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7. 09:28ㆍ소설
이 친구는 영오지 않을 모양이다. 서천이 그렇게 먼 곳인가? 오기 힘든 곳인가? 그래 멀긴 멀지. 지난 이십 년간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가서 닿지 못한 곳, 그 곳 장항은 참 멀고도 아득했다.
장항은 지방의 작은 소읍이다. 배차시간도 뜸할 것이다. 삼시분이나 사십분, 그도 아니면 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는 거다. 눈길 한번 안 돌리고 기다린 지 삼십분이 넘는다.
강민의 기다림이나 조바심과는 상관없이 버스들은 끊임없이 들어와서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그랬다. 버스들은 무슨 오물이라도 토하듯 사람들을 뱉어냈다. 서천↔서울 팻말을 단 버스가 서둘러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그래 , 서천이었지. 서천에서 버스를 탄다고 했다. 그런데도 강민은 장항 발 버스만 찾고 있었다. 서천은 그에게 익숙한 이름이 아니었다. 사람은 대개 낯익고 친숙한 것부터 찾는다. 낯설고 생뚱맞은 것은 왠지 두렵고 싫은 까닭이다. 버스가 제 안의 내용물을 모두 뱉어놓을 때까지도 강민은 그럴법한 사내를 찾지 못했다. 나이 설흔 일곱. 전직 농협 과장. 사내는 요즘 보기 드문 물건이었다. 아주 월척이다. 모두 돌리면 2-3억, 어쩌면 5억까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데 사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분명 버스를 탔다고 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함께 못 올라가니 알아서 잘 처리하라고? 개자식 귀찮다 이거지? 미안하지만 약속한 선금은 없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된 거야 이거? 아무리 늦추어 잡아도 도착할 시간이 벌써 지났다. 물건이 시원찮았다면 강민이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다. 얼굴도 모르면서 대충 전해들은 옷차림만으로 사람을 찾는 것은 아무리 강민이라도 안되는 일이다. 강민은 이렇게 그냥 죽치고 앉아 사내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제 모습이 더 한심스러웠다. 승환 형이 안다면 틀림없이 또 한마디 할 것이다.
미친 새끼! 장사 한 두 번 하냐? 인상착의랑 옷차림 같은 거를 확실히 체크 해야지. 아니면 만날 장소와 시간을 분명히 정해 놓던가. 니 핸드폰 번호 알려 줬다고야? 임마, 그걸 말이라고 허냐 시방? 그 새끼가 전화 안허먼 그만 아녀? 언놈이 채가도 방법이 없잖어. 방법이! 무슨 일이든 먼저 상황을 장악 허고 그 다음에 주도권을 잡으라고 했잖어. 지금 같은 경우를 바로 코 꿰었다고 허는 것이다. 갸가 무슨 짓거리를 허든 너는 아무 댓거리도 못허는 거 알어? 너 대체 언제 사람 조까 될래 응? 정신 차려라 정신 좀.
승환 형은 흥분하면 사투리가 마구 튀어나왔다. 승환 형이 이 사실을 알면 절대 안된다. 공연히 매 맞고 배터지게 욕먹고 덤으로 병신까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이 개새끼 때문이다. 분명히 온다고 해놓고 아직까지도 오지 않는 이 개자식.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이라도 해야지. 하긴 몸둥아리 팔고 이름 석자까지 팔아먹어야 하는 놈이 무슨 그럴 정신이 있겠냐만 그래도 이렇게 무작정 기다릴 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철민 네가 채갔을까? 서천 짱아네와 거래하는 건 서울에서 강민 네와 철민 네뿐이었다. 그래도 짱아 네가 이런 식으로 쌩 까고 물 먹일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 좀 더 기다리자. 길이 막히나보지 뭐. 십 분만 더 기다리자 십 분. 온갖 잡스런 생각과 염려 걱정을 버무리면서 강민은 불뚝거리는 성질머리를 다잡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딱 십 분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흘러와서 또 끊임없이 흘러갔다. 서울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제 각각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강민은 몹시 신기했다. 사람들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오고 간다. 어쩌면 사람들은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살다가 역시 길 위에서 죽도록 처음부터 운명 지워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든 떠나가지 않고 찾아가지 않고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않는다. 쉴 새 없이 나다니는 사람만 사람대접을 받는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