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聖의 끝, 人性의 시작 - 29

2013. 1. 24. 09:21논설

 

 인류가 지닌 여러 문화요소 중에서 신비적 요소가 포화작용을 일으켜 시대적 결함을 노정하기도 했으니 그것이 바로 무격巫格신앙이다. 무당과 주술사는 신비적 요소를 종교의 이상적 내용과 결합시켜 변태적 권위를 부여하고 개인의 화복禍福을 빌고 재앙을 피하려는 마음을 신앙과 의례에 결부해 종교의 중심내용으로 편입시켰다. 이들의 중계적 계시로 원시종교는 질적 변화를 일으켜 2차적 형식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개인의 화복禍福을 지성으로 빌거나 재해災害의 모면을 염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간혹 특이한 심령작용이 나타나 미구에 일어날 재해와 질병을 예고하기도 하니 이것이 점술의 기원이며, 신神의 뜻에 의한 주술呪術로 질병을 쫓기도 하니 이것이 바로 후세의 법술法術이다. 그 밖에 신탁에 의거해 흙과 돌과 초목 등의 주술적인 물건을 사용해 질병을 치료하기도 하니 이것이 의약醫藥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인간의 무의식에 근거한 심령작용에 의해 인간의 집단생활이 안정을 되찾으니 이것이 2차적 종교인 무격신앙의 공적이고 이를 우리는 무격종교巫格宗敎라 칭한다.

  무격종교가 발달하는 동안 인간의 생활 양상이 식량을 구해 끊임없이 이동하는 수렵채취 방식에서 주거환경이 적합한 지역에 취락을 구성해 안착하는 정주양식으로 바뀜에 따라 자연히 토지의 이용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동굴이 넓고 양지바르며, 산세가 아름답고 시냇물이 맑게 흐르며 토양이 비옥해 농경에 적합하고 초목이 무성해 가축을 키우기에 적합한 곳은 그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이 넘치고, 동굴이 후미지고 어둡고 습하거나 산세가 험하고 시냇물이 탁해 마실 수 없으며 토양이 척박해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 땅은 사람마다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계속 증가해 부족마다 보다 넓은 거주지가 필요했으며 식량이 부족해 생존이 위협 받게 되자 이웃한 부족들에 대한 약탈이 성행했다. 이에 부족 간의 정벌과 구축, 이동, 침략이 일상사가 되었다. 이 시기에 이집트인은 유목민에게 정복되었고 묘족苗族은 한족漢族에게 구축되었으며, 가나안의 복지는 이스라엘족이 차지했으며 서구의 풍요로운 땅은 동쪽 야만족의 손에 들어갔다. 이처럼 부족 간의 전투가 일상화 되자 일반 민중의 생활은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이 시기의 사람들이 가장 열망한 것은 부족 사이의 싸움이 그치고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강대한 권력이 필요했다. 부족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그에 불복하는 부족은 엄하게 징치할 수 있는 강한 무력을 지닌 권력의 출현이 그래서 가능했다. 인류의 문화요소 중 정치적 문제가 정상궤도를 이탈해 포화작용을 일으켜 그 시대의 결함이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신탁神託을 전하던 제사장들이 나서 물자의 교류를 통해 부족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혼인으로 부족 간의 혈통을 뒤섞으며, 계절집회를 열어 부족 간의 감정을 융화시켜 여러 부족을 나라라는 하나의 틀로 묶으니 이것이 바로 봉건제의 창시다. 이 봉건제를 통해 권력개념이 종교의 이상적 내용과 결합해 변태적 권위로 바뀌고 형벌과 징치에 대한 개념이 개별적 신앙과 의례와 만나 종교적 중심내용을 형성하니 이에 종교는 다시 질적 변화를 일으켜 3차적 형식으로 새롭게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