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生의 길목에서 - 슬픔이 사라진 뒤에 나타나는 것

2012. 6. 5. 07:39단상

 

  - 친한 사람과 사별을 하게 되면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다 그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면, 이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 든다. 그리고는 이 슬픔과 지나간 시절의 온갖 즐거운 일들마저 한 순간에 사라지면서 이 세상에 혼자 벌거숭이로 남겨진 것 같은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애써 기피하는 것, 우리의 마음이 거부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갑자기 어떤 의지할 곳도 없이 철저하게 외롭고 공허하게 홀로 버려지는 것이야 말로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시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당이나 환생이론 같은 황당한 것들로 도피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그저 그 공허함이나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온 몸으로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당면한 공허와 외로움 안으로 걸어들어 가면 그 지독한 슬픔과 외로움도 결국은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냥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즉 어떤 개념과 동일시하거나, 어떤 관념에 의탁하거나, 어떤 것으로의 도피를 통해 피상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끝내버리는 것이다. 슬픔과 외로움이 끝나고 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서 더 이상은 자신이 보호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완전하게 비워진다. 더 이상 외로움과 슬픔을 채우기 위해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슬픔과 외로움이 이렇게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다른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여행, 거기에는 도저히 측정할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이 있다. 그러나 슬픔과 외로움을 완전하게 씻어버리지 못하면 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