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에서 보내는 아빠의 작은 이야기 -45

2012. 8. 4. 09:51편지

 세일아!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존경하며 사랑까지도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중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은 그 미묘하고 복잡함을 더욱 가늠할 수 없다.

 

 사랑은 대개 눈과 눈을 통해 마음이 맞닿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사랑을 하려는 사람들의 눈은 서로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샅샅이 염탐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두 눈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두 눈이 본 것과 마음의 느낌이 일치할 때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탄생한다. 사랑은 오로지 마음이 움직이면서 시작된다. 다른 어느 것으로도 시작되거나 생겨날 수 없다. 사랑은 그것에 빠진 사람에게는 가장 지극한 정성이며 희망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개인 대 개인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의례껏 갖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치부한다. 이성에 대해 몸으로 충동을 느끼는 '에로스적 사랑'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사랑해야 하는 '아가페적인 사랑'도 개인적일 수 없다. 에로스적인 사랑은 성적 충동, 아가페적인 사랑은 박애에 가깝다. 반면에 '아모르적 사랑'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눈과 눈이 만나 눈빛이 마주치고 얽히면서 싹트는 개인과 개인의 사적인 경험이다. 이것은 성적 충동이나 박애와는 전혀 다르다. 개성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의 경험, 제가 속한 전통과 상반되는 전통의 수용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경험이며, 서구 문명을 위대하게 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남으로부터 이어받지 않은 자기만의 체험, 그 체험에서 우러나온 신념은 그만큼 확연하고 굴강하다. 이 같은 경험과 신념은 모든 획일적인 가치와 체계를 무너뜨린다.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가치와 체계의 붕괴로부터 새로운 사고와 인식의 전환이 시작된다. 어떤 의미에서 사랑은 새로운 삶의 충동이다. 가슴을 열어 남에게 관심을 갖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사랑은 죽음보다, 고통보다,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귀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어떤 도그마도, 제가 속한 사회의 어떤 당대적 개념도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 경험으로부터만 길을 찾으려 한다. 이 같은 '아모르적 사랑'을 인정하고 수용한 서구의 문명은 당연히 개인을 살아있는 실체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서구 문명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로 그들을 넘어서거나 극복할 수 없다.

 

 세일아! 사랑은, 사랑에 대한 경험은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정제해서 더 존귀한 것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다. 건강에 유의해라. 엄마의 건강도 잘 챙기거라. 너는 아들이고 또 충분히 다 자란 성년의 남자니까.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