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5. 06:42ㆍ소설
당시 거의 모든 공장들은 업적급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얼핏 생각하면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한 제도 같아 보였다. 그 제도에 의하면 일을 열심히 빨리 할수록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용주들은 임금규정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채석장에서 일을 하고 잇던 ㅅ의 경우도 그랬다. 사방 한 자의 돌덩이 하나를 따낼 때마다 얼마씩 추가되는 기록에 의해서 품삯을 받았다. 매일처럼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기 위해서 식사시간까지 아껴가며 쉬지 않고 일했지만 손에 들어오는 돈은 마찬가지 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개인당 작업량이 일정량 증가하면 어김없이 회사의 기록 담당자가 나타나 경기가 안 좋다느니, 판매량이 줄었다느니,경쟁이 심해 이윤이 줄었다는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가면 지난번보다 얼마쯤 낮아진 새로운 임금 규정을 발표하곤 했으니까. 말하자면 업적급 제도는 겉만 번드르르한 새로운 형태의 착취였다. 고용주의일방적인 횡포와 착취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마음대로 불평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은 곧바로 쫓겨나야 했다. 자본을 장악한 자들에 의해 생활이 지배되고 끊임없이 해고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ㅅ은 말없이 그들의 요구에 따라야 했다. 본시 고용인은 고용주와 관계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의적인 개인이고 따라서 자신의 이해와 관련해 특정한 행동을 취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용인들은 자신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든 것을 감수하며 묵묵히 일하든지 아니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사실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겼다. 그들에게도 빼앗긴 것을 되찾을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행동하지 않았다. 누구도 위험을 자초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몫을 더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 위험을 선택해야만 했다. 자의적인 선택은 보통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또한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운다. 여러가지의 가능성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결단을 의미한다. 가능성과 선택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결단하도록 하지만 대신 무엇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 강요와 책임때문에 인간은 곧잘 선택과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눈앞의 상황을 회피하는 일은 곧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는 것과 같았다. ㅅ은 그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는 일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람답게 사는 일. 그것은 ㅅ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의 꿈이었다. 진보와 번영, 보다 나은 미래와 같은 프로메테우스적인 꿈은 금융가의 증권 시세나 정부기관의 통계숫자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것은 채석장의 인부로부터, 방적공장의 여공으로부터, 재래시장 노점상의 돈주머니로부터, 단칸 셋방의 아궁이로부터 이루어져야만 했다. 보다 나은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그들이 지닌 것은 너무 적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부족한 것을 메울 어떤 방법도 알지 못했다.
왜 우리만 항시 모자라야 하는가? 열심히 일하는데도 우리는 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는가?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하고 게으른 사람이 오히려 부유하다니.
ㅅ 혼자서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ㅅ과 같은 생각은 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괸해서, 자신들의 미래에 관해서 그리고 자기들을 자꾸만 피폐케하는 것들에 관해 생각하며 그들은 전쟁을 치루었다.
전쟁은 곧 신(神)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에게 열중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신과 동격이었다. 그리고 전쟁에는 불꽃처럼 아름답고 강렬한 꿈이 있었다. 승전이라는 이름의 간지럽고 유쾌한 환상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열광했다.
전쟁 동안 ㅅ은 수없이 많은 일자리를 전전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그는 스물 다섯이었다. 여러 일자리를 거치는 동안 그도 많이 변했다. 그는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그러나 그 점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정도 이상의 신뢰를 받기도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열심히 일했고, 일하는 만큼 열심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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