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2. 09:05ㆍ논설
5) 우연과 행운, 그리고 필연의 차이
이제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도래했다. 민주주의 최대의 축제라 일컫는 선거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선거는 당사자들의 탁월한 형세판단과 선택, 뛰어난 전략에 의해 승패가 갈리기 보다는 상대편의 무지와 오판, 반복되는 실수로 인한 반사이익에 힘입어 승리를 거머쥔 지독하게도 운이 좋은 자들의 단순하고 싱거운 놀음판에 불과했다. 그것은 대개 우연이거나 아니면 행운이었다. 그 곳에는 더 뛰어난 사람, 더 훌륭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이 차지 않았고 당장 눈앞의 일도 가늠할 수 없어 겨우 먼산바라기나 해야만 했다. 누가 덜 어리석은지 도토리 키 재듯 까치발을 딛는 우자愚者들만의 잔치를 유권자의 이름으로 지켜보는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우리 정치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은 모두 그로부터 기인한다. 성품이 맑고 올곧으며 능력까지 뛰어난 이들은 그 안으로의 틈입을 거부했고, 따라서 우리 정치의 본산이라는 여의도는 공익보다 사적 이익을 우선하는 패거리, 국리민복과는 아예 처음부터 담을 쌓은 정상배들의 차지가 되었으며 모든 정치적 판단과 선택은 오로지 파당과 계보의 이해에 의해서만 결정되었다. 그러면서도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개혁과 쇄신, 그리고 변혁을 말한다. 그렇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변하지 않는, 아무리 시급하고 위중한 사안이나 과제도 내팽개쳐 온 그것이 바로 우리 현대정치 60년의 실상이다. 이제 더는 그 같은 방종과 일탈, 부도덕과 무책임을 용납할 수 없다. 더 이상은 냉소와 무관심으로 방치할 수 없다. 그것이 2012년의 시대정신이며 국민 모두의 요구다.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만 흐른다. 시대정신이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바램과 열망에 다름 아니다.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의제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필연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특별하고 기이한 현상과 마주하고 있다. 기존의 모든 정파와 정당을 불신하고 경원하는 다수 국민의 여망이 그 어떤 정치 경력도 없는 정치 문외한 안철수라는 기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투사되고 분출하는 생경하고 특별한, 그러나 새롭고 기이한 경우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는 국민들에게 변화와 혁신을 통한 새로운 정치를 약속했다. 정치란 본시 개인과 집단, 사회가 지닌 잠재력을 정확하게 파악 그 역량을 결집하고 극대화해서 막힌 곳은 뚫고 굽은 곳은 바르게 펴 위와 아래 옆이 두루 잘 통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같은 정치 본래의 의미와 권력 담당자의 국정운영 의지가 부합될 때 그가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책과 제도가 비로소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감과 동의를 얻어 자발적으로 준수되고 시행될 수 있다. 이런 권력은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실패하지도 않는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력은 정보의 점유와 분배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창출되고 행사되어 왔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자기 이외의 모든 것들을 자의적으로 무분별하게 통제하고 제어하고자 하는 유·무형의 힘이다. 이때의 힘은 물리적인 것까지 포함한다. 특히 전제적 권력은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를 특정 대상에게만 선별적으로 배분한다. 그것이 바로 권력의 남용이다. 따라서 필요한 정보가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수집되고 합리적으로 배분되는 사회를 우리는 감히 공정하고 자유로운 사회라고 일컫는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상상 속에서만 그려오던 그런 사회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시대의 요구이며 역사적 필연이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우리 앞에 등장한 대선후보 세 사람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더없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사회의 구현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의 약속과 다짐이 우리에게는 절대 실현될 수 없는 공허한 외침으로만 들리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우리 앞에 놓인 문제적 사안들에 대해 모범답안처럼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뻔한 말들을 늘어놓을 뿐, 확고한 실천의지가 포함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은 실제가 아니다. 말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너무 복잡하게만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가장 확실한 해법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토록 간명한 사실을 그들만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주변에서만 손쉽게 답을 구하려 한다.
그들의 주위는 먹이를 탐하는 짐승처럼 무리지어 모여든 권력에 허기진 폴리페서들로 득실거린다. 하기는 그것이 우리의 지적 전통이기는 하다. 국립서울대학 그것도 소위 윤리학과 교수라는 자가 사법적 판단과 역사적 평가가 이미 끝난 5.16 군사 쿠테타를 "5.16은 위로부터의 혁명"이라는 글을 민족 정론지라고 자부하는 유수한 일간지에(동아일보 7월 17일자 A25면)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뻔뻔하게 내싣고 있는 판국이다. 이미 역사적인 평가가 끝난 사안은 서로 분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공功은 공功대로 과過는 또 과過대로 인정하면 된다. 공이 있으므로 그 어떤 허물이라도 대속하거나 상쇄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자들에게 역사란 얼마든지 반복되어도 그만인, 그저 단순히 지나간 세월에 불과한 것이다. 쥐꼬리만 한 양심을 팔아 현실과 타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더없이 천한데다 얄팍하기까지 한 지식을 무슨 세상에 다시없는 큰 지혜라도 되는 양 과대포장 해 권력과 영합하는 일로 자신의 영달을 도모하는 일에 여념이 없으면서도 절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들, 간사한 세치 혀와 꿀보다 달고 비단보다 매끄러운 말로 세상을 속이는 것이 바로 그들의 장기이자 탁월한 능력이다. 춘원이 그랬고 육당 또한 다를 바 없었다. 곡학아세曲學阿世와 교언영색巧言令色 그것이야 말로 근대 이래로 지금 이 순간 까지 창백하고 나약한 우리 지식인들의 의식을 관장해온 덕목이며 면면히 전승되어 온 지적전통이다.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제반 현상에 대한 객관적 입장과 그 변화를 가감 없이 담아낼 수 있는 통찰력이다. 사회의 변혁기에는 이 같은 요구가 더욱 절실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흔히 자신이 축적한 남다른 지식을 동원해 세상의 모든 불의한 일과 부당한 일에 스스로 나서서 협력한다. 그런 자들에게서 긴박하고 위중한 문제의 해解와 답答을 구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어리석은 자들 중의 하나를 선택해 향후 5년 간 자신의 운명과 삶 전반을 수탁해야 하는 우리네 신세야 말로 정말 어처구니없고 처량하다 말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선이나 차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국정운영을 위한 비전과 정책이 실종되었다는 이번 대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회가 그렇다는 말이다.
'논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10 (0) | 2012.11.24 |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9 (0) | 2012.11.23 |
시대는 사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7 (0) | 2012.11.21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6 (0) | 2012.11.20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5 (0) | 2012.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