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나라다워야만 하는 몇 가지 이유 20

2021. 4. 19. 09:20논설

 우리가 맹목적으로 신봉해온 자본주의 체제는 결국 금융자본이 모든 산업을 지배하고 개별 기업의 생존여부까지 결정하는 사회를 초래했다. 우리가 현재 마주한 위기와 불황은 모두가 금융자본의 탐욕과 방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금융은 본시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금융마저도 상품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금융자본도 상품유통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상품유통 이외의 소통 방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품의 형태를 취하지 않거나 시장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어느 것도 존속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상품화된 금융자본의 유통을 거부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은 상품시장의 팽창과정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과 소비의 수준은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곧 그 사회 구성원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자본축적의 필요와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어 왔다. 고도산업사회가 금융산업사회로 이행된 이래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세계 최고의 수학자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안전자산을 기축으로 한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개발하는 일에 열중했다. 오랜 모색과 수학적 사유 끝에 그들이 찾아낸 방식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위험 분산의 법칙이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상품과 안전성이 높은 상품을 1:1로 뒤섞어 위험도를 반으로 낮추는 이른바 물타기 수법이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 적어도 수학 이론적으로는 리스크가 제로에 가까운 파생상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보장일 뿐이었다. 논리적으로는 자본 손실의 위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위험은 여전히 상존했다. 특정 개별상품의 위험은 감소하지만 그 만큼의 위험이 그 상품과 연계된 수많은 다른 상품으로 중첩해서 전가되는 까닭에 실제로는 여타 금융상품 전반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만약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판매되거나 유통되던 어느 상품이 어떤 이유로든 투입된 자본의 회수가 불가능하게 되면 그 여파가 다른 상품들로 순식간에 전이되어 모든 금융상품의 부실로 이어지고, 결국 금융체계의 붕괴라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애써 무시했다. 채권을 비롯한 모든 금융상품은 기실 관념상의 재화일 뿐 실제적 재화가 아니다. 지불 당사자가 지급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가 실질적 재화라고 믿었던 채권과 증권은 표기된 액면 금액이 한 순간에 증발해 한낱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무한정의 재화 동원력과 그것을 강제할 공권력을 지니고 있는 국가 발행의 국채까지도 그럴 진데, 하물며 금융회사가 판매한 회사채와 파생금융상품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우려는 2008년 모기지은행의 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해지면서 발생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그로 인한 전지구적 금융위기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같은 위기를 초래한 부실의 규모와 그것이 끝나는 지점을 어느 누구도 추정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때 유럽 각국이 마주하고 감내해야만 했던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으로 추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기업이 거지보다 더 비정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