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를 위하여

2010. 11. 21. 20:55

 

밤하늘 푸른 달빛 아래

비나리 마을 뒷산에선 지금

울근불근 송이가 자란다.

바람 잘 받고 햇빛 좋은 비탈

메마르거나 습하거나 다른 무엇하나

빠져서는 안 되는

까탈스런 송이가

우뚝우뚝 치솟는다.

 

이 가을 소슬한 바람 맞으며

작고 예리한 사냥칼을 준비해야 한다

알미늄 호일도 빠트리면 안 된다

밤바람이나 찬 이슬 피하려면

옷깃 야문 등산복도 필요하다.

물마른 골짜기 바위 밑 골라 장작을 쌓되

잘 마른 참나무 소나무

백양목이면 더욱 좋다.

 

앞산 뒷산 근동을 다 뒤져

훓어온 송이를 

한 관이고 두 관이고 있는 대로 쌓아두고

온 산이 붉게 물들도록

큰 화톳불을 피운 다음

반 뼘 넘어 실한 송이만 살펴 골라

엄지로 뿌리를 중지로 갓동을 눌러 잡고

가늘고 작고 날카로운 사냥칼로

푹 찔러 길게 십자찢기 한 뒤

굵은 소금 몇 알을 여린 속살 깊이

박아 넣은 다음 

은빛 호일로 도르르 말아

양쪽 끝을 음전하게 꽁꽁 싸매거라.

 

있는 힘껏 제 몸 모두 태우고도 모자라

이글거리는 불잉걸 무더기 헤집고

송이송이 던져 넣으면

이내

산 하늘 골짜기 가득 메울

맑고 푸른 솔향기

천지를 아우르는 송이 내음

그 솔 내

 

저 혼자서는 죽어도

필요한 자양 만들지 못해

소나무 뿌리 곁에 붙어사는 신세라서 

송이는 정말 가리는 것도 많다

 

그래도  성정은 바르고 곧아

눈가림 손가림 낯가림 다 뿌리치고

저 좋은 대로

저 좋은 곳만 가려서 자란다.

 

혹여 눈에 뜨여도

제 맘에 드는 놈에게만 골라 뽑히고

맘에 안 들면 

앵돌아 숨거나

자라는 일마저 그만둔다.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오기 또한 창창하니

 

사람이 오질려면 

그래도 송이만은 할 일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殘 雪  (0) 2011.01.21
凶 年  (0) 2011.01.20
소금 섬 증도  (0) 2010.11.13
간 이 역  (0) 2010.11.08
土 種 - 詩의 날에 부쳐  (0) 2010.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