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특별한 꿈 - 2

2010. 1. 7. 09:19소설

 

 ㅅ은 식당 주방에서 팔 개월간 일했다. 자질구레 하지만 귀찮고 신경쓰이는 허드렛일은 그를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주방에 붙잡아 놓았다. 잠자리인 다락은 더위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물것들과 싸우다 겨우 잠이 들라치면 벌써 아침이었다.

 식기 세척실은 정말 끔찍했다. 도대체 창문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전기라도 나가면 그야말로 깜깜절벽이었다. 기름 묻은 접시나 냄비를 씻기 위해 끓이는 더운물의 증기가 천정에서 물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그을음과 먼지로 범벅이 된 물방울은 머리털을 적시고 닦아놓은 식기를 더럽혔다. 더러워진 식기는 다시 닦아야 했다. 

 얼마 후 ㅅ은 싸구려 사글셋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무더위와 싸우며 구정물에 젖어 일하면서 ㅅ은 차츰 자기 안에서 자신의 위대성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위대함을 느꼈다. 아무리 시달려도 짓밟혀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견디기 힘든 괴로움을 그것으로 버텼다. 새벽 두시까지도 일이 끝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허름한 셋방에 엎드려 동이 틀 때까지 책을 읽었다. ㅅ은 지식인이나 무슨 고매한 상상가가 되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자신이 처한 끔찍한 현실과 그 현실로부터 가해지는 괴로움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몇 사람은 부자인데 왜 수백만의 사람들은 지치도록 일을 하면서도 항시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지독하게 열심히 일해도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독서로도 그의 생활은 풍성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좀 더 인간답게 살아야겟다는 욕망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욕망은 오래지 않아 그의 꿈이되었고 희망과 신념으로 변했다.

 희망과 신념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보다 나은 식사, 보다 나은 잠자리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독서했다. 채석장, 강철공장, 밧줄공장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그는 계속 책을 읽었다. 로마노 구아르디니, 페르디난트 튀니스, 칼 만하임, 다윈, 고리키, 톨스토이 등 손에 닿는 모든 책을 읽었다. 후일 그가 수감되어 있던 방의 얼룩진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남아 있었다.

 

 아,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워가며 흔들리는 촛불 밑에서 책을 읽었던가? 겨우 누우려고 하면 어느새 기상을 알리는 두부장수의 요령 소리가 가뭇하게 들려오고 나는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퉁퉁 부어오른 눈꺼풀을 문지르면서 공장이나 채석장으로 향했다.

 

 독서는 그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 바로 보다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자본의 끊임없는 착취와 음모라는 것을. 대부분의 고용주들이 그들을 쉽게 망가지지 않고 끊임없이 재사용이 가능한 기계 이상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언제부터인가 노동은 고용하는 사람이나 고용 당하는 사람 모두에게 다분히 비인격적인 것이 되어있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얻는 만족은 그것에 소요된 시간에 맞추어 지급되는 봉급봉투의 부피와 비례했다. 그들에게 노동은 단순한 상품이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수단 이외의 어떤 의미도 없었다.

 단순한 생존. 사람은 단순히 살기 위해서만 일하지 않는다. 동물들도 일을 한다. 그들도 생존한다. 무엇을 위한 생존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사람과 동물의 차이였다. 보다 나은 생활,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 때문에 사람은 자신을 지탱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ㅅ에게는 전혀 없었다. 하루하루 꼭같이 반복되는 노역과 그로 인한 피로가 겹쳐서 그를 꼼짝달싹 못하게 찍어누를 뿐이었다. 죽도록 일을 해도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전혀 일을 하지 않는 경우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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