭배의 종교 또한 『경험통일』을 통해 이해하기 힘들다. 어느 종교든 그 정도와 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신앙체계 내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이상을 일정부분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세계질서의 반영』이라는 정의 가운데 『종교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밝혀 둘 필요가 있다. 이는 특정 명제에 대한 정의로서의 명료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심리적 선험성先驗性도 모자라므로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종교에 대한 정의로는 부적합하다. 그 밖에『정신생활』『성스러움의 추구』등의 명제도 “정신”이나 “성스러움”같은 말의 모호성으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결국 종교에 대한 보다 분명하고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종교가 발생한 기원을 고찰해 그 근원적 동인動因을 구명究明하는 한편, 수없이 많은 종교적 현상과 사례들을 분석 그 차이와 동질성을 비교해, 애초에 종교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내용을 추출한 후, 다시 귀납적 방법을 통해 종교가 발생하는 심리, 사회적 과정을 검토해서 그 보편적 이유와 속성을 낱낱이 밝혀야만 종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의가 가능할 것이고 이를 통해서만 인류 문화에 있어서의 종교의 참된 의의와 사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8. 종교의 기원
예로부터 종교의 기원을 말하는 사람들의 이론과 견해는 그 수와 내용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 개략적인 내용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원시인의 자연에 대한 경이와 공포의 감정이 바로 종교의 시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다. 원시인은 두뇌의 활용도와 개발이 낮아 철학적 사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단순한 언어를 구사했던 까닭에 암흑, 우뢰, 폭풍과 같은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와 공포심 뿐 아니라 태양, 달, 별, 기암괴석, 거수고목에 이르기까지도 외경의 염念을 지녔는데 그에 대한 경이로부터 종교가 발생했다는 견해다.
2) 인간의 영혼에 대한 원시인들의 관심과 비원悲願이 바로 종교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원시인들은 죽은 자가 꿈에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사자死者의 생명이 영혼의 형태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해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그 영혼을 기리고 숭배하는 행태로부터 종교가 태동되었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3) 원시인들의 장로숭배 사상을 종교의 기원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원시인들은 부족의 장로를 매우 존숭하고 두려워해 그 경외감이 가히 공포의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이 경외와 공포감 속에 성장한 부족의 자녀들에게는 무슨 사안이든 장로와 연관된 경우, 심지어 단순한 사물에 이르기까지 금제화禁制化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장로들의 손때가 묻은 일상품들마저도 숭앙과 금기의 대상이 되었다. 장로들은 부족 구성원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존재였으며 언제나 부족의 안위와 번영을 위해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므로, 생전의 업적이 뛰어난 장로의 경우 그 사후에도 부족민의 기림과 존숭을 받기에 이르니 이가 바로 부족신의 시초로, 세력이 큰 부족의 신神은 이웃한 소小 부족들의 믿음과 숭배를 아우르게 되었고 이러한 신뢰로부터 종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4) 원시 부족사회의 계절집회季節集會에서 종교의 기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수렵을 중요한 식량획득 수단으로 삼던 시절, 사냥의 대상인 야생동물의 계절에 따른 이합집산에 의해 사람도 함께 움직여 동물들이 흩어질 때는 사람도 소집단으로 나누어지고, 동물이 군집을 이룰 때는 사람들도 한데 모여 대집단을 이루는 일을 반복했다. 이 대大 집합의 시기를 그들은 교역, 제사, 혼인 등의 기회로 삼았을 뿐 아니라 개별적인 경험이나, 특별한 생각, 지식을 교환하거나 전수하기도 했다. 이 계절집회가 목축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정례적인 의식으로 구체화되고 빈번해지는 가운데 점차 성찬, 인신희생 등의 각종 의식이 등장했으며 이것이 바로 종교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5) 다른 한 편에서는 원시인의 무술巫術에서 종교의 기원을 찾기도 한다. 원시인들은 전염병의 내습이나 개인적인 화복禍福까지도 모두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동토動土 또는 살이라 방법을 생각해내고 특별한 장소나 인간, 사물, 병, 임신 등을 꺼리거나 기피했으며, 이를 근거로 수많은 금제禁制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무엇을 꺼리는 마음과 금제의식이 가공되고 체계화 되어 부족의 전통이나 관습으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동토』와『살』을 해소하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기복祈復과 해원解寃 행위인『푸념↔푸닥거리』가 등장하고 이 푸닥거리가 무술巫術로 발전했으며 다시 종교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6) 또 다른 이들은 능력이 뛰어난 위대한 지도자의 출현을 바라는 원시부족민들의 원망願望이 종교의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원시인들은 생존상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무리지어 군집생활을 했고, 이런 무리 생활에서는 당연히 크고 작은 다툼과 갈등이 발생했으며, 이런 분쟁을 수습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지도자의 중재가 필요 불가결했다. 이 지도자는 남다른 힘과 용기를 지닐 필요가 있었으며, 신비하고 신령스러운 능력, 명철한 예지력豫知力, 현명한 지혜까지 갖추어야만 했다. 이에 근접한 능력을 구비한 자者가 부족의 족장이나 제사장, 주술사가 되어 부족민들의 바램과 요구를 충족시켰다. 주술사는 자신이 지닌 주술적인 힘을, 제사장은 제례의 영험함을, 족장은 자신의 권력을 통해 부족 내부에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을 해소했다. 이들은 점차 자신의 능력을 보전하기 위해 특정한 질서와 규범, 의식을 제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종교가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다.
7) 원시인들이 지녔던 통일이념統壹理念에서 종교의 기원을 찾는 이들도 있다. 원시 인류가 사용하던 단순한 언어들이 복잡한 다의적多意的인 언어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사유思惟가 가능해지고 사물의 형태, 작용에 대한 고찰과 과거에 대한 반추, 미래에 대한 추정 등 여러 형태의 사고思考가 이루어지면서 스스로의 유래, 사물의 근원, 자연과 우주의 본체와 같은 철학적 명제들에 대한 사색을 거쳐 결국 창조자, 절대자, 모든 것을 관장하는 궁극적 지배자를 상정하게 되고, 그에 대한 숭앙과 경배의 염念이 종교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상 일곱 가지의 예가 모두 종교의 발생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에는 틀림없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선후先後와 경중輕重을 구별할 수는 있다. 원시부족들은 장로의 영도아래 군집생활을 했으므로 장로에 대한 숭배가 종교의 발생에 1차적 역할을 했을 것이며, 부족 내부의 분란과 외침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탁월한 지도자에 대한 요구가 종교발생의 2차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도 계절집회와 무술巫術, 자연에 대한 경이와 공포, 영혼관념, 통일이념이 순차적 작용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사물이나 사안의 생성에는 주적主的 원인과 종적從的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주적 요인은 대상의 본질로부터 기인하는 필연적 원인이고 종적 요인은 시기나 경우에 따라 우연히 발생하는 특수한 원인이다. 예를 들어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결합해 물이 생성될 때 물은 주적 원인이고 수소와 산소 원자는 종적 원인이다. 손문의 혁명사상은 신해혁명의 주적 원인이고 철도국유화 사건 은 종적 원인이며,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혁명의 주적 원인이고 제 1차 세계대전의 종적 원인이다. 일본 군벌의 발호는 일본제국주의 패망의 주적 원인이고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은 그 종적 원인이다. 이처럼 종교의 기원에는 그 본질로부터 기인하는 진화론적인 원인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종교 발생의 주적 원인일 것이고, 앞서 열거한 이론들은 그 종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사물과 사안의 생성에는 주主·종從의 두 가지 원인이 작용하므로 어느 한 가지 원인만을 근거로 판단하고 정의하는 일은 삼가 하는 것이 옳다하겠다.
9. 목적론적目的論的 진화론進化論
다윈이 생물의 진화현상을 구명究明하면서 생존경쟁과 우승열패가 진화의 원리라고 주장한 뒤부터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진화론을 학문연구의 이론적 근거로 삼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 크로포트킨이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원리를 진화의 주요인이라 주창함으로써 진화론에 도덕적 원리를 부여하고, 식물학자 드·프리스가 생물의 진화단계에서 나타나는 돌연변이 현상을 입증하자 사회학자들은 진화론을 급격한 사회변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화론에 일정부분 의문을 갖게 된다. 생존경쟁이 진화를 촉발하고 진행시키는 불변의 원리라면, 진화과정에서 상호부조나 돌연변이와 같은 예외적 현상이 나타날 수 없을 것이며, 돌연변이가 진화를 관장하는 불변의 원리라면 또 다른 예외 현상이 발견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서로 배치되고 모순되는 여러 이론이 진화론에 병존하는 것은 진화론의 주축을 이루는 여러 원리가 생물의 진화를 주관하는 대원리가 아니라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 생물의 진화를 관장하는 주된 원리가 따로 존재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이제까지 우리가 구명한 진화론의 여러 이론과 원리 모두가 생물의 진화와 발전단계에서 “때” 또는 “경우”와의 관계에 의해 종적으로 발생한 원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추론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유심론자有心論者들은 우주 만물이 모두 정신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함수초含水草는 자신의 몸에 아주 미세한 자극이라도 있을 경우 가지와 잎을 일제히 수축해 자극을 피하려 하며, 합환목合歡木은 낮에는 잎을 펼쳐 햇빛을 받고 밤을 맞거나 비가 내릴 때는 스스로 잎을 접어 이슬이나 비에 젖지 않도록 방비하며, 식충식물食蟲植物은 꽃이나 잎에 곤충이 내려앉으면 꽃잎이나 잎을 접어 그들을 포획 소화해 먹거리로 삼으며, 넝쿨식물은 무수한 넝쿨손을 뻗어 근처의 지주물支柱物을 감아 광합성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며, 해바라기는 태양의 떠오름과 기울기에 따라 꽃봉오리를 움직인다. 이런 현상들을 감안하면 식물에게도 물질적 요소 이외의 것이 그들의 성장과 생멸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은 식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영양을 취하고 식물은 대지와 햇빛으로부터 영양을 얻는다. 유심론자들의 주장대로 우주의 만물에 정신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지닌 의문은 보다 쉽게 해소된다. 정신이 자연과 만상에 내재하는 보편적 요소이면서 경우에 따라 그 성질과 정도와 방향을 달리해 작용하고, 그 결과가 다양하게 우리 현상계에 나타나는 것이라면 생물의 진화단계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예외적 현상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에게 있어 정신활동의 기본형식은 목적충동성이라 할 수 있다. 이 목적충동성을 진화이론에 접목하면 기존의 진화론이 내포한 여러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일정한 목적을 지닌 활동이다. 그 목적의 내용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개미나 벌이 무리를 지어 원정하는 것은 보다 많은 먹이를 구하기 위함이며, 먹이를 얻어 갈무리하는 것은 따뜻하고 배부른 내일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지향하는 진화의 중요한 동인動因이며 목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모든 생물의 진화과정 가운데 제 1단계이며, 생물들의 개별 활동은 그들이 처한 현실의 부분적 현상으로 미래를 향한 목적성이 그들로 하여금 현 단계의 현실을 조성하도록 부추기고, 나아가 이미 조성된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보다 더 나은 현상을 지향하도록 함으로써 그것을 생물의 표상의식表象意識으로 고정한다. 이 표상의식이 생물 진화의 목표가 되어 무수한 단계를 거치는 동안 시간의 흐름에 순응해 적응하거나, 외부의 자극과 침탈에 반응해 투쟁하는 경쟁심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같은 부류의 협력과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상호부조의 행태를 보이거나, 급격한 생존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는 창조적이고 비약적인 돌연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곧 생물의 진화는 표상의식을 중심으로 적응성, 경쟁성, 상호부조성, 창조성을 발현해 진화의 매 단계와 때, 경우를 적절히 조합 적용함으로써 이룩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표상의식은 진화의 과정과 단계에 따라 매번 수정, 창조의 과정을 거치며 그 내용이 바뀌니, 예컨대 현대인의 생활 질서는 근고인近古人의 표상의식이며, 근고인의 생활 질서는 중고인中古人의 표상의식이고, 중고인의 생활 질서는 상고인上古人의 표상의식으로, 상고인의 생활 질서는 원시인原始人의 표상의식이요, 원시인의 생활 질서는 그 보다 앞선 원인遠人의 표상의식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목적충동성과 표상의식이 바로 생물 진화의 주된 원리라는 추론에 지나침이 없다 하겠으며, 생존경쟁이나, 상호부조, 돌연변이 등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모두가 그 표상의식의 진행과정과 단계마다 때, 경우와의 관계에 의해 선택된 방법의 일환으로 생물 진화의 종적 원리에 해당한다 하겠다.
10. 삼각추적三角錘的 인생관人生觀
모든 생명체의 근원으로 알려진 단생세포의 모습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분열하고 번식하는 수많은 개체들이 특정한 범주 안에 모여 서로 유기적으로 연대하고 의존하며 생명을 유지한다. 만약 그 중의 한 개체를 그들이 머물고 있는 범주 밖으로 분리시키면 그 즉시 소멸하고 만다. 결국 단생세포는 특정 범위 안에서 상호간의 연대와 의존에 의해서만 생존이 보장되는 생명체다. 이러한 단생세포 마저도 반드시 갖추고 있는 특정한 성향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생식충동과 영양충동, 관련충동이다. 이 3대 충동이 바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필수충분조건의 삼각면三角面을 이루고 이 충동에 의해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의 경우, 생식충동은 내적內的, 정신적으로는 주관적인 정적情的 본능으로 발달하고 외적外的, 육체적으로는 객관적인 윤리적 본능으로 발달했으며, 영양충동은 내적, 정신적으로는 주관적인 지적知的본능으로 발달하고 외적, 육체적으로는 객관적인 경제본능으로 발달했으며, 관련충동은 내적, 정신적으로 주관적인 의적意的본능으로 발달하고 외적, 육체적으로는 객관적인 사회적 본능으로 발달했다.
인간이 지닌 정적情的·윤리적倫理的 본능은 도덕적 개념으로 발현되고, 지적知的·경제적經濟的 본능은 학문으로 표출되고, 의적意的·사회적社會的 본능은 정치와 질서로 표현되었다. 도덕의 궁극적 지향점은 선善이고, 학문의 궁극점은 진眞이며 정치와 질서의 궁극적 이상은 미美다. 이 삼각면의 궁극적 이상인 진眞·선善·미美를 한 점에 모을 때 비로소 인간은 완전한 이상에 도달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생生의 온전한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진·선·미가 한데 모이는 삼각뿔의 꼭지점인 완전이상을 우리는 성聖이라 일컫고 이 성聖이야말로 인류의 공통적 진화이상이며 모든 인격수련의 궁극적 목표라 규정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식·영양·관련의 3대 충동 중 어느 것을 중요시하고 어느 것은 가볍게 여길 수 없으니, 이 세 가지 충동의 균등한 발달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올바르게 보전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삼각면三角面으로 부터 보다 진전된 지知·정情·의意에 따른 정신적인 활동 또한 그 경輕중重의 구별 없이 고르게 발달해야만 건강한 정신세계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며, 경제·윤리·사회적 관계도 지속 가능할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삼각면인 도덕·학문·질서가 진화의 올바른 궤적을 따라 인류 최고 이상적理想的 가치인 성聖에 이를 수 있다.
11. 종교의 정의
앞선 글에서는 종교의 기원이 되는 주요 원인을 구명하기 위해 진화론을 통해 진화원리의 정신적 법칙을 밝히고,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는데 이론적 기초가 될 고대인古代人과 현대인現代人의 인생관을 살펴보았다. 이제 종교의 내용을 이루는 주된 요소들을 살핌으로써 종교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려 볼까 한다.
현존하는 종교들의 내용요소들을 두루 살펴보면 대략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으니 이는 바로 종교마다 지니고 있는『절대적 내용』과『상대적 내용』이다. 절대적 내용은 해당 종교의 보편성을 결정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므로 그 내용 중의 일부라도 결여되면 종교로 성립될 수 없다. 상대적 내용은 종교의 특수성을 결정하는 요소로 어느 종교이든 자신의 특질과 개성을 표현하는 가치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감, 수박, 바나나는 모두 과일이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씨, 과육, 껍질 가운데 어느 하나만 없어도 과일로 분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씨, 과육, 껍질 세 가지는 감과 수박, 바나나를 과일일 수 있게 하는 필수적요소다. 껍질이 매끄럽고 붉은 것과 과육이 달거나 떫은 것, 씨가 단단하고 긴 것은 감만의 특별한 표현이며, 껍질이 푸르고 두터운 것과 과육이 달고 담백한 것, 씨가 단단하고 작은 것은 수박 나름의 독특한 표현이며, 껍질이 연하고 두터우며 노란 것과 과육이 달고 기름진 것, 씨가 연하고 미세한 것은 바나나의 특수한 표현이니, 각각의 표현은 감, 수박, 바나나의 독자적인 가치요소다. 이처럼 종교도 나름대로 저마다 추구하는 이상과 신앙, 의례의 3대 내용을 갖추고 있는 바, 이 세 가지 내용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종교라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상과 신앙, 의례는 종교의 절대적 내용이고, 그 이상의 높고 낮음이나 추상적이든 현실적이든, 신앙의 대상이 신격神格이건 인격人格이든, 추상신抽象神이거나 자연신自然神이거나, 그 의례가 복잡하거나 간소한 것은 각 종교의 특성과 여건에 맞추어 표현한 상대적 내용으로 해당 종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현존하는 모든 종교가 반드시 구비하고 있는 경전經典이나 계명戒命, 성전聖殿도 역시 상대적 내용으로 종교의 보편성과는 관계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결국 종교의 절대적 내용은 영구불변적인 요소인 반면에 상대적 내용은 그 때와 경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꾸거나 폐기될 수 있는 가변적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원시인이 처음 군거群居생활을 시작할 때는 혈연을 중심으로 감정의 표현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집단을 이루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처한 환경이 같으므로 기쁨과 슬픔, 근심과 걱정이 비슷해 다른 구성원과의 표상의식이 점차 닮아가는 과정에 서로 다른 부분은 버리고 같은 부분은 한데 모아 무리 공통의 표상의식인 대표이념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 대표이념은 장로의 신격神格과 결합해 무리 모두의 경배와 숭앙을 받는 절대적 권위를 갖추게 되고, 각 개인의 감정과 융합해 종교적 에너지인 신앙심을 유발하고, 신앙심은 개인의 의식과 작용해 문화성과 조화성을 창출했다.
대표이념의 권위 획득은 종교의 절대적 내용인 이상을 수립하게 되고, 종교적 에너지인 신앙심을 통해 신앙체계를 확립하고, 문화성에 의거한 의례가 제정되어 특정한 종교집단이 형성되었으며, 조화성을 통해 개인과 교단 간의 관계가 정립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종교가 발생해 특정한 교단으로 발전해 가는 전반적인 과정이다. 종교의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표상의식, 대표이념, 종교적 에너지는 종교가 성립하는데 필요한 심리적 요인이며, 문화성과 조화성은 사회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종교의 기원과 발생의 주된 원인은 목적충동성, 또는 표상의식이고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원인은 종교의 성립과정에서 생각과 때, 경우에 따라 발생한 종적 원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대표이념이 권위화權威化되면서 원시인의 장로 숭배 사상과 융합해 신神의 개념으로 승화되고, 위대한 지도자를 희구하는 비원이 대표이념과 결합해 제사장, 승려, 주술사 등의 지위가 설정되고, 계절집회가 대표이념과 뒤섞여 예배와 희생의식을 탄생시켰으며, 무격巫格행사가 대표이념과 어우러져 주문, 의술, 마법이 시작되고, 기암괴석과 거수고목에 대한 경이와 두려움이 대표이념과 만나 화복禍福의 개념으로 변하고, 영혼관념이 대표이념과 융해되어 내세관이 정립되고, 통일이념이 대표이념과 조우해 창세관념創世觀念이 되었으니, 대표이념이 외적 요인들과 결합해 개별 종교의 특질과 개성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종교의 주主 요소인『절대적 내용』에 의거해 종교를 논論하자면 종교란 어떤 특정한 이상理想을 정립하고 민중의 신앙을 한데 모아 그 이상의 경지에 함께 도달하려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여타의 속성에 의거해 살펴보면 종교란 인류 공통의 표상의식 아래 서로의 종교적 에너지를 한데 모아 신앙체계를 수립해서 인간의 삶이 진화해 가는 과정의 상급단계인『새로운 삶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견해를 연결해 한마디로 설명 하자면『종교는 집단이상의 현실적 구현을 통해 인류 문화의 진화를 선도하는 운동』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정말 종교가 인류 문화 진보의 지도운동임에 틀림없다면, 종교는 언제나 인류 문화의 창달에 필요한 요인들을 취사선택해 시대적 결함을 극복하는 주된 가치와 이념이나 중심내용으로 계발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컨대 특정한 시대의 의례에 중대한 결함이 있을 때는 기존의 의례를 버리고 그를 대신할 새로운 의례를 찾아 보다 완벽한 의례를 정립할 의무가 있고, 한 시대의 정세가 극도의 혼란에 빠진 이유가 그 정치적 결함에 있다면 그 정치적 결함을 척결하는 것으로 혼돈을 극복해야 할 것이며, 시대의 양심이 거칠어져 도덕적 결함을 노정한다면 그 윤리와 도덕관을 바로잡아 시대의 양심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에 추호도 거리낌이 없어야할 것이다. 이처럼 종교는 우리 삶에 있어 가장 높은 가치이며 이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12. 역사적 종교관
유물론자有物論者들은 사회의 변혁을 말할 때 모든 사회적 관계 가운데 경제적 관계가 가장 우선하므로 먼저 경제적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다른 부문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곧 경제변혁이 사회변혁의 절대원인이며 사회변화의 유일한 원리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같은 주장을 사회주의 사상의 과학적 논거로 삼아 일세를 풍미했으나 이는 잘못된 견해다. 무릇 푸른 안경을 쓴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푸르게 보이고, 붉은 안경을 쓴 사람에게는 세상이 모두 붉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모두 붉거나 푸른 것은 아니다. 세상의 본디 모습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버리는 것이 옳다. 특정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의 특수한 현상에 경도되어 그 변화를 일반사회의 변화에 보편적으로 적용한다면 어찌 그에 따른 부작용이 없겠는가? 유물론자들에 의해 제기된 의제와 문제적 담론의 근거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 자본주의 발달과정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여러 가지 병폐와 부작용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던 까닭에 모든 나라의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상앙商秧이 진秦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법령을 고쳐 토지의 사유제私有制를 실시하자 진秦나라 조야의 면목이 하루아침에 새로워졌다. 이때의 사회변혁은 경제적 관계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법령의 변화로 인한 것이었으며, 왕망旺莽이 황위를 찬탈해 신新나라를 세운 뒤 왕전제王田制를 실시해 사회의 면목을 일신했으나 이때의 사회변혁 또한 왕통의 뒤바뀜으로 인한 것이며, 이당李唐이 구분전제口分田制를 만들어 실시하다가 안사安史의 난亂이 일어나자 이를 폐기했고 이로 인해 사회 전반이 크게 변모했지만 이 역시 정치적 변화가 사회적 변화를 초래한 경우다. 그 밖에도 다양한 사회변혁이 종교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로마의 공화정 시대에는 금권귀족金權貴族의 계급사회였던 것이 교황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원寺院 중심의 봉건사회로 변했는데 이때의 사회변혁은 종교에 의한 것이었으며,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시대에는 승려가 최상위에 자리한 계급사회였으나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양반 중심의 의례사회로 변했으니 이 역시 종교가 사회의 변혁을 초래한 경우다. 그 밖에도 다른 민족과의 접촉에 의해 사회변혁이 이루어진 사례도 많다. 민족대이동시대에 일어난 유럽 각 지역의 사회변혁,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를 맞은 중국 사회의 변혁, 유럽과 아시아의 교류에 따른 동양 사회의 변혁이 바로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의 변혁과 진화가 경제적 원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견해는 변혁과 진화의 보편적 원리라 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도덕, 경제, 정치라는 생生의 삼각면三角面 으로부터 분화된 수많은 문화요소를 함유하고 있다. 이 문화요소는 각기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깊은 인과관계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사물과 그림자와 같이 언제나 함께하며 움직임과 소리처럼 서로 상응한다. 이 문화요소들이 조화롭게 상응하면서 균등히 발달하면 그 사회의 진화와 발전이 건전하고 온당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숱한 문화요소 중 일부나 어느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급격한 양적변화를 거듭하다가 그 극점에서 발현되는 포화작용飽和作用으로 인해 본래의 속성이나 양태와는 전혀 다른 질적 변화를 일으키게 되면, 나머지 다른 문화요소들도 그에 수반해 한꺼번에 비약적인 변이 현상을 보이게 된다. 마치 단생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개체 중의 개체 한 둘이 과다한 영양공급이나 외부의 자극을 받아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면 나머지 모든 개체들 또한 같은 변화를 일으켜 전혀 다른 이종異種으로 갑자기 변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동양의 여러 나라는 각기 수천 년에 걸쳐 서로 다른 고유의 문화를 전승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 독자적인 사회를 구축했으나 동·서의 교통이 열려 서양 문물의 자극을 받은 학문, 정치, 도덕, 경제, 의례, 인습이 크게 변해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되고 말았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물결과 그 영향의 심대함을 깨달아 적절하게 대응한 경우에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번영을 구가했으나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나라와 사회는 자기 존재와 정체성을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했다. 사회변혁의 원리가 바로 이와 같다.
원시 인류는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 숲이 무성하고 바위가 첩첩한 곳, 가시넝쿨이 뒤덮인 곳에서 혈연으로 이어진 소수의 씨족氏族이 무리를 지어 동굴에 살았던 까닭에 그 생활상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단단한 돌을 깨트려 무기를 만들고, 순록과 들소 같은 동물을 쫓아 잡는 수렵채취가 그 주된 생존활동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불시에 습격하는 맹수와 독충의 추격과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맞서 싸우거나 재빨리 도망치는 것 밖에는 마땅한 방어수단이 없었다. 이 시기의 경험을 통해 그들은 무리의 힘을 한데 모으는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까운 곳의 다른 씨족들과 연대해 더 큰 집단인 부족部族을 형성하니 비로소 맹수와 독충의 침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동물계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무리가 커지고 구성원이 복잡해지자 손가락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표정으로 마음을 전하던 그들은 보다 섬세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필요하게 되어 언어가 발생하게 되었다. 언어의 발생으로 인해 인류의 문화와 문명도 그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무리지어 생활하게 되자 구성원 사이에는 생각이 다르고 감정이 어긋나는 자들이 많아 뜻하지 않은 행동이 상대의 심사를 건드려 크고 작은 다툼이 그치지 않으니, 그 피해가 맹수와 독충으로 인한 폐해 보다 오히려 더 컸다. 열악한 생존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로 무리지어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으나 무리생활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는 일 또한 시급했다. 결국 그들은 무리 구성원 각자의 표상의식을 종합 절충해 적절한 대표이념을 만들었으니, 노인과 청년,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 가까운 이웃과 먼 이웃 등 집단 구성원 사이에 두루 적용되는 규범을 정하고 무리의 구성원 모두가 이 규범을 준수하도록 했으니 이 규범이 곧 부족 나름의 의례와 예절이다. 이 의례와 예절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그들은 자기 부족의 시원장로始原長老의 신격神格과 연계해 동일시했다. 신격화神格化된 집단적 대표이념은 특정구성원의 꿈에 원시장로의 형상으로 나타 의례와 예절의 준수를 강요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계시啓示다. 시원장로의 계시로 구상화具象化된 의례와 예절은 부족구성원 모두가 힘껏 지킬 수밖에 없는 절대규범으로 정착했다. 이 규범은 곧 부족 모두의 이상理想으로 수립되어 전체 부족원의 신뢰와 믿음의 표상이 되었고, 이 믿음이 다시 개인의 의념意念과 결합해 신앙으로 수립되고, 비슷한 신앙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여 단체를 이루니 이것이 바로 종교의 시초로, 원시종교는 특히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과 감정이입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또 이를 힘써 가르치고 권장 함에 비로소 사람들 간의 오해와 갈등, 다툼이 사라져 서로 돕는 마음이 우러나 구성원 간에 협동하고 화합하며 예의를 지켜 겸양하는 기풍이 일어 무리생활이 원만해졌으니 이는 모두 원시종교의 공적이다. 그러므로 원시종교를 달리 의례종교라 부르기도 한다. 의례적 종교가 발달하는 동안 부족 구성원 간의 다툼이 종식되고, 집단생활이 안정되어 인구가 크게 증가했으나 사람 개개인의 생활정도와 건강, 체력 또한 제 각각인 까닭에 구성원 간의 차이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이들은 그를 모두 개인의 운명 탓이라 믿었다. 그들이 처한 생활환경은 불의의 재해와 질병으로 생명을 잃는 일이 잦았던 까닭이다. 따라서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재해가 없고 질병이 없는 평안한 생활이었다. 평안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재해를 물리치고 질병을 퇴치할 수 있는 특별한 방편이 필요했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했지만 그들의 지혜나 이지理知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결국 자연의 재해나 질병은 모두 인간의 운명에 따른 현상으로 그 운명을 주재하는 신神의 뜻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다.
인류가 지닌 여러 문화요소 중에서 신비적인 요소가 포화작용을 일으켜 시대적 결함을 노정하기도 했으니 그것이 바로 무격巫格신앙이다. 무당과 주술사는 일상생활 가운데 접하는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요소를 종교의 이상적 내용과 결합시켜 특별한 권위를 부여한 뒤, 개인의 화복禍福을 빌고 재앙을 피하려는 마음을 신앙과 의례에 결부해 종교의 중심내용으로 편입시켰다. 이들의 중계적 계시를 통해 원시종교는 질적 변화를 일으켜 2차적 형식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개인의 화복禍福을 지성으로 빌거나 재해災害의 모면을 염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간혹 특이한 심령작용이 나타나 미구에 일어날 재해와 질병을 예고하기도 하니 이것이 곧 점술占術의 기원이며, 신神의 뜻에 의한 주술呪術로 질병을 쫓기도 하니 이것이 바로 후세의 법술法術이다. 그 밖에 신탁神託에 의거해 흙과 돌과 초목 등의 주술적인 물건을 사용해 질병을 치료하기도 하니 이것이 의약醫藥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인간의 무의식에 근거한 심령작용에 의해 인간의 집단생활이 안정을 되찾으니 이것이 2차적 종교인 무격신앙의 공적이고 이를 우리는 무격종교巫格宗敎라 칭한다.
무격종교가 발달하는 동안 인간의 생활 양상이 식량을 구해 끊임없이 이동하는 수렵채취 방식에서 주거환경이 적합한 지역에 취락을 구성해 안착하는 정주양식으로 바뀜에 따라 자연히 토지의 이용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동굴이 넓고 양지바르며, 산세가 아름답고 시냇물이 맑게 흐르며 토양이 비옥해 농경에 적합하고 초목이 무성해 가축을 키우기에 마땅한 곳은 그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이 넘치고, 동굴이 후미지고 어둡고 습하거나 산세가 험하고 시냇물이 탁해 마실 수 없으며 토양이 척박해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 땅은 사람마다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계속 증가해 부족마다 보다 넓은 거주지가 필요했으며 식량이 부족해 생존이 위협 받게 되자 이웃한 부족들에 대한 약탈이 성행했다. 이에 부족 간의 정벌과 구축, 이동, 침략이 일상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이집트인은 유목민에게 정복되었고 묘족苗族은 한족漢族에게 구축되었으며, 가나안의 복지는 이스라엘족이 차지했으며 서구의 풍요로운 땅은 동쪽 야만족의 손에 들어갔다. 이처럼 부족 간의 전투가 일상화 되자 일반 민중의 생활은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이 시기의 사람들이 가장 열망한 것은 부족 사이의 싸움이 그치고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강대한 권력이 필요했다. 부족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그에 불복하는 부족을 엄하게 징치할 수 있는 강한 무력을 지닌 권력의 출현이 그래서 가능했다. 인류의 문화요소 중 정치적 문제가 정상궤도를 이탈해 포화작용을 일으켜 그 시대의 결함이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신탁神託을 전하던 제사장들이 나서 물자의 교류를 통해 부족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혼인으로 부족 간의 혈통을 뒤섞으며, 계절집회를 열어 부족 간의 감정을 융화시켜 여러 부족을 나라라는 하나의 틀로 묶으니 이것이 바로 봉건제의 창시다. 이 봉건제를 통해 권력개념이 종교의 이상적 내용과 결합해 변태적 권위로 바뀌고, 형벌과 징치에 대한 개념이 개별적 신앙과 의례와 만나 종교적 중심내용을 형성하니 이에 종교는 다시 질적 변화를 일으켜 3차적 형식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중국인은 천제天帝를 최고 권력자로 삼았으니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스스로를 천제의 아들이라 칭하고 천제의 명을 받아 왕도王道를 행한다며 각 부족의 추장들을 다스리고 천제의 위엄을 빌어 말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징치했다. 유태인은 여호와를 최고 권력자로 삼아 제사장이 여호와의 계시를 받아 열 두 지파를 다스리며 일체의 정치·종교적 율법을 집행했다. 봉건제 초기에는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도 신권神權에 의지해 국가가 형성되어 부족 간의 평화가 정착되었으니 이것이 3차 종교의 공적이며 이 3차 종교를 우리는 정치적 종교라 부른다.
인류사에 있어 최초로 국가의 틀을 이루었던 봉건제도가 전제적인 중앙집권제로 바뀌면서 사회 전반이 복잡하게 변하고 도의道義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개인의 생계를 꾸리는 일조차 어렵게 했다. 봉건영주는 귀족계급으로 신분이 상승되어 세습적 특권을 남용하고 정치와 법을 농단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는 일에 열중하니, 세상의 모든 도道가 무너졌음에도 그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부귀와 공명만을 탐했다. 일반 백성들도 그를 본받아 매사에 염치를 내던지고 사사로운 이익을 쫓는 일을 당연시 하게 되었다. 결국 사회 모든 부문에서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잔인함과 모질고 사나움이 세상을 잘 사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므로, 고루한 것이 습관이 되고 비열함이 풍속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선망하고 동경해 마지않은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정情이 이어지는 덕德이 넘치는 세상이었다. 세상이 청정淸淨하고 고결해지려면 먼저 개인의 양심을 이끌어 내고, 지닌바 덕성을 북돋울 특별한 방편이 필요했다. 이 시기의 인류 사회에는 인문요소人文要素 가운데 도덕道德문제가 포화작용을 일으켜 시대적 결함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세태를 보다 못해 뜻있는 현자賢者와 철인哲人들이 오랜 궁구窮究와 모색摸索 끝에 상선개념上善槪念을 종교의 이상적 내용과 결합해 변태적 권위를 부여하고, 도덕과 윤리적 관념을 신앙과 의례와 얽어 중심내용을 삼으니 이 새로운 중계적 계시啓示에 의해 종교는 다시 질적 변화를 이루어 4차적 형식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공자孔子는 태평太平을 선망해 인의仁義로 교敎를 세우고, 석가모니는 정토淨土를 동경해 자비慈悲로 교敎를 펼치고, 예수는 천국天國에 들기 위해 박애博愛로 교敎를 전하고, 노자老子는 자연自然을 동경해 무위無爲와 허겸虛謙으로 교敎를 펼치고, 마호메트는 천국天國을 그리워 해 정의正義로 교敎를 퍼트리니, 이 모두가 도덕적 가치의 현실적 구현을 위해 개인의 인격을 도야하는 것으로 상선질서上善秩序로 규정하고 그 실현을 꾀했다. 이 종교들이 출현하고 그 교의敎義와 덕목德目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투해 인도人道와 정의正義의 정신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니 이것이 모두 4차적 종교의 공적이다. 하여 4차적 종교를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 도덕적 종교라고 부른다.
종교가 앞서 말한 4단계의 과정을 거쳐 발전한 끝에 현존하는 문명적 종교의 형식으로까지 진화하는 동안 그 각 과정의 변화 형태가 같은 준칙으로 일관해 조금의 차이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는 종교의 발전과 진화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교는 이 법칙에 의해 능히 사회적 진화과정의 단계를 거쳐 그 소멸과 신생이 연속해서 이루어져 인류 문화의 진보에 있어 지도적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니 그 법칙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명제와 함께 할 때 영구불변의 진리와 공식으로 자리함을 알 수 있다.
1) 종교의 변혁은 사회 변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현실상의 모든 변화를 거두어 마무리 하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회가 처음 변화할 때 과거의 낡은 이상은 해소했으나 새로운 이상은 아직 수립하지 못하고, 옛 질서는 무너뜨렸으나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지 못한 채로 과도기에 접어들게 되면 종교 또한 과거의 이상적 내용이 그 권위를 잃어버려 대중의 선망과 열정을 담보할 수 없게 되고, 종교적 에너지와 신앙심이 사라지므로 옛 형식을 버리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하므로, 부득이 새로운 이상적 내용과 권위를 설정하고 새로운 종교적 에너지를 확충해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형식을 정립 생성해야만 그 사회의 과도기적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견실한 질서가 수립되는 것은 물론,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변화의 궤도를 달릴 수 있는 것이다.
2) 종교가 새롭게 태어날 때는 반드시 당시대에의 결함이 드러난 문화적 요소를 선택해 그 중심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기존의 문화요소가 어떤 이유로든 포화작용을 일으키게 되면 낡은 개념이 포괄하는 범주는 이미 벗어났으나 새롭게 포괄하는 범주가 아직 구체적으로 설정되지 못해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 곧 시대적 결함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종교는 바로 이 새로운 개념이 포괄하는 범주를 구체적으로 설정해 이를 중심내용으로 삼아 그 사회의 시대적 결함을 보정하는 준칙을 마련해서 그 사회의 구성원을 교화, 육성함으로써 사회가 정상궤도에 진입하도록 해야만 한다. 예컨대 우리 신체에 어떤 결함이 있을 때 이를 불구라 하는데 의사가 그 결함이 있는 부분에 약을 처방해 신체의 신생작용을 촉발 정상으로 회복하게 하면 불구가 극복되고 신체가 건강을 되찾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3) 종교의 신생에는 반드시 중계적 계시자인 특별하고 새로운 인격의 출현이 필요하다. 특정한 사회의 시대적 결함이 노정되어 사회변혁이 일어날 때, 비록 낡은 개념이 포괄하는 범주를 탈피했다 하더라도 그를 대신할 새로운 개념이 내포된 규정과 그것을 포괄하는 범주에 관한 구체적 설정은 쉽게 확정할 수 없다. 새로운 개념의 내포란 대중적 표상의식이 한데 모인 대표이념이며, 그것이 포괄하는 범위는 곧 대중의 선망과 동경의 새로운 초점이 된다. 그러므로 그것이 내포하는 규정과 포괄하는 범주를 포함한 구체적인 설정은 범상한 사람이 맡을 바가 아니고, 지닌바 현명함과 지혜로움이 모든 대중을 아우르고, 그 열정이 사회 모든 부문에 미치고 넘쳐, 각 개인의 뜻을 한 곳에 모아 새로운 결정結晶을 맺을 수 있는 중계적 계시자로서의 특출한 인격의 소유자여야만 한다. 이 중계적 계시에 의해 규정된 대표이념의 내포와 구체화된 포괄적 범주는 종교의 이상적 내용과 결합 새로운 권위를 확립하고, 다시 그 특수인격의 열정을 중심으로 각 개인의 바램을 응집 종교적 에너지와 신앙을 회복할 때 비로소 종교의 신생이 완료된다.
4) 종교의 중심내용이 그 지위에서 밀려나면 곧 종교의 범위에서 일탈하게 된다. 도덕적 종교가 성립된 뒤 정치적 내용과 무격적 내용은 종교의 영역에서 구축되었어야 마땅하나 그 처한 환경과 때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기독교가 도덕적 종교로 성립되어 정치적 내용은 사라졌으나 무격적 내용은 구축되지 않았으니 그것은 기독교 신생기의 유태인이 처한 환경과 시대가 불교 신생기의 인도인이나 유교 신생기의 한인漢人이 처한 시대나 환경과 서로 다른 까닭이다. 종교의 여러 내용 가운데 의례적 내용이 비록 중심내용의 지위에서 밀려나더라도 그 원래의 종교가 지니고 있는 중심내용의 일부로 남아있는 것은 의례가 본시 그 종교의 절대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13. 현대사회의 결함과 우리가 바라는 종교의 5차적 형식
중앙집권적 국가의 조직이 완성되자 사람의 지혜가 신장되고 문명 또한 크게 발전하니 비판적인 과학정신이 진작되어 인문경험人文經驗의 모든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성찰이 이루어져 이치에 맞는 것은 확장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덜어내 인류문화의 고도화를 꾀한 바, 그 성과가 적지 않았다. 이에 인류는 머지않아 태평한 세상이 도래해서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근심 걱정 없는 안락한 삶을 누릴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민중의 그 같은 기대와는 달리 권력을 농단하던 귀족 가문의 뒤를 이어 등장한 재벌이 세상의 모든 자본을 독점하니 사회 각 부문의 경제적 질서와 관계가 왜곡되었을 뿐 아니라, 부富의 편중과 양극화가 심해져 결국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계급적 대결양상이 벌어졌다. 이 같은 대결은 격렬한 투쟁으로 발전하고, 사회는 더욱 극심한 혼돈과 분란의 장場으로 바뀌니 온갖 해악이 발생하고 화禍와 액厄이 범람해 민생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사회의 혼란을 수습해야 할 도덕적 종교는 과학의 엄혹한 분석과 비판에 휩쓸려 그 지닌 바 교의敎義의 근거를 잃고, 그동안 설정했던 경제적 관계의 오류와 모순으로 권위를 상실해 존립 자체마저 위태로워진 까닭에 더 이상 민중의 열정과 선망을 담보하거나, 종교적 에너지를 모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갖가지 사회운동이 성행해 공산주의, 사회주의, 조합중심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노사 협조적 사회주의 등이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각자의 주장을 펼치니 인류의 문화요소 중 경제문제가 포화작용을 일으켜 현대사회의 중요한 결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모두가 현시대를 관통하고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개념과 그 개념이 포괄해야 할 범위가 명확하게 설정되지 못한 까닭에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세상은 더욱 깊은 혼돈의 늪에 빠져들었다. 무릇 종교의 진화에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법칙은 사회 진화에도 적용되는 법칙일 것이다. 사회 진화의 이상理想이 선善이고, 종교가 진화하는 이상 또한 선善이라면 종교의 주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선善을 지향하는 과정을 순화하고 정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어떤 주의 어떤 운동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중계적 계시에 의한 5차적 종교의 신생新生이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사회적 이상의 수립이 가능할 것이고 그때서야 우리 사회의 모든 과도기적 현상과 혼란이 종식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보편타당한 법칙이 이루어내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이 처럼 경제적 문제가 현대사회의 큰 결함으로 대두함에 따라 현대인이 가장 선망하고 동경하는 것은 바로 일생에 걸쳐 경제적 완성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각 개인의 경제적 완성이 이루어진 뒤에야 인류의 문화는 거룩하고 깨끗하며 고귀한 그 본래의 가치와 형상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새롭게 출현하는 5차적 종교에서 경제문제가 가장 중요한 중심내용이 되리라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도덕적 종교는 경제적 관계를 죄악시해 부富와 재화를 모든 죄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해왔던 터라 이제까지의 종교적 사상을 버리지 않고서는 새로운 시대를 견인하는 종교로 다시 태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聖人이라 해도 어찌 부富와 재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공자孔子가 진채陳蔡의 액厄을 당해 식량이 떨어진지 7일 만에 『하늘이 나에게 덕德을 내리셨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자들은 여전히 『부자는 어질지 못하고, 어질면 부자가 될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예수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그 때 미처 열매를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너 저주받은 나무여 영원히 꽃을 피우지 못하리라』하고 나무랐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려우리라』고 설교했다. 그 밖의 모든 도덕적 종교들도 마찬가지로 재부財富를 경원시하거나 죄악시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재부財富는 생활의 원동력이며 선善의 출발점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도덕적 종교는 신도들에게 종교적 이상理想으로 선善을 권장하면서도 재부財負를 죄악시함으로써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져 더는 현실에서의 선善의 구현이 불가능해졌다. 본시 선善은 인류의 문화가 향상 발전한 형태의 추상적 개념이다. 교통과 운송의 원시적 형태는 걷는 것으로 하루에 백리를 가지 못하고, 한 사람이 힘을 다해 등짐을 져도 1톤의 화물을 운반하기가 어려웠는데, 오늘날에는 대량 운송수단의 발달로 수 만 톤의 화물을 하루에도 수 천리씩 옮겨 세상의 물건을 모으고 나누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이것은 교통과 운송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까닭이다. 공산품 생산의 원시적인 형식은 수공手工으로 열손가락이 닳도록 일을 해도 하루 종일 만든 것이 몇 십 개를 넘지 못해 단 몇 사람의 수요도 채우지 못했으나 이제는 대량생산 수단의 발달로 헤아릴 수 없는 물건을 만들어 세상 모든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니 이는 공업생산 기술이 좋아진 까닭이다. 이러한 문명의 발달은 바로 재부財富가 그 지닌바 힘을 모두 쏟고 발휘한 때문이니 재부財富야 말로 인류의 생활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에 부합하는 5차적 종교는 반드시 경제적 관계를 선善하게 보고 재부財負를 모든 선善의 토대로 삼아 이로써 사람들을 이끌어 교화하고 상선上善의 기초를 정해야 할 것인바, 이것이 바로 종교의 보편타당한 법칙에 따른 새로운 종교일 것이다.
4차적 종교의 도덕적 내용이 5차적 종교의 범주에서 중심적 지위를 잃는다 하더라도 종교의 내용범위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는 것이 아니므로 최소한 종속적 위치는 보전하게 될 것이다. 지역적 특수성과 종족의 차이로 인해 다양하게 발현된 도덕관념의 혼란은 종교의 중심내용마저 불확실하게 만들었으니 기독교의 중심내용인『사랑』을 근간으로 한 도덕관념은 우리 사회와 세상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그 관념 자체가 신神의 은혜를 기초로 해 구성된 것이며, 불교의 중심내용인『자비慈悲』는 염세주의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며, 유교의 중심내용인『인仁』을 토대로 한 도덕관념은 사회의 계급적 구조 위에 구성된 것이며, 도교의 중심내용인『허겸虛謙』을 뿌리로 한 도덕관념은 무위자연의 소박함에 역행하는 인간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구성된 것이며, 이슬람교의 중심내용인『정의正義』는 무력을 통해 구현하는 것으로 이상 예를 든 도덕관념들은 그 실천 과정에서 인류사회의 발전과 안정에 많은 공헌을 했으나 인간의 순수이성의 발현에 의한 결과라 말할 수는 없다. 이 도덕관념들은 기실 인류의 계급적, 개별적 윤리관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 계급집단의 윤리관은 어떤 경우에도 계급성을 초월하지 못하며, 개별적 도덕성은 모든 사회 구성원을 포용하는 온전한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다. 진흙탕 연못 속의 조약돌을 하나씩 씻어 깨끗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그야말로 헛수고일 뿐으로, 진실로 조약돌을 모두 깨끗하게 하려면 맑은 강물을 이끌어 연못의 진흙을 모두 흘려보낸 뒤에야 비로소 모든 조약돌을 청결하게 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제 인류가 당면한 사회관계의 종합적 대 변혁기를 맞아 기존의 계급윤리 대신 모두가 평등한 집단윤리로, 개별적 도덕성에서 대중적 협동도덕으로 그 질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인바, 이는 인류의 도덕과 윤리 또한 다른 문화요소처럼 진화성을 지닌 까닭이다. 그러므로 5차적 종교는 그 중심내용에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집단윤리를 포용하고『대전협동大全協同』 의 도덕관념을 정립해 4차적 종교가 권장한 도덕관념의 질적 변화를 이루는 것은 물론『대통정공작大統整工作』 을 통해 인류가 지닌 이상理想의 참된 가치를 알리는 한편,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새로운 준칙을 정립해서 사회를 안정시키고, 기성종교가 미처 이루지 못한 과업을 계승, 정리할 책무가 있다. 뿐만 아니라 기성종교에서 이제껏 미해결의 장場으로 방치해온『신비성』문제를 종교적 중심내용의 일부로 수용해 본격적으로 구명究明해나가야 할 것이다. 결국 5차적 종교는 인류 이상理想의 참된 빛을 온 누리에 펼치는 동시에 사람마다 맺는 경제적 관계를 마땅하고 선善하게 여기는 기풍을 일으키고, 대전협동에 부합하는 도덕관념의 정립, 신비성에 대한 새로운 탐색, 종교적 중심내용의 권위화權威化라는 4대 내용을 근간으로 성립되어야 할 것이다.
14. 대변국大變局에 대한 우리의 입장
우리는 앞선 글에서 현재 당면한 변국變局이 우주의 운행과 변화법칙에 따라 분산과정分散科程의 끝부분으로부터 취회과정聚會科程의 처음으로 이행하는 교대기이며, 지구 표면의 해빙解氷 극기極期에서 결빙結氷 초기初期로의 교대기이며, 생물세계에 있어 분열발달과정分裂發達科程의 극기에서 통합수장과정統合收藏科程 초기로의 교대기이며, 인류의 분화발달分化發達 극기에서 혼융통합과정混融統合科程 초기로의 교대기이며, 인류 문화의 개별적 특화발달과정特化發達科程의 극기에서 혼융통합과정混融統合科程 초기로의 교대기이며, 종교의 역사적 발달과정 가운데 4차적 종교가 사라지고 5차적 종교가 새롭게 태어나려는 과도기임을 확인했다. 이를 다시 요약하면 현 시점은 우주의 질적 변화가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대 변국이며, 동시에 새로운 문명이 출현하는 시기로 인류 문화 발전의 지도운동인 종교가 먼저 소멸과 신생이라는 질적 변화를 이룩하려는 대 변국에 직면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종교적 대 변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는 몽골인이 동쪽으로 이동해 북부의 타타르족 과 동호족東胡族으로 나누어지고, 동호족은 다시 북부의 말갈襪褐과 중부의 동이東夷, 남부의 거란, 세 종족으로 분화했다. 이 동호의 세 종족 중에 동이족이 먼저 송화강 상류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정착생활에 들어가 점차 압록강, 두만강, 혼하混河 유역까지 진출 강역을 확정하고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영위했다. 이후 4천 5백 년 즈음 동이족의 원시추장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이주移住해 목축과 농경의 새로운 영농 방법을 보급하고, 환웅의 아들 단군檀君 왕검은 지금의 평양 인근에 도읍을 정해 영농과 목축에 힘쓰니 부족의 수가 크게 증가하므로 농경에 적합한 땅을 찾아 무리를 이주시키는 한편, 팽우彭虞로 하여금 도로를 개설하고 종족을 구부九部로 나누어 살게 하니 구이九夷의 명칭이 여기서 비롯했다. 이 아홉 개 지역을 고전 기록을 참조해 추정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의 목단강牧丹江 유역(북부여), 두만강 유역(동부여), 송화강 유역(고례), 두만강 하구 남쪽 해안지대(북옥저), 용홍강 유역(남옥저), 강원도 해안 일대(맥), 한강 상류 지역(예), 경북 해안지대(호라), 대동강 유역(조선)등이었다. 그 외에도 한강과 임진강, 재령평야, 청천강, 압록강, 혼하 유역 등 농경에 적합한 지역에는 모두 부락을 건설했으나 이 모든 지역에 대한 종주권과 지배권은 평양에 도읍한 조선에 있었다. 조선의 지배자를 단군檀君이라 칭했는데 이는 무당의 순순한 우리말인『당골』을 한자로 직역한 것으로 당시의 창작이 아니다. 제석지자명단군帝釋之子名檀君이라는 옛 기록이나 환웅桓이 맡아 행했던 일 가운데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주명주병主命主病의 무격행사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무격종교시대의 명칭을 그대로 이어 쓴 것으로 보인다. 이후 천 여 년이 흐르는 동안 주변의 부족이 강성해지면서 종주 부족이었던 조선은 그 세력이 점차 쇠락해 북방 부족의 침탈을 피해 구월산 장당경으로 수도를 옮겼다가 수 백 년 후 단군檀君의 왕통이 끊어지고 동이족東夷族의 종주권은 북부여가 차지했다. 북부여는 그 세력을 크게 떨쳐 중국 산동성山東省 일대까지 지배하기도 했으나 이후 한족漢族에게 밀려 만주 일원을 그 강역으로 했고 한漢나라는 요하遙西河 지역에 군현郡縣을 설치해 동이東夷의 침습을 경계했다. 이후 부여국의 왕자 주몽이 동가강 부근에 고구려를 건국해 부여의 서·남방을 다스리고 주몽의 아들 온조는 마한을 정복해 백제를 세웠으며, 변한 지역에서는 신라가 일어났다. 고구려는 부여의 왕통을 계승하고 백제는 고구려 왕조의 분계로 고구려는 북으로 말갈과 남으로 백제까지 아우르는 맹주국이 되어 말갈, 백제와 함께 신라를 공격하니 신라는 중국의 당唐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唐은 수隋나라의 패망, 당태종唐太宗의 패배에 대한 기억으로 쉽게 응하지 못하다가 마침 고구려에서 일어난 연씨淵氏 형제의 내분으로 연남생의 내응을 받아 나·당 연합군을 일으켜 먼저 백제를 정벌함으로써 고구려에 대한 후원을 끊고 남북으로 동시에 협공해 고구려를 병탄했다.
고구려의 패망 후 그 유장遺將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장백산 일대에 진국震國을 세워 망국의 유민遺民을 모으기 시작해 그 아들 대조영에 이르러 청천강 이북 고구려의 고토를 모두 수복하고 말갈의 영역까지 정복하니 그 영토가 고구려의 강역 보다 오히려 광대해져 나라 이름을 발해渤海라 칭했다. 진국震國의 건국은 고구려 망국 후 30년, 발해渤海는 45년 만의 일이었다. 이로부터 동이족東夷族은 남북으로 분화되어 다시는 융합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신라를 중심으로 한 남방족은 중국의 문화에 경도되어 한족漢族과 주종관계를 맺고 북방족을 미개한 오랑캐로 멸시 냉대하고, 북방족은 전통 문화를 고수하며 남방족이 이민족에게 빌붙는 것을 백안시하며 대립해 서로의 치란治亂이나 흥망에 관여하지 않고 전혀 다른 종족처럼 지냈다. 신라는 이름뿐인 삼국통일 이후 3백 년을 넘기지 못하고 후삼국後三國이 서로 겨루는 내란으로 망하고, 고려가 나라를 이어 470여년, 이후 이 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국호를 조선이라 칭하고 나라를 다스린지 519년 만에 일본에 합병되었다.
발해는 나라를 세운지 330년 만에 거란의 침습으로 멸망했는데 그 망국의 과정은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참극이었다. 백두산의 대규모 화산 폭발과 발해 영내에 유입되어 있던 거란인에 의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행된 대규모 폭동, 거란 기병의 대거 침략으로 발해인들은 민족이 말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살아남은 발해 유민들은 동경성에 수년간 농성하며 버텼으나 그도 오래지 않아 함락되고 말았다. 이 시기 잔존한 발해 태자가 고려 태조 왕건에게『오늘날 아국我國의 환란患亂이 미구에 귀국의 위난危難이 될 것인즉 지금 강병强兵을 보내어 우리를 구求한다면 나라를 들어 귀부歸附하겠다』며 누차 구원을 청했으나, 이때 왕건은 수십 년 간에 걸친 전란으로 단련된 용장勇將 천여인과 수십만 강병强兵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끝내 발해를 구원하지 않았다. 삼국 이래 남과 북으로 나뉜 민족이 재통합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고려 태조 왕건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회령부근에 성城을 쌓고 웅거하던 발해 유민들 가운데『아골타』가 일어나 금金나라를 세워 거란을 격멸하고 발해의 고토를 수복한 후 연이어 중국의 하북, 산서, 하남, 산동, 안휘, 강소 등지까지 공략해 강역으로 삼았다가 몽고의 원元제국에 의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금金나라가 망한지 수 백 년 만에 장백산 일대에서 후금後金이 일어났다. 신라 왕족 김준金俊은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는 것에 불복하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 수백과 발해에 귀순해 장백산 속에 정착했던바 후금後金의 시조始祖『누르하치』는 김준의 후손이라 한다. 후금은 나라를 세운 뒤 인근을 공략해 영토를 확장하고 도읍을 흥경興京으로 옮긴 뒤 국호를 만주滿州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는 불교의 보살 문수文殊의 현지어 만주漫珠와 같은 발음이다. 후금은 이후 발해의 고토를 모두 아우른 뒤 다시 도읍을 봉천으로 옮기고 국호를 청淸으로 바꿔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고서 명明과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누르하치의 둘째 아들 다이곤多爾滾은 어린 왕 세조의 섭정왕이 되어 명明을 더욱 압박하다가 명明의 내란을 틈타 산해관을 지키던 명의 장군 오삼계를 설득, 그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명明의 강역을 평정하고 중국대륙을 차지했다. 이어 연경燕京으로 천도하고 모든 만주인을 중국 본토로 이주시켜 각 주현州縣의 기민旗民으로 봉해 한족漢族을 제어 통치하도록 하는 동시에 만주 지역은 왕조가 발생한 성지聖地라 해 봉금縫禁 제도를 시행 한족의 이주를 막았다. 이후 기민으로 봉해진 만주인들은 완전히 한족에 동화되어 자신의 문자와 언어까지 잃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1652년 발생한 러시아와의 국경분쟁으로 청淸에서 변경정책을 수립할 때 김량金良이 왕조 발상의 성지에 한족 이주의 불가함을 주장하고 기민旗民의 만주 복귀운동을 전개했으나 실패했다. 청의 조정에서는 부득불 동북삼성 지역에 시행했던 봉금정책을 해제하고 한족의 이주移住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연燕과 제濟 지방의 가난한 한족漢族들이 대거 이주해 정착하니 이때부터 5000년의 오랜 세월에 걸쳐 동이민족東夷民族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만주 일원이 한족漢族의 터전으로 바뀌고 말았다.
동이족東夷族은 한족의 이주와 그 문화의 전래로 인해 남·북으로 분열된 후 단군의 적통인 북방계가 한족의 침략, 거란의 침탈, 원나라의 유린, 한족에의 동화 과정을 거쳐 민족이 멸절되고, 방계인 남방족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그마저도 일본에 합병되어 국가와 민족이 함께 소멸될 처지에 이르렀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다시 소생의 기회를 맞았다. 5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민족이 오늘날 남·북 모두 합해 7천만 남짓한 인구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민족이 수없는 역경과 고난의 역사를 피눈물로 이어왔다는 것을 뜻하니, 이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우리의 입장과 사명이 어떠해야할지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상 5천년에 걸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약술했으므로 이제 우리의 문화와 생활에 관한 내용과 형태를 살펴보려 한다.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에 나오는『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우리 민족 원시집단의 이상과 내용이라 할 수 있고『천제天帝 환인桓因에게 작은 아들이 있어…』라는 말과『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 보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는 곧 집단 이상의 권위화와 집단 신앙의 내용이고『풍백, 우사, 운사 …… 생명과 병을 주관했다』는 무격신앙의 내용이며『제석의 아들 이름은 단군檀君이다』는 집단 이상의 무격적 권위화이고『곡식과 형벌과 선악을 주관하는 한 편 삼백육십 여 가지 인간의 일을 관장하여 세상을 다스렸다』는 정치적 내용으로『이를 일러 환웅桓雄 천왕이라 한다』는 집단이상의 정치적 권위화요 만주원류고滿州源流考에 나오는『어천사류지속禦天射柳之俗』이란 계절집회의 의례적 내용을 이름이다. 고대 문헌에 언급된 내용으로 미루어 환웅천왕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속에 정착한 시기는 우리 민족이 1차 의례적 종교기와 2차적 무격 종교기를 지나 3차 정치적 종교의 초기에 정착했음을 뜻하며 환웅천왕은 곧 정치적 종교를 창시한 인격人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왕검은 이 정치적 종교의 지도이념에 따라 무리를 9부部로 나누고 각 부를 연합해 조선朝鮮이라는 고대 봉건국가를 세우니 이에 정치와 종교가 발전하고 문화가 크게 창달했다. 이후 조선의 종주권이 북부여로 옮겨간 뒤 한족漢族의 정치적 종교가 유입되고, 반도의 남방에서도 우리 고유 종교의 내용에 대한 수정이 이루어짐에 따라 북부여에서도 그 영향과 충동을 받아 자연스럽게 종교적 내용의 수정과 종교력의 보강작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정립해 중앙집권 국가를 세우자 중국으로부터 유儒, 불佛, 선仙의 도덕적 종교가 전래되어 우리 민족에게는 다른 신생 종교운동이 불필요해졌고 전래된 외래종교로 만족하게 되었다. 3국은 유교나 도교보다 불교를 선호해 모두 불교를 국교로 삼아 국민을 계도하고 교화했다. 북방족은 그 때부터 비록 왕조의 바뀜과 민족의 성쇠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불교를 신봉했고, 남방족 또한 고려 말기까지 불교를 믿었다. 불교는 그 근본 교의가 극단적인 염세사상과 성불成佛이라는 이기적 수행목표를 지니고 있어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중견 국민이 모두 현세를 기피하고 내세를 위한 자기수행에만 몰두하니 점차 민족의식이 약화되고 진취적인 우리 민족 고유의 기풍이 사라져 민족적 역량이 쇠퇴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와 폐해가 야기되었다. 이런 문제점을 깨달은 이성계는 나라를 세운 뒤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의 교의인 예의禮儀를 국시로 삼아 국민들의 의식과 사상을 일신하는 한 편 위로는 국정國政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국민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예禮를 기본 규범과 준거로 삼으니 우리나라는 유교의 이상향으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족의 도덕적 종교인 유교儒敎의 교의敎儀와 문화를 우리의 특성에 맞도록 고치지 않고 그대로 이식한 까닭에 후일 숱한 폐해를 낳게 되었다. 예를 들어 유교의 주된 내용인 이하차별夷夏差別과 존주대의尊周大義로 인해 자신을 비하하고 중국을 숭상하는 사대주의를 빚어내 중국에 대한 턱없는 의타심을 함양했으며, 유교의 중용中庸사상은 우리의 진취적인 기상을 말살하고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는 임시방편과 일신의 안일만을 도모하는 습성을 길렀고, 그 의례의 규범인 예禮는 번잡한 말과 복식을 강조해 근로 실천의 정신을 없애고, 그 계급윤리는 사농공상士農工商는 신분차별의 폐습을 낳았을 뿐 아니라 사대부의 발호와 붕당의 근간이 되었다. 이로부터 우리의 민족성이 점차 퇴락하고 습속習俗이 악화되다가 사색당쟁四色黨爭이 시작되어 염치는 타락하고 비열함이 성품이 되며, 기강이 무너지고 열악함이 습관이 되어 사회질서의 문란이 극에 달해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와 사대부의 수탈과 폭압으로 민중의 생활은 그 참담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두가 유교라는 종교의 폐단과 폐습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으므로 종교적 대 변국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는 병폐였다.
이즈음 경북 경주에서 최제우(호號 수운水雲)가 창시한 동학東學이 종교적 대 변국을 위한사회변혁의 횃불을 들었다. 최제우는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천의天意로의 귀의歸依』와 동양 재래 사상을 정리, 집대성한 『유儒, 불佛, 선仙 3교합일』을 주창 민중의 신앙이 옮아갈 대상을 정립하고 강부의질降符醫疾과 강필예지降筆豫紙를 이용해 신도를 모아 성실, 공경, 믿음을 신조로 교도들의 결속을 굳고 강하게 담금질해 비밀결사운동을 전개했다. 수백 년 간에 걸친 유교의 폐단과 해악에 신음하던 민중들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바람에 풀이 쓸리듯 동학에 귀의하니 불과 수년 만에 그 무리가 전국에 가득해졌다. 동학은 특권계급의 횡포로부터 민중의 해방을 뜻하는 광제창생廣濟蒼生 과 보국안민報國安民을 표방하는 한 편, 외래사상의 배척을 내세우니 민중의 호응이 마치 불길과 같았다. 동학의 눈부신 세력 확장에 놀란 조정에서는 좌도난정율左道亂正律을 적용해 대대적인 탄압을 감행, 최제우 이하 수많은 신도들을 극형에 처하고 법령으로 동학의 신봉을 금했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민중의 각성은 잦아들지 않았으니 최제우의 수제자 최시형이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무리를 이끌고 비밀리에 포교를 계속하는 한 편, 영해 폭동을 비롯해 충청도 보은에서의 봉소운동奉疏運動, 광화문 앞에서 벌인 규암운동叫闇運動, 보은에서의 교조순교기념제敎祖殉敎紀念際 등 대규모 집회를 거듭하며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을 전개하니 조정의 탄압이 엄혹하면 엄혹할수록, 유학자儒學者들의 핍박이 잔학하면 잔학할수록 동학의 세력은 더욱 신장될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전봉준이 고부의 민란을 주도하며 제폭구민除暴求民 보국안민報國安民의 기치를 들고 일어나니 전국의 동학신도들이 이에 호응해 갑오동학혁명甲午東學革命이 발발했다. 이 혁명은 채 1년이 못되는 짧은 기간에 진압되었지만 수 십 만에 달하는 사상자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결국 청일전쟁을 유발한 동양 근대사에 로운 획을 그은 이기도 했다.
갑오동학혁명은 비록 실패한 혁명이었으나 당시 조선의 사회적 병폐의 근원인 유교에 대한 부정, 사회 계급의 타파, 고루하고 편협한 사상의 해방 등 그 때 까지 일어난 어떤 변혁운동도 이루지 못한 많은 성과를 거뒀다. 동학혁명 이후 우리의 사상계는 드디어 유교사상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폭넓은 사유와 학문의 자유를 누리게 되어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위대한 파괴적 인격인 최제우의 출현으로 선행종교의 낡은 개념은 모조리 파괴되었으나 아직 그를 대신할 뛰어난 인격이 출현하지 않아 새로운 종교적 개념이 구상화具象化되지 못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사상·종교적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이 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종교적 파괴운동은 곧 범세계적으로 일어난 종교 파괴운동의 선도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세계적인 종교 신생운동의 시발점이 될 중계적 계시자로서의 새로운 인격의 출현이라는 인류 공통의 여망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동학혁명은 우리 사상계에 대탐색시대大探索時代를 초래했다. 이 대탐색시대를 지나는 동안 비록 세상을 모두 아우를 위대한 사상은 출현하지 않았으나 독자적인 입장을 천명한 두 가지 사상이 나타나 3교합일설에 보강 작용을 했으니 그 하나는 김재일(호號 일부一夫)이 역학적易學的 견지에서 주창한 4운질대세계관四運迭代世界觀이며 또 다른 하나는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이다.
김재일은 주역 팔괘의 기존 배치도와 다른 새로운 배치도를 작성하고 이를 부연해 1년이 춘·하·추·동 네 운수로 반복 교체되는 것과 같이 이 세계 또한 木· 火· 水· 金의 네 운수가 반복 교체되는 데 현대는 火가 金으로 바뀌는 때, 곧 가을의 운수가 처음 돌아오는 시기로 가을에 모든 초목이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인류의 문화가 그 열매를 맺는 시대인즉 유儒·불佛·선仙 3교敎가 통일·집성될 것이 필연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이론인 4운질대세계관으로 최제우의 3교합일설에 운명론적 설명을 더했다.
우리의 종교와 사상계에 도래한 대탐색시대의 산물인『3교 합일』『4운질대세계관』『인내천』의 세 가지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로 다른 종교의 질적 차이는 각 종교가 새롭게 출현할 당시의 시대적 결함인 문화요소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그 종교가 생성되던 시대, 또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특정한 기간 내에서만 그 존립의 의의가 인정되며 독특한 사명이 발휘될 수 있으므로 그 특정 기간이 경과된 다른 시기에는 존립의의가 상실되기 마련이다. 그 다른 특정기간의 새로운 결함에 의해 또 다른 종교의 신생 운동이 전개되므로 이것이 바로 종교 진화의 역사적 타당법칙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어느 종교가 그 존립의의가 인정되는 특정기간이 지난 다른 시기에 다시 그 부흥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곧 종교 진화의 역사적 타당법칙을 위배할 뿐 아니라 시대적 사명을 거스르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제우는 수 천 년 간 동양 문화의 절대적 지도 권위였던 유儒·불佛·선仙 3교가 모두 부패하였으므로 이 3자를 합일하면 새로운 종교력을 획득할 것으로 믿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이 3교 모두가 그 존립 의의가 인정되었던 시기가 이미 지나버렸고 또 현대의 결함은 세 종교 중 어느 종교가 태동하던 시기의 시대적 결함과도 같거나 유사하지 않으므로, 이 세 종교를 합일한다 해서 그 존립의의의 한계가 연장될 수 없었다. 각기 개별적으로 부패한 것은 아무리 그것을 하나로 합쳐 그 외양이나 내용을 새롭게 만든다 해도 부패+부패+부패=3부패 나 부패×부패×부패=부패³의 귀납적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뿐 새로운 질적 변화를 이룩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3교합일설』은 눈앞의 잘못된 현상을 타파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언정 새로운 종교적 이상이나 지도이념의 내용으로 정립되기에는 그 효용성이 전무하다 해야 할 것이다.
『4운질대세계관』은 지구의 빙하반복교체설과 비슷해 흥미로운 견해라 할 수 있으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그 논리적 근거를 두고 있는 가설로써 이론적으로 엄정하고 명확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인내천』사상 또한 손병희가 최제우의 교의敎義 안에 내재되어 있던 것을 도출해 표방한 것으로 그 근원을 유교의 사상에서도 찾을 수 있으니 예기禮記의『인성천야人性天也』 와 『인심즉천야人心卽天也』나 순자荀子의『인즉천야人卽天也』를 인용 부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서구의 유일신 개념을 보다 인간화 한 신관神觀의 혁명적 전환은 인정할 수 있으나 종교적 이상의 권위화가 불가능하므로 역시 새로운 종교적 이상의 개념이나 내용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
이상 세 가지 사상은 종교와 사상의 대탐색과정에서 비록 대표이념으로 자리하지는 못했으나 기존의 종교와 사상을 대체할 새로운 개념의 표상적 계시로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해 한 시대를 풍미했으니 김 일부의 교단은 4운運의 교체반복과 3교합일을 표방하고, 동학의 각 교단은 인내천이나 3교합일을 내세우고 또는 둘 모두를 표방하는 등, 우리의 종교·사상계는 전례 없이 복잡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으나 그 한 편에서는 현대의 시대적 결함을 극복할 새로운 지도이념, 종교적 이상과 내용이 태동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의 등장이다.
제 2 장 개 설
1. 증산甑山의 탄생
이 글의 도입부에서는 우주의 운행, 변화의 법칙과 역사발전의 법칙에 따른 세계정세, 근세조선 사상계의 흐름을 통해 새로운 종교 탄생의 필연성을 논증했다. 인류 문화의 신기원을 열어갈 신생 종교는 구한말 이 땅에서 태어난 대 종교가 강증산姜甑産에 의해 태동되었다.
그의 성姓은 강姜, 이름은 일순一淳, 자字는 토옥土玉이며 증산甑山은 그의 호號다. 단기4204년 조선 고종 신미년 9월 19일(서기 1871년 11월 1일) 전라도 고부군 답내면 서산리(현 전북 정읍시 이평면 팔선리)에서 흥주興周를 아버지로 권權씨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증산甑山은 단기 4234년(서기1901년) 신축(당시 31세)에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願寺에서 수도修道 끝에 7월 5일 5룡허풍五龍噓風 에 천지天地와 만물萬物의 이치理致를 깨달아 도道를 이루고, 곧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기 시작해 단기 4242년(서기1909년) 융희 3년 기유 6월 12일 까지 공사를 마치고 같은 달 24일(서기 1909년 8월 9일) 39세의 나이로 몰歿했으니 자세한 내용은 그의 일대기인 대순전경大巡典經에 수록되어 있다.
2. 교의敎義의 대강
증산甑山의 교의敎義는 종래의 종교가들이 내세운 것과 사뭇 그 내용이 다르다. 앞선 종교가들은 추상적인 관념이나 설교, 또는 교훈을 통해 교의를 수립했으나 그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의 내용을 통해 교의를 정립했다. 그러나 정작 천지공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생전에 그를 흠앙하고 따랐던 제자나 종도들마저도 단편적이고 삽화적인 일면을 전할 뿐이었다.『대순전경大巡典經』편찬을 위한 7년간에 걸친 조사와 자료수집으로도 그 전체적인 내용을 가늠할 수 없었다. 천지공사의 내용과 의미를 밝히는 것은 곧 증산이 창시한 새로운 종교의 교의를 세우는 일이었으므로 잠시도 지체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대순전경 초판 발간 이후 10여년에 걸친 연구와 탐색, 광범위한 자료의 수집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그 대강을 미흡한대로나마 그려볼 수가 있었다.
오랜 모색과 연구의 결과에 의하면 천지공사에는 신정정리공사神政整理公事, 세운공사世運公事, 교운공사敎運公事의 3대 내용이 있고, 신정정리공사는 다시 해원공사解寃公事 지방신통일공사地方神統一公事 문명신통일공사文明神統一公事 지운통일공사地運統一公事의 4대 내용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이 더불어 함께하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건설을 열망했던 증산甑山 강 일순姜一淳의 염원을 느낄 수 있다.
증산甑山은 신명계神明界(영계靈界)와 현상계現象界(육계肉界)가 서로 나선적기제관계螺旋的機制關係로 이어져 있어 현상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신명계가 그 자극을 받아 변화가 일어나고, 신명계의 변화는 다시 현상계에 충격을 가해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물심나선기제관物心螺旋機制觀의 관점에서 인류사회의 온갖 모순과 갈등현상을 접근하고 규명하고자 했다. 곧 인간사회에 누적된 불평과 불만이 신명계에 충격을 가해 원기寃氣로 맺히고, 신명계에 쌓인 원기가 다시 인간들의 세상에 되돌아와 더 큰 불평과 불만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과 상승작용에 의해 신명계는 원기와 함께 발달하고 인간세상은 불평불만과 같이 발달하니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천지가 원기寃氣로 가득하고 불평과 불만이 온 세상에 넘쳐 영육靈肉이 모두 재앙과 환란의 바다에 함몰含沒된다고 생각했다. 이에 증산甑山은 그 재앙과 환란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려면 먼저 보은報恩과 화기和氣를 쌓아 신명계에 맺힌 원기를 없애고 인간 세상의 교화를 병행해야만 비로소 화평한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어 태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명들이 품고 있는 원기寃氣를 풀어내는 해원解寃과 천지보은天地報恩 공사公事를 행했다.
근대近代 이전까지는 신명계神明界도 지방신地方神들이 각기 특정한 지역을 맡아 지키며 서로 왕래와 교류가 없었던 까닭에 인간 세상도 그 영역과 경계에 걸맞는 장벽을 쌓고 지방적 편견과 종족적 전통을 고집하며 서로 대치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세계 각 지역 간의 장벽이 열리고 문물이 교류됨에 따라 신명계 또한 그 경계가 없어져 제 영역 안에서만 칩거하던 지방신들이 서로 넘나들며 교통하니 인간세상의 혼란 역시 극에 달해 가혹하고 살벌한 재앙이 들끓게 되었다. 이에 증산甑山은 그 재앙을 구축하기 위해 지방신들을 연합 통일하는 공사를 행했다.
과거에는 어느 지역이건 특수한 문명신이 있어 각 지역의 문화와 문명의 계발을 관장했던 까닭에 어느 지역이건 각기 특색을 지니는 특수문화가 건설되어 병립했다. 그러나 이 각지의 문화적 특수성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새로운 시비와 분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증산甑山은 이런 점을 감안해 세계 문명신을 통일해 새롭고 완미한 통일 문명을 건설할 공사를 행했다.
예로부터 강산의 기령氣靈들은 세계 곳곳의 특별한 지역에 서로 다른 결정結晶을 이루어 산재하면서 신비한 에너지를 발산, 현상계를 수시로 자극해 무리와 집단 사이에 배타적인 경계를 설정하고 싸움과 재앙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증산甑山은 그 분쟁과 재앙을 제거하기 위해 대지와 강산의 기령을 뽑아 통일하는 공사를 행했다.
증산甑山은 이렇게 먼저 신명계를 해원解寃해 보은報恩과 화기和氣로 결정結晶을 이루어 세계의 지방신과 문명신, 대지 강산의 기령을 하나로 통일해 대통일신단大統一神團을 결성, 이 신단을 우주의 운명을 주재할 원동기관으로 삼고 이를 통해 낡은 세계를 혁파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원동력으로 삼고자 했으니 이것이 바로 신정정리공사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증산甑山은 통일신단에 도수度數를 정해 우주 운행이 점진적으로 올바른 율동에 따라 낡은 세계를 혁파하고 새로운 세계의 생성이 영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세운공사世運公事의 내용이다.
또한 세계 각지에 예로부터 전해온 기성종교의 남아있는 힘을 한데 모아 대연력大鍊力의 결정을 만들어 새로운 종교를 생성할 원동력으로 삼고, 나아가 새로운 세계의 생성을 부조하는 선순환적 관계를 설정하니 이것이 교운공사敎運公事의 내용이다.
통일신단에서 정한 세운공사는 당시 동양을 침탈하기 위해 해일처럼 밀려오던 서양의 세력으로부터 동양을 보전하기 위해 먼저 러·일 전쟁을 일으켜 러시아의 세력을 구축하고, 조선의 지방신을 유럽에 보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서구 열강이 모두 전쟁으로 피폐해져 더 이상 동양을 침략할 힘을 잃도록 함으로써 동양의 각 국이 스스로 힘을 길러 그들의 침탈에 대비할 수십 년간의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하고, 중·일 전쟁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확산시켜 그 결과 조선을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한편, 이 세 단계의 전쟁, 곧 큰 재앙으로 이 세계의 낡은 질서가 혁파되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도록 했다.
교운공사는 먼저 기유년(1909년) 4월부터 27년 간 난법도수亂法度數를 정하고 그 뒤로 일정기간 모든 재앙이 멈추는 시기를 정하고 이 기간이 지난 뒤 다시 10년 전쟁을 겪고 나서 의통醫統으로 세상을 뒤덮은 큰 재앙을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문화와 문명의 지도이념이 될 진법교단眞法敎團을 발족하게 했다.
이상이 천지공사 내용의 대강이라 할 수 있으나 그 밖에도 통일신단에서는 새로운 세계와 사회에 준용할 질서와 규칙, 인간 교화의 규범을 공사를 통해 결정했으니 그 가운데 표현된 증산甑山의 이념이 곧 후일 증산교甑山敎의 교의敎儀로 수립되었다. 이 교의의 내용은 개별인격의 수련요결과 사회적 관계를 통한 교화敎化의 전범典範으로 나눌 수 있다.
1) 수련 요결
가) 일심一心 : 사람이 지닌 부덕不德은 본시 혼란스럽고 방만한 마음으로부터 비롯한다. 기성종교 에서도 이를 중요하게 여겨 존심存心, 수심守心, 수방심收放心과 같은 말로 신앙信仰에 앞서 마음부터 다스릴 것을 강조했다. 사람이 끊임없는 수련修鍊을 통해 연력鍊力을 이루면 모든 부덕을 초월하는, 곧 덕행德行이 개인의 성격과 일치하는 종신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에 이르는 까닭에 증산甑山은 일심一心으로 수양修養의 원리를 삼은 것이다. 일심은 대체로 내적인 수양의 원리가 되지만, 외적으로는 협동의 원리가 되기도 하며 시간적으로는 인류문화 진보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나) 개안開眼 : 일심을 통한 내적 수련이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눈을 감아도 광휘로운 빛을 볼 수 있는 정신현상이 전개되고 이 같은 현상이 거듭되면서 이지理智가 발달해 점차 지혜와 예지豫知 능력도 계발되는데 이것을 개안이라 한다.
다) 연력鍊力 : 개안을 이룬 뒤 올바른 수련을 거듭해 더 높은 단계에 이르면 정신현상이 일정한 물리적 힘으로 나타나게 되어 이심전심以心傳心, 이심전물以心傳物, 이물전심以物傳心과 같은 신비한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는 데 이 현상을 연력鍊力이라 한다. 이 단계에 이른 뒤에도 정진을 계속하면 오성悟性의 발달과 심적 에너지의 강화가 일어나 더 높고 강한 에너지의 결정結晶이 이루어져 이성理性이 일체의 감성感性의 제재로부터 벗어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저절로 법도와 규범에 일치하는, 인성이 곧 도덕률이 되는 인격완성의 최고 경지인『성聖』에 도달하게 된다.
라) 안심안신安心安身 : 세상의 온갖 잘못된 행태에 부화뇌동 하지 않고 마음과 몸을 모두 편안히 한 뒤 그 변화의 추이를 조용히 관조觀照하면 모든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갈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증산甑山의 생각이다.
마) 경계警戒의 말
-척 짓지 말라.
-마음을 속이지 말라.
-언제나 언행言行의 덕德을 쌓도록 하라.
-항시 남이 잘되게 하라.
-반 그릇 밥의 은혜라 할지라도 반드시 갚도록 하라.
바) 현실과보現實果保 : 우리가 악惡한 행동을 하면 인세人世의 반대편에 있는 신명계에 척이 되어 신명이 보복을 하고, 선善한 일을 하면 신명들도 은혜에 보답하는 신神이 되어 사람에게 덕德으로 갚을 것이니 스스로 행했던 악한 일을 뉘우치고 앞서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며,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늘 자신을 경계하고 다스려야한다는 가르침.
사) 천지동등天地同等 : 증산甑山은『과거에는 하늘만 위하고 땅은 위하지 않았으나 이는 심히 잘못된 일이다. 하늘의 은혜와 땅의 덕德이 서로 같으니 앞으로는 하늘과 땅을 함께 같이 위할지니라』고 말했다. 기성 종교의 가르침에서는 대개 하늘의 은혜와 도를 일깨우는 일에만 치우쳐 눈앞의 현실을 무시하고 사후死後의 안락이나 영생永生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증산甑山은 하늘과 땅의 동등함을 내세워 영혼과 육신이 함께하는 새로운 믿음의 길을 열었다.
2) 교화敎化의 전범典範
가) 해원解寃 : 해원解寃은 증산甑山이 행한 천지공사天地公事의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으로 이 일에 범세기적凡世期的 의의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도덕관의 기본 범주를 설정하는 한편 인간 세상의 모든 모순과 갈등, 불평등을 해소하는 근원적인 힘이 되도록 했다.
나) 보은報恩 : 증산甑山이 행한 1900년 신축에서 1907년 정미까지의 공사는 해원을 위주로 했던 바 그로 인해 해소된 원기寃氣를 고부화란高阜禍亂(동학혁명)의 과보果報로 받아 소멸하고, 1908년 무신으로부터 1909년 기유까지의 공사는 보은報恩을 위주로 행했으므로 보은의 끈으로 맺은 그물을 펼쳐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명을 집결시켰다.『12월26일재생신강일순도통천지보은좌선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姜一淳道通天地報銀左旋』공사가 바로 보은공사의 시작을 알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증산甑山은 자신의 가장 큰 과업인 천지공사를 보은공사로 끝맺고 다시 보은報恩에 범세기적인 의의를 부여해 해원解寃과 더불어 겉과 내용을 이루어 서로 이끌고 기다리는 관계를 맺는 것으로 새로운 도덕관의 기본 범주를 설정했다.
다) 상생相生 : 해원과 보은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통해 상생相生의 대도大道를 이루기 위해 규정한 행동규범으로 새로운 도덕관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의지를 뜻한다.
라) 정록正祿 : 기존 종교에서는 현세보다 내세를 지향하는 까닭에 경제를 백안시했으나 증산甑山은 영육병진靈肉竝進의 관점에서 경제적 관계를 선善하게 보고 다만 그 치우침과 넘침을 경계하기 위하여 온당하고 균등한 나눔을 강조했다.
마) 직업신성職業神聖 : 영육靈肉이 함께 온전하게 강건해지기 위해서는 경제가 풍요로워야하고 그 귀천貴賤과 상관없이 직업을 신성시해야만 현실에서 마음의 평안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바) 조화선경造化仙境 : 증산甑山은 지나간 6만년의 과거를 선천先天, 앞으로 다가올 6만년의 미래를 후천後天이라 일렀다. 후천은 증산甑山의 이상과 교의가 온전하게 구현되어 성스럽고 깨끗하며 온전한 생활 질서가 수립될 것이라 예언하고, 그 세상을 조화선경이라 이름 했는바 이는 그가 꿈꾼 이상향으로 현세구현의 실제적인 세계이다.
사) 의통醫統 : 증산은 혼란이 극에 달해 모든 윤리와 도덕이 무너진 현 세태를 병적현상病的現狀, 곧『천하대병天下大病』이라 진단하고 자신의 특수한 이상과 교의를 통해 세상의 병증을 치료해 구원할 것을 발원發願했으니 의통醫統은 세상을 구求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를 담은 표어라 할 수 있다.
3. 교의敎義의 연구 방법
증산甑山의 교의敎義에 대한 연구는 몹시 어렵다. 그의 교의가 기성종교와 같이 단순한 관념의 표현이 아니라 천지공사라는 특별한 행위를 통해 그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까닭인데, 천지공사라는 용어부터가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전혀 생소하고 기이한 말인 것부터가 그렇다. 그러므로 증산甑山의 교의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천지공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선행되어야할 것이며, 천지공사에 대한 옳은 인식은 그의 기본적인 사상의 검토를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그의 기본 사상에는 다음 3가지 특색이 있다.
첫째. 주재신主在神의 실재를 부정하고 그 자리를 지방신地方神으로 대체했으며 그 지방신 마저도 추상적인 신神이 아니라 인성人性을 지닌 신神이어서 신명神明이라는 특별한 말로 지칭했다.
둘째. 영적靈的세계와 현상계現像界가 나선형으로 함께 얽어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어 두 세계가 상호 부조의 형태로 진화한다고 생각했으며
셋째. 경제적 문제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중록사상重祿思想을 개창開創했다.
이상의 세 가지 특색에 입각해서 궁구해야만 천지공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증산甑山의 교의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과 그 노력의 결과와 진척을 보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증산甑山의 교의를 이해하기 위한 4대 기본원리로는 목적론적진화론, 삼각추적인생관, 물심나선기제론, 진선재부론眞善財富論을 들 수 있다. 목적론적진화론과 삼각추적인생관은 주재신主在神을 부인하는 신관神觀에 결정적인 판단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 이외에 종교에 대한 합당한 정의를 구하고, 새로운 종교관을 수립해 증산甑山의 교의敎義가 출현한 역사적 배경을 설정할 수 있는 반면, 물심나선기제론은 신명神明의 개념을 논증하고 영적세계靈的世界의 비밀을 규명해서 천지공사의 정확한 내용과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진선재부론은 중록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 네 가지 이론의 명확한 정립을 통해서만 증산甑山의 교의는 그 내용과 외양의 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겨우 목적론적진화론과 삼각추적인생관에 대한 얕은 천착을 통해 종교에 대한 정의와 기존의 종교관에 대한 새로운 비판을 시도해보았을 뿐이니 남은 길이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아니할 수 없다. 추후 영명한 후학後學들의 깊은 탐구를 바랄 뿐이다.
제 3 장 성도成道
1, 수 련
증산甑山이 세상에 나온 것은 도道를 이룬 뒤였다.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한 것이나 교의敎義를 수립한 것이 모두 성도成道 이후의 일이었으므로 그가 세운 교의敎義에 대한 올곧은 비판이나 탐구를 위해서는 먼저 성도成道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증산甑山의 행적과 남긴 말을 집대성한 최초의 기록본『대순전경大巡典經』에 의하면『전주 모악산 대원사에서 수도하던 중 신축 7월 무진일(1901. 8. 18일) 대우오룡허풍大雨五龍噓風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깨달으셨다』적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천지대도를 깨치는 것, 또는 성도를 이루는 것이 바로 새로운 종교宗敎를 여는 선행 요건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예로부터 오도悟道, 도통道通, 원각圓覺 등의 말이 전해오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성도成道가 증산甑山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석가모니는 6년에 이르는 고행苦行 끝에 밝게 빛나는 별을 보고 도를 깨달았다悟道고 하며, 예수는 40일 간의 금식기도를 통해 성신聖神의 감화感化를 받았다 하는데, 이때의 성신감화는 성도成道나 오도悟道와 같은 뜻이다. 우리가 도덕적 종교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지속해오는 수천 년 동안 수수께끼 같은 말로 전해지고 있는 성도成道란 과연 무엇인가?
감히 가늠해 보건데『성도成道는 앞일을 미리 아는 지혜知慧와 불가사의한 기적과 같은 권능權能과 개인의 성격과 합치된 덕행德行의 세 가지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는 성신감화를 받은 뒤 곧 예지豫知의 보유자이며, 박애博愛의 화신이며, 수시로 기적奇蹟을 행하는 선지자가 되었으며, 석가모니도 오도悟道한 뒤 큰 지혜와 무한한 자비慈悲와 가없는 불법佛法의 소유자가 된 것으로 미루어 성도成道에 대한 앞의 정의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증산甑山도 대원사에서 성도한 뒤 끝없는 지혜와 가없는 덕화와, 위대한 권능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예수 또한 죽은 뒤 3일 만에 신도들이 한데 모여 기도하고 있는 곳에 나타나 복음을 전함에 열두 제자를 비롯한 수천 신도가 모두 성신감화를 받아 이국의 언어를 구사하고, 앞일을 예언하며 다소의 권능을 행했다고 한다. 사도 바울은 이를 경계해 항상 신도들에게 이르기를 성신의 감화를 받은 뒤에는 예언에 힘쓰지 말고 외국어를 익히는 일에 힘써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진력하라고 가르쳤다. 석가모니는 8정도八正道의 신조를 선정禪定에 드는 지름이라 가르치니 이후 신도들은 선정禪定을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선정에 이르기 위한 수행을 통해 견성見性에 도달해 지혜와 덕행과 권능을 갖춘 고승대덕高僧大德이 나타났고, 증산甑山을 믿는 신도들 가운데서도 수련을 거듭해 개안開眼을 이루고 더 나아가 예지豫知와 이적異摘을 행한 이가 적지 않았다. 이처럼 예수의 성신 감화와, 석가모니의 선정, 견성과, 증산 신도의 개안이 비록 그 방법은 다르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실제는 모두가 같은 것이므로 애써 다른 것이라 구분할 필요가 없다.
필자도 개안開眼에 이르는 수련을 해본 적이 있다. 그 수련은 7일을 한 주기로 행해지는데 그 기일 안에 개안에 이르게 되면 이것이 곧 성도成道의 초기 단계로, 계속해서 정진하면 궁극에 성도의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개안開眼의 경험이 있는 선배 교도의 지도 아래 7일에 이르는 제1기 수련에 임해 태을주太乙呪라는 주문呪文을 계속 송독誦讀하던 3일째 개안開眼에 성공했는데 개안은 주문 외우기, 기맥氣脈 소통, 전신戰身 혹은 강령降靈, 무의식, 광명도출光明導出의 다섯 단계를 거쳐 도달할 수 있었다.
필자는 위 다섯 단계의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다음과 같은 여러 현상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일정한 성조聲調와 속도로 같은 소리를 반복함으로써 성대가 일정한 운동을 지속한다.
2) 성대의 지속적인 운동에 의해 폐肺 또한 일정한 속도의 운동을 하게 된다.
3) 끊임없는 폐의 운동으로 인해 혈액의 순환이 촉진되고 일정해 진다.
4) 혈액의 일정한 순환작용은 신경계에 일정한 자극을 준다. -기맥의 소통이란 말초신경이 일정한 자극운동을 일으키는 현상을 뜻한다.
5) 신경계에 대한 일정한 자극은 신체의 각 근육에 일정한 신축운동을 촉발한다. -일정한 속도로 지속되는 근육의 신축운동을 전신戰身, 또는 강령降靈이라 한다.
6) 신경계에 가해지는 일정한 자극과 근육이 일으키는 신축운동의 상호작용에 의해 무의식 상태가 전개된다. -사고思考와 감각感覺이 정지되는 순간적인 상태로 이를 입정入正 또 는 정심正心이라 한다.
7) 무의식 상태에서 비로소 광명光明이 도출導出된다. -모든 것을 잊은 무의식 상태에서 갑자기 광휘로운 빛이 일어나 천지에 가득하고, 맑고 신선한 의식이 다시 일어나며 끝 없 이 투명하고 깨끗한 세계가 전개되어 우주 만상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 안에 나열되 는 경지로 이를 개안開眼이라 한다.
8) 광명이 도출된 뒤에는 몸과 마음이 시원하고, 의지와 기개가 헌앙해지며, 원기가 솟고, 목소리가 우렁차게 변하며, 시각과 청각이 더없이 예민해지며 어떤 일을 예측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는다.
필자는 이상의 여러 현상을 체험하는 동안 특정한 단계의 현상으로부터 다음 단계 현상으로의 전이傳移는 필시 신체의 생화학적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기맥 소통으로부터 광명도출에 이르기까지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옮겨갈 때 마다 몸에 열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는 데, 체열의 오르내림과 맥박의 빠르고 느림이 몇 번씩 연이어 반복되었다. 이 현상에서 우리는 개안에 이르는 주요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개안은 평상시의 맥박, 체온, 정신 상태와 수련과 정진 기간에 일어나는 맥박, 체온, 정신상태의 변화의 비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체온과 맥박의 변화를 계측할 수 있는 기기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 그 미묘한 변화를 측정하지 못한 것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수련 과정에 도달하는 무의식 상태는 감각의 통일 현상이며, 감각이 통일되면 광휘로운 빛이 일어나는 현상을 느낄 수 있으며, 광명이 도출된 뒤에는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 예를 들자면 죽은 사람의 영혼까지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7일 간의 수련을 통해 개안에 이른 뒤 필자는 다시 50일이 소요되는 2차 수련에 정진했다. 개안開眼이 주는 성취감과 신비함에 매료되어 잠시도 쉬지 않고 용맹정진 하는 가운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이어 자신의 내부에서 특이한 심적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적 에너지가 생긴 뒤에는 이 에너지에 의해 이심전심以心傳心, 이심전물以心傳物, 이물전심以物傳心과 같은 신비한 일이 가능해졌다. 이때의 체험을 통해 필자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수련을 통해 정신이 통일되면 첫째, 광휘로운 빛을 영접하고 그 안에 머무는 동안 예지력과 깨달음이 생기고 둘째, 심적 에너지가 발생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권능을 얻고 셋째, 오성悟性의 발달과 심적 에너지의 강화로 심신心身이 일체의 감성적 제약을 벗어난 이성理性의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 도덕과 인성이 일치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가설로 미루어 성도成道란 개안開眼의 계속적인 발달, 즉 광휘로운 빛과 함께 얻은 깨달음이 극한에 이르고, 심적 에너지에 의한 권능을 자유로이 행하며, 도덕이 인성에 일치함으로써 도달하는 특별한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 오도, 원각, 성신감화 모두 인간의 오성悟性을 극대화해 도道를 깨닫는 일이라 정의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힘든 수련과 쉼 없는 정진에 의하지 않고서도 개안현상이나 교령현상交靈現象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천리안千里眼이나 영매靈媒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신비한 능력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사람들은 일종의 환각작용이나 병적현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신경 중추에 있는 교령각交靈覺이라는 감각기관의 활동에 의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천리안이나 영매를 통해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일들은 개안현상의 일종으로, 어떤 이유에서든 무의식의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의 순간적인 체질변화와 우연히 일치되는 시기에 한정해서 일어난다.
인간의 심령현상에 관한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학술연구의 대상이 된지 2세기가 지났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은 롬브로오스C.Rombros를 위시한 많은 심령 연구자들이 각종 심령현상에 대해 겉으로 나타나는 표층현상의 검토에만 치중하고, 영매의 성립 조건과 원인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한 까닭이다. 다시 말해 우연한 기회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영매나 천리안들만 연구의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수련과 정진을 통해 성취하는 개안, 오도, 성도, 성신감화 현상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면 심령문제에 대한 신비가 상당부분 구명되었을 것이다. 곧 개안 수련을 통한 체험과 롬보로오스 이래 수많은 연구자들 의해 축적된 영매에 대한 자료들을 연계해 깊은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성도成道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즉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기적이나, 불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법력이나, 대순전경이 전하는 증산甑山의 권능과 같이 자연현상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일이 기적의 영역에서 벗어나 타당한 법칙에 의한 엄연한 현실로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다만 그 같은 권능이 우리의 현실 생활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닐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일상과 생활이 현재와는 다른 변화를 이룰 때 비로소 그 같은 신비한 현상이나 작용이 우리의 삶에 실질적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점만은 확언할 수 있다.
2. 광 명光明
예로부터 인간의 정신현상은 신비하고 불가해한 것으로 우리의 인식능력과 지각을 초월한 영역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근대과학의 발달로 이 같은 생각이 점차 불식되어 오다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물론자들에 의해 인간의 정신현상 마저도 일종의 물질작용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정신현상이 대뇌 또는 감각기관에서 분비된 물질의 미세한 운동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뇌세포의 개별적 활동은 우리가 자각할 수 없지만 무수한 활동이 한 곳에 중첩되고 집중될 때 나타나는 정신현상으로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구름이 무수한 물방울로 이루어져 그 개개의 물방울이 끊임없이 운동하고 그 움직임을 우리가 자각할 수 없지만 그 개별적인 움직임이 중첩되고 밀집, 결합해 구름을 이룬 뒤에는 우리가 구름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뇌세포의 운동을 어떻게 지각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석을 내놓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뇌세포의 운동을 통해서 뇌세포의 운동 자체를 지각하는 것이라면, 대뇌 세포는 스스로 자기 고유의 운동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므로 뇌세포는 물질운동 이외의 어떤 특별한 인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유물론자들의 이러한 논리적 결함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정신 물리적 유물론이다. 이 이론 역시 인간의 정신현상을 물질의 작용이라 전제하면서도, 정신현상 가운데 물질 이론만으로는 논증할 수 없는 부문을 설명하기 위해 단순감각單純感覺의 존재를 가정했다. 단순감각은 물질운동이 아니라 물질운동에 의해 일어나는 근본적인 성질로서 설명이 불가능한 복잡한 정신현상은 모두 이 단순감각의 유기적 결합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물질의 운동과 감각은 전혀 다른 것으로 물질현상의 결합과 정신현상의 결합은 어떤 방식으로도 연계될 수 없다.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우리의 사상이 단순히 입과 혀와 성대의 운동 및 대뇌의 생리적 활동의 결합일 수 없는 것과 같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경험적 사실로 간주하는 경험적 평행설이 등장했다. 이 경험적 평행설은 물질과 정신 사이에 일정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마음이 된다는 가정처럼 터무니없는 전제라는 것이다. 자연현상의 원인은 물질적 과정이며 정신현상은 심적 과정이므로 자연현상과 정신현상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인정할 수 없고 다만 평행반기平行伴起의 관계가 있을 뿐으로 이것은 과정이 아니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실로 우리가 감고 있던 눈을 뜨면 빛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단순하고 개별적인 감각의 경우 그 대부분이 물질현상이나 생리적 과정에 따라 일어난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구상, 추리, 판단 등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정신활동과 그에 따른 부수적인 현상은 물질작용이나 생리적 과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경험적 평행설은 정신현상의 자의적이고 능동적인 작용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후에 제기된 부분 평행설 또한 그 자체로 경험적 평행설의 불완전성을 노정하는 것으로 적절한 이론이라 할 수 없다.
인간의 정신현상은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 각 개체에 내재하는 정신적 요소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무수한 세포군은 원래 동일한 형태이나 신경, 골격, 근육 등 각 부분으로 나뉘어 분화되므로 각 세포의 정신적 요소 또한 각개 세포의 신경계 부문으로 분화된 세포군으로 집결되고, 신경계 세포에 내재한 생체물질 요소 역시 각 부문의 해당 세포군으로 집결해 각기 특성에 따른 특화발달을 이룬다. 신경세포군은 그 자체, 또는 타 세포군의 정신요소를 포용해 스스로의 형질을 수정해서 정신활동에 적합하도록 특수화, 순화純化 발달해 대뇌를 만들고, 이 대뇌를 중심으로 무수한 신경줄기를 생성 신체의 각 부분과 연계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뇌는 전 신경계를 통괄하는 중추가 되고, 정신요소의 총합체는 이 대뇌에 의거해 그 기능의 일부인 감각요소를 전 신경계에 분포시킨다. 유사한 세포군의 집결은 신체 내부의 물리적 에너지에 의한 것이지만, 정신요소의 집결은 비물질적인 특수에너지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 특수에너지를 물질에너지와 구분하기 위해 심적에너지라 이름 한다.
정신에너지의 총합체를『아상我相』이라 부르는데 이 아상我相은 다시 지知·정情·의意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기억記憶, 상상想像, 오성悟性의 세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아상은 심적에너지의 작용과 감각기관을 통해 유입된 외부의 자극을 수용, 동화해 기억, 상상, 오성의 세 과정을 거쳐 지적 활동을 전개한다. 지적 활동은 다시 의적意的 활동을 거쳐 정적情的 활동으로 전개되는데 이것이 우리 정신활동의 전 과정이다. 이렇게 외부의 자극과 감각을 수용해 지知·정情·의意의 지적활동을 전개하는 동안 심적에너지 또한 끊임없이 소모된다. 심적에너지가 소진되면 정신활동 또한 위축되어 인간의 신체는 일정기간의 휴식, 즉 수면을 필요로 하게 되고 이 수면 기간에 아상我相은 다시 에너지를 축적해 다음 활동을 준비한다. 이처럼 정신활동의 강약은 심적에너지의 축적량에 정비례 한다. 인간이 지닌 지적知的 본질은 광채의 작용이고, 정적情的 본질은 에너지의 작용이며 의적意的 본질은 광채의 작용으로부터 에너지 작용으로 옮겨가는 질적 변화의 과정으로 이 세 가지 작용 모두가 심적에너지의 축적량에 의해 그 활동의 강도가 결정된다. 심적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면 아상我相 또한 약화되어 외부의 자극과 간섭을 받아 환상幻想과 같은 혼란스러운 정신현상이 일어나고, 심적에너지가 충만하면 아상我相이 강화되어 외부의 자극과 간섭을 극복해 올바른 생각과 건강한 정신현상을 유지하므로 수련修鍊을 통해 심적에너지를 많이 축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심적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과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항상심恒常心을 견지해 심적에너지의 소모를 방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 같은 노력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시도되어 왔다.
불가佛家에서는『선정禪定』이라는 방법으로 수련을 한다. 이 수련 방식에 의하면 수련자修鍊者는 벽壁을 향해 고요히 앉아 마음속에 하나의 진공점眞空點을 가정하고 일체의 상념想念을 배제하면서 스스로 선정한 진공점을 조금도 흩어지지 않도록 지킨다. 그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련의 초기에는 온갖 어지러운 생각들로 마음이 흔들리지만 계속해서 정진하면 차츰 잡스러운 생각이 사라지고 끝내는 모든 상념想念이 스러져 일체무아壹體無我의 대진공大眞空에 도달하게 되고 마침내 이 대진공으로부터 한 점 광명光明이 도출되어 필경에는 끝없고 가없는 큰 광명 속에서 깨끗하고 새로운 의식意識의 재구성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을 바로『견성見性』이라 한다.
유가儒家의 선비는『정심正心』이라는 방법으로 수련修鍊을 한다. 하루 종일 단정하게 앉아서 마음속에『田』자를 그려놓고 田자 안의 十자 교 차점에 정신을 집중해 마음이 흩어 지지 않도록 한다. 처음에는 정신과 마음이 제멋대로 어지럽게 흩어져 집중하기가 힘들지만 계속 해서 노력하면 심신이 안정되고 일념一念이 생성되어 모든 형상과 자신까지도 잃어버리는 무념無念의 경지에 도달한 뒤 그 무념의 경지에서 광명光明이 도출되어 마침내 끝없이 큰 광명 과 함께 깨끗하고 새로운 의식意識의 재구성을 만나는데 이를『득도得道』라고 한다.
불가의 선정禪定과 유가의 전자田字 수련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어려운 까닭에 도가道家에서는 보다 간단하고 빠른 방법을 찾아냈다. 일정한 수數의 글자로 된 문구文句, 즉 주문呪文을 계속 외워 특정한 성음聲音의 자극으로 다른 모든 상념想念을 배제하는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동안에도 역시 어지러운 생각이 침범하지만 점차 그 빈도가 줄어들고 어느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일체의 상념이 사라지고 무념無念의 경지에 도달해 광명光明이 도출되고 결국 큰 광명 속에서 역시 청신한 의식의 재구성을 보게 되는데 이것을『통령通靈』이라 한다.
선정禪定, 전자田字, 주송呪誦 등의 수련이 각기 그 방법은 다르지만 외부에서 침습하는 어지러운 생각을 배제해 필요 없는 심력의 소모를 막고, 보다 많은 심적에너지의 축적을 꾀하는 노력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할 것이다. 일체의 상념想念이 사라진다는 것은 더 이상 불필요한 심적에너지의 소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란 심적에너지의 축적이 극한에 이르렀다는 것이며, 광명光明의 도출은 극한에 이른 심적에너지가 포화작용을 일으켜 구체적으로 발현發現되는 것이며, 대광명大光明은 심적에너지의 포화작용에 의해 아상我相이 강화된 것이며, 의식의 재구성은 강화된 아상我相이 자유롭게 활성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유儒·불佛·선仙 세 종교의 수련 방법이 서로 다르지만 그 원리와 작용과 결과가 모두 동일한 것은, 심적에너지의 포화작용에 의해 아상我相이 강화됨으로서 수련 주체의 지적능력이 활성화되어 심상心像과 오성悟性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의식이 재구성되는 순간부터 예리한 비판과 투명한 추리와 밝은 예지력豫知力이 발현發現해 신비하고 놀라운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 같기 때문이다.
3. 연 력 鍊 力
지적 능력이 강화되어 대광명大光明을 얻게 되면 비판, 추리, 예지력이 크게 늘어나면서 불현듯 여러 가지 심상心像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 심상心像의 출몰에 신경을 쓰다 보면 마음이 더욱 어지러워져 아상我相이 위축되고 심적에너지가 소모되기 시작하여 포화작용이 그치며 광명光明이 어두워지게 되는데 이 같은 심상을『마상魔相』이라 한다. 또한 대광명을 얻은 뒤 수련을 중단하고 번잡한 세상일에 관여하면 역시 심적에너지가 소모되면서 광명이 어두워진다. 그러므로 대광명을 얻은 뒤에는 그 나타나고 사라짐이 무상한 마상魔相에 미혹迷惑되지 말고 대범하게 흘려보내거나, 무시한 채 수련에 더욱 정진하면 자신을 옭아매던 마상魔相이 점차 소멸하고 포화작용을 일으킨 심적에너지가 결정結晶을 이루어 광명光明의 질적 변화를 촉발하면서 무색의 밝은 공간이 전개되고 의적意的 본질이 강화된다. 의적意的 본질의 강화는 마상魔相의 폐해를 극복하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온갖 자극과 감각의 그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아상我相이 무상한 권위를 획득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다시 수련과 정진을 계속하면 심적에너지가 마침내 대결정大結晶을 이루어『에너지적 중추』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를『연력鍊力』이라 한다. 연력이 결정을 이루면 정적情的 본질이 강화되며, 물질적에너지와 연계를 이루어 능히 자연의 질서를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知·정情·의意 세 가지 본질의 단계적, 균형적 강화를 통해 아상我相이 강력한 권능을 발휘해 인간의 품성을 성스럽고 깨끗하게 정화하며, 마음을 명철하게 갈고 닦아 큰 지혜와 능력으로 만상萬像을 제어하는 힘의 중추단위가 되어 인격 완성의 궁극적인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4. 덕 성 德 性
유가儒家의 맹자孟子는『인성人性의 본질은 선善인데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온갖 해악害惡에 의해 악惡해지는 것이므로 힘써 수양해 악惡을 버리고 사람의 본질인 선善을 함양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순자荀子는『인성人性의 본질은 악惡한 것이나 수양修養의 힘으로 선善하게 할 수 있다』고 했으며 고자告子는『인성人性의 본질은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닌 순백지체純白之體이므로 그 수양修養 여하에 따라 선善하게도 악惡하게도 변한다』고 했으며 기독교에서는『인성人性이 사탄의 유혹으로 타락해 악하게 변했으므로 신神의 뜻에 부합하는 계명戒命명을 지키는 수행修行을 통해 선善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불교佛敎에서는『인성人性의 본질이 고해苦海와 인과因果로 인해 악惡해졌으므로 팔정도八正道의 수행을 통해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불성佛性을 얻어 선善하게 될 수 있다』했다. 이 주장들이 모두 인성人性에 대한 정의는 각기 다르지만 수양修養을 통해 덕성德性을 함양해야한다는 점에서는 그 가르침이 일치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수양修養에는 외적수련外的修鍊과 내적수련內的修鍊의 두 가지가 있는데 외적수련은 신경계의 반복학습 원리를 적용해 덕성을 함양한다는 뜻으로 공자孔子야 말로 이 외적수련을 통해 성聖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이다. 내적수련은 연력鍊力의 결정結晶으로 강화된 아상我相이 일체의 제약을 초극해 도덕道德이 인격人格에 일치된다는 뜻으로 석가모니와 예수가 내적수련을 통해 대성한 경우다.
인간이 지닌 정적情的 본질은 생식성에서 발생해 양성관계兩性關係와 혈연관계에 작용해 은혜와 의리의 감정을 발현하는데 이 감정이야말로 덕성德性의 기본형식이다. 은혜와 의리의 감정은 다시 혈연관계로부터 사회관계로 그 작용을 확대해 책임감과 동정심을 유발하고, 다시 질서관계에 작용해 정의감과 자비심으로 발달한다. 이 같은 감정의 발달과정과 반복학습 원리에 의해 아상我相이 강화된 것이 바로 덕성德性이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 준용할 실천규범을 정해 힘써 행함으로써 아상의 강화와 덕성의 함양을 꾀하는 것이 바로 수련修鍊이다. 그러나 번잡한 세상사에 휘말리다 보면 수신修身과 정양淨養이 심히 어려우므로 무엇보다도 굳은 심지心志로 심신心身을 가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과 같이 성도成道는 내적수련에 의해 대광명의 전개, 연력의 결정화, 덕성의 권위 획득이라는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으로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를 대성大成한 사람은 극히 적으나 증산甑山이 그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제 4 장 신 관 神 觀
1. 일반적인 신神 개념
신神은 세계의 창조자, 우주의 지배자, 무한한 절대자, 선善의 표상, 운명과 화복禍福의 주재자로 인식되어 초기 인류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절대적 공경과 숭앙을 받아왔다. 그 같은 무조건적인 숭배와 긍정, 더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신神도 철학과 학문의 발달로 인해 그 존재와 의미가 퇴색되었고, 결국 무신론자들에 의해 그 존재와 본성이 근본적으로 부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神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의 문화나 일상생활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것 또한 사실이므로 그 실재와 의미를 무조건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보다는 신神에 대한 개념의 역사적 발달과정을 검토하고 그 내용을 자세히 파악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자세라 할 것이다.
신神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시대와 경우에 따라 서로 달랐다. 처음 인류가 소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씨족氏族생활을 할 때는 신神에 대한 개념도 그 씨족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맞도록 구성되었고, 생활 방식과 문화가 유사한 여러 씨족이 모여 이루어진 부족사회에서는 신神에 대한 개념도 부족 공통의 이해와 일치하도록 바뀌었으며, 제정일치 시대인 봉건 시대에는 신神에 대한 관념도 봉건제도의 정신에 맞도록 수정되었으며, 인류의 생활방식이 현저하게 변화한 절대왕전 시대에 새롭게 출현한 도덕적 종교 또한 그에 걸맞도록 변했다. 결국 신神에 대한 개념은 인간 사회의 변천에 따라 씨족신氏族神, 부족신部族神, 지방신地方神, 문명신文明神의 단계를 밟아 진화되어 왔다.
신神에 대한 정의는 문명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흔히 동물신動物神을 숭배했고, 고대사회에서는 천체신天體神과 자연신自然神을 믿었고, 문명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격신人格神을 숭상하게 되었다. 신神은 그 내용과 형상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했으니 천체신도 천공신天空神과 일월신日月神으로 분리되고, 인격신도 각 종족의 형체와 소양을 지닌 신神으로 나누어지며 같은 민족이라 해도 시대의 변화와 사회관계의 변동에 따라 신봉하는 신이 바뀌기도 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모시던 신神 라무Lahmou와 라하무Lahamou는 후에 안샤와 키샤라는 한 쌍의 신神으로 교체되었으며, 키샤는 그 후에 다시 에아Ea로, 에아는 벨Bel로 벨은 마르두크Mrduk로 바뀌었으며, 그리스 최초의 신 크로노스Kronos는 새로운 정치질서와 사회제도의 계도자인 제우스Zeus에게 구축되었다.
그 밖에도 정치 세력의 변화와 새로운 문화의 전파로 인해 한 지방신地方神이 다른 지방신을 정복하거나 구축하는 일도 있었다. 로마 문명이 그리스화 되면서 로마의 신이 그리스의 신에게 정복당하고, 로마 제국이 지중해 일원을 통일하게 되면서 로마의 신이 지중해 각지의 지방신을 모조리 정복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도 모두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신神에 대한 개념은 늘 인간의 현실이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며 끊임없이 변해왔다.
2. 신神 개념의 실제적 의의
신神에 대한 개념의 구성 내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신神을 창조자라고 생각한 것은 경험 통일의 이념에 의한 것으로, 고대인의 낮은 이지理知로는 자연과 만물의 근원을 생각할 때 제1원인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신神을 절대자라고 칭한 것은 무한이념에 따른 것으로, 그들이 인지하는 현상들이 상대적으로 모두 유한하며 그 유한성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기 존재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현상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神이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믿은 것은 완전이념에 의한 것으로, 고대인들이 자기가 지닌 지식과 힘이 아주 미약한 것이어서 자연의 속박과 제어로부터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과 운명을 다스리며 모든 불가항력적인 사항을 극복할 수 있는 완전한 존재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며, 신神을 심판자로 규정한 것은 도덕이념에 기인한 것으로, 예로부터 선善과 악惡이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아 선善에 이르는 길이 무엇보다 어렵고 힘들었던 까닭에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지고선至高善의 권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며, 신神을 모든 것을 주재하는 지배자로 여긴 것은 문명이념에 따른 것으로, 뜻밖에 밀어닥치는 재앙과 행운의 연유를 알 수 없을 때, 운명의 오묘한 기미를 조정해 화禍와 복福을 마음대로 제어할 지배적 권위를 설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며, 신神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호칭은 씨족이나 부족 장로에 대한 존칭을 이어 사용한 것으로, 원시사회로부터 전해 내려온 장로 숭배의 사상이 신화적으로 과장되고 나아가 이를 신격화 해 기존의 모든 이념과 연계해서 사용한 까닭이다. 우리가 간단하게 한 마디로 표현해온 신神은 사실은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여러 가지 내용과 의미가 복합적으로 녹아 스며들어 있는 말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신神의 개념에 내포된 신격神格은 자연신自然神으로 불리기도 하고 문명신文明神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지人知가 발달하고 비판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신神에 대한 다양한 개념과 신성神聖, 신격神格은 범신론汎神論에 의해 창조관념이 불식되고, 그 밖의 다른 이념들까지 훼손되었다. 예를 들자면 무한이념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론에 의해 부정되고, 도덕이념은 진화론적 가치관에 의해 전복되고, 운명이념은 원력願力 또는 원념寃念의 작용에 의해 지배관념의 자리를 잃었다. 신神에 대한 여러 호칭은 고고학과 어원학語源學의 연구를 통해 고대 씨족의 족장이나 장로의 명칭이었음이 밝혀짐으로써 신神의 고유 명칭이 지닌 권위까지 추락하게 되었다. 신神에 대한 개념가운데 아직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완전이념 하나뿐이라 하겠다.
완전이념은 신神이라는 개념 구성의 기본 동인動因이다. 가장 먼저 완전이념의 발동에 의해 신神에 대한 개념이 구성되고, 호칭의 사용을 통해 장로 숭배의 사상이 융합되어 그 권위를 실제화하고, 통일이념의 발동으로 천지창조의 관념이 더해져 그 권위를 더욱 강화하고, 운명이념의 발동으로 지배관념이 중첩되어 더 큰 권위를 부여하고, 무한이념의 발동으로 절대관념이 합해져 무상의 권위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다른 이념은 신神의 개념에서 분리되었으나 완전이념만은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신神으로부터 이미 분리되어버린 다른 이념을 분석 검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완전이념에 대한 깊은 연구와 천착이 이루어져야만 신神에 대한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구명究明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이념의 발동은 곧 목적성의 충동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늘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금보다 더 완전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우면서 높은 수준의 생활을 동경하며, 그 높은 수준의 생활을 견지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인격의 모범적인 형태와 준거를 지향하므로 그 생활에 적합한 인격의 전형典型이 우리 의식 안에 완전이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 완전이념이 바로 우리의 표상의식이 되어 우리를 견인해 끊임없이 진화하도록 하는데, 이 표상의식이야 말로 신神에 대한 개념을 구성하는 기본 동인動因이다. 그러므로 신神은 우주의 창조자나 하늘과 천리天理의 주재자가 아니라, 단순히 현재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인격의 전형으로서의 표상의식이 권위화權威化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표이념의 권위화일 뿐이다. 특정 개인이 모시는 신神은 개개 인격의 진화이상이며, 한 사회가 신봉하는 신神은 그 사회의 진화이상이다. 진화이상의 견지에서 생각하면 시시각각 일어나는 진화는 시시각각의 신神이며,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 단계의 형상 또한 각 단계의 신神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단순화된 내용으로 구성된 신神의 개념은 자기 보전을 위해 통일이념과 다른 여러 이념들을 수용해 변태적 권위를 구축하고, 기이하고 신비한 현상과 부당하게 연계해 필요 이상의 위엄을 설정하는 까닭에 그 본래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채 우리의 이성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통제하거나 구속해왔다. 그러나 이제부터 신神은 그동안의 불필요한 이념들과 절연하고 인류의 진화를 선도하는 본연의 책무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은 표상表相에서 이상理想으로 다시 이상에서 실상實相으로 이른다. 표상表相은 곧 표상의식이며, 표상의식을 분석해 그 개연성이 인정되면 그것이 곧 이상理想이 되고, 이상에 능동적 행위가 수반되어 타당성이 인정되면 그것이 곧 실상實相이 된다. 가령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서울이라는 지역을 여행하고자 할 때, 처음에는 그저 서울이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의식 내에 나타나는데 이것이 곧 표상表相이다. 서울에 가서 해야 할 일을 결정하고, 여정을 조사하고, 소요되는 시간과 경비를 계산해 여행계획을 세우는 것은 곧 이상理想이며, 고속버스나 철도를 이용해 대전 천안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는 것이 곧 실상實相이다. 이처럼 우리 일상의 모든 활동과 일 모두가 표상表相, 이상理想, 실상實相의 세 가지 법칙에 의해 전개된다 할 수 있다.
인류의 진화이상이기도 한 신神의 개념은 인격완성의 표상表相이다. 그러므로 신神을 표상신表相神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이 표상신은 오래도록 숱한 오해와 오류의 중심이 되어오다가 석가, 공자, 노자에 의해 비로소 그 개연성이 부여되었다. 석가釋迦는 인간은 누구나 팔정도八正道의 수행을 통해 인격완성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설파하고, 그렇게 완성된 인격을 부처佛陀라 불렀는데 부처는 곧 신神의 이상화理想化에 다름 아니다. 공자孔子는 인덕仁德을 닦아 인격완성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고 그렇게 완성된 인격을 성인聖人이라 했는데 성인 또한 신神의 이상화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노자老子는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가운데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과 스스로 하나가되는 수행을 통해 인격의 완성에 도달할 수 있다며 이렇게 완성된 인격을 신선神仙이라 했는데 신선 또한 신神의 이상화에 대한 다른 이름일 뿐이다. 따라서 이렇게 이상화理想化된 신神을 이상신理想神으로 부르는 것이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이상신은 오랜 세월 인간의 신神에 대한 개념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증산甑山은 넓고 큰 연력鍊力의 체험을 통해 인격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는 한편, 일심一心에 의해 연력鍊力이 결정結晶을 이루면 인격이 완성되고, 그 완성된 인격에 타당성이 부여됨으로써 신神의 개념이 실상화實相化된다고 확언했다. 이로써 수천 년 이래 종족이나 종교에 따라 달리 인식 되어오던 신神에 대한 개념과 의의意義가 비로소 올바르게 실제화實際化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지방신地方神
신神의 개념에 대한 분석을 통해 완전이념이 신격神格의 기본 동인動因이라는 사실은 앞서 말한 바가 있다. 완전이념과 결합되었던 장로 숭배 사상의 결과물인 씨족신氏族神의 개념은 여타 신神들의 개념과 다르게 발전한 까닭에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씨족신은 여러 씨족의 연합에 의해 부족신部族神으로 바뀌고, 부족신은 다른 부족과의 통합을 통해 등장한 국가의 형태와 영역에 따라 지방신地方神으로 변하고, 지방신은 특출한 종교인의 열정과 융합해 문명신文明神으로 전이傳異되었으므로 지방신과 문명신의 개념과 양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집트인들은 원래 태양신을 숭배했다. 이후 정치·사회적 변동과 사상의 변화에 따라 태양신이 인격신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태양신의 속성과 조건을 탈피하지 못했다. 그들이 신봉했던 최초의 신神 호어Hor는 빛과 광명의 표상으로 이집트 전역을 관장하는 유일신維一神이었다. 이집트를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는『호어의 숭배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집트 왕조가 남·북으로 나누어지자 태양신 라Ra가 북北 이집트의 주재신이 되고, 아몬Amon은 남南 이집트의 주재신이 되었다. 남·북 이집트가 통일되자 두 주재신은 아몬-라Amon-ra 라는 하나의 신神으로 다시 결합되었다. 아몬-라는 이후 오시리스Osiris라는 인격신으로 교체되어 생성, 발육 등 풍요와 생산력의 관장자이며, 미래와 정의를 표현하며 인간의 도덕성과 영원, 운명을 결정하는 심판자가 되기도 했으나 여신女神 이시스Isis와 결합해 문명의 개척자가 되어 윤리와 종교적 관념의 중심으로 신앙의 중추가 되었다.
인도인은 예로부터 수많은 신神 가운데 천상신天上神과 공중신空中神, 지상신地上神을선택해 최고의 주재신으로 숭배했다. 천상신 바루나Baruna는 모든 인간의 생활을 포용하는 지배자, 도덕과 윤리를 관장하며 죄인을 벌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자를 용서하며 창조자 태양신 미트라Mitra와 결합해 윤리적 질서의 주재자가 되었고, 공중신 인드라In-dra는 만유萬有의 통제자로 비, 우뢰, 번개를 사용하므로 때로는 위엄의 신神이 되고 혹은 자비慈悲의 신神도 되었으며, 자상신 프리티바Pritiba는 만물을 양육하는 대지와 어머니의 신神이 되었다. 이후 이 삼계三界의 신神은 모두 만유萬有의 주재자인 프라자파티Prajapati에게 자신들의 자리를 물려주고 프라자파티는 비인격적인 자연신 브라흐마Brahma에게, 브라흐마는 다시 인격신 크리슈나Krishuna로 계승되어 자비慈悲의 주재자로 모든 인도인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페르시아인은 인도의 인근지역에 거주하면서 비슷한 사회구조와 생활여건 아래 살았던 까닭에 신神에 대한 개념도 인도인과 동일했으나 인도인과 분리된 이후에 비로소 독자적인 신관神觀을 수립했다. 그들은 신神을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으로 구분했는데 선신善神은 여섯 가지 불사不死의 영靈, 즉 선심善心, 정법正法, 신지神智, 경건敬虔, 행복幸福, 영생永生으로 구성되어 천공신天空神 미트라Mitra와 물의 신神 아나히터Anahiter가 그 대표신이 되고, 악신惡神은 인간의 현실생활을 힘들고 어렵게 하는 모든 요소들의 영靈으로 이루어져 아메샤Amesha가 대표신이 되었다. 선신과 악신은 본래 동등한 지위와 권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중세 이래 악신은 사라졌으므로 인간의 신앙은 선신에게 집중되었다. 이후 무한 공간신空間神 아후라마즈다Ahura-Mazda가 미트라, 아나히터 두 신과 결합해 무한한 시간신時間神 안구르마이뉴Angurumainue와 2대 주신主神이 되어 인세人世의 지배자, 모든 선善의 근원, 만물萬物의 주재자로 윤리와 종교의 중심이 되었다.
바빌로니아인은 빈번한 정치세력의 출현과 소멸로 인해 천신天神, 지신地神, 해신海神을 차례로 받들어 믿다가 이 세 신神 모두를 영광을 함께 누리는 신神으로 숭배하게 되었다. 최초에 티그리스 지방이 정치적 중심이었을 때는 티그리스의 부족신인 천공신天空神 아누Anou가 주재신이 되었고, 그 후 정치적 중심이 에리두 지역으로 바뀌자 에리두의 부족신인 물의 신神 에아Ea가 주신主神이 되었다. 에아는 세계의 창조자로 인류에게 지식을 전해주는 존재로, 생활에 필요한 온갖 도구의 발명자로, 보편적 능력을 지닌 신神이기도 했다. 다시 바빌로니아의 정치적 중심이 뉘풀 지역으로 옮겨감에 따라 뉘폴의 부족신인 벨Bel이 주재신의 자리에 올랐다. 벨은 하계의 군주君主, 곧 대지大地의 신神이었다. 이후 바빌론시가 번영을 이루어 정치적 중심지가 됨에 따라 바빌론의 부족신이었던 인격신人格神 마르두크Marduk가 아누와 에아, 벨 세신神을 흡수해 세상을 주재하는 최고신이 되었다.
아시리아인은 바빌로니아인과 같은 종족이므로 원래는 천신, 지신, 해신 을 숭배하다가 이 세 신神이 바빌론의 마르두크에게 흡수될 무렵에 인격신인 군신軍神 아슈우르Ashour에게 흡수되었다. 아슈우르는 여신女神인 이슈타르Ishutar와 함께 아시리아의 최고신이 되었는데 이슈타르는 풍요의 신으로 신과 사람의 어머니, 생산과 번식을 관장하며 아슈르와 함께 아시리아인의 윤리와 종교이념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스인은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 감성을 한껏 발휘해 이 세상 자체가 그리스의 사상과 일치하며 신神들 또한 그리스인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따라 그리스인들은 형상과 개성이 다양한 여러 신神들이 가족과 친구, 단체를 이루어 할거하며 공존하는 특수한 신적체계를 구성했다. 그 가운데 최고신인 천공신 제우스Zeus는 모든 신神과 인간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의 신격神格은 일정하지 않아 어느 때는 충동과 감성의 화신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사려 깊고 위엄에 찬 지배자이며, 어떤 경우에는 정의와 질서의 대표자이고, 다른 면으로는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의 표상이기도 하며, 또 그리스인의 정치적 권위와 관념을 뜻하기도 하며, 도덕과 윤리를 관장해 죄를 벌하며 이利를 구求하는 심판자였다. 그리스의 신神은 제우스의 통치 아래 있었지만 그 관장하고 맡은 바가 분명한 분업적 신격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태양신 아폴로Apollo는 안픽티오니 회의의 수호자, 문학과 예술의 후견자, 의식과 죄에 관한 윤리의 양성자였으며, 포세이돈Poseidon은 바다의 신神으로 대지大地를 지탱하는 존재였으며, 헤르메스Hermes는 세상의 모든 환락에 골몰하고 음악에 정통하며 뛰어난 도둑이면서 늘 풍광이 아름다운 전원을 그리는 이상신으로 인류의 번영을 돕고 더없이 빠름 걸음으로 인간의 영혼을 명계冥界로 인도하는 신神의 특사였다. 산양신山羊神 판Pan은 머리의 뿔로 태양과 달을 표시하고, 얼룩무늬가 그려진 털은 하늘의 별자리를 가리키고, 완만하게 휘어진 뿔의 곡선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타내는 전원의 신神으로 풍류를 관장해 여러 신神들을 즐겁고 기쁘게 했으며 군신軍神 아레스Ares는 전쟁의 수호자로 용기와 굴강한 기상을 상징하며, 하데스Hades는 명계冥界의 신성한 판관判官이었다.
로마인은 애초에 윤리와 도덕을 관장하는 천공신 주피터를 최고신으로 한 수 많은 신神들을 섬기다가 그리스 문명의 영향으로 주피터 이하 모든 신神들이 그리스의 신神들에 동화되어 버렸다.
중국인은 예로부터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를 하늘天이라 생각하고 옥황상제玉皇上帝라는 존칭으로 불렀다. 이 옥황玉皇을 필두로 우사雨師, 풍백風伯, 운후雲候, 뇌공雷公, 산왕山王, 용왕龍王, 토왕土王, 염왕閻王, 목신木神, 수신水神, 금신金神, 화신火神, 재신財神, 사직신社稷神, 문신文神, 무신武神 등 특수한 신들로 그 계통과 체계가 구축되었다. 중국의 통치자는 천자天子라는 독특한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하늘의 명命을 받아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드러내 알리는 한편, 모든 백성을 대표해 하늘에 제際를 올리는 제사장이 되어 일반 백성들이 하늘에 제際를 올리는 것을 금禁하고 하급 신神에 대한 제사만 허용했다.
일본인은 남신男神 이자나기미꼬도伊邪那技命와 여신女神 이자나미노미꼬도伊邪那美命가 결합해 일본국토를 낳고, 다음으로 아마데라스오미까미天照大神를 낳았는데 이 아마데라스오미까미가 일본 민족의 시조이며, 황실의 조상이라 생각하고 숭배했다. 이 아마데라스오미까미를 최고신으로 받들고 후대의 모든 왕王과 이름이 높은 인물을 모두 신격화神格化했다. 그 밖에 바람의신神, 바다의 신神, 폭풍의 신神, 산신山神, 천구신天狗神 등 8백만에 이르는 신神들을 포괄해 신계神界의 체계와 계통을 세웠다.
한국인은 삼계三界의 주재자로 하느님桓因을 숭배했다. 삼국유사에도『상제上帝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을 낳고 환웅이 단군檀君을 낳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단군은 한민족韓民族의 시조始祖이며 최초의 임금으로 하느님, 환웅과 함께 삼신三神이라 칭하며 사람의 탄생을 관장하는 신神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지배하에 사직신社稷神, 산신山神, 용왕龍王, 명부왕冥府王 성황신城隍神 성조신成造神 당산신堂山神 조왕신 등을 포괄해 신계神界의 체계와 계통을 정립했다.
이스라엘인은 세계의 창조자, 유일한 최고의 지배자, 영원불멸의 절대자인 여호와를 숭배했다. 약 4천 년 전 모세가 이스라엘인을 거느리고 그들의 고토古土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복지福地로 돌아오면서 반포한 율법 10계명은 곧 여호와의 뜻이기도 했다. 이후 가나안에 정착한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주권자로 한 신권국가를 건설했다. 여호와의 신격神格은 모세의 5서五書를 첫머리로 해 편성된 구약성서에 체계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10계명의 첫 계명『내 앞에 다른 신神을 두지 말라』는 조항은 여호와가 지닌 시기심과 배타성을 잘 표현한 대목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인은 수천 년에 걸쳐 다른 민족의 신神과 길고도 힘든 싸움을 전개해야만 했다. 여호와는 다른 신神에 대해서만 시기와 질투를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룩한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창세기에 사람들이 힘을 모아 높은 탑을 짓자 이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종족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해 사람으로 하여금 더 이상 뜻과 힘을 한데 모으지 못하도록 했고, 자신의 뜻을 어긴 소돔과 고모라 두 성城을 불로 태워 주민들을 징치했다는『구약성서』의 기록은 그의 잔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는 비록 아끼고 가까이하는 자라 할지라도 사소한 과실마저 용납하지 않고 엄하게 징벌하는 각박한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후 예수의 종교적 열정과 결합한 여호와는 그 신격神格이 변해 도덕의 최고 이상, 영생의 주재자, 말세의 심판자, 사랑과 은혜의 신神, 자유와 평등의 표상으로 숭배된다.
아라비아인은 세계의 창조자, 전지전능의 유일한 주재자로 알빌라·라미나를 신봉했다. 이 신神은 마호메트에 의해 가장 자비로운 자者, 심판일의 왕王이라는 신격神格이 더해졌다. 그들의 경전經典『코란』은『칼은 천당과 지옥의 열쇠라. 전장戰場에서 전사한 자者는 모든 죄업이 소멸되고, 최후의 심판일에 이르러 그 상처는 주사朱沙와 같은 찬란하게 빛날 것이며, 사향과 같이 꽃다운 향기가 나고, 그 잃어버린 팔과 다리는 천사의 날개가 대신할 것이다』고 가르치며 『알라는 불신자不神者를 모두 가루처럼 부순다. 알라는 믿는 자만 사랑하고 믿지 않는 자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속성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모든 민족, 모든 나라에는 저만의 속성과 특색을 지닌 신神들이 자신을 신봉하는 무리의 운명과 흥망興亡을 관장하며 그 영역을 지키니 이들 모두가 지방신地方神이다.
4. 지방신地方神의 실제적 의의
이상 지방신地方神의 개념과 의미를 살펴볼 때 지방신이란 원래 각 종족의 시조와 특출한 추장이나 족장을 신화적으로 권위화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 초기의 씨족집단은 시원추장始原酋長의 인솔 아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은혜와 위엄에 의지해 집단의 질서를 유지했다. 씨족 구성원들은 추장의 후의와 보살핌에는 존경을, 그의 분노와 위엄에는 두려움을 느꼈으며 사냥이나 적과의 전투에서 발휘하는 뛰어난 힘과, 생활기기의 제작에서 나타나는 지혜와 슬기로움에는 경탄과 신뢰를 보냈다. 이 같은 감정이 추장을 우러러 받드는 숭배의 염念을 형성했고, 다음 대代의 추장은 시원추장의 은혜와 위엄과 지혜를 더욱 과장해 일족이 지닌 존숭의 염念을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위엄과 권위,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이용하고, 부녀자들은 아동을 훈육訓育하는데 시원추장의 위엄과 공적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代를 거듭하면서 후인들의 필요에 의해 시원추장의 위엄과 능력은 계속 강화되어 결국 초절적 인격人格, 곧 신격神格으로까지 추존되어 전지전능자가 되었으며,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경험칙에 비추어 불가사의不可思議, 불가해不可解한 일들의 해결자로까지 등장함으로써 세계의 창조자가 되고, 지배자가 되었으며, 일족과 가장 긴밀한 관계, 곧 이해관계나 위협, 자연의 현상까지도 결부되면서 그 신격神格이 동물화動物化 하기도 하고, 혹은 천체화天體化 하거나 인격화人格化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신화神話의 발생과 전개의 모든 과정이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 민족의 시조 반고씨盤古氏가 죽자 두 눈은 해와 달이 되고, 사지四枝는 나누어져 4악四嶽이 되고,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玉皇上帝가 되었다 한다. 그러므로 중국인의 신神 옥황상제는 그 시원추장 반고씨를 신격화한 칭호에 불과하며, 한국인의 역사서 삼국유사의『상제上帝 환인桓因이 아들 웅雄을 보내어 삼위태백三危太伯 에 내려왔다』는 내용은 한국인의 신神 하느님은 한민족의 시원추장 환인桓因의 이름이 음운전이 된 것에 불과하며, 일본인의 기록에는 아마데라스오미까미가 일본 민족의 시원추장이었다고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여호와가 흙을 빚어 아담이라는 남자를 만들고, 아담의 오른쪽 갈비뼈를 빼내어 이브라는 여자를 만드니 이 남녀의 자손이 번성해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했다는 민족계보를 상술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스라엘 민족의 신神 여호와도 그 민족의 시원추장을 신격화한 칭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세계 어느 지방 어느 민족의 신神 개념이라도 모두 그 민족의 시원추장을 신격화했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일반적인 신神 개념과는 달리 신神은 원래 우주의 창조자도 아니고, 이 세계의 통일적 주재자도 아닌 존재로, 본시 시원추장의 혼령을 중심으로 후대의 뛰어난 인물들이 그 일족의 바램과 염원을 한데 모아 이루어낸 영적靈的 에너지의 중추적 체게와 결정結晶으로, 각자의 영역을 수호하고 민족의 운명을 다스리는 동인動因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며 이를 가리켜 지방신단地方神團이라 이름 하는 것 또한 마땅할 것이다.
5. 문명신단 文明神團
지방신地方神이 위대한 종교인의 열정과 결합해 그 개념과 내용이 바뀌어 문명신文明神이 된다는 내용은 앞서 설명한 바 있으나 사실 지방신과 문명신은 그 본질과 의미가 전혀 다르다. 지방신은 원래 문명신에 앞서 등장한 신神이다. 문명신은 사회구조와 문화의 변천에 따라 문명이라는 특수한 개념이 더해져 구성된 존재로 지방신 고유의 특성이 사라지고 급기야 그 속성과 본질마저 변한 것이다. 지방신은 시원始原 추장이 신격화된 특정한 종족에 국한된 지배권위이지만, 문명신은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이상적理想的 권위다. 종교적 신앙의 대상은 이상理想과 염력念力의 결정체結晶體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신령神靈스러운 존재다. 이 신령한 존재를 중심으로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의 원력願力이 모여 강력한 에너지의 중추를 구성해 집단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의 이상理想으로 정립된 것이 곧 문명신이다. 이 문명신은 한 번 구성되면 대代를 이어 집단과 그 구성원 모두에게 신령스러운 기운을 불어넣고 개개인의 원력願力과 결합해 신단神團을 이루는데 이것이 바로 문명신단文明神團이다.
공자孔子는 대동이상大同理想을 수립하고 자신의 연력鍊力을 합해 결정結晶을 이루어 영적靈的에너지의 중추를 구성한 뒤 72명에 이르는 제자과 수많은 유생儒生들의 원력願力을 더해 유교留敎의 발전과 운수를 관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교신단儒敎神團이다.
석가모니는 정토이상靜土理想에 자기의 연력을 합해 결정結晶을 이루어 영적靈的에너지의 중추를 구성한 뒤 불교佛敎 신도들의 원력願力을 합해 불교의 발전 기회와 운수를 다스렸으니 이것이 불교신단佛敎神團이며 예수 또한 마찬가지 경로를 밟아 기독교신단祈督敎神團을 형성했으니 어느 종교든 같은 방법으로 특수한 신단神團을 조성했다.
지방신단地方神團은 자기 지역을 고수하고 종족의 특성을 보전하려 하지만 문명신단文明神團은 지역을 초월하고 종족의 특성 또한 무시하고 타파한다. 이 같은 문명신단의 계도啓導아래 우리는 점차 인류 공통의 이상理想과 염원念願을 추구하게 되었다.
제 5 장 천지공사天地公事
1. 통일신단 統一神團
통일신단의 결성을 통해 비로소 천지공사天地公事가 시작되었으므로 천지공사에 대한 인식은 먼저 유령幽靈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유령이란 물체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정신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정신현상의 육체로부터의 분리 가능성에 대한 인정은 곧 천지공사의 합리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신현상의 독립적인 분리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천지공사가 망령된 거짓임을 확인하는 일이 된다.
인간의 경우 정신현상의 분리 가능성은 폭넓게 인정되어 왔다. 인간은 일찍이 영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 영혼이야 말로 참된 자기이고, 육체는 그 영혼이 머무는 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므로 영혼이 머무는 동안에 한해 그 신체는 온전한 생명체로 활동하고, 영혼이 이탈한 후에는 온전한 생명체로 존재할 수 없어 사멸死滅하며, 영혼이 스스로 머물고 있던 신체로부터 잠시 외유外遊를 하게 되면 그 신체가 수면기睡眠期에 들거나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인류사人類史에 큰 족적足跡을 남긴 종교인들 대부분이 이 영혼관념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강화하는 동시에 내세화복來世禍福의 개념을 부여해 자신이 전파하는 종교운동의 토대로 삼았다. 이후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물질로부터 정신현상의 분리 가능성이 부정되고 기존의 영혼관념이 타파되면서 인간의 정신현상 또한 물질에 수반된 일반현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빛에는 반드시 열이 수반되어 열이 높아지면 빛이 더욱 밝아지고, 열이 낮아지면 빛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정신은 물질에 수반된 현상으로 물질의 에너지 작용 여부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의는 물심평행설物心平行設이 등장해 정신과 물질은 사물의 요철凹凸처럼 일체양면一體兩面의 평행관계라고 주장하면서 정신의 지위를 물질과 대등한 위치로 격상시켰지만 정신과 물질의 분리 가능성을 부인한다는 점에서는 유물론자들과 그 궤를 같이 했다.
그렇다면 유물론자들의 주장처럼 정신과 육신의 분리는 불가능한 것인가? 롬브로오스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채집된 영괴현상靈怪現象의 수천가지 사례에 의하면 영육靈肉의 분리 가능성과 개연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풀잎이 싱싱한 것은 엽록소의 생존을 뜻하며 잎이 말라 시드는 것은 엽록소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도 엽록소와 풀잎의 분리는 가능하다. 이처럼 생존은 정신의 보전을 의미하며, 사멸은 정신의 소멸을 뜻하므로 정신은 어떤 조건하에서도 인체로부터의 분리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가설은 성립될 수 없다. 정신현상의 생성과 소멸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해 본다면 정신과 물질의 분리가 가능하다는 견해에 대한 새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영매靈媒의 초혼招魂 능력을 시연試演하는 자리에 프랭클린의 유령이라 자칭하며 나타난 영괴靈怪는『정신은 적극적인 대원소大元素이고 물질은 소극적인 대원소』라고 설명했다. 적극적인 대원소는 동적動的 가치의 표현이며 소극적 대원소는 정적靜的 가치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물질이 에너지의 정적靜的 현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퀴리 부부에 의해 발견된 라듐 광선은 분자물리학의 이론적 근거를 일거에 뒤집어 버리고 모든 원소를 전자론電子論으로 설명하는 한편, 전자와 에너지를 에테르의 진동으로 이해하려 했다. 곧 에테르의 진동이 가치량價値量의 변화에 의해 전자와 에너지로 나누어지고, 전자의 가치량 변화에 의해 100여가지 원소로 분화되었다는 식의 이론을 정립했다.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대해 이 이론을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특정 원소의 가치량 이 변화해 정신과 에테르로 분화된 것이거나, 정신 요소의 가치량 변화가 에테르로 표현된 것이라는 이론이다. 아니면 에테르가 정신과 물질의 중간 단계, 혹은 그 중간의 다음 단계로 동적가치動的價値가 발달해 정신이라는 적극적 대원소가 되고, 정적가치靜的價値가 발달해 소극적 대원소인 원소와 물질이 되고 에테르로부터 분화되어 중간단계로 발달한 것은 에너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으로부터 분화되어 중간단계로 발달한 것은 정신적 에너지라 할 수 있으니 이 두 종류의 에너지를 중간성적 존재라 가정할 수 있다.
모든 물질은 공간법칙과 시간법칙, 중력법칙의 제약을 받지만 에너지는 공간법칙을 초월하고, 정신은 시간법칙과 중력법칙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정신으로부터 물질로, 물질로부터 정신으로 영향을 끼치는 모든 작용은 에너지와 정신적 에너지를 경유할 수밖에 없다. 즉 물질의 작용이 에너지를 통해 정신적 에너지에 충격을 주면 정신적 에너지는 미묘한 파동을 통해 정신에 그 영향을 전달하며, 정신의 작용은 정신적 에너지를 통해 에너지에 충격을 주고 에너지는 다시 물질에 그 영향을 전달하는 식이다. 가장 원시적 형태의 생명체인 단위세포도 체질요소와 에너지요소, 정신요소를 모두 갖출 때만 생존이 가능하다.
단일 난세포卵細胞도 수정을 하게 되면 체질요소와 에너지요소, 정신요소가 한꺼번에 질적 변화를 일으켜 자체분열에 의한 집단 번식체로 변해 진화와 발달의 도정에 오르게 되고, 분열과 번식을 거듭한 각각의 세포들도 모두 세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그 개체를 소속 집단으로부터 분리시키면 하나같이 생명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집단번식체란 단순한 수량적 집합이 아니라 각 세포가 보유한 체질요소, 에너지요소, 정신요소가 상호간에 특별한 연계작용을 하고, 이 작용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단계의 세포는 일종의 줄기세포로 집단체 안에서 기능하거나 혹은 분야별로 특화발달特化發達을 이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골격세포는 골격형성에 필요한 기능과 요소만 발달하고, 근육세포는 근육조성에 필요한 부분만, 장기세포, 감각세포, 생식세포, 신경세포 등이 각 방면으로 발달해 특수한 형질을 구성하고 엄밀한 질서 아래 계열적 체계를 조성해 총체적인 융합작용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체라 할 수 있다.
각 부문에 소속된 세포는 애초부터 그 성능과 형태에 부문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일한 형질과 속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속적인 생존과 번식이 가능한 환경조성에 필요한 조건에 알맞도록 조정과 진화를 거듭해 나름대로 특수한 성능과 효용을 지니게 된 것이다. 결국 단세포의 특화발달이란 세포가 지니고 있는 체질요소, 에너지요소, 정신요소가 각 부문의 필요에 따라 체질요소가 특별히 발달하거나, 에너지요소가 특수하게 발달하거나, 정신요소가 필요한 만큼 발달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요소의 분리는 단세포에서 특수세포로 분화발달 하는 단계에서부터 가능하다. 그렇다면 각 세포로부터 정신요소가 분리되는 것과 분리된 정신요소가 신경세포로 전이傳移 집중集中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추론하건데 각 세포 사이에 가해지는 에너지요소의 작용이 세포 내에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이 화학적 변화가 정신요소의 분리와 전이, 집중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각 세포로부터 분리되어 전이, 집중된 정신요소는 다시 정신적 에너지라는 특수한 에너지의 작용으로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통각중추統覺中樞를 통해 모든 감각, 지각, 오성, 감성, 이성을 통제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신현상의 생성 과정이다.
앞서 정신현상의 생성과정을 검토하는 와중에 정신요소의 분리 가능성을 확인했으므로 이제 정신현상의 소멸과정, 즉 죽음의 현상을 살펴볼까 한다. 고대인은 영혼의 이탈이 곧 죽음이라 인식했다. 반면에 현대인은 정신현상의 소멸을 죽음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정신현상의 소멸을 의미하는가? 이탈을 의미하는가? 정신요소가 분리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생명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요소의 작용이 멈추어야만 죽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정신현상이 소멸되거나, 이탈되는 것이 곧 우리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우리가 잠들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 현상이 마치 죽은 것과 비슷하지만 죽음과 다른 것은, 체내의 에너지 관련 작용이 지속되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가 흔히 식물인간植物人間이라 말하는 가사상태假死狀態도 정신작용이 멈춘 것은 죽음과 같지만, 에너지 관련 작용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이를 죽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체내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 관련 작용이 정신으로부터 육체로, 육체로부터 정신으로 중계 작용을 하다가 갑자기 그 작용이 끊기면 정신과 물질 사이의 관계도 단절되어 서로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게 되는 그 상태를 우리는 죽음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신체와의 교류가 끊긴 정신현상은 어떻게 되는가? 소멸되는 것인가? 이탈되는 것인가? 간혹 임종을 맞는 사람의 신체에서 일종의 기체가 나선형으로 증발되어 일정한 위치에 응결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기체의 증발이 완성되는 순간 당사자는 죽게 되고 응결되었던 기체 또한 사라지는데, 이 같은 현상이 심령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숨이 끊어진 시체를 해부하면 3∼4홉의 혈액이 남아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혈액은 보통 4∼5되에 달한다. 시체에 남은 혈액이 소량임을 근거로 죽음을 맞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기체의 증발과 응결현상을 혈액이 증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에너지 관련 작용의 중단으로 혈액과 신체에 깃들어 있던 여타의 정신요소가 이탈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사람의 신체로부터 분리된 정신은 어떻게 되는가? 일찍이 하륜河崙의 영靈이라 자칭한 영괴靈傀는 박엽朴燁의 질문에 답하기를『사람의 정신은 영체靈體로 응결되어 일정기간 존속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은 생전의 인격에 따라 다르며, 자신의 영체는 천 년간 존재할 수 있고 박엽의 영체는 3백 년간 머물 수 있으나 그 기간이 지나면 영체가 흩어져 소멸된다.』고 말했다는 설화說話가 전한다. 이 설화는 사람으로부터 분리된 정신이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사람으로부터 분리된 정신은 원래 그 응결 여부와 상관없이 흩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 영체로 응결되어 일정기간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목을 태우면 그 본체는 불타서 재로 남고 다른 구성체는 연기로 변해 대기 중에 흩어지지만, 저기압과 같은 특수조건으로 인해 일정기간 낮은 고도에 뭉쳐있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 간혹 기체의 응결체가 나타난다는 사례와, 심령 연구가들의 실험을 통해 등장한 유령幽靈들의 형상이 흐릿한 기체의 응결체인 것으로 미루어 인간의 정신요소 또한 신체와 분리된 이후에도 응결체로 존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인간의 정신요소가 어떤 특수한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영체로 응결되어 존속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성도成道에 대한 해설에서 필자는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정신통일을 이루고 나면 일종의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그 에너지는 물질이나 에테르로부터 분화된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부터 발생하는 특수에너지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특수에너지의 작용에 의해 인간의 정신요소가 신체로부터 분리되며, 응결 또는 결정結晶되어 영체靈體로 일정기간 존속하는데 이것이 바로 유령幽靈이다. 증산甑山은 이 유령을 특히 신명神明이라 이름 했다. 이렇게 응결 또는 결정된 영체의 존속 기간은 특수에너지가 작용한 강도에 따라 달라지고, 그 에너지 작용은 원력작용寃力作用과 원력작용願力作用, 연력작용鍊力作用으로 구분된다. 원력작용寃力作用은 사람이 살아생전에 당한 억울함과 한恨을 풀지 못하고 죽었을 때 그 원한寃恨의 감정이 맺힌 정신이 에너지적 응결 또는 결정結晶을 이룬 채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일정기간 존속하면서 현실세계에 여러 가지 해害를 끼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런 영체靈體를 원귀寃鬼, 악귀惡鬼, 여귀厲鬼라 부른다. 원력작용願力作用은 역시 살아생전에 지녔던 큰 바램과 소망, 곧 그 원망願望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을 때 그 지극한 바램과 소망에 대한 열정과 정신 에너지가 응결, 결정되어 신체에서 분리된 뒤에도 일정기간 존속하며 운기충격작용運機衝擊作用을 일으키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런 영체靈體를 명신明神이라 한다. 연력작용鍊力作用은 높은 수준의 수련修鍊을 통해 정신이 통일되고 궁극의 광명光明과 정신 에너지가 응결, 결정結晶을 이루는 것을 뜻하며 이렇게 형성된 정신체精神體는 신체로부터의 분리와 다른 신체로의 전이傳移가 자유로우며 초자연적인 힘의 운용이 가능한 고급의 영체靈體이다.
왕수인王守仁이 그가 태어나기 50년 전에 입적入寂한 고승高僧의 영체靈體가 이식移植 환생還生한 것이라는 이야기와, 김성근金聲根 또한 30년 전에 열반에 든 수도승修道僧 해봉海峯의 영체가 이식 환생한 경우라는 이야기들이 연력鍊力에 의해 결정結晶된 영체가 다른 신체로 자유롭게 전이傳移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몸과 마음을 닦은 수도자修道者들의 경우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건강하게 지내다가 자기 손으로 임종 준비를 마치고 고요히 아무 고통 없이 번데기가 허물을 벗듯 신체로부터 벗어나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듯 죽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화장火葬할 때 빛 무리가 출현해 수십일 동안 흩어지지 않고 산과 골짜기를 비추는 경우도 허다하며, 타고난 잿더미 안에서 사리舍利라는 맑은 구슬이 발견되는데 그 구슬에는 수도승 생전의 모습이 찍혀있다 한다. 이는 수도승이 살아 있을 때 이미 연력적鍊力的 결정結晶을 이룬 증거라 해 불가佛家에서는 매우 귀중하게 여긴다.
정신이 연력적鍊力的 대결정大結晶을 이룬 사람은 평상시에도 그 증험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송宋나라의 승僧 도제道濟는 언제나 머리 위에 맑은 빛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자리했다는 기록이 그의 전기傳記에 전하며, 증산甑山도 출행할 때는 그의 머리 위에, 집에 있을 때는 지붕 위에 항상 맑은 빛의 기둥이 서렸으며 비가 오더라도 구름과 안개가 그 빛을 가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를 따르던 이들이 입을 모아 증언하고 있다. 이상의 여러 예로 미루어 연력작용鍊力作用으로 결정結晶된 영체靈體는 문명신文明神이 되어 세계 문화의 운수運數를 다스리는 작용을 하거나 유수한 종교들이 수시로 발현하는 신비한 종교력宗敎力의 중심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증산甑山이 행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기본내용인 통일신단統一神團의 결성結成 과정과 통일신단을 결성하기 위해 이루어진 신정정리神政整理의 자세한 내용을 알아야 한다.
신정정리神政整理는 다음 4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제1 내용은『모든 신명神明의 해원解寃』이다. 그러면 해원解寃이란 무엇인가? 원력작용寃力作用으로 응결된 정신체를 원귀寃鬼라 하는데 이 원귀가 작게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을 내리고, 크게는 나라와 사회를 어지럽히기도 하니 예로부터 무도巫道에서는『푸닥거리』를 통해 원귀의 해악害惡을 물리치고자 했다. 푸닥거리란 맑고 고운 노래로 그 원한願恨을 위로하며, 유려한 춤으로 원귀寃鬼를 달래 그 재앙을 그치게 하려는 행위다. 해원解寃은 푸닥거리로부터 비롯되었다 할 수 있으나 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있다. 증산甑山은 가없이 큰 연력鍊力으로 원력적寃力的 응결에 작용해 그 원한寃恨을 풀고, 화합과 기쁜 기운으로 보은報恩 줄에 결정結晶되게하는 한편, 자신의 대연력大鍊力을 중심으로 세계의 운수運數를 다스리는 에너지 작용체가 되게 했으니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좋지 않은 모든 신神을 해원解寃시켜 인간들의 복福과 부귀富貴를 주재하는 큰 권한을 맡긴다는 것이 신명해원공사神明解寃公事의 핵심이다.
신정정리神政整理의 제2 내용은 세계 지방신地方神의 통일이다. 이제까지의 추상적인 주재신을 부정하고, 과거의 신명계가 인간 세상의 각 지역을 나누어 차지한 채 굳게 지키며 다툼과 싸움을 일삼았던 잘못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과거의 지방신地方神은 그 종족의 시원추장始原酋長의 영체를 중심으로 해당 지방과 부족의 번영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영체靈體가 모여 그 지역의 발전과 운수運數를 맡아 다스리던 특수한 신단神團이었다. 그 지방신단 끼리는 서로의 경계를 넘어 교통하지 않은 까닭에 인간세상 또한 각 지방 마다의 편견과 종족 나름의 아집이 팽배해 분쟁과 살생이 만연했다.
지방과 종족에 따라 각기 주재신主在神으로 숭상받던 지방신地方神은 기실 그 지방신단의 중심 영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이 숭앙하는 주재신은 한민족韓民族의 시조 환인桓因의 영체이며, 중국인이 숭앙하는 주재신은 그 민족의 시조인 반고씨盤古氏의 영체이고, 유태인이 숭앙하는 여호와 역시 그 민족의 시조를 신격화한 것에 불과하며, 일본인이 숭앙하는 주재신 또한 그 민족의 시조 아마데라스오미까미의 영체다. 이런 지방신단이 각 지역을 나누어 차지한 채 각자 자신이 맡은 지역을 굳게 지킬 뿐 서로의 경계를 넘어 교통하는 일이 없다가, 인간세상이 최근 수백 년 이래 지역과 종족 간의 장벽을 헐어버리고 각 지방의 문화와 물자가 오가며 교류하게 됨에 따라 신명계神明界 또한 닫혔던 장벽이 철거되어 각 지방신이 서로 넘나들게 되자 이전의 규범과 질서가 무너지고 그를 대신할 새로운 준거를 마련하지 못해 큰 혼란이 초래되었다. 지방신단의 혼란을 수습하지 않고서는 인간 세상의 혼란도 그치지 않을 것이므로 증산甑山은 전 세계의 지방신단을 소집해 자신이 보유한 대연력大鍊力을 발휘해서 통일된 하나의 신단神團을 결성하니 그가 말한 구천九天이란 바로 지방신단의 통일된 집결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정정리神政整理의 제3 내용은 문명신文明神의 통일이다. 신명계神明界에는 지방신단 외에도 문명신으로 이루어진 특수한 신단이 있으니 각 종교마다 구성된 종교 신단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모든 종교는 그 종교 창시자의 연력적鍊力的 결정結晶인 영체靈體를 중심으로 그 종교의 발전에 공헌한 신자信者들의 영체가 집결, 신단身團을 구성해 해당 종교를 지탱하는 종교력의 근본적인 힘이 되었다. 곧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영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특수신단이 있어 그들이 있는 곳을 천당이라 부르며, 불교에는 석가모니의 영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신단이 자리한 곳을 아미타불의 극락정토極樂靜土라 이른다. 석가모니는 아미타불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말했지만 이는 사실 자신의 영체靈體를 관념적으로 다르게 이름 한 것이다. 종교 신단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에너지적 연관 작용이 약해지면서 특유의 종교력 역시 고갈되고 신도神徒들의 믿음과 원력願力이 사라져 소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큰 연력작용鍊力作用이 일어나게 되면 그 종교 신단에 에너지의 강화작용과 연관작용이 이루어져 종교력의 약화라는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칼빈과 루터의 영체는 기독교 신단에 강화작용을 했으며, 정·주程·朱의 영체는 유교 신단에 강화작용을 했고, 장도릉長道陵의 영체는 도교 신단에 강화작용을 했다. 증산甑山은 이러한 각 종교 신단과 여타의 대소 문명신단을 모아 자신의 큰 연력鍊力을 발휘해 통일된 문명신단을 출범시켰다. 이렇게 전 세계의 지방신단과 문명신단, 원신寃神과 역신逆神을 해원解寃해 증산甑山 자신의 영체靈體를 중심으로 신단을 만드니 이것이 바로 통일신단統一神團이다.
신정정리神政整理의 제4 내용은 대지大地와 강산江山의 기령氣靈을 한데 모아 통일하는 일이다. 대지와 강산의 기령이란 대지의 모든 물질에 깃든 내적 에너지와 연관된 것을 뜻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신으로부터 물질로, 물질로부터 정신으로 전해지는 기제영향관계機制影響關係는 바로 에너지 작용의 중계에 의한 것이므로 통일신단을 결성하려는 의도와 대지, 즉 인간 세상과의 사이에 기제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대지의 기령으로 그 중계적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산의 곳곳에 결정結晶으로 모여 있는 기령을 추출해 자신의 연력鍊力을 중심으로 첫째, 신단과 대지 사이에 기제영향관계를 설정하고 중계하는 중심 동력으로 삼고 둘째, 모든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온 세상의 기령을 균등하게 발동시켜 전 세계의 구성원이 한 가족이 되는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증산甑山은 지금껏 대지 강산의 기령이 균일하게 발현되지 않고 강산의 요소요소에 저마다의 결정으로 모여 아무런 계열과 통제가 없이 각양각색으로 발동되어 대지 곳곳에 무수한 일들이 저대로 발생해 온갖 분란을 일으키므로 그 갖가지 기령을 통일해야만 인간세상의 고질적인 분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었기에 대지와 강산의 기령을 한데 모아 통일한 것이다.
이렇게 통일신단을 결성하고 대지와 강산의 기령을 모아 인간세상과의 사이에 기제연쇄관계機制連鎖關計를 설정해 온 세계가 함께 나아가는 운수運數를 다스리고 교화敎化를 맡도록 하는 동시에 새로운 교단敎團을 건설해 여러 신도信徒들이 돌아가 의탁할 곳을 마련했다.
2. 도 수 度 數
증산甑山은 천지공사를 행할 때 늘 도수度數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는 천지공사를 마친 뒤 제자들에게『이제 내가 천지天地 운수의 흐름을 뜯어 고쳐 물샐 틈 없이 짜놓았으니 제 도수度數에 닿는 대로 돌아 앞으로는 새로운 기틀이 열리리라』고 말했다. 이때의 도수란 문서, 절차, 프로그램이라는 의미로, 통합신단을 통해 취합된 신명神明들의 모든 힘을 기울여 세상의 낡은 질서를 혁파하고 새로운 질서의 생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확정하고, 그 내용과 순서에 따라 세계정세의 변혁을 주도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기존 교단敎團들에 남아있는 종교적 에너지를 한데 모아 자신의 새 이상에 따라 생성될 새로운 교단이 갖출 종교적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고, 새 교단에 적용될 세운도수世運度數에 따라 적절한 변화를 이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증산甑山은 세계 질서와 사회 양상, 생활형식과 새로운 교단의 생성노선生成路線의 매 단계를『도수度數』라는 말로 표현했으며, 그 도수에 맞춰 새롭게 전개되는 현상을『새 기틀』이라 했다.
3. 세운공사 世運公事
증산甑山은 1901년(단기4234년) 신축 7월부터 천지공사를 행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세계정세는 유럽으로부터 시작된 제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로 동아시아 전 지역이 유럽 열강의 침탈에 속속 유린당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정복하고, 러시아는 만주를 점령한 다음 조선의 의주 용암포를 점거해 장차 조선 전역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독일은 교주만膠州灣 을 조차하고, 영국은 조선의 거문도巨文島를 강점한 후 다시 위해위威海衛를 점령함으로써, 중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이 열강列强의 식민지로 전락할 위험에 빠졌다. 바로 이 시점에 증산甑山은 자신의 종교적 이상을 구현할 적임지인 동아시아, 특히 한국을 제국주의의 침탈로부터 구해야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천지공사를 행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작금의 세계정세는 동양이 둥둥 떠서 서양으로 떠내려가니 만일 이 때에 서양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유린당하게 되리라』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절대 왕정의 폭정에 시달려온 중국과 한국은 서양 세력의 구축이라는 큰일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그들 스스로 힘을 길러 그 일을 처리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모자랐다. 이에 증산甑山은 통일신단의 결정으로 당시 개혁과 쇄신을 통해 한창 국력을 신장시키던 일본을 천지의 일꾼으로 발탁해 동양을 보위할 책임을 맡겼다.『이제 아라사와 일본의 전쟁을 일으키고 일본을 도와 아라사의 세력을 구축하리라』『일본이 천지의 일꾼이 되어 조선에 와서 남의 집을 사는데, 부지런히 일하고도 필경에는 품삯도 받지 못하고 빈주먹으로 돌아가리라.』『이제 49일 간 동남풍을 불게 하리니 이로써 아라사의 기세가 수그러들 것이니라』같은 말들로 그가 행한 세운공사의 제1 단계 행사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가 동양의 소국 일본에 패퇴한 러·일 전쟁의 결과로 동아시아의 형세가 변해 유럽 열강의 동아시아 침략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이에 증산甑山은 조선의 지방신을 서양으로 보내 그들 사이에 내분을 촉발시켜 유럽 일원에 큰 전쟁을 일으켰다.『지금 이곳의 신명들이 서양에 가서 큰 전쟁을 일으킬 것이니 이제부터 이곳은 외인들이 주인 없는 빈 집 드나들듯 하리라. 그러나 그 신명들이 제 할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면 자기 집의 일은 모두 자기가 주관하리라.』
이즈음 영국은 이집트, 인도, 버마, 몰타에서, 프랑스는 알제리, 튀니지, 베트남에서, 이태리는 트리폴리 등에서 식민지 원주민과 빚어진 갈등과, 자국 내에 노정된 사상, 경제, 노동 문제로 정치 사회적인 불안이 고조된 가운데 제 1차 세계대전을 치르느라 국력이 소진되어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침략 정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것이 세운공사의 제 2단계 행사다. 그 사이에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어 조선의 전 민중이 그들의 가혹한 식민통치에 고통을 받게 되자 증산甑山은 다시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시켜 그 결과 일본의 패망으로 한국이 광복을 이루게 했다.『이 시국은 일·청 전쟁으로 끝막으리라. 일·청이 먼저 싸우다가 중간에 서양인이 두 파로 나뉘어 한 파는 청국을 후원하고, 다른 한 파는 일본을 지원하리니, 그 끝에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회복되라라.』『오선위기五仙圍基』『세월여유검극중, 왕겁만재십년호勢月汝遊劍戟中, 往劫忘十年乎』라는 시구詩句와『한漢나라 고조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 하나, 우리는 앉아서 천하를 얻으리라』는 말이 모두 세운공사의 제3 단계 행사가 어떠한지 시사하는 내용이다.
세운공사는 이렇게 러·일 전쟁과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동아시아를 유럽의 침탈에서 구하고, 중·일 전쟁으로 조선을 일본의 속박에서 구하는 내용이다. 증산甑山은 이 세 전쟁을 앞으로 다가온 대겁액大劫厄에 연계함으로써 선천先天의 낡은 세상에 적용되던 운수運數를 한꺼번에 쓸어내고 후천後天의 새로운 세상의 운수運數가 열리도록 하기 위해 한국을 세계대운世界大運의 발상 기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4. 교운공사 敎運公事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통일신단에서 세운공사로 세계정세의 추이와 단계에 따라 도수度數를 세우는 한편 증산甑山의 이상과 교의에 입각한 후천의 새로운 지도권위가 될 운수運數인 새 종교의 배태, 생성과 관련한 도수를 정했으니 이것이 바로 교운공사敎運公事다.
증산甑山은『먼저 난법亂法을 낸 뒤에 진법眞法을 내리라』하고 27년에 걸친 난법도수亂法度數를 정하는 것으로 교운공사의 제1 단계를 행했다. 1909년 기유 4월에 전주 용머리 고개 김 주보金周甫의 집에서 공사公事를 행할 때 종이 3장의 네 귀퉁이에『천곡泉谷』두 자字를 쓰고, 또『27 년 二十七年』이라고 쓴 뒤 제자 두 사람으로 하여금 그 종이의 네 귀를 마주 들게 하고『그 모양이 상여의 호방산과 같다』고 말한 후 불태웠다. 제자들이 그 연유를 묻자『일찍이 천곡泉谷이란 사람이 고을의 수령으로 봉직하던 중 임기를 다하기 전에 죽었는데, 금후로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며, 홍 성문洪成文이란 술사術士가 순창 회문산에서 27년 간 헛공부를 했다 하는데 지금부터 27년간 헛된 도수度數가 있으리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27년에 걸친 난법도수를 정한 공사로 1909년 기유 4월부터 1936년 병자 3월까지 이어지는 난법亂法 기간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일제에 의해 보천교주普天敎主 차경석車京石이 추포追捕되고 교도敎徒들 또한 2인 이상 모이는 집회가 금지되는 탄압을 받는다. 이후 증산甑山이 문 공신文公信의 집에서 공사公事를 행하면서『오늘 큰 공사公事가 있으니 각기 생각나는 대로 부인 1명 당 점點을 한 개씩 찍으라』하니 신 경수申京守는 2개, 황 응종黃應種은 3개, 안 내성安乃成은 8개, 차 경석車京石은 12개, 문 공신文公信은 1개를 찍었다. 증산甑山이 경수와 응종에게『칠십 늙은이가 한 명의 부인도 감당하기 어렵겠거늘 어찌 두 명 세 명을 거느리려 하느뇨?』하고 물었다. 경수는『후천에는 늙은이가 다시 젊어진다 하오니 옛 부터 왼쪽에 부인 오른쪽에 첩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두 명의 부인을 원하나이다』하고 응종은『천·지·인天地人 3재三才로 세 명의 부인을 원합니다』답하니 증산甑山이『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일렀다. 내성은『육관대사六關大師의 제자 성진性眞이 여덟 선녀를 데리고 희롱한다 하였는데 후천은 신선의 세계라 신선이 되고 나면 여덟 선녀를 거느리는 것이 옳은 줄 아옵니다.』하니『네 말도 일리가 있도다』하고 경석에게 묻기를『그대는 어찌 12명의 아내를 원하느뇨?』하고 물었다. 경석이『열 두 나라에 한 명 씩의 아내를 두고 하루에 한 나라씩 돌아다니면 남아의 행락이 극치일 줄 아나이다』하니 그 또한『네 말도 일리가 있다』하였다. 이어 공신에게『칠십 늙은이도 2, 3명의 부인을 원하거늘 그대는 약관의 젊은이로 어찌 한 명의 부인만을 원하는가?』하고 물었다. 공신이『하나의 음陰과 하나의 양陽을 일러 도道라 하였으니 올바른 음과 양이 공도公道이며, 어지러운 음과 양은 옳지 못한 줄로 압니다』하니 『네 말이 옳도다』하고 공신에게『오늘 공사는 잘 보았으니 점심과 술과 안주를 잘 차려 모든 사람들을 대접해서 돌려보내라』했다. 공신이 그 말대로 술과 음식을 넉넉하게 차려 그 자리에 있던 종도들을 대접해 돌려보내고 난 뒤 증산甑山이 공신, 경수, 응종에게『오늘 공사公事는 다름이 아니라 갑오년에 아무런 죄 없이 참살된 동학 신도가 수십만에 달하니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떠돌 것인데 이를 해원解寃시켜주지 않으면 후천後天에 반역反逆이 줄을 잇고, 온갖 재앙이 생길 것이므로 이제 동학도東學徒의 원혼寃魂을 해원할 도수度數를 경석에게 붙였으니, 춘치자명春雉自鳴이라는 말을 새겨보라.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내할 것이니 두고 보라. 사람들과 돈의 움직임이 갑오년의 몇 배에 달할 것이며, 경석은 제왕만큼 먹고 지내리라』하고 말했다. 결국 증산甑山이 난법도수를 먼저 정한 것은 갑오년 동학혁명으로 생긴 원귀愿鬼들을 해원解寃시켜 모든 반역과 재앙의 근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난법도수를 정하고는『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와 같다 하고 비자, 주자, 복자, 기자, 우종, 우횡飛者走者伏者起者于從于橫이라 한 것은 27년 간 크고 작은 수많은 집단들이 분립해 증산甑山 자신의 뜻이나 교의敎義와 상관없이 수많은 양태로 세상을 어지럽힐 것을 분명하게 예언한 것이다.
이 난법도수 가운데 후일 진법운동眞法運動이 배태될 도수道數를 정한 것이 교운 공사의 제 2 단계인데 서경書經의 서문序文, 대학大學의 1장章 아래 부분을 많이 읽으라 한 것과 1928년 무진 동지에 새로운 교단敎團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과, 의통醫統을 전傳하라 한 것이 모두 자신의 이상理想과 교의敎義를 천명할 토대를 확립하고 다가올 대겁액大劫厄을 극복하고 모면할 도수度數를 정한 것이다.
난법도수를 거두고 10년 간 재앙이 몰려 있는 시기를 정해 세계 운수의 10년 병화兵禍와 표리表裏의 관계로 병행하게 한 것이 교운공사의 제3 단계이니『세월여유검극중, 왕겁망재십년호勢月汝遊劍戟中, 往劫忘在十年乎』라는 시詩로 표현한 것과 같이 1936년 병자에 일제의 대 탄압이 시작되어 1937년 정축에 중·일 전쟁이 일어나 10년 간 병화가 계속되는 동안 교단에 대한 탄압도 마찬가지로 계속될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증산甑山은 이 같은 어려움과 고통을 참고 견디면 자신이 전수한 의통醫統으로 다가올 대겁액大劫厄을 극복하고 그 때 비로소 진법도수眞法度數가 펼쳐지도록 정했으니 이것이 바로 교운공사敎運公事의 제4 단계이다.
제 6 장 도 덕 관 道 德 觀
1. 도덕道德의 원리
기성종교가 맡은바 도덕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를 교화敎化해 오는 동안 그 수행규범이 사회의 주된 관습으로 자리 잡고 고유의 이상理想 또한 보편화되었다. 기성종교는 도덕道德의 기원을 신神의 계시啓示에서 구求하기도 하고 인성人性의 본질에서 구하기도 했는데,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전자前者에 속하고 불교, 도교, 유교 등이 후자後者에 속한다. 이런 이유로 종교는 곧 도덕, 도덕 곧 종교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중세의 문예부흥기에 이르러 도덕道德 역시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점차 종교 본연의 영역에서 일탈하기 시작해 갖가지 주장과 학설이 제기되었으니, 어떤 이는 인간의 사회적 본능과 이성理性에서 도덕의 기원을 찾기도 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과 행복을 지향하는 성향에서 비롯한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크로포트킨 P.A.Kropotkin은 진화론에 의거해 인간이 동물들의 상호부조적相互扶助的인 집단생활로부터 생활방식을 배워온 까닭에 같은 무리의 다른 개체에 대한 배려와 동정심을 지니게 되었고 이 동정심을 기본요소로 해 상호부조의 습성과 정의감正義感이 발생하고, 정의감이 다시 도덕관道德觀으로 발달했다는 이론을 세웠으나 자신이 주창한 학설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여러 가지 이론과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도덕적 감성은 그 생식성生植性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시 남·녀 양성兩性은 서로 호감好感을 얻기 위한 노력을 통해 상대와 맺어지게 되는데, 이 호감을 얻으려는 노력으로부터 상대방에 대한 은의감恩誼感이 발생하고, 이 은의감이 도덕적 감성의 기본요소가 되고, 또한 정의情誼로 진전되어 부부생활이 성립되고, 이 정의情誼가 다시 부자, 형제와 자매, 친구 사이로 연장되고, 다른 인간관계로 까지 확대되어 씨족을 결성했다. 집단적 정의情誼는 다시 주관主觀과 객관客觀 두 방향으로 분화했는데, 주관적으로는 의무감, 객관적으로는 타인을 배려하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발전했다. 인간의 집단생활이 더욱 진화 발달함에 따라 의무감은 정의감으로, 남을 배려하고 동정하는 마음은 같은 무리의 구성원 모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정의감은 자유와 평등의 사상으로, 남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희생봉공犧牲奉公의 정신으로 발달했고, 이것이 도덕적 감성이 태동해서 발전해온 모든 과정이다. 자유와 평등, 희생봉공의 정신이 도덕적 감성의 본질을 이루는 까닭에 도덕道德이야말로 인간이 영위하는 무리생활의 근간인 협동정신의 기본원리와 진화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무리생활이 씨족 집단에 국한되었던 시기에는 정의情誼가 도덕적 감성의 본질이었으나 대 부족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의무감과 동정심이, 중앙집권제 국가가 출현한 뒤에는 자유, 평등과 희생봉공의 정신이 도덕성의 본질로 변한 것은 사회가 진화하는 각 단계마다 그에 적합한 규범과 질서를 선택해온 까닭이다.
세간에는 종교가 도덕성의 제고를 저해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도덕은 대체로 전통과 인습에 충실하고 관례와 풍속을 존중하므로 새로운 이상理想을 수립하는 일에는 반드시 기존종교의 중계적 계시를 통해 그 적합성 여부를 확인한 이후에야 종래의 도덕적 기준을 수정하는 새 준거를 마련한다. 씨족 시대의 의례적 종교는 정의情誼 자체가 도덕적 감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부족 시대의 무격巫格 종교는 의무감과 동정심이 도덕성을, 봉건시대의 정치적 종교는 정의감과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도덕적 요소를, 중앙집권 국가 시대의 도덕적 종교는 자유, 평등, 희생봉공의 도덕적 감성을 새로운 중계적 계시의 보조이념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도덕道德을 보수적 도덕이라 하고, 종교적인 도덕을 발전적 도덕道德이라 한다. 이렇게 도덕적 요소는 집단 형식의 변화와 종교 형식의 변동에 따라 그 개념과 내용이 끊임없이 발전적으로 변해왔다. 그러나 그 어떤 변화도 도덕道德의 근본에 이르지는 못했다.
작금에 이르러 인류는 종족적인 분화작용시대로부터 혼융통합시대混融統合時代로 접어들었다. 독립적인 중앙집권제 국가가 분권형 세계연방국가로의 발전적 변화를 지향하기 시작했고, 종교 또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중계적 계시를 통해 새로운 종교를 생성하려 하므로 도덕관道德觀 또한 그 질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공간적 양면성兩面性, 즉 개성個性과 협동성協同性은『특수特殊와 보편普遍』의 관계이므로 협동성에서 분화, 특수화한 개성個性은 개성적 발전과정이고, 분화와 특수화를 통해 발전한 개성에서 종합화, 보편화한 협동성은 협동적 발전과정이다. 이 양 과정의 끊임없는 나선적螺旋的인 추동력推動力은 융합생명과 개체생명의 조화와 발전을 이루는 것이므로, 개성적 과정은 도덕성의 주관적 발전과정이며, 협동적 과정은 객관적인 발전과정이다. 그러므로 도덕은 개성적 모순을 타당화한 협동생활의 기본 원리가 되는 것이다. 또 생명의 시간적 양면성兩面性, 즉 현실現實과 이상理想은『불완전不完全과 완전完全』의 관계로 이상理想을 구상화具象化하고 실천화實踐化한 현실적 발전과정이며, 구상화와 실천화를 통해 발전한 현실로부터 추상화推象化, 개념화槪念化한 이상적 발전과정이다. 이 두 과정이 끊임없이 교차 반복되는 나선적螺旋的인 추동력推動力에 의해 현실과 이상은 조정과 창조를 거듭하며 신진대사를 거듭하므로, 그 변화의 현실적인 과정은 도덕성의 주관적인 발달과정이며, 이상적인 과정은 그 객관적인 발달과정이다. 그러므로 도덕道德은 현실적 목적을 합목적화合目的化하는 협동생활의 진화조건이 되는 것이다.
크로포트킨Kropotkin은 도덕성의 주관적 측면, 즉 개성면個性面과 현실면現實面을 법률적인 문제라고 규정해 자신의 주장과 학설로부터 제외하고 객관적 측면, 즉 협동면協同面과 이상면理想面 만을 진정한 도덕 문제로 취급했다. 그러나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은 곧 인간 내면의 대아大我와 소아小我의 관계와 같다. 생명은 정태적靜態的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動態的이며, 보수적保守的인 것이 아니라 진보적進步的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항시 대아적大我的 발전을 위해 자기 안에 누적된 모순을 찾아내 분화, 특수화 하고 추상화, 개념화해서 새로운 대아大我를 창조한다. 도덕적 감성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발달하는 까닭에 도덕道德의 근본을 밝히는 일도 같은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로 인해 증산甑山은『해원解愿』과『상생相生』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도덕적 관념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내용을 바꾸고 그 외연을 확장하는 것으로 질적質的 향상과 양적量的 확대를 이루어 기존의 도덕관道德觀이 지니고 있는 지역적 한계와 종족적 편견을 초극超極한 대협동원리大協同原理를 창출, 온전한 도덕道德의 근본을 밝혔다. 증산甑山이 말한『해원解寃』은 의무감, 정의감, 자유, 평등과 같은 주관적, 개성적, 현실적 요소가 발전한 종합개념으로 온전한 도덕道德의 소극적 측면이고,『상생相生』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희생봉공과 같은 객관적, 협동적, 이상적인 요소가 발전한 종합개념으로 도덕道德의 적극적 측면이다. 결국『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이야 말로 도덕道德의 근본과 본질을 새롭게 구성한 기제라 할 수 있다.
2. 개성적 도덕 個性的道德
봉건시대 말기에 정치적 종교가 타락하고 특권계층이 발호해 사회 모든 부문의 질서가 문란해지고 풍속이 악화되자 민중의 생활은 도탄에 빠져 그 생존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이때 도덕적 종교가 출현해 덕성德性의 함양과 양심良心의 계발을 강조하거나, 절대자인 신神의 뜻임을 빌어 개인의 수행修行을 강요하고, 출가고행出家苦行을 권하기도 하며 일상생활에서 신神의 뜻에 부합하는 실천궁행實踐躬行을 강권했다. 도덕적 종교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의 모든 죄악은 일상에서의 생활 질서나 사회양상과 연관된 대체계大體係로 이 대체계를 인간의 노력으로 해소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개인이 끝없는 수행修行을 통해 스스로의 성정을 선善하게 정화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가르쳤다. 각 개인의 노력으로 선善하게 정화된 개성의 총화를 통해 죄악의 대체계를 해소하고 최고선最高善을 지향한다는 점에도 모든 도덕적 종교들이 동의 했다. 기독교의 십계十戒와 산상교훈山上敎訓을 중심으로 한 모든 가르침과,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를 중심으로 한 모든 교훈,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비롯한 모든 교훈, 도교의 삼보三寶를 중심으로한 교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개성個性의 선도善導를 위한 정언적명령定言的命令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종교에 의해 수립되어 수천 년간 발전해온 도덕관념을 개성적 도덕이라 한다.
그러나 개성도덕은 실천단계에서부터 계급 우선주의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유교의 도덕道德은 애초부터 계급 윤리의 토대 위에 건설되었던 까닭에, 바로 이 지점에서 개성도덕은 심각한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반면에 원시불교와 도교는 개인의 은둔 수행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극단적인 염세주의와 개인주의를 고양해 사회생활의 기본원리인 협동정신을 실종시키고, 기독교와 유교는 수행의 목표를 사회 그 내부에 설정함으로써 지나치게 세속화 되었다. 결국 유교와 기독교의 도덕은 지배계급의 특권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용되고, 도교와 원시불교의 도덕은 사회생활로부터 유리遊離되어 오히려 인류의 발전에 장애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등 각 종교 창시자들의 숭고한 이상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밖에도 개성도덕은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경제활동을 경멸하고 청빈淸貧한 삶을 예찬하니 사회가 번영할수록 그 기능이 약화되었다. 기독교의 경우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회·정치적 현실에 깊이 개입하다가 제국주의의 침략을 정당화 하는 수단과 도구로 이용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개성도덕이 스스로 초래한 제반 모순은 모든 종교 창시자들의 이상을 왜곡했을 뿐 아니라 유물론자들에게 논리적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결국 개성도덕은 도덕道德의 근본과 본질인 협동면協同面과 이상면理想面을 배제한 채 개성적 측면과 현실적 측면만을 강조한 결과 협동원리라는 도덕道德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다시 말해 개성도덕은 인생의 삼각면三角面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발전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개성個性이라는 어둡고 깊은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질적 비약을 이루지 않고서는 현대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없을 것이다.
3, 협동도덕 協同道德
도덕道德이 기존 종교의 보조이념으로 쓰이면서 객관적 측면은 무시하고 주관적 측면만 강조된 개성도덕으로 발달하는 와중에 종족적 전통과 지역적 특성, 종파적 편견에 사로잡혀 도덕 본래의 취지와 의미를 잃어버린 채 독선적으로 준용되어왔다. 이제 새로운 이상理想의 수립을 위한 새 종교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도덕요소 또한 개성個性이라는 이름 아래 용인되어온 전통, 편협, 편견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대전협동大全協同이라는 새로운 도덕관道德觀을 정립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협동도덕이라 이름하려 한다.
협동도덕은 특수에서 보편으로,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나아가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선택함으로써 신세계新世界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이므로, 이야말로 참된 도덕道德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참 도덕의 적극적 측면은 이타감정利他感情이며, 소극적 측면은 자기를 버리는 감정이다. 이 두 감정의 강화를 통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삼각면에 참신하고 강력한 동력을 균일하게 공급할 때 비로소 인류 공통의 이상理想인 전일체계全一體系가 완성될 것이다.
앞선 글에서 인생의 삼각면三角面인 지知, 정情, 의意 또는 도덕, 정치, 경제의 균일한 발전을 강조했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삼각면의 어느 한 면을 제외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우리의 지적知的 본능이 삼각면 전체를 포괄해 균일한 합리화를 요구하는 것과 같이, 정적情的 본능 또한 삼각면 모두를 포괄해 균일하게 선善해지기를 요구하며, 의적意的 본능 역시 삼각면 전체를 포괄해 균일하게 고아高雅해지기를 요구한다. 지知·정情·의意의 삼각면이 상호간의 밀접한 관계로부터 일탈해 홀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도덕, 정치, 경제의 삼각면 또한 상호 관련성 아래서만 균일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만일 어느 한 면이 주어진 궤도를 벗어나 혼자 앞서 나간다면 이는 일종의 포화작용으로, 이로 인해 모든 사회적 관계도 균형을 잃어 비상한 위기와 맞닥뜨리게 되고 마침내 대변국大變局이 전개되어 사회와 인류 전체에 크나 큰 재앙을 안겨주게 된다. 그러나 지·정·의 삼각면이 균일한 정상궤도를 회복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인류의 삶도 정상화된다.
무릇 도덕은 협동생활의 기본원리라는 정의定義로부터 출발한다. 이 기본원리를 벗어나서는 도덕의 정의가 수립될 수 없으며, 도덕을 떠나서는 인간도 타인과 함께 공존할 수 없다. 그동안 개성도덕이 노정해온 여러 가지 현실적인 모순은 도덕의 필수 요건인 협동성을 간과한 데서 기인한다.
협동도덕은 정치, 경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 발전시킴으로써 개성도덕이 수천 년간 누적시켜온 모든 모순을 해소하고 지선至善의 본질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정치는 도덕에 정언적定言的 권위를 부여하고, 경제는 도덕에 실천역량을 공급하며, 다시 도덕은 정치에 도의道義의 토대를 마련해 주고, 경제에 공통 복리의 타당성을 부여해야만 도덕, 정치, 경제의 삼각면을 이제까지의 모든 모순과 오류로부터 구제해 인류 공동의 목표를 향해 균형적인 발달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그 진화 과정과 사회 전반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4. 협동도덕의 명법命法
도덕관념은 명법命法의 타당성에 의해 성립된다.『당위』의 명령주체가 확립되지 않으면 도덕은 일체의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 예로부터 절대 신神이 명령주체였던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도덕이 신神의 명령으로 현현現顯 되었던 것이나, 유교에서는 인성人性의 본체가 명령주체로 되어있지만 그 인성은 곧 하늘이 명命한 것이므로 역시 신神과 버금가는 존재를 명령주체로 규정해 도덕에 무상의 권위를 부여했으며, 도교에서는 우주의 자연 질서가 명령주체로 되어있고, 불교에서는 불성佛性, 즉 인간의 선善한 본성이 명령주체이므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명법命法에는 절대적 명법과 상대적 명법의 두 가지가 있다. 절대적 명법은 절대의무를 요구하는 정언적명령鄭言的命令이며, 상대적 명법은 보수를 약속하는 가언적명령假言的命令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정언적 명령 이외에 천당과 지옥이라는 선악에 따른 상벌로 가언적 명령을 설정해 도덕의 권위를 강화했다. 불교에서도 불성귀의佛成歸依라는 정언적 명령 이외에 윤회와 인과응보의 인과법因果法으로 가언적 명령을 더했으며, 도교에서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정언적 명령만 설정했고 유교에서도 인간 본연의 선한 성품을 발양發揚하라는 정언적 명령만을 강조했을 뿐이다.
최근 수백 년 간 비판의식의 발달로 절대신의 개념이 약화되어 도덕의 명령주체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훼손됨에 따라 유교, 불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의 도덕은 명법命法의 근거를 잃어버렸다. 또 특정한 보수와 대가를 약속하는 가언적 명령은 이해관계를 전제로 한 상업적 거래로 전락해 도덕 본래의 숭고한 가치를 함양할 수 없었지만, 도덕의 실천적 가치를 지켜온 구체적 수단이었던 것 또한 사실이고, 가언적 명령을 설정하지 않았던 유교와 도교의 도덕이 그 실천적 가치가 빈약했던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절대신絶對神의 명령 주체가 훼손된 뒤로는『양심』이라는 개념이 구성되어 절대신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만일『양심』을 자연 질서의 종합경험에 의한 판단개념이라고 규정하면 도교의 명령주체와 비슷할 것이며, 선험적 판단관념이라고 규정하면 유교의 선성善性이나 불교의 불성彿性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올바른 정의定義라 할 수 없다. 양심이야 말로 전통적 인습과 역사적 질서의 종합경험에 의한 판단관념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이다.
도덕은『양심』에 의한 정언적 명령에 의해 도덕관념이 성립되었다는 것이 근래에 들어 일반화된 인문학적 판단으로, 이 판단에 의하면 도덕은 그 본체가 전통적 인습과 역사적 질서에 충실한 보수적 가치다.
이에 반해 협동도덕의 명법命法은 무엇인가? 협동도덕은 대전협동大全協同이라는 전일이상全一理想의 표상이므로 곧 협동도덕 그 자체가 명령주체인 것이다. 철저한『해원解愿』을 통해 희생봉공의 정신을 강화하고,『상생相生』의 실천으로 이타정신利他精神을 함양해 해원과 상생을 본질로 하는 협동도덕은 전일이상을 목적으로 하는 절대적 명법이며, 또한 모든 인간관계에 작용하는 시응연관율施應聯關律을 전제로 한 상대적 명법이다.『남의 말을 좋게 하면 德이 되어 그 사람이 잘되고, 그 사람 잘 되는 숨은 힘이 쌓여서 점점 더 큰 덕德이 되어 내게 돌아올 것이요. 남의 말을 나쁘게 하면 그것이 곧 재앙이 되어 그 사람이 망하고, 그 사람을 망하게 한 재앙이 점점 쌓여 더 큰 재앙으로 내게 미친다.』『남의 접대를 받을 경우 그 음식에 해害가 있을지라도 사양하지 말라. 그 사람의 신神이 알고 척이 된다.』같은 증산甑山의 말이 모두 시응연관율의 뜻을 설파한 것이다.
시응연관율에 의한 가언적假言的 명령은 각 개인에게 무한한 실천을 요구하는 힘을 발휘해 개성적이고 독선적인 감정을 해소함으로써 사람마다 대전협동의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되게 하며, 전일이상全一理想으로 모든 사회적 모순을 녹이고 자기희생과 이타의 정신을 결정結晶시켜 도덕의 본체를 현현現顯하는 도덕관道德觀이라 할 수 있다.
제 7 장 경 제 관
1. 재부선시 財富善視
증산甑山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결함이 경제 문제이며, 이는 재래 종교가들이 재부財富를 죄악시한 까닭임을 통찰하고 따라서 신생종교는 경제를 올바르게 인식해야만 세상을 제대로 교화敎化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롭게 태동할 신생종교의 경제관은 대략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으니 첫째, 기존 종교처럼 경제를 백안시 하고 죄악시하기보다 일상생활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영혼과 육체처럼 병행하면서 현실을 긍정하고, 그 발전의 연장선상에서 이상理想을 추구해야 하며, 둘째, 경제가 인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인식하고 종교를 적대시하는 유물사상을 시정하기 위해 민중을 교화시키며, 셋째, 경제의 발전법칙을 구명해 인류의 생활경제를 더 높은 단계로 이끄는 것이다. 증산甑山의 말 가운데『세상이 수명복록壽命福祿이라 하여 복록보다 수명을 중하게 여기나, 복록이 적고 수명이 긴 것보다 욕된 일이 없으니 그러므로 나는 수명보다 복록에 치중하려 한다. 사람이 녹祿이 떨어지면 죽느니라.』와『천하의 일은 생사生死 두 가지에 끝이 나니 우리가 쉴 새 없이 서두르는 일은 하루에 밥 세 때 벌이로 잘 먹고 잘 살자는 일이라. 이제 먹지 않기를 꾀하는 자者 무슨 영화가 있으리오.』같은 말이 모두 중록사상重祿思想을 드러낸 것이니 그가 말한 녹祿이란 곧 경제란 말에 다름 아니다. 또『선천先天 영웅시대에는 죄로써 먹고 살았으나 후천後天 성인시대에는 선善으로서 먹고 사나니, 죄로써 먹고사는 것이 장구長久하랴? 이제 후천의 중생으로 하여금 선으로써 먹고 살 도수道數를 짜놓았노라』와『선천에는 돈에 눈이 어두워서 불의不義한 사람을 따랐으나, 후천에는 그 눈을 트이게 해서 선한 사람을 찾게 하리라』같은 말이 모두 재물財物과 부富에 선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무릇 재부財富란 자연물自然物 가운데 인간의 생활에 그 효용과 가치가 부여된 것으로 원시시대엔 일체의 자연, 즉 흙, 돌, 초목, 산, 들, 강, 바다 어느 것도 스스로 존재할 뿐 재부의 영역에 들지 못하고, 오직 약간의 수렵도구와 먹을 수 있는 짐승, 물고기만이 재부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러다가 인구가 늘고 문화가 발달해 생활양식이 변함에 따라 재부財富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어 가축과 목초와 땅, 그 밖의 초목, 흙, 들, 산, 강, 바다가 모두 재부화財富化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런 유형물 뿐 아니라 무형물에 이르기까지 재부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또한 재부는 양적 확장은 물론 질적으로도 발전해 자연물에 대한 가공을 통해 그 효용가치를 극대화함으로써 재부의 형식과 내용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다.
재부財富의 원시형식原始形式은 부족공산제部族共産制였다. 재부의 공산형식共産形式은 수렵시대와 유목시대, 반목반농시대半目半農時代를 통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수렵시대에는 수렵도구와 공동수렵을 통해 포획한 짐승들을 공유했으며, 유목시대에는 가축과 목축에 필요한 도구와 목초지를 공유했고, 반목반농시대에는 목초지, 각종 도구, 가축, 주거지구, 여타 영역을 공동으로 소유했다. 그러다가 농경정주農耕定住시대에 접어들어 수확된 곡물이 분배되면서 재부의 사유형식私有形式 시작되었다. 이 때 부터 공산형식이었던 모든 재부財富의 사유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정치, 사회적 변화까지 초래했다. 부족국가, 봉건국가의 출현이 바로 그것으로 중앙집권국가가 나타나면서 상공업이 더욱 발달해 재부는 자본의 형식으로 발전했다. 재부의 사유형식과 자본형식은 경제형태의 차이가 있는데, 재부의 사유형식 아래서는 자급자족경제自給自足經濟가 발달했고, 자본형식 하에서는 유통경제流通經濟가 발달했다. 유물론자들은 자본형식의 변화과정을 소자본 생산과 대자본 생산의 두 단계로 나누고, 대자본제는 그 내적 모순으로 인해 반드시 붕괴되어 공산제共産制가 재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비약적 변화이론을 차용해 혁명적 수단을 통해 대자본제로부터 공산제로 이행되는 단계를 축소하려 했으니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 혁명이다. 공산제는 재부의 가장 원시적인 형식으로 그 재현을 시도하는 것은 재부財富의 발달과정만을 유독 순환궤도로 설정하려는 독선적 행위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제도制度 가운데 어찌 재부財富의 소유형식만이 순환발달과정을 거치는 예외적 존재일 수 있는가? 모든 제도와 사물의 발전과정은 반드시 단계 단계마다 나름의 진화이상을 지니고 있어 일단 지나간 것이 다시 새로운 변화의 이상理想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진화론의 철칙이다. 따라서 공산제共産制가 다시 재부財富의 진화이상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부財富의 기본원리인 효용가치는 원래 해악害惡의 의미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협동이상의 객관적 의미인 선善, 즉 인류에게 유익한 자연물自然物에서 비롯했다. 이렇게 발생한 재부의 효용가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질적 변화는 물론 형식까지 바꾸어 가면서 정치, 도덕, 경제 삼각면의 발전과정에 작용해 인류의 삶을 보다 충일하고 풍요롭게 해왔다. 그러므로 재부의 원시형식인 공산제는 집단 전체의 공동번영 운동에서 발생해 무리 공동의 번영과 행복의 증진을 이룩해왔으므로, 그 본질과 형식에 어떤 해악害惡과 모순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다만 농경정주農耕定住시대로 접어들면서 생활방식의 변화로 재부가 사유형식의 자급자족경제로 변함에 따라 공동체 구성원 개인마다 자기중심의 이해의식이 싹터 협동관념과의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다. 이 모순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협동질서로부터 일탈하는 개인주의를 파생시켰고 여기서 인류사회의 모든 해악害惡과 모순矛盾이 발원發源한 것이다. 개인주의는 자본형식의 유통경제시대에 더욱 발달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복리福利를 훼손하고 협동질서를 사사로이 이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며, 다시 금권만능주의와 제국주의의 침략행위에 이념적 근거를 제시하는 등 우리 사회에 크나 큰 재앙災殃을 불러왔다. 그렇다고 재부財富의 해악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산제共産制로의 복귀를 기도하는 것은 유물론의 변증법적 원리로서도 용납하기 어렵다.
재부財富가 초래한 사회적 모순과 해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산共産·사유私有 두 소유형식의 모순을 조화·정리해서 새로운 소유형식을 만들어 내야만 재부의 진화가 변증과정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방임했던 재부의 진화와 변천에 우리가 능동적으로 개입해 도덕·정치·경제 삼각면三角面의 연관개변聯關改變에 의한 새로운 소유형식을 창출할 때 우리 사회의 보다 나은 발전을 이루고, 인류의 문화를 분화分化로부터 통합統合으로, 특화特化로부터 혼융混融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 녹로정정 祿路整正
증산甑山은 재부財富를 선善하게 보는 중록사상重祿思想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직업신성織業神聖』을 말했다.『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없다. 녹祿줄이 달려 있으므로 성의를 다해 종사하는 것이 옳거늘, 조그만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이 일을 언제나 모면할까? 하고 괴로워하는 말을 한다면 이는 제 목을 제가 끊으려 함이라. 그러면 모든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느니라.』『글도 읽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 자는 사농공상四農工商에서 벗어난 자이니 마땅히 쓸 곳이 없느니라.』『사士와 상商은 직織이요, 농農과 공工은 업業이니, 사농공상이 직업이니라.』『성聖스러운 직織, 성聖스러운 업業』같은 말들이 모두 직업의 신성함을 강조한 교훈으로 증산甑山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재부선시財富善視와 직업신성織業神聖을 근간으로한 중록사상重祿思想에 입각해 녹로정정祿路整正의 공사公事를 행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거대 자본資本의 형식形式으로 발전해온 재부財富는 그 진화의 방향이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 것인가? 증산甑山의 가르침과 그가 행한 공사公事의 숨은 뜻을 감안해 서 필자는 감히 현대의 자본형식이 재단형식財團形式으로 바뀌는 것은 어떨지 감히 제안해 본다. 재단형식이란 개인이 심리적 연관성을 통해 집단을 결성하는 것과 같이, 각 개인의 권리를 연계해 재단財團을 조직하는 것으로, 집단생활의 기초단위인 마을과 직업집단의 기초단위인 상공기구商工機構를 함께 묶어서 함께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단위와 상공기구가 하나의 재단이나 조합으로 조직화된다면 재부財富의 근본 원리源理인 효용가치가 그 참된 존재가치인 선善함을 최대한 발휘해 인류의 생활과 사회를 균형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증산甑山은 재단 형식의 생활에 대해『후천後天에는 아무리 저급한 평민이라도 의식衣食은 각기 풍부하리라.』하고 언급했다.
3. 도덕·경제·정치의 연관체인 사단사회社團社會
사회 단위의 재단 조직화에 의해 재부財富의 모든 해악害惡과 모순矛盾을 극복한 경제관계는 효용원리와 협동원리에 입각해서 도덕·정치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새로운 기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니, 도덕은 정치 분야에 도의적 거점을 마련하고, 경제 분야에 공통복리의 보편타당한 법칙을 부여하고, 정치는 도덕 분야에 정언적定言的 권위를 설정하고, 경제 부문에 기획과 분배의 기능을 더하며, 경제는 도덕 분야에 실천역량을 공급하고, 정치 분야에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게 됨으로써 모든 사회단위는 비로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롭고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조직의 단위를 필자는 사단社團이라는 용어로 부르려 한다. 이 사단社團은 실천범주의 정언화定言化, 경제행위의 의례법칙화儀禮法則化, 정치 법령의 예교화禮敎化와 같은 세 가지 공식에 의거해 조직되어야만 한다.
1) 실천범주의 정언화 : 기성 종교의 실천도덕은 신神으로부터의 지상명령이거나, 보수와 대가를 약속한 가언적假言的 명령이었다. 신神으로부터의 지상명령은 우리의 자유로운 정신을 속박하고, 보수와 대가를 약속한 가언적 명령은 개인 사이에 이해利害의 관념을 키워 모든 해악害惡의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므로 새롭게 건설되는 도덕은 협동의지와 자유, 양심으로부터의 지상명령이며, 숭고한 의무감의 정언적 명령일 때만 그 참된 가치를 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 경제행위의 의례법칙화 : 모든 경제 문제는 도덕적 범주의 객관성에 의거해 일정한 의례와 법칙을 규정하고, 그 공식에 의해 모든 소득과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제도화 한 다면, 오직 효용가치에 의해 좌우되던 경제현상이 오히려 효용원리와 협동원리의 호혜적 상승효과로 인해 균등한 경제 질서구축과 보다 풍요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3) 정치·법령의 예교화 : 정치는 불필요하고 번잡한 종래의 모든 사안들로부터 벗어나 예禮를 이끌어 교화敎化하는 역할을 전담해 도덕적 범주와 경제의 의례법칙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중심 동력이 됨으로써, 시대의 발전과 변화, 지혜의 창달을 이루는 새로운 사회변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상 세 가지 공식 아래 조직될 사회단위인 사단社團은 신생교단新生敎團의 원력적願力的 지도아래 육성되는 한편, 다른 많은 단위들 역시 교단敎團의 연력적鍊力的 영도 아래 상호간의 통합작업을 통해 지선至善의 질서인 대전협동大全協同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사단사회社團社會를 건설하게 될 것인데, 이 새로운 사회 단위와 질서를 증산甑山은 특히『선경仙境』이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제 8 장 여 성 관
1. 대장부 大丈夫, 대장부 大丈婦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으로부터 기인한 남·녀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신체와 체력의 차이에서 발생한 신분과 직능상의 구별이 관습화된 것이므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신체와 체력의 차이가 곧 신분과 능력의 차이로 인정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다. 원시 씨족사회가 여성 우위의 모계사회였으며, 씨족신의 개념형식이 여성성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모계중심의 생활양식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부족들이 모계적 씨족사회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원시시대라 해서 남·녀의 신체와 체력의 차이가 지금과 크게 달랐다고 단정할 수 없다. 씨족사회가 부족사회로 발전하면서 모계중심의 생활양식이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부권父權이 대신하면서 남성성이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어떤 특별한 사연과 변혁과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회구성의 최소 기본단위인 가족이 부계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모든 제도와 관습은 물론 정치·법률·도덕·예술 등 인류 문화의 모든 부문이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을 바탕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남·녀의 사회적 신분과 직능이 각자의 생활환경에 따라 신체적 건강미는 남성의 상징이며, 가녀리고 연약한 것은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굳세고 용감하며 진취적인 기상은 남성적 기질이며, 매사에 부끄러워하고 양보하며 퇴영적인 성향은 여성이 갖추어야할 마땅한 덕목德目이 되었다. 이 같은 인식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져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처럼 남자가 뜻을 정하면 여자는 그에 순종하는 성적질서性的秩序가 윤리적 전통이 되기에 이르렀다. 역대의 종교가들조차 이 전통질서를 천존지비天存地卑처럼 당연한 철리哲理로 받아들여 지상명령화 함으로써 여성은 남성에게 무조건 물러나 사양하고 순종하는 것을 더없는 미덕美德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교육의 기회가 여성에게도 부여되면서 유사 이래 남성들에 의해 억압받아왔던 여성들의 각성이 이루어져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여성해방운동이 전개됨에 이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증산甑山은『해원解寃』이라는 새로운 교의敎義 안에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이념을 정립했다. 『이제는 해원시대라, 수천 년 이래 남자의 농락弄樂과 부림使役에 지나지 못하던 여자의 원寃을 풀어 올바른 음陰과 양梁으로 부부가 되는 예법을 뒤집어 꾸미노니, 이후로는 남자가 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전제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리라.』『부인婦人이 천하의 일을 하려고 염주念珠를 돌리는 딱딱거리는 소리가 구천九天에 사무쳤으니 장차 부녀의 천지天地를 만들려는 것이로되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으나 남녀평등의 세상은 되리라.』라는 말과 함께 이를 공사公事로 결정하고『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는 용어를 사용해 남·녀 간의 절대평등 천명했다.
2. 여장군 女將軍
증산甑山은 남·녀 평등의 이념을 정립함과 동시에 부녀들의 결사운동結社運動이 지닌 타당성을 인정해『여장군女將軍』이라는 용어로 김주보金周甫의 부인에게 신기神氣를 붙여 전주 시내 수백 명에 이르는 주막 부인들을 선동 규합해, 당시 양조장 면허를 얻어 주막에서 술을 담그는 것을 금지하려 했던 백용안白龍安의 집을 습격, 백용안이 스스로 독점적으로 점유하고 있던 양조권을 포기하도록 했으니 이는 곧 부녀자도 정치, 사회 등 제반 문제에 결사를 이루어 투쟁하는 일에 아무 구별이 없음을 표명한 사례다.
3, 천연天緣과 인연人緣
1907년 정미 4월에 증산甑山은 태어난지 7일된 젖먹이를 버리고 도망하는 젊은 부인을 나무라기를『부모가 지어준 것은 인연人緣이요, 스스로 지은 것은 천연天緣이라. 인연은 오히려 고칠 수 있으되, 천연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거늘 그대의 잘못이 매우 크다』며 부모의 명에 의한 결혼은 경우에 따라 깨어도 상관없으나 자신의 의사로 맺은 결혼을 파기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강조함으로써 천연이 인연보다 더 중한 약속임을 일깨웠다. 또 홀아비와 과부의 재혼이 마땅함을 알리기 위해 박공우에게『후천後天 오만 년의 첫 공사를 행할 것이니 가장 시급한 일을 말하라』하니 공우가『선천先天에는 청춘의 젊은 부인이 수절을 한다 하여 빈 안방을 지켜 늙는 것이 심히 옳지 않으니, 후천後天에는 이런 폐해를 없이 하시어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가려 아는 사람과 친구를 청해 자리를 만들고 예를 찾아 개가하게 하는 것이 좋을 줄 아나이다.』하니 크게 칭찬하고『지금 결정한 공사가 이후 오만 년을 내려가리라』했다. 그 밖에 첩妾을 두는 것을 옳지 않게 여겨 김보경金甫京의 소실을 떠나게 하고『본처를 사랑하여 저버리지 말라』고 훈계 헸다. 문공신文公信의 집에서 동학東學 원신寃神의 해원공사를 보면서 문공신이 일부일처一夫一妻를 말함에 크게 칭찬한 일로 미루어 일부일처를 기본으로 한 단란한 가정이 이 사회의 근간이라는 것이 중산甑山의 신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 정조 문제 貞操問題
증산甑山은 부부로 생활하는 동안 서로를 존중하고 충실할 것을 강조해『유부녀를 범하는 것은 천지의 근원을 떼는 것과 같아서 그 죄가 비할 데 없이 크므로 내가 관계하지 않노라』하고『죄는 남의 천륜을 끊는 것 보다 더 큰 것이 없느니라.』했다. 그러나 처녀와 과부의 정조 문제에는 너그러웠으니『예로부터 처녀와 과부의 사생아와 그 밖에 모든 버려진 아이들의 죽은 귀신의 원한이 쌓이고 맺혀 폭약과 탄환이 되어 이 잘못된 세상을 멸할 것이다』하고 그 가운데 과부의 수절을 더욱 옳지 않게 여겨 남편을 잃은 젊은 부인이 수절했다는 말을 듣고『악독한 귀신이 무고한 인명을 살해한다.』며『충忠과 효孝가 모두 나라의 큰 기강紀綱이지만 나라는 충忠에 망하고 집안은 효孝에 망하고 몸은 열烈에 망하느니라.』하고 이 내용을 글로 써서 불태웠다.
제 9 장 실천 범주
1. 일심 一心
마음心의 주관적 본질은 오성悟性과 의지意志이며, 객관적 작용은 감성感性과 정서情抒다. 오성은 이지理智로 움직이고 의지는 상념想念으로 움직이며, 이지와 상념은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아상我相을 형성한다. 아상은 늘 경상境象과 상대하므로 경상이 감성을 통해 아상에 전달되면 비로소 인식이 발생하며, 아상이 정서를 통해 경상에 전달되면 의욕이 발동한다. 오성은 인식을 받아들이면서 이지가 어지러워지기도 하고, 의지 또한 의욕의 발동으로 상념이 어지러워지기도 하니, 경상이 어지러운 이지와 환상으로 아상을 제약하는 것이며, 오성은 인식을 밀어내 이지를 바로잡으려 하고, 의지는 의욕을 제재해 상념을 올곧게 유지하려 하고, 아상은 올바른 이지良知와 바른 상념正想을 통해 경상을 초월한다. 경상이 아상을 제약하면 마음心이 흩어지며, 아상이 경상을 뛰어넘으면 마음心이 아상에 모인다. 그러므로 인식을 거부하고 의욕을 제압함으로써 경상을 초월하고 양지良知와 정상正想으로 아상을 고요하게 하면 오성과 의지의 상호작용이 순후純厚해지고 완전해져서 아상에 자율적인 힘이 결정結晶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을『일심一心』이라 한다.
일심이 계속해서 내적으로 정진하면 에너지가 축적되어 연력鍊力의 결정結晶이 이루어지고 결국 도덕률道德律과의 성격합화性格合化에 도달한다. 사람마다의 일심이 밖으로 드러나 한데 모여 공동의지를 이루면, 집단생활의 중심동력이 되므로 모든 도덕과 의례, 규범이 그 실천역량을 공급받아 협동질서를 정립하고, 그를 널리 펼쳐 집단의 공통운명을 개척하게 된다. 일심이 시간적으로 진행되면 역사적 진화의 추진동력이 되어 당면한 난국을 타개하고 역경을 극복해 공사公私의 이상과 목적을 구현하게 되므로 개인적으로는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사회는 장엄한 문화를 축적하게 된다.
이렇게 일심은 시時, 공空, 유幽의 삼계三界를 안으로 통제해 인과목적因果目的의 생성법칙을 관장함으로써 스스로 협동도덕의 기본범주, 인격수련의 제1 원리, 새롭게 생성될 교단의 제1 명법命法, 새로운 사회건설의 기본 동력이 되므로 일심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모든 범주와 의례, 규범은 한낱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하고, 일심이 빠진 모든 질서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2. 해원 解寃
증산甑山은 해원解寃이라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의 일부 내용에 세속적 의의를 설정함으로써 협동도덕의 실천범주를 설정했다. 해원에는 내적 의의와 외적 의의가 있다. 인간의 정신활동의 기본형식은 목적성의 충동이며, 목적성의 충동은 의욕으로 표현되므로 모든 계획과 행위가 의욕의 발동이라 할 수 있다. 의욕은 그 팽창에 아무런 제약이 없어 자칫하면 허영과 야망으로 변하게 된다. 허영과 야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이 희구하는 것이 한낱 헛되고 부질없는 꿈인지도 모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과 성, 힘을 기울인다. 그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게 되면 극심한 낙망과 후회가 일어나고, 이는 곧 원한寃恨으로 맺히게 된다. 그러므로 의욕의 발동에는 늘 깊은 성찰과 조정을 가해 스스로 자제하는 굳은 마음을 지킴으로써 허영과 야망의 침범을 경계하는 것에 해원의 참된 의미가 있다하겠으며 이것이 바로 해원解寃의 내적의의다.
증산甑山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척짓는 것을 깊이 경계했는데, 척이라는 것이 바로 원한寃限의 에너지가 모여 이룬 결정체結晶體이기 때문이다. 원한寃恨의 정精이 극極에 이르면 그 에너지가 결정結晶을 이루고, 이 에너지의 결정이 현실과보現實果報의 현상을 도발하는 것이 마치 원귀怨鬼의 앙갚음과 비슷하다. 박공우가 다른 사람을 때렸다가 오히려 자신이 상처를 입은 일이나, 박순녀朴順汝가 얻은 병病, 이재헌李載憲의 부인이 앓은 병病에 대한 증언이 모두 척을 지은 일에 대한 과보果報임을 증명한다. 증산甑山은『한 사람의 원한이 천지의 기운을 막는다.』며 척짓는 것이 모든 해악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공연히 남을 미워하거나, 해害를 입히거나, 남의 딱한 형편을 외면하거나, 각박한 말로 언덕言德을 잃는 일이 모두 척을 짓는 일이므로 언제나 삼가 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대인大人을 배우는 자者는 항상 사람 살리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남 잘 되게 하라』『언덕言德을 잘 가지라』『남을 미워하지 말라』등의 말이 모두 척짓는 일을 경계한 교훈으로 곧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남의 성취를 돕는 것에 해원 본래의 뜻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해원解寃의 외적의의다. 그러므로『상생上生』은 해원의 외적의의를 대표하는 추상적 개념이다. 이렇게 해원의 내적의의를 몸으로 익혀 스스로를 자제하는 마음이 강화되고, 외적의의를 가다듬어 자기희생과 남을 돕는 정신이 자신의 성격과 일치할 때 해원解寃의 참된 뜻이 드러나 상생相生의 덕德이 정립되어 비로소 인격의 도덕적 완성이라는 성聖스러운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3. 보은 報恩
증산甑山은『천지보은天地報恩』이라는 천지공사의 일부 내용에 세속적 의의意義를 설정해 해원解寃과 함께 겉과 안의 관계를 맺어 협동도덕의 실천범주로 삼았는데 그 의의는 다음과 같다. 본래 가없는 공간은 헤아릴 수 없는 조건들을 품고 있으며, 유구한 시간은 무궁한 인연을 낳는다. 무궁한 인연은 날經이 되고 무량하게 품고 있는 조건들은 씨緯가 되어 우주라는 큰 천이 되며, 씨와 날이 만나 이루는 바다는 무수한 사물과 현상이다. 사물과 현상은 씨와 날의 만남을 통해 서로 간에 조건·인연의 관계를 맺어 연관체를 이루고 이 연관체 안의 무수한 마디중의 한 마디가 바로 "나"라는 존재다. 무수한 사물과 현상의 공간성은 나의 존립조건이며, 시간성은 내가 존립할 수 있는 인연으로 조건은 공간적 은혜이고, 인연은 시간적 은혜다. 그러므로 "나"는 수많은 은혜가 종횡으로 중첩되고 교착한 점點과 같은 존재다. 거듭된 쌓임과 교착은 정情으로 표현되고, 정情은 자비로움慈, 즉 연민과 동정, 의무감으로 발전해 모든 덕德의 원천이 되므로 "나"의 존재 또한 도덕에서 비롯하고 도덕에서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에서 시작하고 도덕에서 끝나는 "나"의 모든 행위 역시 도덕적 의의意義에 합당해야 하며, 도덕적 근원이 곧 은혜이므로 모든 행위의 도덕적 의의는 보은으로부터 시작된다 하겠다.
이 우주宇宙는 "나"에게 생生을 부여해 존재하게끔 하고, 수명을 주어 일정한 시간을 관장하게 하고, 복록福祿을 주어 특별한 가치를 결정하였으므로 "나"의 존립은 천지天地의 보은報恩에 의해 비로소 확실하게 보장된 것이니, 이 보은의 의식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지위를 확보하고, 가치를 발현하는 것이 인생의 참된 의의意義를 찾는 것이며 천지보은의 의義를 잊어버린 존재의 지위나 가치는 곧 난폭亂暴함이며 무도無道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성실誠과 공경敬과 믿음信으로 천지보은의 대의大義를 세우는 것으로 인생의 참된 의의를 깨달아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甑山은『복록도 성실, 공경, 믿음이요. 수명도 성실, 공경, 믿음』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상호의존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무리 생활의 터전으로 "나"의 존재를 보증하고, 서로 돕고 의지하는 것으로 "나"의 지위와 가치를 보장하고 용인하니, "나"의 존재와 지위와 가치가 유지되는 것은 바로 이 사회의 큰 은혜다. 그러므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 보은하겠다는 생각의 틀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지위를 요구하며, 가치를 발현하는 것이 인생을 올곧게 살아가는 방법이므로, 사회보은의 의義를 잊어버린 존재의 지위와 가치는 곧 횡포橫暴이며 불의不義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정公正하고 무사無私한 마음가짐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일에 힘쓰고, 사회 전반의 공통된 복리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증산憎山도『사람이 태어나 천지가 사람을 필요로 할 때 참여하지 못하면 어찌 가히 인생이라 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기강紀綱과 법령法令으로 사회의 질서를 세우고, 필요한 때에 맞추어 각종 시설을 갖추어 사회 일반의 번영을 꾀하며 아울러 "나"의 안녕을 보전하는 것은 국가의 은혜이니 신명을 다해 나라에 봉공奉公함이 마땅하고, 낳아 기르고 가르치는 것은 부모父母의 은혜이니 조상의 영혼을 기리고 숭앙崇仰하는 것은 물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대의大義를 세워야 할 것이며, 인성人性을 기르고 인격을 가다듬는 것은 스승의 큰 은혜이니 스승으로부터 이어받은 지혜를 더욱 갈고 닦아 후대에 전하는 일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증산甑山도『임금을 잊는 것이 무도無道이며, 아버지를 잊는 것이 무도이며, 스승을 있는 것 또한 무도이다.』라고 말해 보은報恩이야말로 곧 도道임을 강조했다.
"나"에게 하늘이 내린 녹祿을 누리게 하여 윤택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직업의 큰 은혜이므로 오직 충직忠함과, 참됨實과, 부지런함勤으로 맡은 일에 임해야 한다. 증산甑山도 『성스러운 직職, 성스러운 업業』이라 해 직업의 신성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이처럼 수많은 은혜를 거듭해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그 가운데 앞서 말한 여섯 가지 은혜에 대한 보은報恩 의식을 언제나 간직하고 해원解寃의 대의大義와 협동도덕의 온전한 합치를 이루어 상생相生의 대도大道를 밝히고 대전협동大全協同의 이상理想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4. 정록 正祿
앞서 7장에서 협동경제와 연관해 녹로정정祿盧整正의 원칙에 관해 간략하게 언급했으므로 이 단락에서는 사회 전체 구성원으로서 개인경제의 타당성, 즉 경제적 규범과 원칙에 관해 말하려 한다.
모든 경제 주체, 곧 경제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도덕·정치·경제적 연관체제 하에서는 그 구성원으로서의 개인, 그 과정에서 형성된 자산, 공·사 기업할 것 없이 모두가 연관체의 관리를 받게 되므로 개별적 입장으로서의 자본에 관한 제반 문제가 해소되고, 오직 기술과 노동만이 모든 경제행위의 중심요소가 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세상은 직업보은職業報恩이라는 대의大義에 입각해서 모든 기술과 모든 노동이 절대적 의무가 되어야 할 것이며, 부富의 분배문제에 있어서는 구성원 모두에게 재화財貨와 복록福祿을 균등하게 나누는 공평한 제도가 수립되고, 모든 노동과 모든 기술에는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기술과 노동에 생산의 의무와 분배받을 권리를 원칙으로 정한 후에야 모든 경제행위가 규범화 되고 우리 사회의 제도와 질서가 확립되어 도덕·정치·경제적 연관체와 개인 간의 조화가 이루어져 온전한 협동생활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며, 사회와 개인의 발전이 함께 이루어져 인류 사회는 더없는 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나, 이 부문에 대한 증산甑山의 사상思想과 구상은 차후 경제·사회학자들의 깊은 천착과 궁구를 통해 구체적인 성과를 얻을 필요가 있다.
5. 경계의 말 戒箴
증산甑山은 불교의 5계五戒나, 기독교의 10계十戒와 같이 특별한 계명체계戒命體系를 세운 일이 없으므로 그가 공·사를 막론하고 각종 자리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타이른 말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을 가려 다음의 다섯 가지의 계잠戒箴(마음에 깊이 새겨 반드시 지켜야할 계율)을 세워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지켜야할 실천범주로 삼고자 한다.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이 계잠戒箴은『일심一心』을 실천하는 첫 단계로『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라』고 해서 모든 잘못과 죄악이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므로 정직한 태도와 진 실된 마음으로 심신을 가다듬으라는 경계의 말이다.
2) 척을 짓지 말라
이 계잠은『해원解寃』을 실천하는 가장 기초 사항으로 남을 원통하고 억울하게 하는 것이 나, 남을 미워하는 일이나, 남의 호의를 거스르는 것 등이 모두 척을 짓는 행위이므로 인 애仁愛, 온량溫良겸양謙讓의 덕德으로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떤 척도 짓지 않도록 힘쓰라는 가르침이다.
3) 언덕言德을 잘 갖추도록 하라
이 계잠 또한『해원解寃』을 실천하는 과정의 하나로『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 남에게 좋은 말을 하면 남을 잘되게 하는 숨은 공功과 복福이 쌓이고 밀려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고, 남의 말을 나쁘게 하면 남을 해친 숨은 화禍와 재앙災殃이 쌓이고 밀려 점점 큰 재앙이 되어 내 몸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고 해 모든 복과 재앙이 스스로 하는 말에 따른 현실과보現實果報에 의한 것이므로 말을 할 때 늘 특별히 경계하고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4) 반 그릇 밥의 은혜도 반드시 갚도록 하라
이 계잠은『보은報恩』을 실천하는 기초사항으로『남의 은혜를 저버리면 그 또한 척이 되 니 일본이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문명을 수입해 부국강병을 이루어 동양제일의 강국 이 되었으나 영·미의 은혜를 저버렸으므로 배사율背師律에 걸려 이제 참혹하게 멸망할 것이다』고 해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할 것을 강조한 내용이다.
5) 남 잘되게 하라
이 계잠은『상생相生』의 대도大道를 실천하는 첫 단계로 자기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남을 도와 그를 잘되게 하는 마음을 가꾸어 대전협동大全協同을 이루기 위한 융합의 기초를 다 지라는 가르침이다.
제 10 장 이상 理想
1. 선경 仙境
인류 공통의 이상理想은 오래도록 무리생활에 적합하고 온전한 체계全一體系를 만드는 일이었다. 인간의 역사는 이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투쟁의 기록이다. 원인原人(피테칸트로푸스)과 구인舊人(네안데르탈인)은 퇴적암 지층에 남겨진 화석조각일 뿐이며, 신인新人(크로마뇽인)은 꿈결처럼 몽롱한 기억일 뿐이다. 그러나 농경과 서계書契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세계제국 건설에 대한 꿈을 지닌 뛰어난 영웅들이 강대한 무력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동방의 중국과 서방의 소아시아, 유럽에서 끊임없이 이러한 시도가 감행되었다. 동방의 진秦, 한漢, 당唐, 원元, 명明, 청淸과 서방의 수메르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사라센 등 모든 대제국의 출현이 그런 노력의 결과다.
고대 세계는 중앙아시아의 험준한 산맥을 경계로 동·서로 나뉘어 동양인의 세계는 파미르고원 동쪽 지방에 자리하고, 서양인이 말하는 세계는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 지방에 위치했다. 따라서 동양인은 서양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서양인은 동양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 서로 왕래와 교통이 없이 나름대로의 문명과 역사를 발전시켰다. 이런 까닭에 카스피 해海, 파미르 고원 이북과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는 전인미답의 불모지로 당시의 인류사에서 제외되었다. 따라서 동양인의 제국이상帝國理想은 파미르 고원 이동 지방을 영역으로 하는 것이었으며 서양인의 제국이상은 지중해와 소아시아 일원을 강역으로 하는 것이었다.
중세中世에 이르러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카스피 해, 파미르 고원 이북 지방이 점차 세계사의 장場으로 편입되었으며, 징기스칸이 유럽을 정복해 동·서양의 교통이 열림에 따라 인류의 세계관이 수정되고 제국이념과 이상이 확대되었으며, 이후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가 도래 해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아프리카 남쪽 끝에 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이르고, 콜럼버스Colubus는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마젤란Magellan이 태평양을 횡단해 세계일주世界一周에 성공함으로써 6대륙 5대양과 남·북극 또한 세계관 안으로 편입되면서 인류의 제국이상은 대변혁을 이루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없이 등장했던 여러 대제국이 잠시 흥성하다 이내 멸망하고 분열과 통일을 반복하면서 안정과 혼란이 이어졌던 것은 남을 배려하는 협동에 대한 신념이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어 시대정신으로 승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며, 재부의 편중으로 인한 불평등, 공정하지 못한 정책의 시행으로 인류의 문명과 공통복지가 신장하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알렉산더와 징기스칸의 위대한 업적으로도 대제국의 붕괴를 막을 수 없었다. 협동에 대한 신념과 문명의 보편화, 공정한 정책은 인류가 무리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전일체계의 3대 요소로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지면 전일체계가 완성될 것이며 그 중의 하나만 갖추면 작은 성공을, 둘을 갖추면 큰 성공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공자孔子는 중국의 제국 건설기에 원력집단願力集團을 조직해 왕도의식王道意識과 인의仁義의 도道를 대중에게 보급했고, 예수는 로마 제국의 융성기에 출현해 원력집단으로 하여금 천국에 대한 동경과 박애, 평등의 진리를 대중에게 전파했고, 마호메트는 사라센제국 건설 이전의 시기에 나타나 원력집단과 함께 대동포大同胞 평등의 대의로 대중을 설득했다. 이로 인해 세계제국 건설의 이상이 특정인의 머리와 가슴으로부터 벗어나 일반 대중의 꿈과 희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夏·은殷·주周의 문명이 한漢나라에서 중흥되었으나 일반 민중에게까지 널리 보급되지 못했으므로 그 득실을 가늠할 수 없다. 오직 공자孔子의 원력집단에 힘입어 한나라는 작은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리스 문명이 로마로 이어졌으나 역시 일반 대중에게까지 전파되지 못해 그 성과를 말할 수 없다. 다만 예수의 원력집단의 조력으로 로마 또한 작은 성공을 이루었다. 이것이 두 제국이 그 이룬 바를 일정기간 지킬 수 있었던 원인이다. 기독교 공인 이후의 로마와 사라센 제국은 원력願力이 큰 집단을 형성한 뒤에 건설되었으므로 제국이상의 실현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룩한 문명이 전체 민중들에게 미치지 못해 그 제도와 시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힘들게 마련한 정책은 승려와 귀족들의 사리사욕과 독단으로 인해 사회구성원 전체의 공통복리를 꾀할 수 없었으므로 결국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세속화하거나 역사의 뒤란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근세에 이르러 문명이 크게 발달해 일반 민중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게 되어 세계제국의 건설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배계층은 금권만능주의金權萬能主義라는 새로운 환상에 사로잡혀 자본의 증식과 식민지 경영에 몰두할 뿐이었다. 그러나 보다 많은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 추진한 식민정책이 피지배민족의 거센 반발과 저항에 부딪쳤고,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6년여의 기간에 걸쳐 온 세계가 진한 피비린내에 휩싸이는 참상을 빚었다. 이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창해 주요 국가의 수뇌들과 제네바에 모여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로 하면서 인류 공통의 이상인 세계제국의 건설에 대한 기대가 다시 빛을 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제연맹에 참여한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그 본래의 뜻과 인류의 여망은 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가운데 레닌이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에 입각한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켜 제정 러시아를 전복하고 노동자, 농민을 주축으로 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을 수립한 뒤 자본과 금권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 곧 계급투쟁을 전개하면서 인류사회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재앙과 위기를 맞아야 했다.
일본은 본시 동아시아 한 구석의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으나 일찍이 서구문명을 도입해 힘을 길러서 오끼나와, 대만, 사할린을 차례로 강점하고 한국을 병합한 후 만주를 공략하고, 중국 본토를 침공하며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동남아와 남태평양을 점령해 한 때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깃발 아래 동아시아 통일을 완성할 것 같은 기세를 떨쳤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히틀러는 나치즘과 아리안족의 영광을 내세워 흩어진 민심을 규합해 전쟁을 일으킨지 1년 만에 유럽 전역을 점령하고 다시 소련을 침공했다. 일본과 히틀러의 승리는 미국의 참전을 강요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되어 두 나라의 멸망을 불러왔다. 비약적인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일반 민중에게 널리 전파된 지식과 자유주의는 더 이상 폭력을 수반한 제국주의의 만행을 용납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루즈벨트에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새로운 세계질서의 수립을 위해 국제연합U.N의 창설을 제안해 다시금 세계연방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모색해왔던 전일체계全一體系의 완성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였다. 전일체계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3대 요소 가운데 문명은 이미 충분히 대중에게 전파되어 보편화 과정을 마쳤고, 정책 또한 인류의 공통복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공자, 석가, 예수, 마호메트의 원력願力은 이미 화석화化石化되어 각 종족의 감정을 순화하고, 지역적 편벽성을 해소하고, 종파의 아집을 용해시켜 협동신념을 창출하지 못하므로 아직 전일체계가 완성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류는 무리생활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종족으로 나뉘어 각기 서로 다른 전통을 가꾸어 오면서 지닌바 감정이 다르고, 수많은 지역으로 분리되어 관습을 달리하므로 편벽함을 고수하고, 수많은 종단宗團으로 갈려 신앙을 달리하므로 아집을 버리지 않는 까닭에 인류 공통의 이상理想인 전일체계全一體系를 확립하지 못했다. 비록 문명이 보편화되고, 정책이 공통복리를 추구해도 종족과 집단,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시비의 근원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전일체계의 성립이 불가능하므로 유사有史이래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인류 사회에 가해지는 재앙과 화禍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이에 증산甑山은 대연력大鍊力의 결정結晶을 이루어 위로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해 수많은 신神을 다스려 교화敎化하고, 아래로는 범극範極을 보여 대중의 의지와 신념을 결합해 대덕大德의 문을 열었다. 먼저 수많은 종족의 씨족신氏族神들을 통합해 전통과 관습의 뿌리를 뽑아 거두고, 수많은 종단들의 문명신文明神을 한데 모아 나름의 아집과 신앙의 뿌리를 뽑아 거두며, 세계 강산江山의 기령氣靈을 뽑아 거두고, 원력願力을 일으켜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새로운 조화造化의 기틀을 세우고, 이를 대연력大鍊力으로 녹여 융합해 통일신단統一神團을 결성함으로써 세계의 운수를 통제하는 기틀의 축軸으로 삼았다. 이렇게 신정神政을 정리한 후 대연력권大鍊力圈을 설정해 일심一心의 본보기를 깨우치도록 하니 이것이 바로 새로운 조화造化의 기틀이며, 대덕大德의 문門으로 전 인류가 돌아가 의지할 올바른 본보기를 삼았다.
증산甑山이 이루고자한 세상은 위로는 통일신단이 세계의 운수를 거느려 다스리는 까닭에 그 흐름과 짜임을 거스르지 않아 전일체계를 이루는데 필요한 문명의 보편화, 정책의 공정성이 모두 충족되고, 아래로는 여러 종족과 지역, 종단이 일제히 서로 다른 점을 버리고 같은 점을 수용해 하나의 연력권鍊力圈에 참여해 융합하므로 대전협동大全協同의 신념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전파되어 문명, 정책과 더불어 마침내 전일체계를 완성하고 인류의 오랜 이상을 구현한 세계다.
이렇게 전일체계가 완성되어 세계연방이 연력鍊力의 대집단 위에 건설되면 종족의 구별이 사라지고, 상생相生의 대도大道가 실행되며, 지역의 경계가 철폐되고, 이상과 가치를 함께하는 사회가 형성되며, 종교적 갈등과 분쟁이 종식되어 대덕大德의 문이 열려 세계는 한 집안이 되고 인류는 동포가 될 것이다. 세계연방이 성립되면 문명이 번창하고, 정책이 지극히 공정하고 올바른 까닭에 사회 전반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된다. 집집마다 가르치고, 사람마다 배워서, 익히고 사용하기 쉬운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은 교육의 발전이며, 질병이 자취를 감추고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은 의학의 발전이며, 멀고 험한 길을 쉽게 가며, 의사의 소통에 막힘이 없는 것은 교통과 통신의 발전이며, 기후를 조절해 수해와 가뭄을 물리치고 종자를 개량해 병충해를 면하며 토질을 개량해 곡물의 수확을 증대하는 것은 농업의 발전이며, 정밀한 기계를 만들어 사람의 노역을 가볍게 하는 것은 공업의 발전이며, 깊어진 지식은 우주의 비밀을 꿰뚫고, 학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것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발전이며, 관리들이 맡은 일에 열중하고 그 처신이 깨끗해 지닌바 권력의 남용이 없는 것은 행정의 발전이며, 사회 일반의 질서가 잡히고 이웃이 서로 화목하며 폭력이 사라지고 형벌을 내릴 곳이 없어지는 것은 사회정책의 발전이며, 부富의 나눔이 균등해 사람마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은 경제의 발전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전협동大全協同의 사단공동체사회社團共動體社會가 완성되어 인류의 진보와 발전이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바로 증산甑山이 말한 선경仙境이라는 이상향理想鄕이다.
증산憎山은 그가 그리는 사회의 양상을 아주 간명하게 설명했다.『후천後天에는 천하가 한 가정이 되어 폭력과 형벌이 사라지고, 조화造化로 중생을 다스려 교화敎化할 것이니, 관리는 직위에 따라 조화로운 권한이 열리므로 분수를 넘는 행위로 인한 폐해가 없고, 주민은 원한, 잔혹, 탐욕, 분노와 모든 번뇌가 그치므로 말소리와 웃는 모습에 평화로움이 바다처럼 넘치고, 행동과 언사가 모두 도덕에 일치하며, 병과 죽음을 면해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며, 빈부貧富의 차별이 없어지고,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이 필요에 따라 옷장과 서랍 속에 나타나며, 모든 일이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천신天神이 따라다니며 응하고, 구름 위를 나는 수레를 타고 하늘을 날아 멀고 험한 곳을 다니며, 천문天文이 나직하여 오르고 내리는 것이 자유로우며, 지혜와 식견이 넓어져 과거, 현재, 미래의 십방세계十方世界의 모든 일을 통달하며, 물·불·바람의 세 가지 재앙이 사라져 경사롭고 복스러운 조짐이 무르녹아, 조화롭고 아름다운 낙원으로 변하리라』하고 또『이 후로 좋은 세상이 오는데, 바라는 대로 밥 나오라 하면 밥이 나오고, 옷 나오라 하면 옷이 나오고, 고기 나오라 하면 고기가 나오며, 불을 때지 않고 밥을 지어 먹으며,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농사를 짓게 되며, 사람의 힘을 들이지 않고 추수를 하게 되리라』했다. 이 뜻을 새겨보면 지식의 획기적인 발달, 도덕관념의 대 확장, 질서와 조직의 완전한 개선, 문명의 이기와 시설의 대대적인 완비를 이룬 생활상을 예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인류가 5만 년에 걸친 분투와 노력을 기울인 끝에 무수한 고난과 재앙을 극복하고 국제연합을 결성하는 단계에 돌입했으나 아직도 더 큰 재해와 재앙을 내포한 마지막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 이 단계의 어려운 과정을 증산甑山은 남선행주南鮮行舟에 비교해『일심一心으로 배를 부릴 것이니, 일심이 아닌 자는 타지 못하리라』고 했으니, 오직 일심인 사람만이 대연력권大鍊力圈 내에 들어서 사랑의 배를 타고 고난의 바다를 건너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2. 조국 祖國
증산甑山은 5천 년에 달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온갖 고난과 역경, 고달픔을 거듭해온 한민족韓民族을 다른 어느 민족보다 먼저 구원하기 위해 자신이 한국인으로 이 땅에 태어났음을 밝혔다.『내가 천지를 개벽하고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어 사람과 하늘의 혼란을 안정시키려고 3계三界를 두루 살펴보다가 너희 동녘 땅에서 그친 것은 고달픔에 헤매는 민중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같은 말로 한국인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며, 또 중僧 진표眞表와 원력적願力的 인연이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원시原始의 신神과 성인聖人, 부처佛, 보살菩薩이 모여 3계三界의 혼란과, 사람과 신神의 불화를 슬프게 여겨, 그 구원이 시급함을 호소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千階塔에 내려와 3계를 두루 살피기 위해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석가모니의 당래불찬탄설게當來佛讚歎說偈에 의거하여 진표眞表가 다가올 신비한 소식을 느껴 통하고, 모악산 금산사金山寺에 불상을 만들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기원하던 곳에 나타나 30년을 지내면서, 최제우崔濟愚에게 천명天命과 신의 가르침神敎을 내려 대도大道를 열게 하였더니, 제우가 능히 유교의 낡은 형상을 벗어버리고 참다운 진리를 밝혀 신령한 사람의 뛰어난 모범이 되어, 대도大道의 참 빛을 열지 못하므로, 갑자년1844에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년1871에 스스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노라』이런 연유로 한국은 증산甑山의 조국이 되고, 당연히 증산甑山은 조국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되었다. 하여 증산憎山은 자신의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일에 있어 조국인 한국을 거점으로 하고, 한국인에게 중요한 책무를 맡긴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은 수천 년에 걸쳐 자행된 전제왕조와 사대부의 수탈과 착취로 문화는 쇠락하고 민족의 원기마저 소진되어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각축장이 되어있던 터라 자주自主와 자강自强의 국력을 보전할 수 없었다. 그런 형국에서 증산甑山은 자신의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위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게 되었으므로, 잠시 굽혔다가 아주 일어나며, 작은 욕됨으로 큰 영광을 꾀하며, 일시적인 희생을 통해 영원한 번영을 구求하며, 자강自强의 힘이 없으므로 밖의 것으로 밖의 것을 물리치며以外攘外, 사람으로 사람을 제압以人制人하는 묘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 외부의 침략 세력이 소멸하거나 그 성장과 각축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보다 미래의 한국에 어떤 도움이 되거나 위해가 될지 가늠해 그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세력을 선택해야만 했다. 따라서 공사의 맨 처음에 러·일 전쟁을 촉발시켜 조선을 강점하려는 러시아의 야욕을 막고, 제1차 세계대전 일으켜 서구의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분쇄한 뒤, 마지막으로 중·일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을 패망케 해 한국을 일본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방법을 취했다.
러·일 전쟁 이후에 한동안 한국이 일본에 예속되었던 것은 부득이한 일이었으니『한국을 서양으로 넘기게 되면, 인종이 다르므로 그 차별이 심할 것이요. 또 먼저 개명開明한 사람이라 하여 오만과 학대로 살아갈 길이 없어 갱생의 길을 얻지 못할 것이요. 청淸나라로 넘기면 인종이 우둔하여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일본은 임진왜란으로부터 도술신명道術神明들 사이에 척을 지고 있으니, 일본으로 넘겨주어야 그 한恨이 풀려 일을 밝고 환하게 잘 하리라. 그러므로 일본사람에게 잠시 천하통일의 기운과 해와 달의 밝은 기운을 붙여주어 일을 잘하게 하려니와,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인仁 자字라. 만일 인仁 자字까지 주게 되면 천하가 다 저희들 것이 되고 말리라. 그러므로 어질 인仁 자字는 너희들에게 붙여 주노니 너희는 오직 인仁 자字를 잘 지키라. 그리하면 저들은 곧 너희의 큰 일꾼이라. 모든 일을 빠짐없이 잘 처리하고서도 돌아갈 때는 품삯조차 받지 못한 채 빈손으로 떠나리라』같은 말과『한국은 본시 일본을 가르치던 선생의 나라라.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神의 도道에서 조차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잠시의 소유는 될지언정 아주 차지하지는 못하리라』는 말이 모두 그런 의미이다. 그러나 일본에 의해 강점된 한국을 그 예속으로부터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증산甑山은『지금 시국이 마치 다섯 신선이 두는 바둑의 형세五仙圍棋와 같으니, 청나라와 일본이 바둑판을 벌인 가운데 서양이 두 패로 나뉘어 한 패는 청나라를 훈수하고, 한 패는 일본을 훈수하니 이것이 네 신선이요, 한 신선은 주인이니 곧 우리나라로, 어느 편을 훈수할 수도 없어 수수방관할 뿐이며, 음식을 내주는 일만 맡았으니 농사의 형편이 좋아 음식을 주는 날만 빠뜨리지 않으면 주인의 책임은 다하는 것이라. 바둑을 마치고 판이 끝나 헤어질 때는, 판과 바둑알은 주인의 차지가 되리라. 그러므로 한漢 고조高祖는 마상馬上에서 천하天下를 얻었다 하나, 우리나라는 앉아서 천하를 얻으리라』는 말은 중·일 전쟁이 일어나 세계대전으로 비화한 뒤에 그 결과 일본이 패망하고 조국이 광복을 이루게 될 것을 설명한 것이며, 갑진년1904. 9월에 함열 회선동會仙洞 김보경金甫京의 집에서 대들보에 큰 북을 달고 보경으로 하여금『병자丙子 정축丁丑』을 계속 외우면서 큰 북을 치게 하며『이 북소리가 멀리 서양까지 들리리라』하여 중·일 전쟁이 병자丙子1936년, 정축丁丑1937년에 발발할 것과, 결국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것을 말하고, 또『세월은 너를 칼과 창 사이에서 노닐게 할 것이니, 지나간 재앙 말고도 10년이 더 있느니라歲月汝遊劍戟中往劫忘在十年乎』라는 말로 전쟁이 10년 간 지속될 것을 예언했으며 또『일입유日入酉』와『칠월 칠석 십오야十五夜』같은 말로 을유년乙酉年1945. 7월 7일, 양력 8월 15일에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이 나라를 되찾게 될 것을 예언하고, 그 밖에『일본의 패망과 동시에 오랑캐의 군대가 진주하되 경성京城 이남은 범하지 못하리라』하여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의 참극인 6.25가 일어날 것을 전망했다.
이상 세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나라를 되찾아 자주自主, 자강自强의 기회를 맞은 한국은 비로소 증산甑山의 이상향理想鄕인 후천선경後天仙境, 곧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는 거점이 될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증산甑山은『청국淸國을 대국大國이라 부르지 말고 중국이라 불러라. 대중화大中華는 소중화小中華로 되고, 소중화가 장차 대중화로 되어 세계의 선생나라가 되리라』는 말과『너희들이 장차 세계의 모든 나라를 돌아다니며 가르칠 때에 어찌 후대厚待를 받을 뿐이랴. 그 때는 큰 영화와 부귀가 따르리라』『이 뒤로는 더할 나위 없는 천재天才들이 계속 배출되어 세계의 스승이 되리라』같은 말로 앞으로 맞을 선경사회仙境社會의 새로운 문화 건설이 한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세계의 모범이 될 것을 설명하고『이 때에 세상을 한 번 규정해 놓으면 그대로 5만 년을 내려가리라』는 말로 한국의 융성한 국운이 향후 5만 년 간 지속될 것을 장담했으니 우리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 가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을 통해 환란과 고통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땅의 민초民草들을 구求할 새로운 세상, 대동사회大同社會의 건설을 위해 짧은 일생을 불꽃처럼 살다 간 증산甑山 강 일순姜一淳의 사상思想을 난삽하고 졸렬한 글로 가늠해보고자 노력했으나, 그 큰 뜻과 가르침에는 감히 미치지 못했으니 이는 오로지 필자의 앎과 생각이 크게 모자란 까닭이다. 그의 가르침 가운데 빠트리고 밝히지 못한 부분은 이후로 뜻을 함께하는 후학後學과 명현明賢들의 밝은 혜지慧知에 의지하기로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의 참살이와 모듬살이
1. 우리는 그 동안 하늘만 높게 보고 땅은 낮춰 보았으나 이는 땅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그 지니고 있는 베풂의 크기와 너그러움, 넉넉함을 몰랐던 까닭이다. 앞으로는 하늘과 땅을 함께 보고 알아야 한다. 이는 바로 우리가 지닌 기존의 관점과 실체를 일체화시키는 일이다.
2. 우리는 흔히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그의 성취와 행운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의 성공이 남의 성공까지 가로챈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며 제 앞에 닥친 일을 피하지 않고 성실하게 감당해온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이룬 성취는 너 또한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므로 남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고 시기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게으름과 모자람을 탓해야 한다.
3. 옛말에 “춘무인春無仁 추무의秋無義”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살이의 모든 현상과 관계가 믿음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뜻이다. 계절의 모든 현상과 관계는 믿음으로부터 비롯한다. 계절의 순환도 그러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교유도 그러하다. 봄에 씨를 뿌림은 햇빛과 바람과 비가 충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고, 가을 추수 뒤에 씨앗을 갈무리는 것은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봄이 올 것을 믿는 까닭이다. 우리가 어린 아이를 가르치고 기르며 이웃을 돌보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4. 사람은 저마다 따로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기르고 이루는 것 모두가 제 갈 바가 있기에 그리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행하는 눈길 하나 작은 손짓 하나도 미리 정해진 바를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같은 질서를 우리는 섭리. 도수. 운명이라 부르고 그에 순응한다. “칠산 앞바다의 조기도 먹을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잡힌다.”는 말이 바로 이를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5. 오랜 세월에 걸쳐 잊혀지고 버려진 것일수록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이로움과 가치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름 없고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 해서 그 존재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로 인해 남다른 새로움과 기이함이 빛을 발할 수 도 있다.
6. 한 사람의 신분이 그의 사람됨까지 나타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를 가늠해서는 안 된다. 사람됨이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좋은 향기와 같기 때문이다. 좋은 향기는 아무리 감추어도 이내 드러나 오래도록 사람을 즐겁게 한다. 좋은 사람도 그와 같다. 정말 소중한 사람은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의 빈자리를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7. 그저 보기에 좋다거나 혹은 남의 눈에 잘 뜨인다 해서 그 사람의 언행이나 행동거지를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만약 그렇게 하면 따듯하고 넉넉한 자신의 본성은 사라지고 차갑고 옹졸한 다른 사람의 성정과 나쁜 버릇만 남아 끝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모습과 마음자리마저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모름지기 사람은 마음이나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 말과 행동에 아무 꾸밈이나 거짓도 없이 제 본래의 성정대로 행동해야 한다. 만일 남의 눈길을 의식해서 평소와 달리 꾸며 표현한다면 남은 물론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될 뿐 아니라 결국은 남과 나를 함께 해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9. 나에게 없는 것이라 하여, 꼭 필요한 것이라 해서 헛된 욕심을 품거나 함부로 취하면 안 된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언행은 반드시 무리를 하게 될 것이고 이는 곧 남의 눈과 입을 자극해 끝내는 자신을 해치는 날카로운 칼끝이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10. 돈과 재물은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으려 한다. 제가 먼저 가야할 곳을 찾아 움직이고, 그 다니는 길 또한 매번 새롭게 개척하니 한 번 지난 곳은 절대 다시 거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애써 구하거나 뒤쫓는다고 해서 얻을 수 없다. 어디서 무엇이든 열심히만 하면 필요한 만큼은 얻어질 것이니, 오랜 간구와 진력 끝에 얻은 재물과 부귀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1. 지금까지는 재물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사람살이의 원칙과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외면하고 옳지 않은 일을 자행해도 제 한 몸 건사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것이 이제껏 우리가 살아온 시절과 세상에서 통용된 법칙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이 밝아지고 저마다 생각이 트이면서 옳지 않은 일은 터럭만큼도 용납하지 않으려하니 선과 악은 행한 대로 반드시 제 값을 쳐서 되돌려 받게 될 것이다.
12. 지난 시절에는 남의 눈을 기이거나 에둘러 속이고 그 지닌 것을 능란하게 빼앗는 사람이 잘 살기도 했으나,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상에서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이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서로 주변과 이웃을 살피고 돌아보며 저보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찾아 무엇이라도 돕고 베푸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 어찌 그런 자들이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바라고 이루고자하는 세상이 바로 그러하거늘 죽은 자의 생生과 산자의 간난艱難을 어떻게 비견하고 용납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그 삶의 옳고 그름으로 가늠할 뿐이다.
13. 항시 마음을 올곧고 깨끗이 해야 좋은 일과 남 부러워할 일이 이를 것이니 제 분에 넘치도록 남의 것을 탐내거나 억지로 구하려하지 말라. 그것은 곧 도둑의 성정이고 마음가짐이다. 그런데 어찌 남보다 더 기쁘고 좋은 일이 너에게 이르겠는가?
14. 삶이 풍요롭고 지체가 높은 사람이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을 멀리하며, 남보다 많은 권력을 지닌 사람은 힘없고 잔약한 자를 애써 내치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자를 피해 교유하니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참 모습이다.
15. 그 생활이 풍요롭고 안락한 사람은 이미 자기가 지닌 바에 만족하여 그에 따르는 이름과 이익이 커지기를 바라느라 자기 주변의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다. 오히려 가난하고 힘없으며 어리석어 그 삶이 곤고한 사람 중에 이웃의 괴로움과 저보다 못한 자의 어려움을 알아 힘닿는 대로 돌보고 함께하는 자가 많으니 그들이야 말로 이 세상을 밝히고 지탱하는 등불이요 소금이다.
16.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반드시 지켜야할 바는 그리 많지가 않다. 남을 험하고 나쁜 곳으로 이끌지 않아야 하며, 남이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탐내지 말며, 상대가 천하다 하여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는다면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무엇이 되어 있든, 모두가 너를 마땅하게 여겨 너를 이를 때 분수를 알고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17. 세상에서 가장 행하기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반듯한 마음을 갖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니, 대체 어떤 마음이 반듯한 것이고 어느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매우 힘든 까닭이다. 이는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손으로 만지거나 가슴으로 느낄 수 없으니, 스스로 생각해서 부끄럽지 않으면 그 지닌 마음의 반듯함과 마음자리를 잘 지켜낸 것이라 할 수 있다.
18. 사람살이의 근본과 바탕이 되는 경우와 도리는 그 사는 곳과 풍속, 생각의 차이를 뛰어넘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피부와 언어, 종족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함께하는 모듬살이의 틀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나보다 남을 우선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해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맑고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19. 미리 가늠하지 못한 어려움과 남의 방해가 심하다 해서 자신이 오랫동안 바라고 꿈꾸다가 겨우 시작한 일을 포기한다면 아무리 쉬운 일이라 해도, 어떤 좋은 상황이 도래해도 결코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므로 지금 시작한 일을 먼저 마무리해야 한다. 아무리 심한 바람과 험한 파도라도 돛과 키를 놓지 않고 오래 버틴다면 끝내 그칠 때가 있으니 몸과 마음을 굳게 다져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잘 살피고 지금 해야 할 바를 모두 한다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20. 남의 어렵고 힘든 사정을 알아 밝게 살펴 마음을 쓰고 살뜰히 보살피기까지 한다면 이것이 바로 사람살이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이와 같이 하고 자신의 혈족과 지친들이 그리한다면 그 사는 곳이 다른 어느 곳보다 밝고 따스하며 사람 살기 좋은 고장으로 변해 사람들이 길상지지吉祥之地로 알고 너를 따르며 칭송할 것이니 세속의 부귀와 영화, 그리고 명리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21. 내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고 남을 끌어안아 다독여줄 성품과 덕이 없으면 남의 것을 빌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남의 마음을 가늠하고 그가 처한 어려움을 헤아려 위로하는 일은 스스로 말하기에 달렸으니, 남의 말을 좋게 하면 그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그의 형편이 풀리고 나아져서 그 좋은 느낌과 기운이 자신에게 이르고, 남의 말을 나쁘게 하면 그 말이 그를 해칠 뿐 아니라 종내는 그 해로운 기운과 결과가 내게 이르러 마침내 큰 화와 재앙이 될 것이니 남의 말을 할 때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뜻밖의 폐를 끼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22. 사람을 대할 때 겉으로 나타난 모양새만 보고 그 사람됨을 판단하면 안 된다. 겉모양은 얼마든지 제 마음대로 꾸며내 보는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으므로 정말 제대로 보아야 할 것은 그 사람의 마음자리와 마음가짐이다. 이 둘이 모두 올곧으면 그 겉이야 어떻든 사람노릇을 제대로 할 것이니 서로 교유하고 관계를 맺음에 있어 거리낄 것이 없다.
23. 이미 주어진 길을 버리거나 잘 가꾸고 손질한 길을 훼손하는 자는 정작 제가 필요할 때는 그 길을 갈 수 없을 것이다. 무릇 사람마다 스스로 마련하고 선택하여 반드시 가야할 길이 있으니 그를 존중하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 또한 너를 인정하고 네가 걷는 너의 길을 즐겨 따라 가보기도 할 것이니 사해동도四海同道라는 말이 어찌 한낱 말로만 그치겠는가?
24. 남의 것을 훔치는 도적이라 해도 제 안위와 이익을 먼저 구하지 않고 자신의 동류나 곤고한 이웃을 우선 챙기는 자는 그 마음 씀씀이가 계속 쌓여 남의 인정을 받고 신망을 얻어 궁극에는 제 몸에 미치는 화를 막고 피하기도 할 것이니 이른 바 “도척에게도 도道가 있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이름이다.
25.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기술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인증을 받아야 그 가치와 귀중함을 깨달아 모두 즐겨 사용함은 물론 다음 세대로 전하려 할 것이니, 그 때에야 비로소 너의 노고와 행적이 빛날 것이다. 다른 이와 어울려 벗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너의 행실과 처신도 이와 같다. 남의 말을 언제나 좋게 하면 너의 좋은 말이 쌓여 남의 인망人望에 오르고 결국 네 언행과 마음 씀의 올곧음이 드러나 그들이 오래도록 기리고 따를 것이다.
26. 사람살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제 몸의 평안이나 즐거움에 앞서 주변과 이웃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살펴 제 일처럼 돌보는 것이다. 너의 도움과 보살핌을 받은 사람이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함은 물론, 너를 아는 사람과 생판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너의 어질고 바른 마음씨와 행실에 관해 좋은 말을 아끼지 않아 남의 칭송이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를 인망人望이라 한다. 인망人望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신망神望을 얻을 수 있으니 항시 남의 간난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라.
27. 너의 보살핌과 베풂을 받은 자라야 그 지닌바 힘과 마음을 다하여 네 일을 할 것이니 남의 수고로움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하찮고 작은 것이라 해도 뜻과 성의를 다해 고마움을 표하고 보답해야 한다. 그래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든 네가 필요할 때 그들이 너를 위해 한 팔의 힘이라도 보탤 것이다.
28. 다른 사람이 비록 옳지 않은 일을 할지라도 그것이 호구를 위한 생업이라면 일부러 드러내놓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는 자의 다급한 마음을 먼저 헤아려 보는 것도 사람 사는 세상의 넉넉한 인정이다. 애써 남의 부끄러운 행동을 밝혀 탓하는 것은 주변에 큰 폐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는 사람만 알고 묻어 두어 그가 스스로 깨달아 뉘우치기를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남의 치부를 밝혀내는 일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일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29. 남이 잘되기를 바라고 그가 하는 일을 돕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있는 일이니 남이 잘되고 나서 그 남는 것만 내가 차지해도 족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주변 사람 모두가 너의 사람됨과 마음 씀을 익히 알아 네가 무슨 일을 꾀하든, 그 이해와 성패를 떠나 서로 너를 도우려 팔을 걷고 나설 것이다.
30.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자신의 뜻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비록 뜻하지 않은 실패와 좌절을 당하더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그 시기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31. 상서롭고 좋은 기운이 비치는 곳을 길성소조吉星所照라 하나 그런 곳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오로지 나보다 못한 사람의 형편을 헤아려 잘 보살피고 베풀며 제 품성을 바르게 닦아 비록 빈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차별하지 않고 대접한다면 바로 너에게 길성吉星이 비칠 것이니 모든 어려움이 스스로 알아서 피해갈 것이다.
32. 사람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생각하는 바가 스스로 조백(皁白:잘잘못. 흑백)이 있어야 한다 하여 시비와 논쟁,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 방법부터 가르치려 하나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남의 누행樓行과 시비를 가리기 전에 자신의 부족함과 무지를 깨달아 그 모자람을 먼저 채우는 일이 시급하니 제 뜻과 앎이 바르고 넓어 다른 이가 미치지 못한다면 어찌 쓸데없는 다툼과 시비가 일겠는가?
33. 어떤 경우에도 쟁송이나 전쟁에 관한 책을 즐겨 읽을 일이 아니다. 싸움이란 개인이나 무리, 나라 사이의 작은 이해와 다툼 끝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결과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심대하니, 승자의 기쁨이 큰 만큼 패자의 절망과 슬픔 또한 깊은 까닭이다. 비록 서로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 하지만 어느 한 편의 융성이 다른 한 편의 멸절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그 비정함과 원통함이 지극할 것이니 어찌 그로부터 즐거움과 가르침을 구하는 일이 옳다 하겠는가?
34. 기초가 부실하고 관리를 잘못해 곧 무너질 지경에 이른 집은 애써 수리한다 해도 그 본디 모양과 쓰임새를 되찾기 어려우니 모두 헐어 털어내고 새집을 짓도록 궁리하는 것이 쓸데없는 수고와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세상사도 이와 같아 이미 쓸모없고 고쳐도 쓸 수 없는 것은 아예 버려야 한다. 그를 아껴서 놓아버리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제 몸까지 그것에 휩쓸려 해를 입을 수 있다.
35.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서로 번갈아서 온다. 이는 사람살이가 본시 평탄하지 않고 그 높낮이가 있음을 뜻한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이른바 ‘화복禍福’이라는 말은 복福보다 화禍가 먼저 찾아온다는 것이나, 마음을 바르게 가지면 화보다 복이 먼저 이를 것이니 비록 힘들어도 잘 견디어 복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라는 가르침이다.
36. 세상의 모든 편안함과 즐거움은 그 뒤가 고르지 못하니 눈앞의 고생과 어려움을 피하거나 낙망하지 말라. 지금 당하는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해 애통하고 좌절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자는 제 몫으로 지워진 복록福祿도 받아 지켜내지 못할 것이니 그의 남은 세월이 실로 쓸쓸하고 어지러울 것이다.
37. 좋은 마음을 품고 좋은 일을 하려는 뜻을 세우고 나면 먼저 제 몸과 주변에 나쁜 일이 생기니 이는 선한 뜻과 선한 행동을 함께 이루기가 얼마나 힘든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선자善者의 문問”이다. 이 어려움을 이기고 애초에 품었던 뜻을 펴내야만 참된 선연善緣을 이은 선인善人이라 할 수 있다.
38. 남으로부터 ‘잘 산다’는 말을 듣는 데는 반드시 그만한 까닭이 있으니 대개는 남 못할 짓을 하지 않고 척을 짓지 않아 남의 원혐과 음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도와 곤란을 면하게 해주면 그의 고마워하는 마음과 좋은 기운이 너에게 이를 터이니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너를 가리켜 매우 “잘 산다.” 할 것이다.
39. 네 이웃과 주변 사람 중에 너를 생각해 제 마음과 정을 붙여 주는 것이 설령 네 소용에 닿지 않고 마뜩치 않아 거추장스럽다 하여도 절대 그 속내를 내보이지 말라. 네가 그리 생각하는 줄 알면 그가 무렴하여 네게 보내던 마음과 정을 꺾을 것이고 결국 그 꺾인 마음과 정이 큰 원혐과 척이 될 것이니 남의 정성을 함부로 내치지 말아야 한다.
40. 사람을 대하되 진실 되게 마음으로 반겨하고 잘 대우하면 비록 상대는 느끼지 못 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알아 그가 다른 곳에 가서도 좋은 대우를 받을 터이니 이는 너의 작은 수고로움으로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라 너 또한 남으로부터 옳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니 서로가 좋은 일이다. 옛 말에 이르기를 “일반지덕一飯之德도 필보必報라 했으나 나는 이를 반반지은半飯之恩도 필보必報”라고 고쳐 말하려 한다.
41. 남이 애써 하는 일이나 말이 설령 그릇되거나 잘못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너에게 큰 피해를 입히거나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드러내어 지적하거나 알리지 말아야 한다. 너의 지적으로 인해 그의 체면이 깎이고 입지가 위태로워질 것이니 그 또한 공연히 척을 짓고 원혐을 사는 일이다.
42. 네가 평소에 어떤 마음을 쓰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따라 그에 합당한 보응을 받을 것이니 길흉과 화복 또한 네가 행하고 베푼 대로 이를 것이다. 음지에서 남이 모르게 쌓은 덕이 더욱 빛날 것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널리 행한 적선이 가장 큰 이름을 얻으리니 매사에 그리하면 언젠가는 명산대천마저 그 자리를 바꾸는 큰 구경이 날 것이다.
43. 제 앞을 가로막은 큰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온갖 재주와 방책으로 난관을 타파하는 것이 비록 남 보기에는 호기롭고 장쾌할지 모르나 그 일이 남의 희생과 손해를 감내하면서 얻어낸 결과라면 그리 자랑스러울 까닭이 없다. 먼저 자신의 언행으로 혹시라도 남이 큰 피해를 입지 않는지 잘 살펴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44.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그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거듭 생각하고 또 궁구한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비록 볼품없고 취할 바 없는 물건이라 해도 함부로 버릴 일이 아니다. 반드시 소용될 곳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필히 그 쓰임새와 제 자리가 있다.
45. 작은 일이 잘못되어 큰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모든 일은 그 시작과 끝을 잘 가늠하고 지켜봐야 한다. 이름 없고 힘없는 사람의 원망과 음해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질 수도 있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그로 인해 손해를 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바다.
46. 처녀나 미망인의 사생아를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매우 잘못된 행태이다. 그들이 스스로 태생을 선택할 수 없으니 본시 그들의 잘못이 아닌 까닭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태어남은 탄생 그 자체가 축복인데 출신과 성분은 따져 무엇 할 것인가? 건강하게 키우고 잘 가르쳐 이 세상에 보탬이 되면 더 없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부터는 그 출신과 태생으로 사람의 자질과 값을 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47. 다른 사람이 만일 너를 때리면 그 손을 만져 위로하고 몸을 굽혀 정중하게 그가 화난 이유를 물어보라. 대개는 너의 언행이 바름을 보고 그 분란이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며 자신의 성급함과 경솔했음을 사과할 것이다.
48.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과 맺은 원망과 오해를 힘써 풀고, 자신을 적대시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를 마치 큰 은혜를 입은 사람처럼 대한다면 아무런 은원과 곡절이 없는 범상한 사람보다 더욱 친숙해지리니, 처음은 나쁘나 끝이 좋으면 모든 허물이 묻히고 좋은 끝만 드러나는 것과 같다.
49. 남이 내게 해꼬지를 했다 하여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이 나도 같은 정도의 해를 끼친다면 이는 곧 앙갚음이라. 앙갚음이 다시 앙갚음을 낳아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와 미움이 쌓여 서로를 용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니 이를 어찌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라할 수 있겠는가? 네가 먼저 상대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버려라.
50. 너의 사람됨을 잘 모르는 자가 너를 헐뜯고 폄하하더라도 그들의 비소와 매도를 거울로 삼아 스스로 허물이 없는지 되짚어 경계할 일이지 너도 그들과 함께 맞대걸이를 해 다투고 비난하면 너 또한 어리석은 자로 치부될 것이다.
51. 남의 코웃음과 비아냥거림을 소리 없는 응원과 격려로 알고 남의 비웃음을 면면히 이어지는 관심과 참된 성원으로 여겨라. 시련과 위험을 이겨낸 사람이라야만 참된 성취를 이룰 것이니 하늘을 나는 용龍도 용문龍門의 격랑을 이겨야 하늘에 오르고, 이름 높은 장수도 날카로운 칼과 부하들의 신망을 얻어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
52. 세상에는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과 진실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거짓과 진실은 말하는 자에 의해 정해지지 않고 그 말을 들어 새기는 사람들의 분별과 판단에 의해 나누어진다. 네가 지닌 자尺가 세상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니 네가 흔들리면 세상이 흔들리고, 네가 고요하면 세상 또한 고요해질 것이다.
53. 남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남의 비난과 질타를 잘 들어 새겨서 네 안에 갈무려 두면 크게 쓸 데가 있을 터이니 너를 위해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라. 네 안에 갈무린 남의 비소를 되새긴다면 같은 허물을 범하지 않을 것이요. 남의 잘못 또한 모두 알 것이니 이야말로 너를 단련시키는 채찍이요. 사랑의 매질이라 생각하라.
54. 자신이 뜻한 대로 이 세상을 살려면 남이 자신의 뜻과 성품이나 지닌 힘을 쉽게 가늠할 수 없게 해야 한다. ‘남에게 폭幅을 잡히지 말라’는 말이 바로 이와 같은 뜻이다. 자기는 세상을 세세히 알아도 세상은 자기를 몰라야하는 것이 바로 이런 까닭이다.
55. 무슨 일이든 그 자세한 사정과 속내를 모르면 남이 하는 일을 함부로 비방하거나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마다 각기 자신이 처한 입장과 자리에서 해야 할일이 있기 마련이고, 또한 제 뜻과는 달리 그리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의 언행을 자신의 기준과 방식으로 해석해 성급한 행동으로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인가를 두려워해야 한다.
56. 만일 네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네 뜻과 달리 저지른 잘못과 허물이 있다면 애써 감추려 하지 말고 오히려 남 앞에 드러내어 불필요한 오해와 시비의 싹을 자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그들이 비록 네가 뜻하는 바를 알지 못해 너를 비난한다 해도 실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너의 진정을 알고 네게 남다른 신뢰와 애정을 보일 것이다.
57.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이전에 우리가 살던 시절과는 다른 가치와 기준이 통할 것이니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중에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남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몹쓸 일을 당한 이들의 원망과 한스러움의 많고 적음이 네가 살아온 삶이 어떤지 가늠하는 자尺가 될 것이다.
58. 지난날 저지른 잘못과 허물이 드러날까 두려워 제 안에 감추어 두면 두고두고 네 착한 마음을 찌르고 아프게 할 것이나, 차라니 남 앞에 모두 드러내어 뉘우치며 용서를 빌면 그 과오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그리한 뒤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너는 물론 주변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59. 무릇 세상을 살면서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뉘우치지 않으면 누구나 그 벌을 면하지 못하니 큰 죄를 지은 사람은 하늘의 벌을 받고,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은 함께 사는 이웃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다. 제 잘못을 깨닫기는 쉬우나 뉘우치고 용서받기가 실로 어렵고도 힘들다. 어린 아이는 항용 실수와 잘못을 범하지만 크게 나무라지 않는 것은 늘 제 잘못을 알고 뉘우치며 반성하는 까닭이다.
60. 남의 것을 내 것으로 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나쁜 수단이 두 가지 있으니 바로 도둑질과 노름이다. 그 중에서도 노름이 더욱 나쁘니 다른 나쁜 짓은 저 혼자 죄를 짓는 것이나 노름은 남을 유인하여 함께 죄를 짓는 까닭이다. 또한 노름은 서로 속이지 않고는 그 본래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으니 죄 속에 또 다른 죄가 있다. 이는 아무리 경계하고 조심해도 모자라지 않다.
61.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과 미움은 그 세세한 내막과 감정이 오고 감을 안다 해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제 맘에 들지 않는다 하여 헐뜯거나 부추겨서도 안 된다. 오로지 자기들이 쌓은 애증과 맺은 인연에 따라 만남과 헤어짐을 가를 것이니 누구도 섣불리 아는 체 할 일이 아니다.
62.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맺는 인연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이 피를 나눈 것이니, 이들의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할 바를 천륜天倫이라 한다. 천륜을 어기거나 그 인연을 억지로 끊어낸 자는 하늘이나 사람 모두로부터 버림받아 제 한 목숨 잇기도 힘든 구차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63. 마땅히 사람으로 지켜야할 윤리와 규범을 무시하는 자가 어찌 모듬살이의 약속과 관행을 지킬 것인가?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아 남의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사는 자는 제 부모 형제로부터도 버림을 받을 것이다. “수운가사水雲歌辭”에서 “난법난도亂法亂道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인가?”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경계함이다.
64. 무릇 사람을 대하되 그 겉모습만 보고 판별하지 말라. 속으로는 온갖 모략과 음해, 남을 해치는 술수를 품었어도 겉으로는 착하고 선량해서 어떤 나쁜 일도 하지 못할 것처럼 꾸미면 누가 그 속내를 알고 조심하겠는가?
65. 사람은 우선 심지가 굳고 곧아야 몸도 마음을 따라 아무 탈 없이 건강하다. 만일 마음이 비틀리고 꼬여 바르지 못하면 몸도 마음처럼 메말라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피폐한 사람을 누가 있어 거두고 돌보겠는가? 이 험한 세상을 저 혼자서 떠돌며 살다가 삶을 마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할 것이다.
66. 먼저 제 몸을 건사하고 잘 보존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중하니 이는 부모와 지친의 걱정과 염려를 더는 일이라 조금이라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제 몸을 보중하고 안위를 튼튼히 하는 것이 바로 가까운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니 가까운 지친知親과 저에게 닥치는 위험이 모두 제 마음 먹기에 달렸다.
67.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제 자신은 물론 그 생장의 결실을 거두고 잘 갈무리해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로움義이 필요하다. 남의 어려움을 제 것으로 알고, 주변과 이웃의 괴로움을 모른 체하지 않으며, 남의 짐을 제 힘껏 덜어주는 마음가짐이 바로 그것이다.
68. 누구나 깊이 생각하면 사람으로 살아가는 마땅한 방도를 알 수 있다. 허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원뿔의 밑변에서 꼭짓점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은 무수하니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 우리네의 살림살이도 이와 같으니 어느 것이 사람살이에 가장 합당하다고 내세울 수 있겠는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아무리 깊이 궁구해도 지나치지 않으니 이를 깊이 새겨 행할 일이다.
69. 눈앞에 어렵고 풀리지 않아 답을 알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하여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아무리 어려운 난제라 해도 모두 해결하는 방법과 답이 있으니 반드시 그 해와 답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연구하라. 생각이 생각을 낳고, 누에가 실을 뽑듯 쉼 없이 길을 찾고 갈래를 나누다 보면 모두 스스로 알아 깨닫게 될 것이다.
70. 많은 종교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면서 죽은 뒤의 영원한 생명과 초절한 존재로부터 받을 은혜로움을 말하나 어찌 눈앞의 간난과 고통을 훗날 얻게 될 보상을 바라며 참아낼 수 있겠는가? 영혼의 구원 못지않게 육신의 구원 또한 시급하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바로 이를 이름이다.
71.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을 더 많이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아는 바를 현실과 상황에 맞도록 잘 응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죽은 지식의 바다에 빠져있는 쓸모없는 자者인지 자신과 이웃, 겨레를 두루 이롭게 할 수 있는 참된 지혜의 소유자인지 드러날 것이다. 참된 지혜는 될 일도 안 되게 하고 안 될 일을 되게 하는 남다른 능력으로 시대時代와 역사歷史를 꿰뚫을 수 있다.
72.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각기 반드시 자리해야 할 곳이 있으니,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사람은 그 능력과 됨됨이를 자세히 살펴봄이 마땅하다. 세상의 수많은 무리와 숱한 보금자리 중의 하나도 제 뜻대로 차지하지 못하는 무능한 자를 누가 눈여겨보고 함께하려 하겠는가?
73. 설령 남이 모르는 무엇을 안다하여도 함부로 널리 드러내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지 말고 오히려 어리석은 것처럼 행동 하라. 남들이 어찌 생각하든 그들의 실제만 알아도 그만이니, 자신이 아는 바가 모름지기 필요한 자에게 유용하게 쓰이기만 한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74.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많이 아는 것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으니 세상을 살다보면 아는 것도 모르는 척 지나쳐야 할 때가 있다. 공연히 아는 척해서 남을 무렴하게 하거나 뜻하지 않는 폐를 끼칠 수 있으니 “아는 것이 병病”이란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75.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그 마음가짐을 언제나 너그럽고 따뜻하게 하고 항시 주변을 살펴 힘없고 병든 자를 돌보는 것이 바로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지름길이라 그 품성을 쉼 없이 갈고 닦으면 바로 성인聖人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이와 다르니 행하기 전에는 충분히 생각하되 시작하면 조금의 망서림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마치 전광석화와 같아야 하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바로 “패覇의 길”이 이와 같다 한다.
76. 예로부터 특별히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하늘과 통하고上通天文 땅을 밝게 살펴下察地理 모르는 바가 없다”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으니 무엇보다 인심人心을 얻어야 한다.中通人義
“知者는 上通天文과 下察地理라 하나 그보다는 中通人義라야 하느니라.”
77. 마음을 굳게 갖고 한 가지 뜻을 세워 어떤 위험과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은 그 뜻과 마음과 믿음이 한데 뭉쳐 흩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전해질 것이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는 그 마음과 뜻 또한 잔약해 한줄기 바람에도 스러져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할 것이니 심지心志 굳은자가 세상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78. 세상에서 가장 굳세고 강한 것은 바로 진실이니 참된 바탕과 근본을 지닌 자者가 하는 일은 아무도 꺾지 못한다. 또한 진실은 반드시 사람을 감동시키고 설득시키므로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어느 시대 어떤 세상에서도 이는 변함이 없다.
79. 남이 하는 말 가운데 상리에 맞는 올곧은 말은 단 한마디도 놓치거나 흘리지 말고 잘 기억해두었다가 필요할 경우 언제라도 빌려 쓰는 것이 옳다. 매번 이같이 하면 스스로의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궁량이 넓어져 언젠가는 세상까지도 가늠하고 경영할 수 있을 것이다.
80.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범자범부凡者凡夫의 말이라도 참되고 옳다면 단 한 마디도 버릴 것이 없고, 설령 버린다 해도 잊히지 않으리니 바로 금옥金玉과도 같다. 그 뜻 또한 늘지도 줄지도 않아 한결같으니 약합부절略合符節이란 말은 이를 이름이다. 선현先賢들의 말과 생각이 바로 이와 같다.
81. 아무리 뜻이 좋고 본받을 바가 많은 말이라 해도 실제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아예 처음부터 듣지 않음만 못하다. 배움과 가르침이 각기 있어야할 곳이 따로 있는 이유와 실천궁행實踐窮行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과 소용되는 것이 서로 다른 까닭에 그 성정과 재주에 따라 맡은 바와 하는 일을 정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같은 이치다.
82. 아무리 뛰어난 가르침도 배우는 자가 마음에 없으면 제 안에 깊이 새겨 제 것으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겉으로 흘려버릴 것이니 어찌 서로의 노력이 아깝지 않으랴. 그 부질없음이 바위에 물붓기와 같다. 이를 마음에 새겨두면 필요 없는 노고를 덜 수 있다.
83. 일을 처리함에 있어 반드시 정당하게 처리해야한다. 다소의 어려움이 있다 하여 편법이나 술수를 사용하면 비록 처음에는 그 효용이 커 뛰어난 결과와 칭송을 얻을 수 있으나, 매양 그리하면 오래지 않아 너의 성품마저 편벽되고 표홀하다 여겨 사람들이 모두 피하고 꺼릴 것이니 그 외로움과 고단함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84. 작은 힘과 재주를 믿고 함부로 일을 꾸미지 말라. 세상에는 뛰어난 능력이 있으면서도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니 남이 너를 찾을 때까지 부단히 힘을 기르고 재주를 닦으라. 반드시 크고 걸맞게 쓰일 날이 있으리라.
85. 항간에서 흔히 쓰이는 "맥脈이 떨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기왕에 맺은 인연을 끊지 말고 소중히 하라는 뜻이다. 너의 호의를 무시하고, 믿음을 저버리고, 크나큰 손해를 끼친 사람까지도 내치지 않고 싸안을 수 있다면, 세상에 용납하지 못 할일이 무엇이겠는가? 악연도 인연이라 생각하고 묻어두라. 훗날 반드시 큰 도움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86.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개의치 말고 항시 처음처럼 그들을 공경하고 친절히 대하면 그들도 너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니 무슨 일이 안된다고 남을 탓하기 전에 우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라. 자신을 믿고 본래 있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는지, 남은 물론 자신에게도 언제나 정직했는지 되새겨 보라. 그리하면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허물이 눈에 보이리라.
87. 무릇 일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마음으로 임하여 올곧은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만일 편법을 사용해 손쉽게 하려다가는 오히려 일을 망치기 쉽고, 아무런 믿음도 없이 일을 행하면 다른 이로부터 농락당하기 쉬우며, 제 이익과 탐욕을 앞세우면 일을 더럽힐 뿐 아니라 제가 지닌 것조차 도둑을 맞을 것이니 이를 명심하라.
88. 자리의 높고 낮음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에 앉으면 남들은 잠시 모르더라도 네 안의 또 다른 네가 너를 몰아세우고 들볶아 스스로 물러나게 할 것이니, 공연히 자신에게 넘치는 자리를 탐내지 말고 평소에도 나보다 남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닦으면 오히려 남들이 마땅한 자리를 마련해 너를 받들어 앉히려 할 것이다.
89. 네가 몸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닦지 않고서 자신의 유익함만을 구하면 오히려 네게 해로운 일이 닥칠 것이므로 마음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 굳고 곧은 마음이야 말로 유익함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가까운 길이니 한 번 접어들면 쉴 틈도 없이 남을 위한 일만 가려서 하라.
90. 올바른 마음을 먹으면 그 기운이 네 곁에 오래 남아 삿되고 나쁜 기운을 일체 범접치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일을 대함에 있어 진실 되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어 필히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먼저 많이 일어날 터이다.
91. 우리가 살면서 그 처음과 끝은 물론 내용조차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일을 만나면 주변의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 그 전말을 추리推理하려 한다. 그러나 추리는 번거로운 생각일 뿐 일의 본말과 실제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의혹만 쌓이게 된다. 만일 네가 그런 지경에 이르면 우선 마음을 고요히 하고 그 곳에 남아 오래 참으며 지켜보도록 하라. 아무리 난해한 일도 오래지 않아 네 앞에 그 참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92. 너의 주변에 크든 작든 네가 하는 일에 남다른 성취를 이루는 자가 없음은 오로지 그 일에 마음을 모아 뜻議과 성誠과 열熱을 다하지 않는 까닭이다. 마음을 한데 모아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으니 일이 안 되는 것을 나무라지 말고 네가 마음과 뜻을 한데 모아 힘을 다하지 않았음을 탓해야 한다.
93. 예로부터 오랫동안 전해오는 말이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널리 떠돌면서도 뜻이 바뀌지 않는 말은 그 자체로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참됨과 옳음이 검증된 것이니 그를 믿고 따른다면 크게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94. 마음을 한데 모아 정성을 다하는 것을 일심一心이라 한다. 일심이 지극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으니 앞으로는 공부 중에 마음 모으는 공부가 자연 으뜸이 되리라.
95. 사람마다 복福을 빌고 구求하나 이는 잘못된 행사다. 제 몸에 이르는 화복禍福은 빌어서 어찌할 수 없으니 마음을 한데 모아 변하지 않는다면 어찌 제 몸의 화복禍福에 거리낌이 있겠는가?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바로 이를 이름이다.
96.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래도록 풍요롭게 사는 것을 제일로 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변과 이웃을 보살펴 함께하는 일이다. 즐거움과 기쁨도 함께 나누고 고통과 슬픔도 함께 한다면, 좋은 일은 늘어나고 나쁜 것은 줄어들어 너·나 할 것 없이 걱정과 근심을 잊을 것이니 그 곳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97. 네게 필요한 것이 아무리 깊고 은밀한 곳에 갈무리되어 있다할지라도 네가 마음을 모아 간절히 구求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무엇이라도 얻게 될 것이니 이는 너의 일심一心이 지극하여 사람과 귀신을 함께 움직인 탓이다.
98. 지금은 너희가 서로 더할 나위 없이 친하고 익숙하나 서로의 이해가 엇갈리고 맞부딪치는 후일에도 그리할 수 있겠는가? 그 때는 아마도 서로 눈뜨고 바로 보지도 못할 것이다. 이후에도 너희가 지금과 같이 친숙하기를 바란다면 서로가 마음을 바르게 함은 물론 더없이 맑고 깨끗하게 닦아 추호라도 서로 숨기는 바가 없어야 한다.
99. 이 세상에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정精. 기氣. 신神을 품고 있으니 이 중에 하나라도 떠나거나 잃으면 살아있어도 살았다할 수 없다. 특히 신神이 떠나면 그 본성과 형질 또한 사라져 우리가 서로를 전혀 구별할 수 없을 터이니 어느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다.
100. 신神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 움직임과 머무는 것을 정하니 언제나 번거로움과 탐욕을 버리고 마음을 한데 모아 고요히 하며 맑고 깨끗이 보존하면 항시 네 안에 너의 일부로 남아있을 것이다. 행여 정신을 잃을까 근심하지 마라.
101. 서로의 의견이 상충되고 구하는 것이 다르다 하여 싸우지 말라. 이는 너희 둘만의 단순한 다툼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너희와 서로 친하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대립하고 반목해 자칫 무리 싸움으로 번질 수 있으니 그때는 그치려 해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잘잘못도 가릴 수 없게 된다.
102. 개인은 물론 이웃 간에도 다툼이 없어야 한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고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져 개인과 무리, 집단 사이에 큰 싸움을 불러 뜻밖의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부디 서로 반목하지 말고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 화평과 친목이야말로 우리 모듬살이의 기본이며 근간이다.
103.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능력과 자질을 보지 않고 그 겉모습이나 지닌 조건, 환경으로 가늠해 저 같은 사람은 무슨 일이든 훌륭하게 처리할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나와 같이 보잘 것 없고 못난 사람이 어찌 일을 이루겠는가? 의심하고 미리 포기한다면 이는 일을 해보기도 전에 미리 망쳐버리는 것이니 그러면 잘되게 되어있던 일도 안 될 것이며, 주변에서도 저처럼 마음 여리고 힘없는 자를 어찌 믿고 따르겠느냐? 하는 의구심으로 인해 네 곁을 떠날 것이다. 오로지 스스로 연마한 힘과 역량만을 믿고 그 밖의 것에는 마음을 쓰지 말라.
104. 자신과 이웃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덜어주는 일에 네가 지닌 힘과 마음을 모두 쏟아 끝까지 노력했다면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다 해도 괜찮다. 대중의 이익을 위해 일한 것이 사실이고 그 마음이 진정이었다면 누구도 너의 노고를 폄하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다. 참되고 옳은 일이라 해서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그 같은 우리의 노력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105. 아무리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 해도 때가 무르익지 않고 주위 사람 누구도 바라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어렵지만, 아주 작고 하찮은 일이라 해도 사람들이 모두 원하고 뜻을 모으면 반드시 크게 이루어 자신은 물론 이웃까지 모두 좋은 끝을 보게 된다.
106. 옛날에는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고 그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 했으나, 이제 와서는 일을 꾸미는 것은 하늘이고 이루는 것은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를 다시 일을 꾸미는 것도 사람이고 이루는 것도 사람이라 고쳐 말하리니 앞으로는 모든 일이 이와 같이 이루어질 것이다.
107. 뛰어난 씨름꾼은 씨름판이 벌어지기 전에 벌써 많은 준비를 하니,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충분한 힘을 비축하며 몸의 상태를 최고로 만들뿐 아니라, 꼭 이겨야할 상대의 장점과 약점까지 모두 파악해서 그에 대비하니 무릇 대중의 일을 맡은 사람도 이를 본받으면 행여라도 잘못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108. 무릇 남과 세상을 위해 일하는 자者는 제 몸과 가족, 제 집안의 안위를 먼저 염려하고 걱정하면 아무런 일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제갈공명이 천하天下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성공하고서도 삼국三國을 모두 얻지 못한 것은 가족의 생계와 호구지책을 위해 뽕나무 팔 백주를 준비한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공무에 임하는 자가 공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제가 먼저 희생하지 않고서 누구의 헌신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109.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은 마땅히 강한 추진력과 자상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어 어느 한 편으로 기울거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큰 베풂과 사랑이라 해도 반드시 그 원인과 동기가 있으니,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 것도 모두 미묘하고 조화로운 기운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결과다.
110. 사람이 일을 하다 위험에 빠지면 으레 저 먼저 살기를 바라나 그 같은 마음가짐으로 일을 헤쳐 나가면 오히려 죽을 자리에 이르게 되고,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 힘껏 일하면 반드시 위기로부터 벗어날 것이니 무슨 일을 하던 마음과 힘을 다해 정성을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111. 반드시 이루어야할 일이 있는 사람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멸시와 조소도 참아내야 한다. 남의 비웃음을 격려와 칭찬으로 알고 넘어오는 간도 애써 되삼키며 그 뜻과 힘을 다한다면 무슨 일이라도 이룰 것이다.
112. 네가 모르는 것은 남도 모른다. 네가 네 일을 모르는데 어찌 생판 모르는 남이 네 일을 가늠하겠는가? 세상에 떠도는 예언이며 관상과 역술, 점占이 모두 이같이 부질없으니 절대 현혹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 같은 미혹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심하면 네게 해를 끼칠 것이니 허망함과 덧없음이 마치 한 떨기 이슬과도 같다.
113.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라. 눈앞의 작은 이해를 헤아리느라 실로 큰 이익을 놓치거나 모르고 지날 수 있으니, 언제나 일의 큰 흐름과 방향을 놓치거나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의 것이든 그 바램과 희망은 작고 하찮은 것부터 챙겨야 한다. 다른 이의 소박하고 작은 꿈 하나 채워주지 못하면서 어찌 세상을 덮는 큰 꿈을 이루겠는가?
114.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는 남·녀의 구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는 일로도, 겉모양으로도, 말씨와 행동으로도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니 사람을 대하되 있는 그대로 대하라. 사람마다 생김새와 기질이 다르다 하나 그 성정과 통하는 바는 모두 같으므로 그 차별함도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115. 사람은 어렵고 힘들 때 받았던 도움을 잊으면 안 된다. 한신韓信이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한고조가 자신의 밥을 덜어 주고, 입었던 옷을 벗어준 고마움을 잊지 못해 괴철의 말을 물리치고 제劑나라에서 독립하지 않아 죽어서도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으니, 이로 인해 후인들이 한신韓信이 유방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유방이 한신韓信을 저버렸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116.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호사와 안락함이 누구의 희생과 노고에 의한 것인지 알려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금수와도 같은 행위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평안과 자유가 사실은 수많은 선현과 이름 모를 열사들에 의해 쟁취되었음을 알고 그들의 뜻과 바램을 되새겨 잊지 않아야할 뿐 아니라, 우리도 후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더하거나 덜어내야 할지 고민하고 실행해야하기 때문이다.
117. 비록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난하고 매도하는 자者라 해도 그의 행적을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라. 만에 하나라도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다면 그의 피치 못할 사정을 헤아려 위로하도록 하라. 사람이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바로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운 신세와 처지이다.
118. 오늘날 우리가 시절과 절기를 틀리지 않고 바로 지내는 것은 모두 이름 없는 역관들의 노고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 중에서도 이마두利瑪竇의 공이 가장 크니, 큰 바다와 멀고 험한 길을 모두 건너와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남의 시절時節까지 빠짐없이 작량했으니 그 마음의 크기와 넓음이 비길 데가 없다. 무릇 사람의 마음과 뜻이 이와 같아야 한다.
※利瑪竇 - 마테오리치
119. 예로부터 천天, 지地, 인人을 삼재三才라 해서 모든 것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난 시절에는 하늘과 땅만 높이고 섬겼으니 그동안 우리가 감내한 고난과 질곡이 모두 그로부터 비롯했다 할 수 있다. 이제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천, 지, 인 셋 중에서 사람을 가장 높이 섬길 것이니 이제부터 이를 인존시대人尊時代라 이를 것이다.
120. 우리가 일을 하면서 흔히 남이 죽을 때 나는 살고, 남이 겨우 살아남을 때 나는 보다 잘 살기 위해 애를 쓰나 이는 저 혼자 살겠다는 심산이니 누가 도우랴. 나도 살고 남도 사는 방도와, 나도 잘 살고 남도 잘 사는 방법을 찾아야 비로소 모두가 함께 하는 밝은 세상을 맞고 꾸릴 수 있을 것이다.
121.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지닌바 목숨까지 모두 내던져 결판을 내야할 경우가 많지 않으니 스스로를 귀히 여겨 자신을 함부로 내던지지 말라. 지혜롭고 뜻있는 사람은 남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 공익이 침해될 때, 힘없고 소외된 자의 권리가 짓밟힐 때에만 분연히 일어나 항거하고 자기 일처럼 빈틈없이 갈무리 한다.
122. 우리가 살면서 가장 조심해야할 일이 바로 남의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니 이는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과 같다. 너를 의지해 일을 맡기는 사람은 그만한 사정이 있고 다급하기 때문이다. 그 위기를 틈타 너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을 오히려 위험에 빠트리고 네 욕심을 채운다면 그의 마음과 몸을 모두 죽이는 셈이 되니,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다시는 너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123. 남이 너를 믿지 않음을 탓하기 전에 네가 먼저 남들을 믿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와 행사가 모두 믿음에 의해서 맺어지고 이루어지니 백 마디의 아름다운 말이나 태산 같은 재물로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쉽게 얻지 못한다. 오로지 진실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124. 이제부터 네 앞에 펼쳐지는 시대는 원시반본原始反本하는 시대여서 너의 근본과 뿌리가 가장 소중하니,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출신을 속이고 부모와 조상을 욕되게 하거나 그 행적을 감춘다면, 세상 어디에도 네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어 죽기보다 더 괴로운 형편에 처하게 될 것이다.
125. 옛날에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다루어 그 가르침과 모양이 다르지 않았다. 이후로 사람들의 모듬살이가 번잡해져 공공의 일과 개인의 일이 나누어지고, 세속과 정신이 구분되어 서로 배우고 지켜야할 바가 달라졌으나, 앞으로는 사람마다 배움과 해야 할일이 하나가 되어 그 외양의 빛과 내면의 소리가 같아 누구나 쉽사리 알아보고 헤아려 지킬 수 있을 것이다.
126.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일 가운데 뜻하지 않은 결말을 보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에 곧잘 당혹해 하는데 이는 잘못된 반응이다. 세상 어디에도 우연한 결과는 없다. 뜻밖의 변수도 없다. 모든 일은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연유에 의해서만 끝을 맺는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127. 제 부모를 모시되 성의誠意를 다하면 효孝라하고, 사람을 대하되 처음과 끝이 한결같으면 신信이라 한다. 그러나 참된 효孝는 부모의 기대와 이름을 넘어서는 것이요. 참된 신信은 상대의 고통과 슬픔까지도 함께하는 것이니, 효孝와 신信이야 말로 사람살이의 뿌리요 바탕이라 할 수 있다.
128. 일을 하면서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해도 까닭 없이 남의 힘을 빌리지 말아야 한다. 더없이 가까운 사이로 설령 부모형제 사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남의 도움을 받거나 힘을 빌려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별하는 것이 바로 지혜다. 남으로부터 불필요한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점차 게을러지고 의지하는 버릇이 자라나 결국 제 스스로는 아무 일도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129. 모든 배움과 지식은 그 뿌리와 시작이 있으니 이를 등지고 거스르면 바로 배사율背師律에 걸려 저는 물론, 제 무리까지 욕을 먹게 될 것이니 함부로 제 근본을 부정하고 맞서지 말라. 한 번 믿음을 저버린 자는 아주 쉽게 다시 등을 돌릴 자者라 생각할 터이니 누가 너와 교유하고 함께 일하려 하겠는가?
130. 한 사람의 이해와 관련된 일보다 여러 사람의 이익을 고려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더디기 마련이니 매사에 조급하지 않아야 그 결과도 좋다. 아무 준비도 없이 급히 서둘러서 좋은 끝을 보기 힘든 것이 옳은 이치라면 비록 잠시 늦어지더라도 신중하게 생각한 후 일에 임하는 것이 좋다.
131. 네 집안이나 네가 속한 집단에 뜻하지 않은 위기가 닥쳐 그 존립이 위태롭다 하더라도 미리 손 놓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아무리 작은 힘이라도 버리지 않고 한데 모아 굴강하게 맞서면 결국은 자신의 굳은 의지와 주변의 도움으로 그 위기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굴하지 않는 용기다.
132. 다른 사람의 가르침과 도움을 헛되이 하지 않고 아무리 하찮고 작은 것도 제 것으로 하여 마침내 남보다 강한 힘과 뛰어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해서, 어렵고 보잘것없던 시절의 서러움을 잊어버리고 약한 이웃을 윽박지르고 침탈한다면 이는 지난날의 은혜로움을 잊는 일이라 반드시 그 끝이 좋지 못할 것이니, 이를 교훈으로 삼아 남으로부터 받은 만큼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
133. 사람을 대할 때 그의 사람됨을 보지 않고 겉으로 꾸민 외모나 지닌 가산의 풍요로움으로 선택한다면 반드시 낭패를 당할 것이니 그로부터 어떤 취할 점도 기대하지 말라. 염치없다는 말은 경우가 모자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남의 어려운 형편과 사정을 살펴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134. 시대와 역사를 막론하고 가장 오랫동안 맺히고 쌓여온 것이 바로 여인네의 한恨과 설움이니 오랫동안 남자의 완롱琓弄과 그를 위한 사역使役을 감내하면서 살아온 그 원冤이 어떠하겠는가? 앞으로는 여인네의 말을 듣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못할 것이니 이는 오랫동안 버려진 채 쓰이지 않던 여인의 지혜와 능력을 바르게 쓰는 일이다.
135. 예로부터 남존여비男尊女卑라 하여 남자를 높이고 여자를 낮추면서도 그 성정性情과 철리哲理를 말할 때는 음양陰陽이라 하여 남자보다 여자를 먼저 말했으니 이제부터 그 말대로 모든 면에서 여인이 더 우선하게 될 것이다.
136.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셋 있으니 바로 말과 글과 앎이다. 그러나 소장蘇張의 말솜씨와 이두李杜의 문장文章, 강절康節의 지식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이는 열熱과 성誠과 진정眞情으로만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음을 뜻하니, 사람을 대하되 항시 지성至誠으로 대하고 이같이 하면 가히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뭇사람의 마음을 얻고서도 이루지 못할 일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137. 사람이 작은 실패에 필요 이상의 낙담을 하고 하찮은 것에도 연연해하는 것을 나무라지 말라. 무릇 모든 사람살이가 본시 그렇다. 삶을 영위한다는 일 자체가 아주 기본적이고 작은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다. 가령 하루 세 때 어린 자식들의 끼니를 잇기 위해서 목숨까지 담보하는 일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다.
138. 그 사람의 직업과 하는 일이 날카롭고 모질다하여 무턱대고 그를 따돌리거나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혹여 사람들이 못 보는 사이 위험에 처한 어린 아이를 구하는지, 가난한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지, 힘없는 노인을 돌보는지, 평소의 언행을 잘 살펴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 사람을 그 겉모양과 헛된 소문에 의지해서만 평가할 일이 아니다.
139. 제 바라는 바가 아무리 급하고 절실하다 하여도 뜻밖의 횡재에 의지해 일을 이루려 하지 말라.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편법은 마약과 같아서 한 번 쓰게 되면 제 의지와 상관없이 남용하다가 제 몸은 물론 가까운 이웃과 친지까지 망치게 될 것이니 헛되고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제 몸 하나라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
140.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누리의 동東쪽에서는 하늘天의 뜻을 얻으려 하고, 서西쪽에서는 신神의 뜻에 부합해야 한다며 하늘과 신神을 숭모의 대상으로 해왔으나 이 모두가 부질없고 큰 잘못이다. 그들이 얻거나 이르려고 한 본래의 뜻意은, 기실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듬살이의 꿈을 끝내 버리지 않고 살아남은 민초民草들의 바램과 내일에 대한 희망에 다름 아니다. ‘인본주의人本主義’나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 또한 모두 이를 두고 한 말이다.
141.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이 본시 부질없고 헤아릴 수 없다 하나, 의미 없는 만남이 없고 사연 없는 헤어짐이 없으니, 모든 만남과 헤어짐을 진실로 소중하게 여겨 오래 간직함이 네게 유익할 것이다. 너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 무슨 인연을 맺게 될지 아무도 기약할 수 없는 까닭이다.
142. 사람이 사람을 미루어 알고 이해하며 믿기까지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도움과 성원이 있기 마련이니 한 번 남의 신망信望을 얻으면 함부로 저버리거나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남의 믿음 뿐 아니라 그들의 꿈과 바램, 절대 버리지 못할 비원悲願까지 한데 모아 짊어진 것이니, 비록 제 몸과 제 마음이라 해도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언제나 남의 뜻까지 함께 아울러야만 하기 때문이다.
143. 모든 사물은 그 본질과 형상이 있고, 모든 일은 그 시작과 끝이 있으니 그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을 가늠할 수 있으면 무릇 세상을 경영할 궁량窮量과 지혜를 품었다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힘 있고 가진 자에게만 너그럽고, 가난하고 어리석은 자에게는 모질다면 아무리 넓은 도량과 뛰어난 지혜를 지녔다 해도 소용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람살이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144. 예로부터 일이 이루어지려면 하늘과 땅의 뜻이 맞아야 한다 하나, 비록 그 뜻이 굳다 해도 마땅히 그 일을 이루어 낼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하늘과 땅만으로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으므로 천지天地가 함께 사람을 길러내어 그로 하여금 그 본래의 뜻과 도리道理를 펼치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자연까지도 마침내 때가 이르러도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할 것이니 무릇 사람이란 존재가 이토록 귀貴하고 중重하다.
145. 사람의 명命을 다투는 급한 일이 있다면 그 곳이 아무리 멀고 험하다 해도 망설이지 말고 달려가라. 그 곳에 가면 뜻하지 않은 이로움이 있고, 가지 않으면 피하지 못할 어려움을 만날 것이다. 네가 무슨 특별한 복福과 인연因緣이 있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146.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좋은 시절은 잠깐이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길다. 원하는 것을 얻거나 이루는 일이 모두 이와 같으니 무슨 일에 임하든 마음을 굳게 하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이루는 것 없이 몸과 마음만 분주하고 피폐하리니 세상 어디에도 쉬운 일이란 없다.
147. 마음이 급하고 욕심이 넘치면 마땅히 이루어질 일도 무산되고 말 것이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매사에 마음을 편히 갖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일을 해도 본래의 뜻과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어떤 분란이 일어도 자신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좋은 끝이 있을 터이다. 이것이 곧 바른 마음과 넓은 도량이다.
148. 세상에 사람의 머릿수가 많듯이 그 뜻도 제 각각이니 이념과 주의와 단체가 많음을 탓할 일이 아니다. 가을이 오면 모든 곡식과 열매를 거두어 갈무리하듯 숱한 이념과 주의들까지도 반드시 제 자리를 찾아들 것이니, 그 어지러움과 혼돈을 구태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49. 사람들이 혹여 너를 일러 말하되 폭幅을 잡기 어렵다 하면 그를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칭찬으로 알아들을 일이다. 사람이 마땅히 폭幅을 잡기가 어려워야지 쉽사리 남에게 폭幅을 잡혀 깜냥거리가 된다면 무슨 일인들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남은 물론 가까운 지친至親들의 믿음마저도 얻기 힘들 것이다.
150. 비록 남이 억지로 트집을 잡아 싸우려 할지라도 마음을 너그럽게 써 일부러 지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해 마주 상대해 싸우는 것은 그 사람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이 일부러 남의 어리석음과 모진 심사를 닮는 것이나 매한가지라,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외롭고 힘든 싸움을 치르게 될 수 있으므로 지고도 이기는 법을 배우라.
151. 반드시 믿어야할 사람이라면 그를 믿기를 활을 당기듯 하라. 활을 너무 성급하게 당기면 꺾어지기 쉬우므로 서서히 진중하게 당겨야 한다. 사람을 믿는 일도 이와 같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천천히 그 품성과 속내를 알며 서로 익숙해지면 믿기 싫어도 스스로 믿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니 그 같은 믿음이야 말로 참된 믿음이다.
152. 스스로 아무 잘못이 없다 하여도 일부러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자신을 경계하고 나무라며 조심한다면 그 같은 마음가짐이야 말로 세상살이에 아주 큰 도움이 되리라. 남 앞에서 겸손하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혹 잘못이 없는지 되짚어 살핌은 물론 남의 어려운 사정까지 헤아린다면 어찌 사람들의 신망信望을 얻지 못하겠는가?
153. 큰일을 맡을수록 작고 하찮은 것부터 챙기고 살피는 것이 일을 처리하는 옳은 방법이다. 세상이 뒤집히는 큰 변란도 그 시작은 매우 섬소한 법이니 어찌 작은 일이라 하여 등한시 하겠는가? 작은 일을 크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154. 일을 할 때 지닌 바 열熱과 성誠을 다해도 이루어지기 어려우니, 부디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라도 귀히 여기고 발끝에 밟히는 풀 한포기 마저 소중히 여긴다면 가벼움이나 무거움이 무슨 차이가 있으랴. 세상만사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있으니 진실로 귀하고 천한 것의 차이를 알 수 없다. 오로지 정성과 마음을 다하면 족하다.
155. 선악善惡과 미추美醜는 미리 정定해진 바가 없다. 처한 시대時代와 상황狀況에 따라 그 중심中心과 외양外樣이 바뀌니 마치 흐르는 물과 같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형상이 다르다 하여 그 본래의 내용과 성질까지 달라지겠는가? 담아낸 그릇이 제 각각이라 하여 물이 물 아닐 것인가? 도道와 리理도 이와 같다. 그 스스로는 언제나 한결같은데 그를 바라보는 우리 스스로 오만과 편견, 자존과 능멸, 아집과 독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제 안內의 자尺로 가늠하고 나누려 할 뿐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다.
後 記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사상思想은 서구의 대립적 세계관이었다. 이 대립적 세계관은 지배와 피지배, 침략과 복속,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함으로써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그로부터의 해방은 인류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쟁취해야 할 초미의 과제가 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사상은,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은 서구가 아니라, 수 세기에 걸친 서구의 가혹한 침탈에 시달리면서도 한 가닥 끈기로 그 고통을 견뎌낸 동양의 문화적 유산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세월 동양 문화의 창달과 전승의 중심으로 자부해온 우리가 자신의 문화적 전통과 유산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새롭고 위대한 사상의 씨앗을 찾기 위해 깊은 탐색探索과 궁구窮究를 거듭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해원解愿과 상생相生, 대전협동大全協同의 전일체계全一體系를 수립해 대동사회大同社會라는 새로운 이상향理想鄕을 건설하고자 했던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의 사상을 주목하게 된 것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증산사상甑山思想에 대한 제대로 된 입문서나 개론서 하나 없는 것이 증산교계의 실정이다. 증산甑山의 사상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서로는 고故 이 정립李正立 의『대순철학大巡哲學』이 있으나 1947년에 집필, 간행된 까닭에 국한문 혼용의 문어체가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어려운 한자와 숙어가 많아 일반인은 그 내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마저도 오래 전에 절판되어 전문 연구자들조차도 책을 구하기가 힘든 열악한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그 본래의 뜻을 크게 왜곡하거나 호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장을 쉬운 말로 바꾸고 주석을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새롭게 편술編述하기로 했다. 본고本稿는『대순철학大巡哲學』초판본을 텍스트로 삼았으며 그 중에서『의통醫統』편을 삭제하는 대신『대순전경大巡典經』에 수록된 증산甑山의 교훈敎訓 가운데 비교적 우리네 일상日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법언法言』편의 내용을『사람 사는 세상의 참살이와 모듬살이』라는 이름으로 덧붙였다. 그 이유는『의통醫統』편編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증산사상甑山思想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은 쉬이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순철학大巡哲學』을 저술著述한 고故 이정립李正立의 호號는 남주南舟 본명本名은 성영成英으로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서 1895년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목포 영흥소학교·중학교를 거쳐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지리역사학을 전공했다. 1919년 형兄 상호祥昊의 권유로 그가 신봉하고 있던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잡지『보광普光』의 주필 및 사장직을 맡았으며, 1924년 보천교에서 인수하려 했던『시대일보時代日報』주필을 지냈다. 그러나 이후 보천교의 교주敎主였던 차경석車京石과 뜻이 맞지 않아 그 자리를 사퇴하고 그 뒤 10여년 에 걸쳐 중국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사학·철학·증산사상 등을 깊이 연구했다. 1942년 11월 임경호林敬鎬, 문정삼文正三 등과 일본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견하고 수운水雲·증산甑山 양 교계敎界의 각 교단을 연합하여 광복 후 민족 신앙의 중추적인 지도세력을 양성하기위해 1943년 동아흥산사東亞興産社를 설립했으나 일본 경찰에 붙잡혀 대구형무소에 3년간 수감되었다가 광복 후 출옥했다. 8·15광복이 되자 형 상호와 함께 서울에서 대법사大法社를 조직해 증산교의 보급에 진력했다. 1949년 주간 국민신보를 창간해 경영하였고, 1952년 전북 전시연합대학 강사를 지냈다. 1967년 형이 사망하자 증산교의 교주가 되어 종단을 이끌었다. 형兄 상호와 함께 수집, 편찬한 『대순전경(大巡典經)』은 증산교의 기본 경전이 되었으며, 그가 집필한『대순철학』은 증산사상을 철학적 차원에서 해석한 최초의 책으로 증산사상甑山思想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로 인정받고 있다. 그 밖에도 『종교학신론』·『민족적종교운동』·『금산다화金山茶)』·『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증산교사』와 미출판 원고로 『대순전경해설』·『증산교교리학』·『연력학(鍊力學)』 등의 저술이 있으며 1968년 11월 30일 몰歿했다.
특히 그는 일생에 걸쳐 깊은 연구와 천착을 통해 증산사상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정립하였으며, 단군-수운-증산으로 이어지는 삼단신앙체계三段信仰體系를 수립, 민족종교의 주체성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 말기의 역사적인 격동기에 척박하고 피폐한 이 땅에 태어나 해원解寃과 상생相生, 후천개벽後天開闢을 통해 만인萬人이 함께 어울려 고루 잘사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건설을 희구했던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의 큰 뜻과 열망을 알아차리는데 이 글이 터럭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끝으로 원문原文을 바꾸어 옮기는 과정에서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함의含意와 본래의 뜻을 그르친 부분이 있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편술자의 몫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13. 6.
李 永 玉
지은이
李 正 立 호號는 남주南舟 본명本名은 성영成英으로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서 1895년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목포 영흥소학교·중학교를 거쳐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지리역사학을 전공했다. 1919년 형兄 상호(祥昊)의 권유로 그가 신봉하고 있던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잡지『보광普光』의 주필 및 사장직을 맡았으며, 1924년 보천교에서 인수하려 했던『시대일보時代日報』주필을 지냈다. 그러나 이후 보천교의 교주敎主였던 차경석車京石과 뜻이 맞지 않아 그 자리를 사퇴하고 그 뒤 10여년 에 걸쳐 중국 등 여러 곳을 주유하며 사학·철학·증산사상 등을 깊이 연구했다. 1942년 11월 임경호林敬鎬, 문정삼文正三 등과 일본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견하고 수운水雲·증산甑山 양 교계敎界의 각 교단을 연합하여 광복 후 민족 신앙의 중추적인 지도세력을 양성하기위해 1943년 동아흥산사東亞興産社를 설립했으나 일본 경찰에 붙잡혀 대구형무소에 3년간 수감되었다가 광복 후 출옥했다. 8·15광복이 되자 형 상호와 함께 서울에서 대법사大法社를 조직해 증산교의 보급에 진력했다. 1949년 주간 국민신보를 창간해 경영하였고, 1952년 전북 전시연합대학 강사를 지냈다. 1967년 형이 사망하자 증산교의 교주가 되어 종단을 이끌었다. 형兄 상호와 함께 수집, 편찬한 『대순전경(大巡典經)』은 증산교의 기본 경전이 되었으며, 그가 집필한『대순철학』은 증산사상을 철학적 차원에서 해석한 최초의 책으로 증산사상甑山思想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로 인정받고 있다. 그 밖에도 『종교학신론』·『민족적종교운동』·『금산다화金山茶)』·『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증산교사』와 미출판 원고로 『대순전경해설』·『증산교교리학』·『연력학(鍊力學)』등의 저술이 있으며 1968년 11월 30일 몰歿했다.
특히 그는 일생에 걸쳐 깊은 연구와 천착을 통해 증산사상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정립하였으며, 단군-수운-증산으로 이어지는 삼단신앙체계三段信仰體系를 수립, 민족종교의 주체성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옮긴이
李 永 玉 소설가, 시인. 1950년 지은이 李 正 立의 장남으로 태어나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 곧 이어「문제작가 20선집」에 작품이 수록될 만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80년대 초반 안정적인 교사직을 떠나 사회과학 출판사「忍冬」을 차려 광주항쟁을 다룬 최초의 시집「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와 소설선집「일어서는 땅」, 김남주의 옥중시집「나의 칼, 나의 피」등을 이곳에서 펴냈다. 그 후 서슬 퍼런 출판검열의 풍토로 인해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한 그는 지금껏 온갖 세상사의 현장을 풍운처럼 주유하며 살아왔다. 그가 발표한 작품으로는 소설집「南으로 가는 헬리콥터」「아주 특별한 꿈」, 시집「산길」「네게 江같은 기다림」이 있으며 ‘아주 특별한 꿈’과 ‘네게 江같은 기다림’은 옥중에서 출판했다.
이 책은 그가 작가로서, 시인으로서, 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오로지 문업과 지워진 소임에 자신의 재능과 열정, 시간을 쏟아 붓지 못한 悔恨과 寃念의 결과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에 그는 선대의 유택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95 의 古家로 낙향해 선친의 저술과 미발표 유고를 정리·편술하는 한편, 이제껏 밀쳐두었던 자신의 붓끝을 가다듬는 일에 힘을 쏟으면서 칩거하고 있다.
연락처 : e-mail : okl22@hanmail.net htt://blog daum.net “글 내리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