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이야기

2011. 5. 7. 11:32

 

 

우리가 생각하는 낮은 곳보다

더 낮고 험한 곳으로 눈은 내린다.

 

따스한 햇살에 저 차가운 氷晶이 스러지기까지

눈은 내려서 내린 그대로 있고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눈을 밟는다

슬픈 구두를 신은 사람은 슬픈 걸음으로

기쁜 구두를 신은 사람은 기쁜 걸음으로

무시로 그냥 그렇게 눈을 밟는다.

 

눈 시리게 흰 순백의 눈을 우리가 밟을 때

우리가 밟는 것은 하얀 눈의 순결이 아니라

눈보다 더 맑고 푸른 우리들의 눈물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쉼없이 흐르는

그 눈물의 의미를 매양 잊고 있다.

 

그래서 눈은 우리네 깊은 잠 속으로

사라진 후에도 매번 새롭게 돋아나는 아픔이 된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따가운 햇살에도 녹지 않고

후미진 구석에 쌓여 차갑게 번득이는

저 흰 눈이 아니라

끝내 살아남을 단 몇마리의 삶을 위해

수천 수만의 알을 낳는물고기처럼

끝끝내 남아날 몇점의 殘雪을 위해

이 밤내 무작정 쏟아지는 눈의 意志다.

 

우리가 생각하는 낮은 곳보다

더 낮고 험한 곳까지 눈은 내린다.

눈부신 햇살에 매서운 氷晶이 녹아내릴 때까지

눈은 내려서 내린 그대로 있고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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