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5. 12:16ㆍ논설
4. 교운공사 敎運公事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통일신단에서 세운공사로 세계정세의 추이와 단계에 따라 도수度數를 세우는 한편 증산甑山의 이상과 교의에 입각한 후천의 새로운 지도권위가 될 운수運數인 새 종교의 배태, 생성과 관련한 도수를 정했으니 이것이 바로 교운공사敎運公事다.
증산甑山은『먼저 난법亂法을 낸 뒤에 진법眞法을 내리라』하고 27년에 걸친 난법도수亂法度數를 정하는 것으로 교운공사의 제 1단계를 행했다. 1909년 기유 4월에 전주 용머리 고개 김 주보金周甫의 집에서 공사公事를 행할 때 종이 3장의 네 귀퉁이에 『천곡泉谷』두 자字를 쓰고, 또 『27 년 二十七年』이라고 쓴 뒤 제자 두 사람으로 하여금 그 종이의 네 귀를 마주 들게 하고『그 모양이 상여의 호방산과 같다』고 말한 후 불태웠다. 제자들이 그 연유를 묻자 『일찍이 천곡泉谷이란 사람이 고을의 수령으로 봉직하던 중 임기를 다하기 전에 죽었는데, 금후로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며, 홍 성문洪成文이란 술사術士가 순창 회문산에서 27년 간 헛공부를 했다 하는데 지금부터 27년간 헛된 도수度數가 있으리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27년에 걸친 난법도수를 정한 공사로 1909년 기유 4월부터 1936년 병자 3월까지 이어지는 난법亂法 기간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보천교주普天敎主가 추포追捕되고 교도敎徒들 또한 2인 이상 모이는 집회가 금지되는 탄압을 받는다. 이후 증산甑山이 문 공신文公信의 집에서 공사公事를 행하면서『오늘 큰 공사公事가 있으니 각기 생각나는 대로 부인 1명 당 점點을 한 개씩 찍으라』하니 신 경수申京守는 2개, 황 응종黃應種은 3개, 안 내성安乃成은 8개, 차 경석車京石은 12개, 문 공신文公信은 1개를 찍었다. 증산甑山이 경수와 응종에게『칠십 늙은이가 한 명의 부인도 감당하기 어렵겠거늘 어찌 두 명 세 명을 거느리려 하느뇨?』하고 물었다. 경수는『후천에는 늙은이가 다시 젊어진다 하오니 옛 부터 왼쪽에 부인 오른쪽에 첩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두 명의 부인을 원하나이다』하고 응종은『천·지·인天地人 3재三才로 세 명의 부인을 원합니다』답하니 증산甑山이『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일렀다. 내성은『육관대사六關大師의 제자 성진性眞이 여덟 선녀를 데리고 희롱한다 하였는데 후천은 신선의 세계라 신선이 되고 나면 여덟 선녀를 거느리는 것이 옳은 줄 아옵니다.』하니『네 말도 일리가 있도다』하고 경석에게 묻기를『그대는 어찌 12명의 아내를 원하느뇨?』하고 물었다. 경석이『열 두 나라에 한 명 씩의 아내를 두고 하루에 한 나라씩 돌아다니면 남아의 행락이 극치일 줄 아나이다』하니 그 또한『네 말도 일리가 있다』하였다. 이어 공신에게『칠십 늙은이도 2, 3명의 부인을 원하거늘 그대는 약관의 젊은이로 어찌 한 명의 부인만을 원하는가?』하고 물었다. 공신이『하나의 음陰과 하나의 양陽을 일러 도道라 하였으니 올바른 음과 양이 공도公道이며, 어지러운 음과 양은 옳지 못한 줄로 압니다』하니 『네 말이 옳도다』하고 공신에게『오늘 공사는 잘 보았으니 점심과 술과 안주를 잘 차려 모든 사람들을 대접해서 돌려보내라』했다. 공신이 그 말대로 술과 음식을 넉넉하게 차려 그 자리에 있던 종도들을 대접해 돌려보내고 난 뒤 증산甑山이 공신, 경수, 응종에게『오늘 공사公事는 다름이 아니라 갑오년에 아무런 죄 없이 참살된 동학 신도가 수십만에 달하니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떠돌 것인데 이를 해원解寃시켜주지 않으면 후천後天에 반역反逆이 줄을 잇고, 온갖 재앙이 생길 것이므로 이제 동학의 원혼寃魂을 해원할 도수度數를 경석에게 붙였으니, 춘치자명春雉自鳴이라는 말을 새겨보라.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내할 것이니 두고 보라 사람들과 돈의 움직임이 갑오년의 몇 배에 달할 것이며, 경석은 제왕만큼 먹고 지내리라』하고 말했다.
결국 증산甑山이 난법도수를 먼저 정한 것은 갑오년 동학혁명으로 생긴 원귀愿鬼들을 해원解寃시켜 모든 반역과 재앙의 근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난법도수를 정하고는『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와 같다 하고 비자, 주자, 복자, 기자, 우종, 우횡飛者走者伏者起者于從于橫이라 한 것은 27년 간 크고 작은 수많은 집단들이 분립해 증산甑山 자신의 뜻이나 교의敎義와 상관없이 수많은 양태로 세상을 어지럽힐 것을 분명하게 예언한 것이다.
이 난법도수 가운데 후일 진법운동眞法運動이 배태될 도수道數를 정한 것이 교운 공사의 제 2단계인데 서경書經의 서문序文, 대학大學의 1장章 아래 부분을 많이 읽으라 한 것과 1928년 무진 동지에 새로운 교단敎團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과, 의통醫統을 전傳하라 한 것이 모두 자신의 이상理想과 교의敎義를 천명할 토대를 확립하고 다가올 대겁액大劫厄을 극복하고 모면할 도수度數를 정한 것이다.
난법도수를 거두고 10년 간 재앙이 몰려 있는 시기를 정해 세계 운수의 10년 병화兵禍와 표리表裏의 관계로 병행하게 한 것이 교운공사의 제 3단계이니『세월여유검극중, 왕겁망재십년호勢月汝遊劍戟中, 往劫忘在十年乎』라는 시詩로 표현한 것과 같이 1936년 병자에 일제의 대 탄압이 시작되어 1937년 정축에 중·일 전쟁이 일어나 10년 간 병화가 계속되는 동안 교단에 대한 탄압도 마찬가지로 계속될 것임을 예시한 것이다.
증산甑山은 이 같은 어려움과 고통을 참고 견디면 자신이 전수한 의통醫統으로 다가올 대겁액大劫厄을 극복하고 그 때 비로소 진법도수眞法度數가 펼쳐지도록 정했으니 이것이 바로 교운공사敎運公事의 제 4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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