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정원

이 영옥(李永玉) 2011. 10. 19. 16:14

 

선연한 노을에

제 몸 태우다 스러진

지붕들이 하나 둘

어둠에 묻히면

공제선 밖까지 내리는

어스름

여름은 어느새 가뭇하다.

 

거리엔 하나 둘 불빛 돋고

문득 네온이 번저야

비로소 눈에 드는 여인들

은빛으로 파닥거리는

서럽도록 눈부신 율동과

살아남은 것들의 열망을 뒤로 한 채

여름은 이미 흔적도 없다.

 

속절없이 떠나보낸 날들이

잃어버린 시간이 억울해서

사람들은 옥상에 올라 술잔을 들고

부드러운 바람에 휩싸여

머리 위 하늘을 보거나

불 밝은 빌딩을 굽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렇구나.

그래도 이 도시는 아직 이렇게 넓고

시원하구나.

진회색 건물로 가득한

칙칙하고 짜증나고 꽉 막힌

벌통은 아니구나.

 

이제껏 살아오며 잃어버린 것

정말 간직하고 싶었지만

끝내 지켜내지 못한 것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이 밤을 잠들지 못하게 하고

늘 깨어있는 영혼이도록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위하여

 

지금 저마다의 정원에

촛불을 켠다.

어떻게든 살아내느라

패이고 야윈 가슴에

銘文을 새긴다.

 

「비록 그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불꽃처럼 찬연할 것을」

 

그리고 믿는다.

지나간 여름의 전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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