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6. 09:11ㆍ편지
세일아! 네 얼굴을 본지가 제법 오래인 것 같구나. 너도 이제 세는 나이로 스물여덟이지? 아버지는 너보다 한 살 적은 나이에 엄마와 결혼을 했다.
금년 12월이면 아빠와 엄마의 결혼 서른 돌이 된다. 그 긴 세월 동안 아버지는 엄마에게 미안한 일을 참 많이도 저질렀다. 어느 때는 아버지의 잘못에 의해서, 또 어느 때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엄마를 끊임없이 힘들고 슬프게 했다. 우선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느냐? 아버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엄마와 세일이 너인데 이제껏 걱정만 안겨주고 있구나.
세일아! 아버지가 지금 여기서 이처럼 길고 지리한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엄마와 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을 참아낸다면 반드시 엄마와 너, 많지도 않은 우리 가족 셋이 모두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그 같은 믿음이 아니라면 지금의 이 오욕과 참담함, 남루하기까지 한 잿빛 절망을 참아내지 못할 게다. 세일아 아버지가 거듭 부탁한다. 내가 이곳을 벗어나 네 곁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빠를 대신해 엄마를 보살피고 위무해 드리렴. 그동안 아버지가 엄마에게 저지른 잘못들까지도 네 따뜻한 마음과 위무로 인해 잊혀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도 이제 어른이니까. 아버지가 이곳에서 무엇을 힘들어하고 안타까워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헬스에 다니면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취업 준비는? 건강을 챙기면서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밖은 지난해 보다 더 어렵다면서? 취업 대란이라며? '신의 아들'들이 거리를 활보한다며? 그러나 세일아 기억해라. 선택받은 자는 어디에도 없다. 세상에는 스스로 노력해서 원하는 곳에 이르는 자만 있을 뿐이다.
아빠가 이곳에서, 이 엄동 속에서 슬퍼하지 않도록 네가 모든 것을 잘 처리해 주었으면 한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자가 남보다 좋은 것을 많이 얻는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을 잊지 마라. 감기 조심해라.
수락산 밑에서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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