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 아름다운 것들을 위하여 - 잃어버린 시간

2009. 11. 20. 22:22단상

 너를 스쳐 지나간 것, 네 앞을 지나 흘러간 것들은 이미 너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덧없이 사라져간다. 시간의 장막 너머에는 너를 앞서간 모든 것들의 무게와 양감, 의미가 쌓여있다.

 

 아들아! 이제 너의 시대, 너의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너의 시대가 어떤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네가 어떻게든 그 시대를 살아 내리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서로 사랑하리라는 것.

 

 우리에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존재했던 시간과 존재할지도 모르는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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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는 언제나 확실하고 뚜렷하지만 미래는 흐리고 모호해서 가늠하거나 짐작할 수가 없다.

 

 미래는 오래된 과거다. 이는 사상의 시간적 존재형식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사상은 시간적 존재형식 뿐만 아니라 공간적 존재형식도 갖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지금 네가 만나고 있는 것은 아무리 꼭 같다 해도 과거에 만났던 것이 아니다. 물은 흐르기 마련이다. 시간도 그렇게 늘 흐른다.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통일체로 인식하고 자각함으로써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옛것에는 새로운 것을 일깨우거나 변화를 가로막는 억지가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한 사람의 삶에 그가 살았던 시대時代의 질質과 양量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가가 그 삶의 치열함과 당당함, 깨끗함을 판별하는 기준이라 한다면 우리의 삶이 짊어진 이 시대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것인가?

 

 변화와 개혁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와 이러한 요구를 일반화하고 사회화하기 위한 논의는 어느 개인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무이고 동시대인으로서의 소명이다. 그래서 고古代로부터 현대現代를 관통하는 새로운 문명론의 구축과 등장은 우리 모두의 열망이다.

 

 자기가 사는 시대와 사회의 문제의식을 통해 역사를 재조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우리에게 어느 시대 어떤 곳에서도 변함없이 인간과 사회를 함께 관장하고 있는 공통의 과제를 변함없이 관철하고 해결하는 일이다.

 

 흔히 과거는 흘러가버린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를 추억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한번 지나간 뒤에 다시 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매우 왜곡되어 있다. 시간이란 대개 실재가 아니라 실재의 존재양식이다. 시간은 과거로부터 흘러와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담론은 다가오는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래담론은 예측과 감지가 불가능한 요인들에 의해서 졸속으로 결정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편의상 사유思惟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별하는 것은 실체를 반영한 객관적 구분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밀접하게 연계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조건화하며 제어하는 하나의 통일체다. 따라서 시간은 통일성과 전체성에 입각해서 인지하고 조망해야만 한다.

 

 현실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과거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 같이 그 자리에서 함께 피고 지는 꽃일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있는 자리에 서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함께 맞이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고 진정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時代는 時間이 아니라 歷史를 통해서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