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에서 보내는 아빠의 작은 이야기 - 15

2012. 7. 3. 07:33편지

 세일아. 지난 며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날씨도 몹시 궂은 듯싶더니 오늘 아침은 유독 햇빛이 맑다. 엄마와 너도 좋은 아침, 다복한 저녁을 맞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 힘들어할 엄마의 하루를 네가 더 많이 거들었으면 하는 것이 아빠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네가 해야 할 일까지 밀쳐놓으라는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 모두 지쳐있을 엄마의 고단함을 기억하라는 얘기다.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을 '이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 이상의 '어떤 것'일 때가 많다. 우리의 삶은, 지금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깊고 넓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정말 우리 안에 있는 존재,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숨결을 주고 깊이를 주는 존재의 몇 분의 일밖에 안되지만, 우리는 지금의 이 깊이 밖에는 살지 못하고, 이 깊이 밖에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수록 초월적인 존재 또는 그와 비슷한 힘을 찾는다. 또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시련으로 보고 그 시련을 극복할 때 비로소 세속적인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창조적인 행위도 마찬가지다. 창작하는 사람이 제 마음을 열고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노라면 써야할 것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제 자신을 이루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이때의 깨달음이나 앎을 우리는 '靈感'이라 부르는데, '영감'은 본시 무의식의 샘으로부터 솟아나는 까닭에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바라고 기다리는 내용일 경우가 많다. 그 때 그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다. "아니 이건 내 이야기잖아?"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바로 내 이야기잖아?" 이런 반응이 나타날 때의 '영감'은 그 사회의 열망과 일치하는 것이다.

 

 세일아! 작가나 시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 구성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 그것을 표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잊혀 지거나 추방된다. 그렇다고 해서 세일아! 네가 속한 무리, 집단, 사회와 무조건 영합하라는 것은 아니다. 조화롭게 공존하라는 것이다. 네가 아는 너희들의 바램과 열망은 무엇일까? 궁금하구나. 알려다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