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 아름다운 것들을 위하여 -1

2009. 10. 1. 09:46단상

 

 남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대하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아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의해 그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까닭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 어떤 형식이라도 좋다. 여기 와서, 왔기 때문에 좋은 만남을 이어보고 좋은 가르침까지 얻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남의 행동이나 생각을 비난하기 전에 그런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인간 본성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밝히고 그 뒤에 감추어진 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찾아내 자신의 삶을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등이 아닌 이등은 곧잘 잊혀 져 이름 없는 군중의 한 사람으로 묻혀 버린다. 그러나 2등이 없다면 어떻게 1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기 뒤의 사람을 항시 기억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그가 있으므로 비로소 네가 존재한다.

 

 우리는 대개 두 종류의 사람을 접하게 된다. 하나는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다. 자신이 지닌 것을 관리할 필요가 있을 때는 전자를, 지닌 것을 늘리고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서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바로 지혜다.

 

 대부분의 사람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을 좋아한다. 나이 든 노인일수록 그렇다. 충고의 형식을 빌리는 조언이나 제안은 그 말에 어떤 책임도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실패할 염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쁜 선례를 남길 위험도 없다. 그러니 누군들 남에게 충고하는 것을 꺼리겠는가? 그러니 아무리 그럴듯한 충고라 할지라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짚어보는 것이 좋다. 그것은 단순히 충고일 뿐이므로 어떤 절실함도 간절함도 없다.

 

 정치를 하려면 즉답과 명확한 답변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재치 있는 말투로 논점을 흐리고, 복잡한 상황으로부터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기술과, 공허한 말과 의미 없는 미소로 논쟁과 대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어떤 청탁을 거절해야 할 지 분별할 수 있는 눈과 아무리 심각한 다툼과 마주쳐도 미소를 지으면서 상대가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사라지는 기술이 몸에 배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정치다.

 

 상대에게 무슨 일을 반드시 시키려면 쉬운 일은 어려운 것처럼, 어려운 일은 쉬운 것처럼 보이게 하라. 쉬운 일은 어려운 척 하더라도 회피하지 않을 것이며, 어려운 일을 쉬운 척 하면 겁먹지 않고 자신감도 잃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견해가 틀린 것이 되어야 한다. 모든 판단은 이처럼 상대적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우리는 흔히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치부한다. 무엇을 판단하고 분리하는 과정은 우리를 참된 자아自我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엄밀하고 단단한 분리의 벽은 모든 영혼의 소통마저도 단절한다. 남과 나를 함께 인식할 때 비로소 너는 참된 영혼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평소에 무시했던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여보라. 무관심하게 스쳐 지났던 의견이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여 보라. 남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과 태도야말로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과 다양한 체험의 비밀을 알려준다.

 

 누구를 만나든 너와 함께 공유한 단순한 특성을 눈 여겨 보라. 스쳐 지나는 얼굴, 가벼운 몸짓, 무심한 눈길 하나에도 그 만의 내밀한 속삭임이 있다. 상대의 성격을 파악하는 대신 그의 본질이 어떤지 느껴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이를 신뢰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한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 어떤 경우에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눈다. 그러나 그런 구분은 모두 부질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명징한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하나같이 소중하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그래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용서는 가슴이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용서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다. 용서의 힘은 그것이 더없이 도덕적이며, 올바르고 정의로운 것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생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용서의 탈을 쓴 강요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자신을 용서하듯 진심으로 남 또한 용서해야 한다.

 

 이 세상에 구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너와 나, 이것과 저것, 흑과 백 같은 대립적 이원성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가 함께 하는 공존의 땅에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된다.

 

 중간에 위치한 사람은 앞과 뒤에 가장 많은 사람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가장 풍부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꼴찌는 가장 마음 편한 자리다. 그러나 꼴찌의 자리는 편안하고 한적한 달관의 공간이기는 하지만 무엇을 도모하거나 실천하기에는 너무 후미지고 적막한 까닭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는 자리이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존재의 의미와 역할은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규정되고 만들어진다.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 자신의 부정을 위로하고 합리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질서의 본질은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은 최소한의 인간관계라도 지속될 때 존재한다. 일회성의 인간관계에서는 내일을 걱정하거나 고려할 필요가 없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는 더 이상 인간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 곧 모든 관계와 사회성이 붕괴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품성은 바로 인간관계에서 나타난다. 인간관계 안에서 도야되고 발현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관여한다.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는 뜻이다.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착하다는 것은 이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배려를 일상화한 사람들의 심성을 뜻한다.

 

 내가 상대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내가 알려고 하는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 다른 대상과는 달리 내가 바라보는 사람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일정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며, 항상 서로를 향해 마음이 열려있어야 하고,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앞서 정말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은 곧 상대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비롯한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남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부끄러움은 남과 나를 동일하게 대하는 마음의 근원이며 나 이외의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연대감의 발로다.

 

 사회는 인간관계에 의해 존속된다.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 이 사회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가 지속되어야 만남이 이루어지고 만남이 지속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고 스스로 삼가는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스스로를 모욕하면 남도 자기를 모욕한다. 네 주변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이 너의 잘못과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 설령 좋지 않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원인과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원망하거나 나무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어리석음과 경박함을 꾸짖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언제나 자신의 상사보다 뛰어나 보여서는 안 된다. 상사와의 대결이나 그 대결에서의 승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겸손은 너의 탁월한 능력을 감춰주는 장막이다. 예쁜 얼굴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가릴 수 있다. 상사가 너의 행운과 성격을 칭찬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렇다 해서 너의 분별력과 수월성을 드러내지 마라. 특히 너의 고용주가 너의 그런 능력을 알게 하지 마라. 분별력은 고용주만의 특권이다. 상사는 너에게 도움을 받을지언정 네가 자신을 능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사가 너에게 조언을 구할 때는 그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기보다 그가 잊고 있던 것을 생각나게 해주어야 한다. 행성은 태양의 자식이고 태양처럼 빛나지만 결코 태양과 그 밝기를 겨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