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 07:15ㆍ논설
북한은 공존의 대상인가? - 사상과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체제와 집단은 더불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도 북한을 반드시 타도해 마땅한 적이며 체제 붕괴를 통해 흡수 합병해야할 대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엄존한다.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1991년 9월 유엔 동시가입과 함께 공식적으로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는 공존의 길에 들어섰다. 누가 무어라 해도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실체적 진실이다. 이런 전제 하에서 대립과 긴장, 의도적 충돌로 일관해온 지난 5년간의 왜곡된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향후 100년 뒤에도 여전히 현재와 같은 단일 민족국가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1억5천만 이상의 내수시장을 확보해야만 총성 없는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작금의 무역환경 아래서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 살아남을 수 있다. 영토 확장과 정치적 통합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현 국제정세 하에서는 남·북한과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 이동以東 지역을 아우르는 한인韓人경제권역 구축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남·북한 간에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 또는 연대가 필수적이고, 바로 이 지점에서 햇볕정책을 주창한 DJ의 혜안이 빛을 발한다. 동북 3성과 연해주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韓人은 줄잡아 150만을 상회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들은 향후 한인경제권 구축의 주요한 자산과 첨병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남·북한 간의 화해와 협력, 교류확대, 관계의 진전은 단순한 필요조건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반드시 충족시켜야 할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현 정권이 지난 5년 동안 대북관계의 기본 지침으로 견지해온 상호주의는 두 나라 혹은 체제가 서로 비등한 국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 적용할 수 있는 교류방식이다. 단순 수치상의 군사력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의 혈맹이라는 중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가 입증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감당하는 얼마간의 손실이 머지않은 훗날 가늠조차 하지 못할 큰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면 그보다 더 흔쾌한 일이 다시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를 서둘러 개선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방의 등불 -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되리라.
현재 중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국가와 문명 건설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는 또 다른 형태의 지배논리를 고착시키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현대 중국의 중화주의는 패권주의와 다르지 않다. 중화주의는 다른 문화, 다른 가치, 다른 삶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패권 지향적이며 더없이 강력한 도그마다. 공존이란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존재양식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는 대상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할 때에만 성립이 가능한 논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 밖에 이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삶의 가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공생하는 방법과 구도를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세계화고 선진화이며 전 지구적 삶의 방식에 부응하는 새로운 인식체계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 민주주의는 실현 불가능하고 신자유주의는 지속 불가능하다. 이상은 현실이 아니고 중단 없는 계속적인 성장은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잘 현존하는 가치와 인식의 혼란을 경험한다. 가령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그렇다. 그들을 곧잘 제국주의라 매도하는 우리의 심중에는 기실 막연한 부러움이 존재한다. 어떤 다양한 견해와 문화까지도 모두 수용해서 새롭게 제 것을 창출해내는 여유와 넉넉함의 근저에는 인류 최고의 가치라는 휴머니즘이 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자명해진다. 경계와 근린의 자리매김을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우리의 필요와 쓰임새에 따라 상대와의 거리를 설정하는 영민함과 지혜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하겠다.
누가 되었든 향후 5년간 우리의 삶과 운명을 감당하겠다는 자者라면 적어도 현시점에서의 갖가지 문제적 사안에 대해 이보다는 훨씬 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견해와 실천의지를 밝히는 것이 다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논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神聖의 끝, 人性의 시작 - 1 (0) | 2012.12.07 |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18 (0) | 2012.12.02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16 (0) | 2012.11.30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15 (0) | 2012.11.29 |
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14 (0) | 2012.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