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1. 08:50ㆍ논설
4) 위기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 위기는 현실적이라기보다 다분히 정서적이다. 그래서 아주 생소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이 위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시기에는 반드시 서로 다른 각각의 위기가 있었다. 위기는 언제나 다시 찾아오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고 또한 어김없이 사라진다. 우리가 지금 마주한 위기 또한 다른 어떤 것과도 개별적으로 관계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과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일어나고 있는 까닭에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역시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위기는 그것과 당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례적이다. 그 이례적인 위기 앞에서 우리는 곧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려 한다. 이 같은 대처는 아무리 나쁜 수단도 올바른 결과만 낳는다면 얼마든지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악은 그저 악일뿐이다. 전쟁이 평화의 수단이 될 수 없듯이 그 어떤 경우에도 부당한 방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만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런 몰이성적인 행태는 지나간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을 수 없다. 꼭 같은 잘못을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지식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의 문제의식을 통해 역사를 재조명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역사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우리에게 어느 시대 어떤 곳에서도 변함없이 인간과 사회를 함께 관장하고 있는 공통의 과제를 꾸준히 관철하고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한 시대의 지성이 그러한 책무를 방기하게 되면 세상은 극도로 혼란해진다. 세상이 어지러워질 때는 반드시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예후가 있다. 우선 사람들의 모습이 화려해지고, 남자의 외모가 여자와 같아지고, 풍속이 음란해지며 누구나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고, 행동거지가 잡다하거나 산만하며 가볍기 그지없고, 음악 또한 거칠기가 마치 수천의 군마가 한꺼번에 내달리는 것과 같다. 즐겨 쓰이는 문장은 하나같이 간사하고 달콤하며 서로를 위하는 일에 올바름과 그름의 구분이 없고, 남의 불행에 무심하며 그러면서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 쓸모없는 만용을 칭송하고, 가난한 사람은 남의 것을 탈취하는 일에 아무 망설임이 없으며, 부유한 사람은 더 많은 부富를 쌓기 위해 남을 해치는 일마저도 서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태에 그 같은 징후가 조금이라도 비친다면 세상은 이미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 진입한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나, 정당 정치의 붕괴도 그 같은 예후의 일환이다. 정치적 불안은 구체적 현실로서의 실제가 아니다. 다만 머지않은 장래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도래할 파탄과 멸절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은 화급한 정서적 위기나 위구로 인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러한 위기감이나 위구를 불식할 수 있는 특별한 수단이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해서 우리가 봉착한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절대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세상에 극복할 수 없는 위기는 없다. 그것이 바로 위기의 본질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 없는 위기에 당면했지만 또한 반드시 그 위기를 극복했고 그것을 새로운 도약과 진보의 디딤돌로 삼았다. 인류의 지난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어떤 경우에도 역사는 절망을 용납하지 않는다. 역사가 우리에게 아직도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위기는 끊임없이 도래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
'논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9 (0) | 2012.11.23 |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8 (0) | 2012.11.22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6 (0) | 2012.11.20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5 (0) | 2012.11.19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4 (0) | 2012.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