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이 역
2010. 11. 8. 00:28ㆍ시
온갖 사람 온갖 생각 말들로
가득한 날이 지겨울 땐
그저 하루쯤
조용한 풍경 속으로 녹아들 듯
어디 가까운 간이역을 찾아보라.
화랑대 일산 팔당
심천 도경리 남평 율천 송정
어느 역이어도 좋다
동촌이나 가은 청소역이면
더욱 좋다.
언제나 호젓이
누가 굳이 찾지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 그린 듯 서 있는
간이역은 그 자체로 기다림이며
늘 넉넉하고 여유롭다.
흘겨보고 쏘아보고 그러고도
살필 것 많아
눈 마음 스스로 느긋해지는
이 조용한 시골역에서는 이제
차표를 살 수 없다.
조용하고 적막한 승강장엔
그 흔한 나무의자 하나 없지만
기차시간이 너무 먼 할머니 혼자
키 큰 은행나무 밑에 우두커니 앉아
먼산바라기를 하고
역 구내엔
소슬한 가을햇살과 역무원들 잡담만
그득하다.
낡은 침목 사이로 수줍게 핀 코스모스
그 너머 휑뎅그레한 갈색지붕의 역사엔
맑은 물 퐁퐁 솟는 연못이며 작은 화단의
꽈리 목화 금잔화 맘껏 흐드러진
이곳은 구둔
작고 정겨운 시골역이다.
검표나 집표보다 오래 못 본 승객의 안부가
더 급한 역무원
사람 하나 없는 대합실 열차시간표 옆에는
마을버스 시간표가 떡하니 붙어있다.
간판 대신 "하드 팝니다" 쪽지 내붙인
구내매점 주인은 팔십도 더 넘은 노부부
만원짜리 하나 거스를 잔돈 없어 물건 못파는
작은 매점이지만
그래도 있는 건 다 있어
느긋하고 후한 인정이면 그만이지
오가는 사람 하나같이
모두 녹아 靜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