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 아름다운 것들을 위하여 - 오직 자신을 위한 변명

2009. 12. 9. 09:20카테고리 없음

 

 현실에 안주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늘 자신을 돌아보고 경계한다. 혹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한 것은 아닌가? 반드시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들을 무심히 스쳐 지나지 않았는가?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되짚는다.

 

 남의 잘못과 실수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면서 정작 자신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남의 눈에 든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제가 범한 잘못의 크기와 근원을 알면 남의 잘못은 당연히 고칠 수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면 스스로에게 “나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라. 그리고 그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해질 때까지 사유의 바다 깊숙이 침잠하라. 그러면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너를 만나게 될 것이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무얼 하고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이 같은 의문과 번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그 때에야 비로소 네 삶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을 하기에 앞서 반드시 자기 내부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있는 곳, 자기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고 어떤 길을 걸어 어디에 도달할 것인지 가늠하고 준비할 수 있다.

 

 너는 네 안의 모든 것들, 심지어 고통까지도 이해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겸손은 잘 익은 열매를 매단 과일나무가 가지를 드리우듯 자신을 낮추는 일이다. 자신을 소중히 하는 사람만이 남 앞에서 겸손할 줄 안다.

 

 자기를 기준으로 남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한 자기반성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미혹을 반성할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엄정한 자기반성만이 한 사회와 시대의 일그러진 모습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그것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같은 경로를 통해서만 사회발전이 이루어진다.

 

 나는 무심코 한 말이 상대에게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마음에 깊고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깊이 생각하고 가늠해서 하는 것이 바로 남과 자신을 함께 위하는 일이다.

 

 하루를 살면서 자신에 관해서 진실로 깊이 생각한 적이 있는가? 지난 하루의 행적이 자신의 평소 마음가짐과 같은지 돌아보았는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처신을 달리 하지는 않았는가? 자신의 한결같지 못함을 깨닫고 몸과 마음을 다잡아본 적이 있는가? 하루가 겹치고 그것이 연이어져 우리네 삶을 이루는 것이니 그 하루를 진중하게 보낸다면 우리의 일생 또한 그와 같을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해라. 너는 이미 네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받아들이고 거부할 것인지 알고 있다. 오늘 아침 한 송이의 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 향기와 모양을 느껴보라.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이나 아이들의 쟁그러운 웃음소리, 투명한 햇빛에 반짝이는 가로수의 이파리를 바라보라. 그동안 내내 네 곁에 있었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그 모든 것들이 새로워 보일 것이다.

 

 네가 원하는 순간마다 부유하는 너의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그 능력과 사실을 소중하게 간직하라. 어느 때, 네가 정말 지치고 힘들 때 잠시라도 마음의 평정과 평화를 맛볼 수 있을 터이니. 진실로 너를 자유롭게 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너 자신과 네가 지닌 능력뿐임을 명심하라.

 

 모든 사람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자기 내면이 아니라 밖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하여 가족이나 친구, 마음이 통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남의 도움을 받고 나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그러나 너의 영혼은 네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독립적인 존재일 때에만 네게 박수를 보낸다. 영혼의 박수를 받을 때 비로소 너는 진정 자유로워지고 충만한 사랑과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너는 항상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 지각까지도 공유해야 한다. 곧 자신의 한계와 경계를 뛰어넘어 이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너로 하여금 보다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하는 것은 바로 진실을 분별하는 눈이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너의 의식을 깨우고 가슴을 여는 지름길이다.

 

 너는 너의 행복, 승리, 슬픔, 이해보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승리, 슬픔, 이해를 기억하도록 해라. 네가 알지 못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의 낯선 생각까지도 네 경험과 지식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인간의 경험은 서로 공존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공존과 공영의 생활 방식을 수용하고 타인을 자신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외부의 사건이 마음속으로 밀고 들어와 특별한 반응을 요구할 때 특히 그렇다. 그러나 그 순간을 무사히 넘기면 네 의식은 고요해진다. 움직이고 반응하는 대신 네 안으로 진입한 것을 가만히 주시할 것이다. 모든 움직임은 일어났다가 바로 사라진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관찰자일 때 비로소 너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변하지 않고 언제까지라도 남아있을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아自我이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상황과 사태를 관장한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하고 동일한 원천에서 규율되고 조직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내밀한 질서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행동한다. 한 번에 하나의 단계와 상황을 생각하는 대신 원인과 결과라는 전체적인 다발을 배열하고 관장한다. 마음을 가누고 치유하는 방법은 모든 방향 어떤 상황, 어느 곳에서도 가능하다.

 

 인간의 욕망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무르익은 뒤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는 동안 욕망은 의식의 모든 층위와 단계를 거친다. 의식의 심저에 묻어둔 상처나 잘못된 믿음, 회한까지 두루 만나면서 욕망의 형태는 보다 선명해지고 확연해진다. 네 의식 안에서 네가 원하는 결과를 성취했던 경험이 있다면, 너는 네 안의 욕망을 어떻게 제어하고 조절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절제된 욕망은 또 다른 성취를 네게 가져다 줄 것이므로…

 

 우리의 자아自我는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변형시켜서 받아들인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광범위하게 수시로 일어난다. 모든 대상에 대한 자기화의 현상이다. 이 같은 자기화를 통해서만 우리는 자기 이외의 것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된다.

 

 너를 너이게끔 하는 자아自我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으로 살아남는 것, 강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현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자아의 목적은 너무 제한적이다. 무언가를 버리는 것은 보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세계를 내놓는 것이다. 작은 것에 너무 집착하면 정작 필요한 것을 잃는다.

 

 보다 큰 힘을 얻기 위해서는 머리를 숙이고 용서하며 수치심을 견디고 싫은 것도 허락해야 한다. 힘이란 주위 상황을 통제해서 자신에게 이로운 상태로 만드는 능력이다. 곧 다른 사람을 자신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뜻대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진정으로 강한 힘은 너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다. 너의 내면에 있는 힘의 원천을 발견한다면 아무도 너를 가로막을 수 없다.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할 때 너의 내부에서는 아주 특별한 변화가 일어난다. 치유의 빛을 얻기를 원한다면 남으로부터는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과 착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과 생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창조적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감각, 네가 부정하는 모든 결과까지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태세와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변화는 너 자신을 들여다보고 되새기는 일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우리 삶의 강江은 쾌락과 고통의 사이로 흐른다. 만약 네가 그 물살에 휩쓸렸다면 그 흐름에 몸을 맡겨라. 물의 흐름이 무언가를 가져오고 다시 가져갈 때까지 그냥 지켜보라. 존재 자체를 바라보고 꿰뚫어 보라는 것이다. 어떤 고통이나 감정의 동요도 너의 참된 자아가 아니다. 너만이 살아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지금 이 순간만이 살아있는 너의 시간이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 움직임의 원인이 인간의 내부에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기 성찰을 통한 철학적 인식의 틀을 만들게 된다. 그 움직임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때 사람은 초월적 존재를 필요로 한다.

 

        

             < 山 >

 

산은 언제나 한가롭게 누워

하늘을 보고

들을 보고

눈 아래 작은 무덤도 보고

 

목메인 수목들의 손짓이나

바램

돌아가는 세상의 끝을 살핀다.

 

하루 한 번 地動치는

산울림이

피보다 진한 노을을 뱉고

구름에 싸인 바람 곁에서

바다보다 깊은 지혜를 배운다.

 

몰아드는 파도와

서걱이는 가랑나무

매운 연기에 취해

 

무수한 하늘

무수한 바다와

우리네 초라한 무덤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