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나라다워야만 하는 몇 가지 이유 19

2021. 4. 16. 09:19논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생각보다 가난하다. 중산층이 사라졌다. 우리 중산층의 대부분이 이미 중산층이 아닌데도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관념적 중산층이다. 몇 년 전 지루하게 계속되었던 개인소득 최고구간 신설 논쟁이 그것이다. 개인 소득세 부과 상한액은 그 때로부터 20년 전에 획정되어 시행되고 있었다.

 중견 금융회사 과장과 유수한 재벌의 총수가 같은 소득세율을 적용받는다는 것은 세법의 공평성 여부를 떠난 상식의 문제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불필요한 논쟁과 몰상식의 바다에 함몰되어 있는 동안 부의 편중과 양극화로 인한 갈등은 더욱 심화 되어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과 무엇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다. 정작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놓치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부분보다 형식이나 표현의 차이 같은 지엽적인 부분이 비교되는 경우가 더 많은 까닭에 우리는 곧잘 그런 잘못을 범한다. 차이에 주목한다는 것은 곧 부분을 확대하는 것과 같다. 차이를 통해 대상의 본질을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어떤 본질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수용해야 한다. 차이를 통해 본질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비교의 대상 중 어느 한쪽을 부당하게 왜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왜곡에도 불구하고 기껏 지엽적인 것이나 표면적인 것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대상간의 차이에 주목하고 열중하면 결국 차별화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일단 비교대상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런 토대 위에서 통합과 공존을 모색한다는 것은 치졸한 논리적 유희에 불과하다. 진정한 공존은 그 차이가 있든 없든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므로 차이를 인식하거나 인정할 필요가 없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존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의 차별화도 본질을 왜곡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 일정부분 관계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같은 시공에서 함께 존재할 수 없다. 관계는 모든 것을 비로소 존재케 하는 궁극의 조건이다.

 부의 양극화 해소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부富 대부분을 독점한 재벌 총수나 하루살이가 버거운 일용노동자나 같은 사회에 귀속되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운명체라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재벌과 대기업이 현재와 같은 부를 축적하는 동안 지게 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부채를 기업 본연의 활동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기여와 사회 환원을 통해 변제하는 것을 당연한 책무와 소명으로 인식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부의 편중과 양극화로 인한 계층 간의 대립과 갈등은 해소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사회는 거지보다 더 무책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