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8. 22:28ㆍ소설
빛과 소금 그리고 그림자
천변은 한껏 달아 있었다. 방금 포장을 끝낸 도로는 더했다. 검은 콜탈 위에서 잘게 부서진 햇빛이 마구 튀어 오르고 새로 깐 보도블럭에서는 햇빛을 따라 마른 먼지가 피어 올랐다. 천변을 따라 뻗은 도로가 넓은 호(弧)를 그리며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거리는 텅 빈 채였다. 토요일 오후 한 시의 땡볕이 정수리에서 호닥거렸다. 비는 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키 작은 갯버들이 까맣게 타 들고 있었다. 천변의 잡풀들만 타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목도 탔다.
제한 급수를 시작한 것이 벌써 한 달 전이다. 수도꼭지를 틀면 시뻘건 녹물이 째잘거리며 기어 나왔다. 어쩌다 한 모금 입에 머금기라도 하면 울컥 토악질이 나오곤 했다. 후레자식들 이런 물을 먹으라는 거여? 욕지거리가 집집마다 넘쳐 났다. 그런 물이나마 고지대 사람들은 없어서 한이었다, 골목마다 ‘지하수 개발’이란 간판이 나붙었다. 지하수라고 파는 족족 물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옛날엔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 임금이 돼지 머리 앞에서 절을 했다. 지금은 양수기를 찾는다. 들샘을 파고 관정을 하고 한해대책위원회가 양수기보내기 운동을 한다.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햇볕은 계속 쨍알대는데.
후끈한 열기가 턱밑을 스쳐 갔다. 바람이었다. 바람마저도 한껏 달아 있었다. 옷은 온통 쥐어짤 듯 싶었다. 얼마나 흘리면 이놈의 땀이 멎을까? 어쩌다 목을 문지르면 하얗게 말라붙은 땀이 서걱거리며 쓸려나왔다. 아침마다 끈적이는 잠을 털고 일어나 하늘을 보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랬다. 정성이 모자란 게여. 어린 날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렇게 말했다. 지난 겨울엔 눈이 푸지게도 내렸다. 눈이 내리면 사람은 공연히 즐거워진다.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에겐 저마다 눈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리움 같은 것이다. 모든 것을 덮어 하나로 통일한다는 점에서 눈은 혁명과 동질이다. 혁명은 변화다. 이제라도 불쑥 비가 쏟아진다면 그건 이 빌어먹을 가뭄에 대한 틀림없는 반역이며 혁명이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고 아이들만 끊임없이 칭얼댔다. 건조한 바람이 그들을 괴롭혔다. 냇바닥을 긁기에 지친 농부들은 아예 멀겋게 드러누워 하늘만 바라봤다. 가장 질긴 생명들. 이를테면 질경이며 쇠비듬, 독새기 같은 잡초마저 풀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발바닥이 화끈댔다. 연지리로 건너가는 다리는 아직 멀다. 매끈한 포도 위를 아른대며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가끔씩 바람이 포도 위의 열기를 끼얹고 달아났다. 계속되는 더위가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한 듯했다. 식당마다 붉은 깃발이 내 걸렸다. 개들이 수난을 당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개고기를 먹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열심히 먹는 일이 더위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정력제였다. 뱀탕 집도 제 철을 만난 셈이었다. 화사, 능사, 석화사, 칠점사, 무슨 뱀이 그렇게도 많은지 이름도 알 수 없는 뱀들이 산이란 산, 들이란 들에서 온통 모여들었다. 흑염소, 불개미, 지렁이까지 모여들었다.
왼발 엄지 부근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것이었다. 요 몇 년동안 보물단지 처럼 끄리고 다니던 놈, 가슴앓이는 어째 소식이 없다. 따끔대던 엄지 부근이 미칠 듯 가려웠다. 엄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발을 굴러도 소용이 없다. 놈을 다스릴 방법이 있다면 구두를 벗고 맨발로 걷는 일이다. 달아오른 포도 위를 걷다가 화상이라도 입으면 그제야 놈은 정신을 차릴 것이다. 빌어먹을 무좀, 다리는 아직 멀다. 눈이 몹시 쓰렸다. 땀이 흘러든 까닭이다. 눈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눈앞의 하늘처럼 바람꽃이라도 일었으면 좋겠다.
놈이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왼발 엄지 부근을 쏘아 댔다. 좋아 두고보자.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구두를 벗어 들었다. 양말을 구두 앞쪽에 구겨 넣었다. 무엇을 잃은 뒤에는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다. 미리 조심하는 것이 제일이다. 자 이제 시원하지? 보도블럭에 닿은 엄지 부근에서 놈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게 이녀석, 어지간히 볶아대라고 했잖아? 놈이 한숨을 내쉬었다. 보도블럭에 닿을 때마다 놈은 아우성을 쳤다. 발등 위로 뽀얗게 앙금이 지듯 먼지가 쌓였다.
다리는 더욱 멀어 보였다. 빠-앙. 토요일 오후 한 시의 정적을 가르며 실뱀처럼 하얗게 빛나는 철길 위를 쿵쾅거리며 기차가 지나갔다. 객차마다 사람이 가득했다. 더위가 아무리 심해도 사람들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떠나갔다. 더위를 피해 오가는 사람들로 한여름의 도시는 주인이 바뀐다. 왼손에 들고 있던 구두를 흔들었다. 잘 가슈. 가서는 아주 돌아오지 마슈.
뜨거운 보도블럭에 발이 온통 익어 버린 탓인지 놈은 아주 기진해 있었다. 저만큼 다리가 보였다.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뿌옇게 먼지가 일었다. 다리 건너는 비포장이었다. 다리뿐 아니었다. 냇가에서도 먼지가 일었다. 뽀얗게 앙금이 진 왼발로 레일을 밟았다. 엄지 부근을 겨냥해서 지긋이 눌렀다. 무엇을 학대하는 일이 유쾌할 때가 있다. 남을 학대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의 꿈을 죽인다.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은 남의 꿈을 죽이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을 못 살게 구는 일은 확실히 재미있다. 놈이 기진해서 비명을 지를수록 레일을 딛은 발에 더욱 힘을 줬다. 백린탄의 불꽃 처럼 흩날리는 햇살, 레일은 몹시 뜨거웠다. 그리고 그것은 거울이었다. 거짓을 진실처럼 전하는 데 거울의 마력이 있다.
토요일 오후 한 시의 거울은 몹시 달아 있었다. 놈은 비명을 지를 힘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발등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양말을 신었다. 양말은 그새 꾸덕꾸덕 말라 있었다. 구두를 신고 발을 내딛자 이번에는 엄지 부근이 아니라 발바닥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빌어먹을, 온통 데었구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우느니라. 옛 어른들의 말씀은 속담, 격언만큼이나 옳다. 그래도 믿기지 않는 데는 별 수가 없다.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는 데에 잘못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범한다. 잘못은 가뭄이며 땡볕이며 더위며 반쯤 먹은 양갱이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한떼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새처럼 날았다. 토요일 오후 한 시의 더위 속을 그들만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만그만 층층인 아이들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털며 갈색의 종아리를 번뜩이며 달려갔다. 바람처럼 스쳐갔다. 학교는 방학이었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곳이 없었다. 지리한 낮꿈을 흔들며 종이 울었다. 주일학교의 종소리였다. 방학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주일학교의 종소리. 방학과 주일학교는 동격이다.
연지리로 가는 다리는 바로 코앞이었다. 다리는 하나의 경계. 넘을 수 없는 담이며 이제 막 市로 승격한 수읍의 갑문이었다. 갑문 너머엔 온갖 촌스러운 것들, 혀를 빼문 똥개나 모이를 줍는 씨암탉, 열린 사립이며 뚜껑 없는 장독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갑문 이쪽의 시민들은 그런 촌스러움을 경멸한다. 자신을 살찌우는 것들을 무턱대고 경멸한다. 화끈대는 왼발을 가려 딛으며 다리를 건넜다. 고향을 찾는 걸음으로 그렇게 다리를 건넜다. 택시가 한 대 먼지를 피우며 지나갔다. 젊은 여인이 뒷자석에 오두마니 앉아 있었다. 구름처럼 피어오른 먼지가 차를 가렸다. 저 도회풍의 여자야말로 고향을 찾는 길인지 모른다. 도회에서의 지난 세월, 성병처럼 숨어 있는 어둡고 끈끈한 기억들을 지닌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너 펠라지여.
검은 점박이 똥개가 한 마리 다리 밑 그늘로 스며들고 있었다. 교각 주위를 맴돌던 개가 땅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발톱에 긁힌 모래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목이 타는 건 개 뿐이 아니다. 사람들은 더하다. 더위를 견디는 방법만 해도 그렇다. 개들이야 좀 좋은가? 아무 곳이나 뛰어들고 퍼질러 자빠지고 팔려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매사에 얽매이고 주판알을 튕기고 남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어우리를 찾아가는 나는 그보다 더하다. 이놈 저놈 눈치나 살펴가며 죽어살 일이지 제가 무슨 통나무 장작이라고 섣부른 객기 부리다 손털고 불보살, 맹두, 허방신장 점쟁이나 찾아가는 꼴이라니, 답답하고 목타기로 들자면 냇바닥 후비는 개새끼보다 훨씬 더하다. 말라붙은 냇바닥을 헤집는다고 무슨 물이 나올까만 그래도 행여나 파제끼는 개새끼. 실장녀석은 손뼉을 칠 것이다. 개자식, 실장은 개자식이다. 그 녀석 책상이나 골통을 빠갰더라면 이렇게 어우리를 찾아가느라 땀을 빼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쯤 세월을 헛바퀴 돌리며 이나 갈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거니 실장녀석은 신이나서 손뼉을 치고 나는 별 수 없는 어우리 행이다. 문득 가슴이 저려왔다. 드디어 시작이다. 아침을 걸렀는데도 가슴의 응어리는 여전하다. 의사들은 신경성이라고 말한다. 원인이나 진행 경과를 알 수 없는 병증을 그렇게 부른다는 사실을 뒤에 알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가슴의 응어리 부근이 쏙쏙 아리기 시작했다. 가슴을 움켜쥐고 쪼그려 앉았다. 숨을 막고 이를 악물었다. 아픔이 가슴을 온통 휘젓고 다녔다. 머릿속이 칭칭 울렸다. 이놈은 한번 발작을 하면 속수무책이다. 무좀처럼 함부로 다룰 수가 없다. 빌어먹을 가슴앓이.
도로변의 집들은 온통 먼지 투성이였다. 집은 하나같이 비어 있었다. 모두들 논밭에 나갔을 것이다. 벌겋게 탄 벼포기를 어루만지며 가을을 걱정할 것이다 빈 쭉정이의 가을을··· 커다란 슈퍼마켙이 주변의 집들을 누른 채 버티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슈퍼마켙은 홍수가 되어 나타났다. 냉장고 안에 쌓인 빙과며 음료수들이 눈길을 끌었다. 아이들 몇이 냉장고 앞에 모여 있었다. 그중의 한 아이가 혀끝으로 빙과를 핥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길을 물었다.
“어우리로 갈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녀석이 낯선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몰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몰라.”
“몰라.”
그들은 완강했다. 무엇을 물어도 대답할 것 같지 않았다. 빌어먹을,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주머니를 뒤져 백 원짜리 동전을 몇 개 꺼냈다.
한 아이가 손짓을 했다.
“길 끝 첫동네야.”
아이의 손 끝 멀리 첨탑처럼 높이 솟은 굴뚝이 보였다. 철길 너머 구불거리는 농로의 끝에 그것은 오만스레 서 있었다. 길을 일러준 아이의 손에 동전을 쥐어줬다. 다른 아이들이 그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차 한 대 겨우 지날 농로를 따라 철길을 건넜다. 바람이 벼포기를 흔들며 지나갔다. 갈라진 논바닥에서 풀풀 먼지가 일었다. 깨진 농약병이 햇빛을 받고 있었다. 굴뚝은 멀었다. 목이 탔다. 타는 건 목 뿐이 아니었다. 풀도, 나무도, 사람도 모두 타들었다. 슈퍼마켙의 음료수가 생각났다. 화란 나르당의 천연향. 그렇지만 그냥 지나온 것이 잘한 일이다. 그놈의 탄산수는 마실수록 목이 탄다. 굴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갈증은 여전했다. 물을 얻을 수 있다면 무슨 말이라도 듣겠다. 길다란 볏집 같은 건물의 맨 끝에 굴뚝이 서 있었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굴뚝은 몸집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기를 죽였다. 층층이 쌓인 점토질의 붉은 흙더미가 이토록 사람을 억누르다니. 그것은 버린지 오래인 벽돌공장이었다. 어쩌면 여기 물이 있을지 몰랐다. 공장은 제법 넓었다. 여기 저기 빛바랜 황토더미가 쌓여 있었고 주변의 부속건물들도 낡을 대로 낡아 금시라도 풀썩 지붕이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볏집처럼 보이던 건물은 기실 검게 그을린 벽돌가마였다. 햇빛이 열기를 더했다. 그곳은 폐허였다.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가마 위 볏집의 녹슨 함석지붕 너머로 구름이 한덩이 한가롭게 흘러갔다. 버려진 공장. 저 높은 굴뚝이며 가마들은 이제 다시 쓰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흔히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한번 버린 물건을 다시 찾는 일은 없다. 그리고 잊는다. 버려진 공장 따위에 관심을 갖는 일 자체가 잘못이다. 그러나 잊는다 해서 우리가 남긴 흔적마저 지워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간혹 정말 무엇이 잘못인지 분별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너무 많은 잘못이 행해지는 까닭이다.
햇빛은 여전 쨍알대고 있었다. 부서진 벽돌더미 위에서, 녹슨 함석지붕 위에서, 잡풀이 무성한 빈터에서 쉬지않고 호닥거렸다. 목이 탔다. 빌어먹을 햇빛, 이대로라면 모두가 질식하고 말 것이다. 풀도 나무도 사람도··· 공장 어디에도 물은 없었다. 고장난 펌프가 둘, 녹슨 몸통으로 햇빛을 받고 있었다. 목이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가뭄, 파란 하늘이 붉은 굴뚝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어디에나 연해 있다. 저 도시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 공장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보신탕이나 뱀탕에 미쳐 있는 도시의 한켠에 이처럼 황폐한 곳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눈부시게 내려 꽂히는 햇살을 비집고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작은 신음처럼 시작된 그것은 차츰 거센 울부짖음으로 변했다. 공장은 물론 들판 가득 번져 있던 적막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길게 꼬리를 물고 사라지는 개울음은 각기 다른 음색으로 들렸다. 다섯이나 여섯, 그보다 더 많은 개들이 합창이라도 하듯 한꺼번에 짖어댔다. 토요일 오후 한 시의 햇살과 어울린 개울음이 버려진 공장의 빈터를 가득채웠다. 개 짖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 왔다. 길이가 100m도 훨씬 넘어 보이는 가마의 위쪽 끝어림에서 개들은 짖고 있었다. 가마 주변은 타다 만 석탄들로 검게 얼룩져 있었다. 아치 모양의 출입구가 정연하게 늘어선 가마 한켠에 위로 오르는 경사로가 나 있었다. 개들은 쉬지 않고 짖어댔다. 가마 위는 아래보다 더 어수선했다. 파쇄된 벽돌조각이며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주발 모양의 철제 덮개들, 어떤 놈은 두 줄로 뚫려 있는 숨구멍 위에 얌전히 얹혀 있었다. 녹슨 도루꼬가 커다란 불구덩 옆에 딩굴고 있었다. 불구덩으로 굽어본 가마 안은 몹시 어두웠다. 서늘한 냉기가 풍겼다. 볏집을 받쳐 든 기둥이며 가름대들이 철교의 교각처럼 도열해 있었다. 가마 끝에서 열 마리쯤 되는 개들이 마구 짖어댔다. 상체를 벌거벗은 중년의 사내가 개들을 얼르고 있었다. 사내 옆에 한 아름도 넘는 붉은빛 플라스틱 물통이 놓여 있었다. 물통에 걸친 고무호스에서 기세 좋게 물이 쏟아졌다. 건너편 가마 밑에서 모터소리가 연하게 들려 왔다. 열 두엇쯤 된 계집애가 키발을 딛은 채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사내가 문득 낯선 눈길을 보냈다. 흰자위가 많은 눈이었다. 한번 눈길을 보낸 것으로 만족했는지 사내는 이내 자기 일에 열중했다. 볏집의 가름대에 굵은 철사로 만든 올가미가 걸려 있었다. 올가미는 열 개쯤 되었다. 사내가 그중의 하나를 손에 쥐었다. 사내에게 묻고 싶었다. 잉태와 탄생과 죽음의 길목에서 당신이 맡은 역은 무엇입니까?
계집애가 자꾸만 물을 찰박거렸다. 가끔씩 입으로 물을 내뿜었다. 햇빛이 물방울 위에 색색의 무지개를 끼얹었다. 계집애의 입에서 무지개가 뻗을 때마다 목이 탔다. 벼포기를 흔들며 바람이 몰려왔다. 후끈한 열기가 볼을 스쳤다. 사내의 가슴은 땀으로 고랑이 졌다. 기름때가 번질거리는 군용바지와 어울리지 않게 면도자국이 선명했다. 올가미를 손에 쥔 사내가 기둥에 함께 얽혀 짓고 있는 개를 한 마리 움켜잡았다. 목덜미를 잡힌 개가 자지러질 듯 짖어댔다. 사내는 재빨리 개 목에 올가미를 씌우고 이어서 목띠를 풀었다. 그리고 올가미 끝을 볏집의 가름대에 걸었다. 목이 졸린 개가 킥킥대며 다리를 버둥댔다. 이어서 또 한마리. 사내는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개를 매다는 그 몇 개의 동작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오래지 않아 가름대에는 열 두 마리의 개가 매달려 대롱거렸다. 사내가 바지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뱃불을 붙이는 사내의 손톱이 유독 깨끗했다. 방금 험한 일을 끝낸 손 치곤 너무 정갈했다. 개들은 계속해서 버둥댔다. 마흔 여덟개의 다리가 끊임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한 마리 거대한 마디동물이었다. 개들은 다지류 특유의 몸짓으로 꿈틀댔다.
어릴적 동네 어른들은 지심이 끝날 때쯤 해서 곧잘 개를 잡았다. 개를 잡는 일은 장관이었다. 짚단을 둘러맨 어른들이 개를 끌고 가는 곳은 으례 마을 뒤꼍 냇가의 똘배나무 밑이었다. 똘배나무는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수세가 왕성했다. 어른들은 무엇이 우스운지 킬킬대며 뒤를 돌아보고 무리져 따라오는 아이들을 얼르기도 하면서 예의 똘배나무 밑에 당도하면 가늘게 꼰 삼노끈으로 개들을 얽어맸다. 그놈들의 목을 얽는 데는 어른들도 몹시 애를 먹었다. 올가미를 씌우려는 기미만 보이면 개들은 금새 손등을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콧등에 잔뜩 주름을 잡고 허옇게 이를 드러낸 개목에 어찌어찌 올가미를 씌우면 왁자하게 웃음이 깔리곤 했다. 개 목을 옭는 일이 끝나면 똘배나무 가지 중에서 실한 놈을 골라 노끈을 걸쳐 적당히 끌어올린 다음 밑둥에 묶어놓고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며 한담을 했다. 그 때마다 검은 똘배나무 잎을 흔들며 우수수 바람이 몰려왔고, 나무슾 사방에선 매미들이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목이 얽힌 채 매달린 개들은 버둥대고 대롱거리며 가끔 몸을 뒤틀어 공중제비를 돌리기도 하면서 조금씩 기진해갔다. 그럴수록 삼노끈은 더욱 깊숙이 목을 조였고 하늘은 틀림없이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개들이 지르는 숨찬 비명을 어른들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그 때쯤이면 똘배나무 주위에 몰려있던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들고있던 싸리가지로 개를 찔벅거리기도 하고 그중 개궂은 아이는 돌멩이로 골통을 맞추기도 했다. 돌멩이에 맞을 때마다 죽은 듯 늘어져 있던 개들은 움찔 몸을 뒤챘고 보다 못한 어른들이 고함을 지르면 왁- 하고 도망치던 아이들.
햇빛이 부서진 벽돌더미 위를 살금살금 기어가고 있었다. 벽돌 위에 앉아있던 사내가 칼을 갈기 시작했다. 계집애가 사내의 칼에, 숫돌에 물을 끼얹었다. 칼은 모두 다섯자루였다. 불이 넓고 큰 놈으로부터 송곳처럼 가늘고 날카로운 놈까지 그는 빼지 않고 날을 세웠다. 하얀 칼날 위에서 햇살이 눈부시게 흩어졌다. 칼 가는 소리에 맞추어 개들이 다리를 버둥거렸다. 계집애가 연신 물을 끼얹었다. 개들은 가끔씩 목을 비틀고 몸을 추스려 공중제비를 돌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버둥댔다. 그럴수록 철사 올가미는 더욱 깊숙이 목을 피고을었다. 그래도 개들은 막무가내였다. 길게 빼문 혀 끝에서 끈적이는 타액이 흘렀다. 붉게 충혈된 눈이 홍보석처럼 햇빛을 받았다. 긴 고통의 시간을 개들은 용케도 견뎠다. 개들은 본시 그렇다. 만일 사람의 목숨이 개들만큼 질기다면 교수형 따윈 아예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교수형은 살아 숨쉬는 동물의 숨통을 막는 일이다. 사람도 그런 일을 당한다.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것이 교수형만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많다. 우선 이 빌어먹을 가뭄부터가 그렇다. 아무 예고도 없이 다가와 사람의 진을 빼고 있다. 비 없는 마른 장마, 관상대에선 벌써 오래전부터 우리나라가 장마전선에 들어 있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햇빛은 계속해서 목을 조이는데.
칼갈이를 끝낸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넓은 등판 가득 땀이 맺혀 있었다. 계집애가 커다란 마대에서 커피 주전자 모양의 물건을 꺼냈다. 사내는 말없이 펌프질을 시작했다. 그것은 버너였다. 사내가 성냥을 그어대자 주둥이에서 파란 불꽃이 뻗어나왔다. 계집애가 마대에서 다시 여러가지 잡동사니들을 꺼냈다.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갈고리며 자그만 인두 같은 물건들이었다. 버너의 불꽃을 줄인 사내가 힐끗 뒤를 돌아봤다. 흰자위가 많은 눈이었다. 담뱃불처럼 잦아든 불꽃이 바람에 일렁였다. 그것은 작고 푸른 꽃처럼 빛났다. 사내가 다시 불꽃을 키웠다. 나팔꽃 모양의 긴 불꽃이 소용돌이치며 쏟아져 나왔다. 사내는 계속해서 펌프질을 했다. 그러나 버너와 불꽃은 전혀 별개의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에도 개들은 쉬지 않고 버둥댔다. 사내가 한껏 불을 키운 버너를 들고 일어섰다. 계집애가 물통 옆에 커다란 비닐을 깔았다. 아직 살아 버둥대는 개 앞으로 다가간 사내가 버너의 불꽃으로 개를 감쌌다. 개는 금시 한무더기 불꽃으로 변했다. 후루룩 털이 타올랐다. 노린내가 주변을 적셨다. 계집애가 사내에게 인두를 건네주었다. 인두를 받아든 사내는 불꽃 속의 개를 뒤적이며 골고루 태웠다. 사내가 버너를 옮겨 갔다. 개는 순식간에 벌거숭이 알몸이 되어 있었다. 앙다문 입가에 하얗게 솟은 이빨이 검게 그을린 알몸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개들은 한결같이 그들이 가장 다정할 때의 모습, 예를 들면 오줌을 질금거리며 뒷발로 일어나 앞발을 모으고 겅중거릴 때의 모습으로 굳어 있었다. 개들은 그렇게 순식간에 한 마리씩 산 채로 그을려 죽어갔다. 목을 졸리고도 끊기지 않던 목숨이 불에 그을리자 간단히 끝장났다. 열 두 마리의 개를 죽이는 일을 사내는 순식간에 해치웠다. 우리가 옷을 입고 뽐내듯 짐승들이 털로 몸치장을 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알몸으로 대롱거리는 개들은 아주 볼품이 없었다. 개를 잡는 일이 이렇게 간단하고 수월할 줄 몰랐다. 하기야 사람처럼 유능한 사냥꾼은 다시 없다.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는 방법이 무척 다양하다. 목을 조르고 치고 가르며 터뜨리기까지 한다. 살상 자체에 재미를 느낀다. 심지어 무엇을 많이 죽이는 일이 칭송받을 때가 있다. 그들을 우러러 경배하고 환호까지 한다. 버너의 불꽃을 줄인 사내가 인두로 개들을 뒤적이며 구석구석 다림질을 했다. 미처 태우지 못한 잔털을 불에 달군 인두로 말끔히 닦아냈다. 도공이 그릇을 굽듯 드렇게 정성들여 닦았다. 발가락 틈의 잔털까지 빼지 않고 갈고리로 후볐다. 무엇에 열중한 사람의 모습은 대개 아름답다. 사내도 그랬다. 귀찮을 정도의 잔손질을 열심히 했다. 열 두마리의 개를 죽이는 일보다 그것을 다듬는 일이 더 힘들어 보였다. 뿌리는 일보다 거두는 일이 더 힘들듯이.
토요일 오후 세 시의 햇빛이 사내의 얼굴이며 등을 핥았다. 다듬질을 끝낸 사내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사이 개들은 사진 속의 미이라 처럼 굳어 갔다. 건조한 바람이 검게 그을린 개들의 알몸을 훑고 지나갔다. 계집애가 고무호스를 들고 물을 내뿜었다. 물줄기가 빗살처럼 개들을 꿰뚫었다. 햇빛이 오색의 무지개를 토해냈다. 물줄기를 따라 얼마든지 만들어냈다. 계집애가 자꾸만 물총을 쏘았다. 사내가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개들은 쉬지 않고 피를 쏟았다. 사내가 담배를 내던지고 칼을 들었다. 오랫동안 잊었던 갈증이 다시 찾아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토록 손쉬운 개잡이는 본 적이 없다. 나사못을 맞추듯 정연한 작업이 사람의 넋을 뽑았다. 빌어먹을, 이건 살상도 도살도 아무것도 아니다. 버썩 진땀이 솟았다. 가슴 깊숙히서 아픔이 번져왔다. 물총을 맞은 개들이 자꾸만 피를 흘렸다. 검게 그을린 몸뚱이가 연한 담회색으로 씻겨 내렸다. 사내의 손이 잽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동작이 모두 배제된 그것은 몹시 기계적이었다. 살상에의 흥분이나 망설임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개를 잡는 줄 몰랐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개잡이는 이따위 맹랑한 손재주가 아니었다. 한데 몰려 끊임없이 재잘대던 아이들, 숨이 끊긴 개를 장대에 꿰어 짚불로 그을리던 어린날의 개잡이, 그곳엔 낯간지런 흥분과 온갖 망설임, 그리고 무엇보다 여유가 있었다. 무엇이든 얼마라도 기다리는 한가함이 있었다.
철사 올가미에서 풀어낸 개를 사내는 한 마리씩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그가 든 칼은 송곳처럼 볼이 좁고 날카로운 놈이었따. 칼몸 전체가 하얗게 날이 서 있었다. 사내가 앞발을 모둔 채 누워있는 개의 항문을 동그랗게 오렸다. 그리고 오린 항문을 칼끝으로 찍어냈다. 항문 끝에 내장이 딸려나왔다. 사내는 마치 낚시줄을 감듯 내장을 끌어냈다. 그는 어느 사이 투명한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의사들이 수술할 때 사용하는 장갑이었다. 하얀 비닐 위에 내장이 무더기로 쌓였다. 항문을 오리면서 흐른 피가 꽁지 부근을 붉게 물들였다. 내장은 몹시 기름져 보였다. 유백색의 대롱 위에서 햇빛이 미끄럼을 탔다. 내장을 모두 끌어낸 사내가 아랫배 어림을 한 뼘쯤 반달 모양으로 찢었다. 그곳으로 나머지 장기들이 끌려 나왔다. 계집애가 플라스틱 양동이를 갖다놓았다. 장기에 엉겨 있던 피가 사내의 손에 붉게 돋아났다. 검붉은 장기들을 양동이에 옮겨 담은 사내가 다른 개를 잡아당겼다. 계집애가 고무 호스를 절개된 개의 아랫배에 쑤셔박았다. 벌건 핏물이 항문에서, 부끄러운 치부에서, 절개된 상처에서 흘러나왔다. 비닐 위의 내장더미가 턱없이 커지고 있었다. 계집애가 물질이 끝난 개를 힘겹게 들어 물통 속으로 던져 넣었다. 뭉클뭉클 쌓인 유백색의 내장더미가 비위를 건드렸다. 울컥 욕지기가 나왔다. 입 안 가득 군침이 고였다. 욕지기를 눌러 참고 하늘을 봤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랬다. 토요일 오후 세 시의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공장 안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황토더미 위에서 개들이 함께 어울려 뛰놀고 있었다. 칼질을 끝낸 사내가 허리를 폈다. 손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고무장갑에 엉긴 피는 무엇에 묻어있다기 보다 본시부터 거기 있었던 붉은 무늬의 정물처럼 느껴졌다. 사내가 장갑을 벗었다. 칼질을 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외과의사와 동격이다. 능숙하고 냉혹한 솜씨까지 그렇다. 장갑을 벗은 손은 피 한점 없이 깨끗했다. 핏덩이는 분명 저 혼자 존재했다. 계집애가 고무호스를 장갑에 갖다댔다. 물줄기를 따라 피가 씻겨나갔다. 장갑은 다시 투명한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내장더미 위를 파리떼가 까맣게 덮고 있었다. 계집애가 물을 뿌렸다. 파리떼가 한꺼번에 흩어졌다. 오색의 무지개가 물줄기를 따라 줄기줄기 뻗었다. 반달처럼 찢긴 상처에서 엷고 질긴 유백색의 막이 비어져 나왔다. 만일 개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면 틀림없이 횡경막 따위일 것이다. 막은 깃발처럼 흩날렸다. 빌어먹을 개잡이. 갑자기 숨이 막혔다. 아찔하게 현기증이 일고 눈앞이 노래졌다. 가슴과 등이 맞붙는 것 같았다. 한 번 숨이 막히면 기진해 쓰러질 때 까지 트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내음이 입안을 가득 매웠다. 겨우 숨이 트였다.
가슴앓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딱히 기억에 없다. 가슴앓이가 이니었다면 실직을 당했을지 모른다. 그 무렵 직장에선 한창 감원 선풍이 불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건 기분나쁜 일이다. 세상은 알고 싶은 자와 아는 자의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보다 무엇을 많이 아는 자는 대개 명령하고 기획하는 소수의 사람이다. 그들은 또한 예언자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의 특징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든 이루며 무엇이라도 한다. 실장도 그랬다. 그즈음엔 가슴앓이가 특히 심해서 직장을 그만둘까 하던 참이었다. 세상의 일터라는 게 모두 그런 식이겠지만 나 하나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거라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가슴이 옥죄었다. 무엇을 해도 그것이 내 노역의 결과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을 많이 아는자들이 제가 거느린 사람들을 그들이 바치는 고통의 양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명령은 으례 고통과 희생을 요구한다. 남의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이상과 목적을 위한 경우라 해도 부당하다. 그런 부당함을 시정하기는 커녕 방관하고 방조까지 해가면서 끝내 용인해야 하는 곳이 바로 직장이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비겁하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은 옥죄이다 못해 못해 진한 통증이 되어 숨통을 막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시로 숨이 막혔다. 의사들은 무턱대고 기다리라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기다림이 사람을 여위게 했다. 눈에 띄게 파리해진 낯빛을 살피며 실장이 말했었다.
“자넨 이번에 빠질 것 같으니까 안심하라구.”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사무실 안의 동료 모두에게 그런 말을 했다. 개자식. 그들은 몇 푼의 돈으로 사람을 몽땅 구매했다고 생각한다. 그따위 일이 아니라도 기다릴 일은 많다구, 감원이라니, 내가 먼저 그만두겠어.
사표를 받아든 실장은 실장은 몹시 가쁜한 표정이었다. 그의 턱주가리를 갈겨줄까 했지만 애꿎은 책상만 걷어찼다. 매사가 그렇다. 무슨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가슴앓이 따위로 속을 썩이진 않을 것이다. 비겁한 자식.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비겁했다.
목어림에 고였던 땀이 스물스물 등골을 타내렸다. 가슴을 움켰던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겨우 주변의 경물이 눈에 들어왔다. 계집애가 공장 안의 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군데군데 쌓인 흙더미 위에서 개들이 꼼짝않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는가? 저 주검의 한켠에 네가 있다. 토막난 사체 가운데 네가 있다. 피흘리며 기우는 매운 햇살 가운데 너는 있다.
“아빠, 저기.”
계집애가 손가락질을 했다. 사내가 개들을 돌아봤다. 흰자위가 많은 눈이었다. 흙더미 위에 있던 개가 느닷없이 공장 밖으로 달아났다. 무리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놈이었다. 나머지 개들도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비명을 지르는 놈도 있었다. 사내의 얼굴에 아주 잠깐 웃음이 비쳤다. 문득 사내의 눈길이 와서 부딪쳤다. 가슴이 옥죄어왔다. 그의 눈길을 맞받을 수가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빌어먹을. 제자리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가만가만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어느새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는 한 마리 개였다. 더위 먹고 침흘리다 소리 소문없이 난자당한 개새끼, 긴 여름 진종일 공복으로 배를 채우는 허기진 들개였다.
햇빛은 몹시 따가왔다. 멀어지는 공장의 굴뚝을 보며 생각했다. 뭉클뭉클 쌓이던 내장더미며 낯선 사람을 보고도 모른 척하던 사내의 무심함, 그보다 더 태연하던 계집아이의 모습까지 곰곰 생각했다. 죽음의 길목에서 당신이 맡은 역은 무엇입니까? 사내에게 묻고 싶었던 말이다.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사내의 무심함이 그걸 말해주었다. 그에게 살상은 단순한 작업이며 또한 생활이었다.
햇빛이 날을 세우며 튀고 있었다. 어우리는 지척이었다. 목이 탔다.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가 갈증을 더했다. 만날 수 있을까? 그 여인을. 소문대로라면 그녀는 만병통치의 신비스런 존재다. 그녀의 소문이 나돈지는 오래였다. 별스럽게 아픈 사람도 한 번 보거나 만지는 것 만으로도 병이 낫는다 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죽은 아이를 살리고 그녀의 마을은 아픈 이들로 넘치고 열차 간이역이 생기고 마을의 논밭이 모두 주차장으로 변했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의 끝마다 여인은 유치장 신세를 졌고 그 뒤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잠적했다. 지금은 예의 그 잠적기간이었다. 어찌어찌 그녀가 어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문을 모두 믿을 수 없다 해도, 실장이나 직장의 동료들이 알면 미쳤다고 웃을 일이지만 무턱대고 기다리라는 말만 하는 의사들보다는 그녀가 몇 배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말일까 그녀의 소문은. 스쳐가는 손길이나 눈빛만으로도 가슴앓이가 사라질 것인가?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소문만 걸쭉하게 퍼뜨린 건 아닐까? 그래도 좋았다. 가슴앓이를 무디게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 소문은 어쩜 정말일지 모른다. 세상엔 별의별 신기한 일도 많으니까.
어릴 때 학질에 걸려 시름시름 앓던 끝에 키니네를 먹는 대신 푸닥거리를 한 적이 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전에 비나이다. 사해용왕 오방신장 염왕전에 비나이다.”
끝없이 엮어대는 선무당의 사설과 숯처럼 까맣게 타들던 입술, 몸은 틀림없는 불덩이였다. 머리맡엔 어김없이 초록옷의 꼬마귀신이 앉아 너울너울 꽃불을 타곤 했다. 산대가지의 낭자한 매질이며 방안을 메운 징소리가 귀를 후볐다. 당골네의 주당맥이는 약과였다. 냉수 한 사발만 들이켜면 당장 몸이 나을 것 같았다. 아무도 그걸 몰랐다. 까실한 댓이파리가 얼굴을 스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지전을 사르는 매캐한 연기가 코끝을 감싸고 철컹거리는 무도가 턱 밑을 지날 때면 그만 깜북 정신을 놓곤 했다. 자다자다 깨어보면 여전한 징소리. 방안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목이 타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 물을 떠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아무도 물을 떠주지 않았다. 무엇을 기다리는 일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기다려서 얻어질 거라면 일부러 찾는 편이 더 빠르고 확실하다는 것도.
갈라진 논바닥에서 풀풀 먼지가 일었다. 까우러진 벼포기 사이를 개미들이 부지런히 넘나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가뭄, 그러나 어쩔 것인가? 참자. 말라 비틀어져도 참는 거다. 그게 세상이니까. 그래야 살아남을 테니까. 비겁한 자는 비겁하게, 똑똑한 놈은 똑똑하게. 목이 탔다. 이놈의 갈증은 가뭄만큼이나 끈질기다.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지겹도록 사람을 들복는다. 드디어 마을이다. 마을은 낮은 구릉의 한켠에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가슴 높이의 돌담을 따라 굽어든 골목마다 엄나무며 키큰 죽나무(참죽나무) 등이 풀기 잃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건조한 바람이 볼을 스쳐갔다. 정자나무 가지가 우수수 바람을 갈랐다. 어디선가 낮닭이 울었다. 마을은 텅 빈 채였다.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만병통치의 여인을 찾을 길이 난감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맹두, 무당, 불보살 등 저 편한대로 불렀다. 마을 안으로 통하는 골목은 여럿이었다.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섰다. 돌담 너머로 우물가의 석류나무가 보였다. 손가락보다 작은 열매들이 조랑조랑 매달려 있었다. 길고 긴 낮꿈 처럼 닭울음이 번져 갔다. 슬레이트 지붕의 작은 골마루에서 햇빛이 타닥거리며 튀어 올랐다. 돌담을 짚은 손바닥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검은빛 돌버섯도 뿌옇게 말라 있었다. 목은 타다 못해 메어질 것 같았다. 우물가의 석류나무가 손짓을 했다. 지게받친 사립을 밀고 울안으로 들어섰다. 낮울음을 끝낸 수탉이 마루 밑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하얗게 말라붙은 함석 두레박 위에서 햇빛이 미끄럼을 탔다. 우물도 말라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물 밑의 모래들이 두레박을 잘강댔다. 반도 안찬 두레박의 물을 허겁스레 들이켰다. 물은 몹시 찼다. 써늘한 냉기가 등골을 스쳐갔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마을 어디엔가 있을 여인을 찾아야 했다. 여인의 성은 최씨라 했다. 이름은 모른다. 찾아야지. 빌어먹을 가슴앓이. 꼭 찾아야 해.
골목을 몇 구빈가 휘돌자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한 쪽에 작은 거름더미가 있고 다른 한켠에 울 안의 죽나무를 잘라 만들었을 수평대가 서 있었다. 공터에서 다시 서넛으로 갈라지는 골복 어귀 그늘 짙은 돌담 아래서 아이들이 땅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모서리를 갈아 매끔하게 다듬은 사금파리 막자로 주어진 땅을 누가 먼저 제일 많이 차지하는가 견주는 일에 아이들은 정신이 없었다. 놀이에 열중한 그들에게 무엇을 묻는 일이 미안했다. 그러나 물어야 했다. 머리를 맞댄 아이들 사이로 발을 들이밀었다.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올려봤다.
“얘, 이 마을 최여인 집이 어디지?”
사금파리 막자로 제 집을 키우던 아이가 볼멘 소리로 말했다.
“몰라.”
“최여인 말야, 병 낫게 하는···”
녀석이 다시 말했다.
“모른다니까. 이 발 치워.”
최여인이 누군지 아이는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그럴지도 몰랐다. 그녀의 이름은 여러가지니까. 그녀는 분명 있을테지만 마을에선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지 모른다.
막자를 쥔 아이가 말했다.
“비켜.”
아이들의 눈길에 강한 적의가 내비쳤다. 그들에게서 최여인의 집은 알아내는 일은 가망이 없어 보였다. 슬그머니 놀이터에서 물러섰다. 만병통치 여인의 성가나 능력을 설명해서 그녀를 찾는 이유를 납득시키고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기에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정말 그녀를 모르는 것일까? 무엇이 아이들에게 저토록 강한 적의를 포태시켰을까? 만병통치의 여인, 그녀의 무엇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녀를 찾는 외래인들에게 적의를 품게 했을까? 너무 굉걸한 소문,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물음, 어느 것도 아이들의 태도를 설명하게엔 부족했다. 저 쨍알대는 태양이 아이들을 화나게 했을지 모른다. 너무 조용한 마을, 너무 긴 하루해가 심통의 원인일지 몰라. 여인의 어떠한 점이든 그들은 못마땅한 것이다. 아이들은 다시 땅따먹기에 열중했다. 비어 있는 땅을 한 치라도 더 차지하려고 열심이었다. 처음엔 조금씩, 다음번엔 그보다 더 많이 크게 멀리 막자를 퉁겼다. 내 팔은 길다. 힘도 세다. 무엇이든 얻는다. 얻고 싶은 것 모두, 주어진 한껏, 무엇이라도 갖는다. 다투고 빼앗고 그래서 승패가 확연한 놀이가 아니면 아이들은 곧 싫증을 낸다. 아이들 뿐 아니다. 무엇을 뺏는 일은 확실히 즐겁다. 아이들의 사금파리 막자 위에서 햇빛이 나래치듯 파닥거렸다. 여인을 찾을 일이 난감했다. 골목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휘도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곳부터 훑을 것인가? 돌담은 길었다. 구불거리며 잡아돌며 미로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길 가득 함부로 솟은 돌부리에 말을 채이며 허덕였다. 목이 탔다. 개 같은 가뭄. 찾을 수 있을까? 만병통치의 여인을. 죽나무 가지에서 매미들이 그악스럽게 울었다. 매미는 가뭄을 타지 않는다. 음습한 흙 속의 기다림이 자그만치 칠년이다. 기다리면 무엇이라도 얻는다. 그러나 기다림은 사람을 얼마나 지루하게 하는가? 직장에서는 휴가가 한창일 것이다. 보다 멀리, 보다 시원한 곳을 찾는 일로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개자식. 실장은 개자식이다. 지금은 또 무슨 사기를 치고 있을까? 그때 해고를 당한 사람은 모두 공채 출신이었다. 실력있고 정직한 사람이 대우받는 세상,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남의 얘기다. 만병통치의 여인이나 빨리 찾을 일이다. 골목 끝에서 푸른 옷의 산능선이 불쑥 솟아났다. 마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실뱀처럼 구불대며 달리는 돌담 사이로 그만그만 낮은 지붕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거개가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건조한 바람이 능선을 따라 몰려왔다. 희부옇게 달뜬 슬레이트 지붕에서 풀풀 먼지가 날렸다. 먼지 이는 지붕 중 어느 하나에 여인은 있을 것이다. 능선을 따라 몰려 있는 다박솔 밑에서 푸드득 산새가 날아올랐다. 산비둘기의 잿빛 나래 끝에서 햇빛이 작은 칼날처럼 빛났다. 구구대는 비둘기 울음이 능선을 타넘어 갔다. 솜털 모양의 잔구름이 시나브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는 올 것 같지 않았다. 계속될 것이다. 가뭄은···
마을 중허리쯤의 붉은 함석집 마당에 사람들이 몇 서성이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 있는 마을에서 유일한 집이었다. 가보자 저리. 돌담은 여전히 화끈댔다. 죽나무의 매미도 그렇게 그악스레 울었다. 골목을 누빈 끝에 찾아간 집은 바로 여름 한나절을 허대며 찾던 만병통치 여인의 집이었다. 그녀의 집도 다른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었다. 울 안 댓돌 밑 불볕 마당에 그녀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젊은이보다 늙은이가 많았다. 마당 한 귀 두엄자리에서 개가 오줌을 깔기고 있었다. 방안 어디에도 불단이나 화상 따위는 없었다. 한쪽 방에 초로의 여인이 둘 마주앉아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이 환자인 듯 했다. 맞은편의 여인은 그녀의 어느 곳에 행여 신령한 힘이 깃들어 있을까 의심스런 쉰 안팎의 평범한 촌아낙이었다. 값싼 화섬제품의 반팔 상의에 그보다 더 허름한 통치마 차림은 검소하다기보다 차라리 남루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곳은 틀림없는 시골농가였다. 불볕 마당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옆의 아낙을 찔벅거렸다.
“오늘은 다 볼 수 있을까?”
아낙이 말했다.
“모르쥬, 하루에 한 명도 보고 열 명도 보고 대중 없다니께.”
“오늘도 못 보면 벌써 사흘짼데···”
“글씨 말유 저두 이틀이나 공쳤구먼유. 그런디 할머니는 어디서 오셨다요?”
“서울서 왔다우.”
“그리라우. 그나저나 오늘은 꼭 봐야 헐 틴디···”
기다림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불볕 마당의 사람들은 모두 파리한 낯빛이었다. 땡볕에 벌겋게 익은 얼굴인데도 낯빛은 하나같이 파리했다. 낡은 멍석 위에 쪼그려 앉아 불볕을 받으며 무작정 기다릴 모습들이었다.
방안의 여인들이 말을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병이 낫겠습니까?”
만병통치의 여인이 떠듬떠듬 말했다.
“사람에겐 보약이 따로 없는 거여, 밥을 잘 먹어야지.”
환자인 여인이 다시 물었다.
“틀림없이 나을까요?”
여인이 쨍한 소리로 말했다.
“자기 몸 나으면 자기가 알지 내가 어찌 알까?”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던 마당의 사람들이 여인의 고함소리에 놀라 목을 움츠렸다. 방안의 여인도 머쓱한 표정이었다. 기분나쁜 침묵이 집 안팎을 감쌌다. 여인은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심산인 듯 했다. 목이 타는 마당의 사람들을 본 척도 안했다. 서울서 왔다는 할머니와 댓거리를 하던 아낙이 혀를 찼다.
“쯧, 오늘도 틀렸는게벼.”
아무도 그녀의 말을 알은 체하지 않았다. 거름더미 부근을 어슬렁대던 늙은 개가 꺼엉, 꺼엉, 하품하듯 짖었다. 머리 위에서 햇빛이 함부로 호닥거렸다. 빌어먹을 가뭄. 목이 탔다.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놈의 가뭄은? 이대로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미쳐버릴지 모른다. 비는 반역이며 혁병이며 그리움이며···
개가 물어뜯을 듯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앉아 기다릴 태세였다. 만병통치의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달다 쓰다 말이 없었다.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기다리면 무엇이든 무엇이라도 얻는다. 가슴이 답답했다. 죽음보다 더 질긴 기다림으로 저들은 무엇을 얻을 심산인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대개 무엇을 기다리는 일에 지친 때문이다. 무엇을 기다릴 때는 그래도 행복하다. 기다릴 무엇도 없는데 살아있는 사람에 비하면. 그러나 기다리는 일은 또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가? 눈아래 들판의 우뚝 솟은 벽돌공장의 굴뚝이 반짝 햇빛을 받았다. 그것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빌어먹을 개잡이. 그는 여직 그 곳에 있을 것이다. 개가 더욱 사납게 짖고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릴 셈인가. 만병통치의 여인은 앉은 모습 그대로였다. 개같은 가뭄. 따가운 햇살이 개소리와 어울려 뇌수를 흝었다. 빌어먹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문득 가슴이 옥죄어왔다. 그럴 줄 알았다. 돌담 밑으로 기어가 쪼그려 앉았다. 숨이 막혔다. 컥-컥 목이 조여왔다. 눈 앞의 돌담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하늘이 온통 까매졌다. 개가 자지러질 듯 짖고 있었다. 빌어먹을. 파리떼가 몰리던 내장더미며 앙다문 이빨, 개잡이 사내의 피묻은 장갑들이 한꺼번에 눈앞을 스쳐갔다.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던 개새끼들. 그 도망의 의미를 이제 알았다. 가뭄 탓이었다. 목을 조이는 땡볕과 개잡이 사내의 눈길이 그들을 겁나게 했을 것이다. 깜북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의식 저켠에서 앞발을 모둔 개들이 벌거숭이 알몸으로 달려왔다. 유백색의 내장을 끌며 앙다문 입가에서 붉은 피를 쏟으며 엄청나게 많은 개떼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빌어먹을.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진한 통증이 관자놀이를 스쳐갔다. 겨우 숨이 트였다. 비릿한 내음이 입안을 매웠다. 하늘이 다시 파래졌다. 햇빛은 여전 쨍알대고 있었다. 개가 꺼엉, 꺼엉, 하품하듯 짖었다. 사람들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방안의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덤덤한 여인의 얼굴 위로 개잡이 사내의 무심한 얼굴이 겹쳐졌다. 벽돌 더미를 적시던 핏물, 그 앙다문 이빨들, 죽음을 향해 짖던 개새끼. 무엇을 기다리는가?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남의 아픔은 관심 있는 자만 알 수 있는 것을. 만병통치라니. 방안의 여인이나 마당의 사람들 모두가 가뭄처럼 느껴졌다. 소식도 없이 불쑥 찾아와 떠나지 않는 지긋지긋한 가뭄이다. 기다려라 기다리면 무엇이든 얻을 테니까. 그래 만병통치다. 꼼짝 않고 굳어 있는 여인의 무릎 위에서 파리가 한 마리 열심히 앞발을 부비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목을 조이는 더위 속을 연체 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말라붙은 수로와 벼포기 사이로 토요일 오후 세 시의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꽂히고 있었다. 가슴이 얼얼 저려 왔다. 빌어먹을. 무엇이 유감인가? 자는 것 깨는 것 사는 것 모두 유감인 판에 무엇이 못마땅한가? 비는 올 것 같지 않았다. 빗살처럼 퍼붓는 햇빛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더위가 계속되리라는 사실을. 내일도 모래도 가슴앓이는 계속될 것이며 비가 내리지 않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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