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聖의 끝, 人性의 시작 - 28

2013. 1. 23. 08:22논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도덕, 경제, 정치라는 생生의 삼각면三角面 으로부터 분화된 수많은 문화요소를 함유하고 있다. 이 문화요소는 각기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깊은 인과관계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사물과 그림자와 같이 언제나 함께하며 움직임과 소리처럼 서로 상응한다. 이 문화요소들이 조화롭게 상응하면서 균등히 발달하면 그 사회의 진화와 발전이 건전하고 온당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숱한 문화요소 중 일부나 어느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급격한 양적변화를 거듭하다가 그 극점에서 발현되는 포화작용飽和作用으로 인해 본래의 속성이나 양태와는 전혀 다른 질적 변화를 일으키게 되면 나머지 다른 문화요소들도 그에 수반해 한꺼번에 비약적인 변이 현상을 보이게 된다. 마치 단생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개체 중의 개체 한 둘이 과다한 영양공급이나 외부의 자극을 받아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면 나머지 모든 개체들 또한 같은 변화를 일으켜 전혀 다른 이종異種으로 갑자기 변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동양의 여러 나라는 각기 수천 년에 걸쳐 서로 다른 고유의 문화를 전승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 독자적인 사회를 구축했으나 동서의 교통이 열려 서양 문물의 자극을 받은 학문, 정치, 도덕, 경제, 의례, 인습이 크게 변해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되고 말았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물결과 그 영향의 심대함을 깨달아 적절하게 대응한 경우에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번영을 구가했으나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나라와 사회 또한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했다. 사회변혁의 원리가 바로 이와 같다.

  원시 인류는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 숲이 무성하고 바위가 첩첩한 곳, 가시넝쿨이 뒤덮인 곳에서 혈연으로 이어진 소수의 씨족이 무리를 지어 동굴에 살았던 까닭에 그 생활상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단단한 돌을 깨트려 무기를 만들고, 순록과 들소 같은 동물을 쫓아 잡는 수렵채취가 그 주된 생존활동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불시에 습격하는 맹수와 독충의 추격과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맞서 싸우거나 재빨리 도망치는 것 밖에는 마땅한 방어수단이 없었다. 이 시기의 경험을 통해 그들은 무리의 힘을 한데 모으는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까운 곳의 다른 씨족들과 연대해 대집단인 부족을 형성하니 비로소 맹수와 독충의 침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동물계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무리가 커지고 구성원이 복잡해지자 손가락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표정으로 마음을 전하던 그들은 보다 섬세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필요하게 되어 언어가 발생하게 되었다. 언어의 발생으로 인해 인류의 문명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무리지어 생활하게 되자 구성원 사이에는 생각이 다르고 감정이 어긋나는 자들이 많아 뜻하지 않은 행동이 상대의 심사를 건드려 크고 작은 다툼이 그치지 않으니 그 피해가 맹수와 독충으로 인한 폐해 보다 오히려 컸다. 열악한 생존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로 무리지어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으나 무리생활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는 일 또한 시급했다. 결국 그들은 무리 구성원 각자의 표상의식을 종합 절충해 적절한 대표이념을 조성했으니, 노인과 청년,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 가까운 이웃과 먼 이웃 등 집단 구성원 사이에 두루 적용되는 규범을 정하고 무리의 구성원 모두가 이 규범을 준수하도록 했으니 이 규범이 곧 부족 나름의 의례와 예절이다. 이 의례와 예절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그들은 자기 부족의 시원장로始原長老의 신격神格과 연계해 동일시했다. 신격화神格化된 집단적 대표이념은 특정구성원의 꿈에 원시장로의 형상으로 나타 의례와 예절의 준수를 강요하기도 했으니 이것이 바로 계시啓示다. 시원장로의 계시로 구상화具象化된 의례와 예절은 부족원 모두가 힘껏 지킬 수밖에 없는 절대규범으로 정착했다. 이 규범은 곧 부족 모두의 이상理想으로 수립되어 전체 부족원의 신뢰와 믿음의 표상이 되었고 이 믿음이 다시 개인의 의념意念과 결합해 신앙으로 수립되고 비슷한 신앙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여 단체를 이루니 이것이 바로 종교의 시초로, 원시종교는 특히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과 감정이입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또 이를 적극 가르치고 권장하니 비로소 사람들 간의 오해와 갈등, 다툼이 사라져 서로 돕는 마음이 생겨 구성원 간에 협동하고 화합하며 예의를 지켜 겸양하는 기풍이 일어나니 이는 모두 원시종교의 공적이다. 그러므로 원시종교를 달리 의례종교라 부르기도 한다. 의례적 종교가 발달하는 동안 부족원 간의 다툼이 종식되고 집단생활이 안정되어 인구가 크게 증가했으나 사람 개개인의 생활정도와 건강, 체력 또한 제 각각이었으니 이들은 그를 모두 개인의 운명 탓이라 믿었다. 그들이 처한 생활환경은 불의의 재해와 질병으로 생명을 잃는 일이 잦았던 까닭이다. 따라서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재해가 없고 질병이 없는 평안한 생활이었다. 평안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재해를 물리치고 질병을 퇴치할 수 있는 특별한 방편이 필요했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했지만 그들의 이지理知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결국 자연의 재해나 질병은 모두 인간의 운명에 따른 현상으로 그 운명을 주재하는 신神의 뜻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