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생각 39

2015. 3. 27. 07:54단상

 

 수렵 문화권에서는 모든 지식과 권능이 숲과 동물로부터 비롯된다. 농경 문화권에서는 식물 자체의 생멸生滅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삶과 동일시되고 생명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전승된다. 반면에 동물은 완벽하게 독립된 개체다. 동물에게는 생멸生滅이 곧 나타남과 사라짐이다. 사라짐은 완전한 소멸이다. 그러나 식물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의 생명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의 죽음은 다음 생명의 생장을 북돋운다. 식물의 생명은 소멸하지 않고 영속된다. 농경문화에서는 죽음이 종국적인 것으로서의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존재한다. 새로운 생명으로 재현되는 셈이다.

  결국 문화란 생명生命의 생멸, 영속, 전승을 내포한 채 다른 삶과의 연계성 위에서 생성되고 현현顯現한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너머에 내밀하게 존재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눈 앞의 현상現像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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