寫眞과 靜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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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능선마다 골짜기마다 이름 모를 산새들이 울었다. 산새들은 언제나 제각기 운다. 이맘때의 해거름 산안개 속에서는 그 소리가 더욱 선연하다. 오색딱따구리는 따닥, 따닥. 수리부엉이는 푸호, 푸호. 박새는 쯔비쯔비 쥬쥬 치히, 치히. 휘파람새는 호오오, 호케코, 케코, 케코, 호오오, 호케코. 개똥지바퀴가 키요롯 키요롯, 키찌, 키찌, 키찌. 소리는 존재 자체를 규정한다. 우리가 소리를 통해 그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도 지금 들리는 새소리는 도무지 분별할 수가 없다.
그들은 모두 지네 집을 고향역이라 불렀다. 어머니가, 살가운 누이가 있는 고향에서는 어쩌면 어여쁜 가시네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짚 북더미, 새끼토막 사이에서 도환은 하염없이 먼산바라기를 했다. 편지, 그들처럼 편지를 보낼 곳이 없었다. 가난한 어머니, 가난을 숙명인양 죽음이라도 맞듯 살아가는 동생,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온갖 야하고 잡스런 일까지 도맡아하면서 나다녔던 학교, 그래도 어머니나 동생이 감당해야 했던 고생에 비하면 도환이 맞닥뜨린 어려움은 거의 호강에 가까웠다. 그네들이 한 끼 식비를 아끼려고 점심을 거를 때 그는 어찌됐건 술을 마셨고, 법석이는 시장바닥에서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아귀다툼을 할 때 다방 구석에서 담배를 피웠다. 아무리 담배를 피워대도 그에게 보랏빛 내일은 없었다. 돈도 빽도 없는 주제에 대학은 무슨…? 하는 생각에 학교를 때려치울 려고 했을 때 막내 녀석이 주먹을 움켜쥐고 악을 썼다.
“형마저 장바닥에서 악다구닐 써야 속이 시원하겠어?”
녀석만큼 그악스럽지 못했던 도환은 다시 음화를 팔아 학비를 마련했고 포르노 영화를 돌리면서 꾸벅꾸벅 학교에 나갔다.
그놈의 학교. 그 잘난 강의실에는 도환처럼 가난한 녀석이 없었다. 낡은 군용잠바 하나로 사계절을 때우는 도환에게 그들은 더없이 화사한 꽃무더기였다. 거개가 유복했고 그래서 아이들 대부분이 사치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도환은 그들에게 보기에도 민망한 음화를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깨끗한 봉투에 정성들여 밀봉한 도환의 사진을 살펴보지 않은 아이는 없었나보다. 이튿날 무슨 끔찍한 벌레라도 마주친 것처럼 소스라쳐 외면하는 계집아이들을 보면서 도환을 끝도 없이 낄낄거렸다. 그 계집애들 가운데 난데없이 도환이 좋아졌다는 아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