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에서 보내는 아빠의 작은 이야기 - 25

2012. 7. 14. 08:46편지

 우리는 누구나 내일 혹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한다. 그 전망과 예측이 누구에 의해 제시되었는가에 따라 무리 구성원들의 신뢰를 받기도 하고 불신당하기도 한다. 그 같은 신信, 불신不信은 그가 속한 조직과 사회가 부여한 직위나 직책의 권위로부터 비롯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경험, 곧 내적인 경험을 외적인 것으로 확대 재생산한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 차이는 대체로 농경민과 수렵민의 차이쯤 될 것이다.

 

 

 농경민에게는 정주생활이 보장된다. 그러나 수렵민은 사냥감을 쫓아 끊임없이 떠돌아 다녀야만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일정한 시기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재현된다. 따라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고 대응 능력도 발전한다. 그러나 사냥꾼에게는 절대로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는다. 매 순간이 새롭고 낯설다. 특정한 상황에 대처할 가장 적합한 방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매번 다른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적절한 대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전히 대처하고 반응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 거리상의 원근, 단수와 복수의 개념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는 서로 다른 삶의 모양과 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절대적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사막에서는 하늘도 하나고 세상도 하나다. 따라서 신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림과 숲에서는 무수히 많은 실체가 존재하는 까닭에 유일신의 개념이 생성될 수 없다. 신神은 문화적 조건에 따라서 변한다고 할 수 있다. 곧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자리하고, 그곳의 조건과 상황에 맞는 형상을 갖추는 것이다. 유대인과 아랍인이 유일신을 생성하고 섬기게 된 것은 그들이 거친 황야와 사막을 삶의 자리와 터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세일아! 너도 네 안에 너만의 신神을 생성하고 섬겨보아라. 그것이 설령 돌의 정령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