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나라다워야만 하는 몇 가지 이유 29

2021. 5. 7. 10:22논설

  오늘날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실업의 경우 그 원인과 배경이 훨씬 더 복잡하다. 1930년대의 대공황기에 등장한 케인즈의 수정주의 이론이 성공적으로 공황을 극복함으로써 고전적 자본주의와 근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완할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매김 되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들의 경제정책과 개발계획의 이론적 근거가 되면서 세계 각국은 경제규모의 확대와 성장을 국가발전의 유일한 지표로 삼았다.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다시 수정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로 경제체제가 이행되어 오는 동안, 우리 사회는 대량 생산과 그에 상응한 대량소비가 미덕이 되는 경제체제의 개편이 이루어졌고, 이는 필연적으로 질 높은 노동력의 대량공급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산업 환경을 조성했다. 따라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통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인프라 구축과 그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고, 이 시기의 교육 연령 군에 속하는 청소년들은 당연히 그 같은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친 청년들은 취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산업 전 부문에 걸쳐 인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으므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과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대사회가 산업사회에서 고도산업사회로, 다시 지식산업사회와 금융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새롭게 조성된 산업 환경은 더 높은 수준의 전문교육을 이수한 고급 인력을 필요로 했고 이는 교육비용의 폭등을 불러왔으며, 천문학적인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국가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워 교육과정에 필요한 비용을 교육수요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보다 좋은 일자리와 안락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개인이 지불해야하는 기회비용은 보통의 일반시민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상회함으로써 학업을 마친 청년들 대부분이 융자받은 학자금 상환에 시달리는 채무자의 신분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어야 했다. 금융자본의 탐욕과 신자유주의는 승자독식의 룰을 강요함으로써 기업들로 하여금 무한 경쟁을 통한 이윤 창출과 생존게임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도록 압박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기업들은 신기술개발과 설비자동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제고해야만 했고, 그 결과 고용 부담률이 저하됨으로써 인건비가 현격하게 절감되고 그만큼 이윤이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업들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이제 막 취업전선에 나선 젊은이들 에게는 크나큰 재앙이었다. 경제 규모의 확대와 고도성장의 신화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기존의 어떤 직업군도 그들의 신규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가까운 시일 안에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의 젊은이들은 실업과 빈곤의 바다로 내팽개쳐 졌고 그들은 도시근로자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알바 수입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노력이 부족해서도, 열정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잘못된 제도와 관행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청년실업의 원인과 실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젊은이들이 기존사회와 기성세대들을 향해 쏘아 보내고 있는 분노와 절망의 화살을 내려놓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의 사안들은 우리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며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천착하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하고 습득한 어떤 사례와 지식도 이 일을 푸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이나 제도로도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세분되고 다원화된 사회의, 그보다 더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이해가 상충하고 대립하는 복잡한 현상에 적용할 경제이론이나 방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는 개인이나 특정집단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존하는 사회구성원 모두와 국가 전체의 역량을 집중해도 어려운 문제다. 나라가 나라다워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