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 1 - 3

2013. 4. 5. 09:07소설

 

 

 그나저나 이 자식은 어떻게 된 거여? 혹시 중간에서 샌 거 아녀? 장항↔서울 행 버스는 도착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영 들어오지 않았다. 녀석은 서천에서 올라온다. 집이 장항 읍내라고 했던가? 배타고 차타고 오는 길이 멀고도 험한 모양이다. 장항. 강민에게도 어린 시절은 있고, 그 유년의 기억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이 장항과 맞물려 있다. 바다에 면한 바위산 위에 우뚝 솟아 있어 읍내 어디서나 고개를 한껏 젖히고 올려보던 제련소 굴뚝. 제련소 굴뚝은 일년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시커먼 연기를 뭉클뭉클 하늘 높이 뿜어냈다.

  어머니는 제련소 굴뚝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날씨를 가늠하곤 했다. 오늘은 비가 올라나? 아스라이 먼 굴뚝 끝에서 꺾여나는 연기가 북서쪽으로 길게 꼬리를 끌며 흩날리면 어머니는 서둘러 비설거지를 했다. 장독 뚜껑을 덮고 풋고추를 걷고 채반에 널었던 서대면 박대 간쟁이 까지 빠짐없이 갈무렸다.

  어머니의 비설거지가 끝날 즈음이면 어김없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하구 건너 군산 앞바다 먼 남녘 비금도 쪽에서부터 빗줄기들은 어둠의 자식들 마냥 무리로 줄지어 늘어서서 한꺼번에 와악- 하고 몰려들곤 했다. 무엇이라도 두들겨 부술 듯 함부로 퍼붓는 빗줄기에 파묻힌 제련소 굴뚝이 검은 연기를 머금은 채 가뭇하게 모습을 감추고 나면 그제 서야 어머니는 강민을 불러 꼬옥 끌어안고서 마루 끝에 나앉아 험상궂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날이 어두워져서 이웃집 모두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어머니는 그렇게 강민만 끌어안고 있었다. 그 때는 몰랐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넋을 놓은 채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었는지. 왜 자기를 그렇게 꼬옥 끌어안고 있었는지 정말 몰랐다. 그랬다. 어머니는 그 때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지 않는 아버지를…. 천둥 번개가 치고 굵은 빗줄기가 후려 패듯 함석지붕을 두들기는 밤, 방파제를 타넘는 물너울이며 미쳐 날뛰는 파도로 들끓어 뒤집어지는 밤바다를 내다보며 어머니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아버지를.

  제련소에 다니던 아버지를 강민은 가뭄에 콩 나듯, 얼굴을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볼 수 있었다.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때 아버지는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어머니는 작은댁이었던 것이다. 아들을 낳지 못해 대가 끊기겠다며 할아버지가 등을 떠밀고 호령호령해가며 억지로 차려준 작은집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가 별로 살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아주 조금이긴 했지만 한 쪽 다리를 잘름거렸고 곱상한 얼굴에 비해 성미도 곰살맞지 않았다. 어찌어찌 강민이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내내 어머니를 서먹해했던 모양이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그래도 못내 기다리는 기색이었다. 한달에 한 두 번 어머니는 강민을 데리고 할아버지 댁엘 다니러 갔다. 할아버지 집은 읍내를 가로질러 번연히 흐르는 강기슭을 따라 한나절쯤 거슬러 올라가야 나오는 시골 마을의 제법 규모가 번듯한 대농이었다. 대문 앞에 널찍한 타작마당이 벌려있고 텃밭에선 고추며 오이, 들깨나 열무들이 지천으로 어우러져 눈이 아리도록 진한 녹색으로 반짝거리는, 그리하여 어떤 목마름이나 그리움이라 해도 모두 품에 안고 삭일만한 그런 시골집이었다. 그 길을 어머니는 잘씬거리는 걸음으로도 아주 익숙하게 오갔다. 강민이 기억도 못하는 떡애깃적 어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끌며 강민을 업고서 그 길을 수없이 오갔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강기슭을 뒤덮은 채 물색없이 바람이 불 때마다 넘실대며 수런대던 갈대숲과 수초들, 문득 흐루룩 날아오르던 새떼, 그 물새 떼들. 어머니는 그 길을 오가며 볼 수 없는 아버지를 그리며, 칭얼대는 강민을 추스르며 잘름거리느라 지친 발길을 재촉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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