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3. 08:17ㆍ논설
새롭게 출현하는 5차적 종교에서 경제문제가 가장 중요한 중심내용이 되리라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도덕적 종교는 경제적 관계를 죄악시해 부富와 재화를 모든 죄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해왔던 터라 이제까지의 종교적 사상을 버리지 않고서는 새로운 시대를 견인하는 종교로 다시 태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聖人이라 해도 어찌 부富와 재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공자孔子가 진채陳蔡의 액厄을 당해 식량이 떨어진지 7일 만에 『하늘이 나에게 덕德을 내리셨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자들은 여전히 『부자는 어질지 못하고, 어질면 부자가 될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예수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그 때 미처 열매를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너 저주받은 나무여 영원히 꽃을 피우지 못하리라』하고 나무랐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려우리라』고 설교했다. 그 밖의 모든 도덕적 종교들도 마찬가지로 재부財富를 경원시하거나 죄악시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재부財富는 생활의 원동력이며 선善의 출발점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도덕적 종교는 신도들에게 종교적 이상理想으로 선善을 권장하면서도 재부財負를 죄악시함으로써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져 더는 선善의 구현이 불가능해졌다. 본시 선善은 인류의 문화가 향상 발전한 형태의 추상적 개념이다. 교통과 운송의 원시적 형태는 걷는 것으로 하루에 백리를 가지 못하고 한 사람이 힘을 다해 등짐을 져도 1톤의 화물을 운반하기도 어려웠는데 오늘날에는 대량 운송수단의 발달로 수 만 톤의 화물을 하루에도 수 천리씩 옮겨 세상의 물건을 모으고 나누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이것은 교통과 운송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상태다. 공산품 생산의 원시적인 형식은 수공手工으로 열손가락이 닳도록 일을 해도 하루 종일 만든 것이 몇 십 개를 넘지 못해 한 세대의 수요도 채우지 못했으나 이제는 대량생산 수단의 발달로 헤아릴 수 없는 물건을 만들어 세상 모든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니 이는 공업생산 기술이 좋아진 까닭이다. 이러한 문명의 발달은 바로 재부財富가 그 지닌바 힘을 모두 쏟고 발휘한 때문이니 재부財富야 말로 인류의 생활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에 부합하는 5차적 종교는 반드시 경제적 관계를 선善하게 보고 재부財負를 모든 선善의 토대로 삼아 이로써 사람들을 이끌어 교화하고 상선上善의 기초를 정해야 할 것인바 이것이 바로 종교의 보편타당한 법칙에 따른 새로운 종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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