寫眞과 靜物
2
일반버스가 닿는 곳까지 나오기 위해서는 너 댓 시간 쉬지 않고 걸어야하는 그런 곳으로 면회를 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민통선 까지도 꼬박 두 시간이 걸리는 곳에서 그들은 월동용 막사의 지붕을 덮는데 필요한 억새를 엮어내고 있었다. 산골의 겨울은 빨리도 다가왔다. 모두들 화목작업을 나가고 비리비리 하다고 떨궈 놓인 몇과 함께 억새풀을 묶던 녀석은 민통선의 초소로부터 면회소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고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져서 일장피복함의 옷을 꺼낸다. 구두를 닦는다 하며 설쳐대다가 끝내 비명처럼 도움을 요청했다.
“개쉐끼들- 구경 그마하고 쬐매 봐주고.”
달성인가 대구라던가 그 먼 거리를 날아 면회를 온 녀석의 여친은 어지간히 피가 뜨거운 여자인가보다 생각하며 도환을 속옷을 꺼내주고 면도기로 수염을 밀어주고 때빼고 광내라고 다이얼 비누도 줬다. 한동안 수선을 떨던 녀석은 ‘내 퍼떡 갔다 오꾸마’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막사 밖으로 엉덩이를 실룩이며 뛰어갔다. 무던히도 좋은 모양이었다. 화가 나면 80킬로의 덩치를 흔들면서 얼굴이 빨개져가지고 발음마저 흐트러진 경상도 사투리를 찌걱찌걱 내뱉는 녀석에게도 참한 아가씨가 있었덩 모양이다.
가까운 산마루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 아래 계곡에서 비둘기가 울었다. 비둘기 울음을 따라 구구거리며 산바람이 몰려왔다. 황토 빛으로 물든 산과 계곡, 능선 너머 다시 긴 능선을 따라 비상도로가 뱀처럼 구불구불 기어가는 산모롱이, 들플을 헤치면서 녀석은 뜀뛰듯 걷고 억새를 고르던 손들이 히히거리기 시작했다.
“한 꼬쟁이 잘 하겠구나 야”
“잘 빠졌다 이 자식아”
“오호, 그대 이름은 짝순이-”
“끼힛- 꽈배기 꽈배기”
“으응- 이제 그만, 내는 못 그만… 끼끼 끼히 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새를 추스르는 손들은 그렇게 까칠할 수가 없었다.
부러웠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녀석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앞뒤가 꽉 막힌 산고랑에서 한겨울을 나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 모두를 잔뜩 가위 누르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꼴짝까지 멀고 먼 길을 마다않고 면회를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자는커녕 화장품 냄새조차 맡기 힘들다며 심란해 하는 그들 중의 누군가를 찾아 면회를 왔다는 것이다. 고향 역. 고향이 삼수갑산만큼이나 멀게 느껴져 그곳으로 부대가 이동한 뒤에는 편지 쓰는 일마저 그만두었던 그들이다. 한 길 넘게 쌓인 눈 속으로 교통호를 파고, 눈 녹인 물로 밥을 짓고, 멀리 띠처럼 둘린 철책을 바라보며 눈사람 보다 둔한 몸짓으로 포구수정을 할 일이 모두를 한없이 맥 풀리게 하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면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문득 손을 털고 일어났다. 하나 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막사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막사 안에는 침상이랍시고 그것도 겨우 절반 남짓 깔아 놓았지만 그래도 천막보다야 낫겠지 하며 잠자리를 옮긴지 며칠 되지 않았다. 송진 냄새가 풀풀 나는 마룻바닥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고향으로 가는 편지를 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