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꿈 -1

2010. 1. 4. 22:01소설

 

 조국은 아직 꿈 속에 있었다.

 전쟁을 통해 비대해진 것들이 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로 치열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거대한 육식동물이었다. 전쟁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당하기 위해 물자의 생산은 끊임없이 증가했고 생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다. 그리고 온갖 추악한 일들이 행해졌다. 조국의 젊은이들이 신념과 이상이 다른 나라의 병사들과 목숨을 주고받으며 싸우고 있는 동안 그것을 빌미로 오히려 자신의 부와 힘을 늘이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신념이나 이상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계산하고 평가할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피폐해졌다. 그것으로 인해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피폐해졌다. 전쟁을 괴로워하는 보통 사람들과 그것을 즐기는 특별한 사람들 가운데 전쟁을 직접 수행하는 것은 그것으로 더욱 피폐해지는 사람들이었다. 전쟁은 자꾸만 열기를 더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과 그들의 신념을 위해 전선으로 향했고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졌고 생산은 자꾸만 증가했다. 모든 공장의 기계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굴뚝이 검은 연기를 내뿜었지만 사람들은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농촌에서 유입된 이주 노동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그들은 비교적 단순환 기능밖에 지니지 못했으므로 거의 모든 직종에서 기피되었고, 당연히 비숙련 부분과 위험 부담이 높은 작업장에서 일헐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임금은 터무니없이 낮아 노동력의 재생산이나 현상유지마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낡은 전등이 빛을 뿌리는 어두침침한 사형수용 독방에서 ㅇ씨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가 감옥에 갇히고 나서 막 태어난 딸아이에게 쓰는 편지였다. 벌써 여섯 살일 것이다. 처음 감옥에 들어올 때 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그래도 아직 서투른 글씨였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쓰고 있었다. 아빠와 아빠의 친구 ㅅ아저씨는 옳은 것을 지키기 위해 열렬히 싸웠고, 보다 나은 삶을 누리겠다는 아주 특별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잡혀왔고, 그래서 너와 함께 놀아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썼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답고 착한 생활과 억눌리지 않는 삶을 누리려고 태어났단다. 그런데 이 낡은 세상은 너와 네 엄마, 우리들 모두에게서 그렇게 살아갈 희망과 권리를 빼앗아가버린 거란다.

 

 편지를 쓰다 말고 ㅇ씨는 문득 자신이 육 년 전 사형을 언도받았던 법정을 생각했다. 한 달 이상 끌어온 심리를 종결하고 나서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평결을 요구했다.

 "배심원 여러분은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자 양심입니다. 조국의 장래와 신념을 위해서 싸우는 젊은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선에서 무수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평결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배심원들이 의견을 모으기 위해 밖으로 나간 뒤 ㅇ씨는 옆자리의 ㅅ에게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애?"

 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깊은 침묵이 법정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배심원들이 하나씩 법정 안으로 들어오고 잇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그들은 평결은 마친 셈이었다. 판사가 말했다.

 "배심원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피고와 변호인 그리고 검사도 제자리에 앉으시오."

 ㅇ씨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방청석을 굴러보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에 뜨이던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물었다.

 "배심원 여러분은 평결에 합의하셨습니까?"

 수석 배심원이 대답했다.

 "합의했습니다."

 판사가 다시 말했다.

 "집행관은 평결문을 넘겨주시오."

 배심원들의 평결문을 집횅관이 서기에게 넘겨주자 방청석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결이 너무 빠르잖아?"

 "미리 다 짜고 하는 거지 뭐."

 판사가 손을 들어 방청석의 은밀한 소요를 제지하고 나서 서기에게 말했다.

 "서기는 평결문을 낭독하시오."

 서기가 메마른 소리고 기계처럼 또박또박 평결문을 읽었다.

 "배심원 일동은 피고들의 유죄를 인정합니다."

 방청석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ㅇ씨는 그 비명이 아내의 것임을 알았다. 옆자리에서 ㅅ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에게 사형이라니... "

 서기가 읽은 평결문의 내용을 판사가 다시 확인했다.

 "배심원 여러분의 평결에 따라 본 법정은 피고들에게 일급 살인죄를 적용, 사형을 언도하며 피고들은 본 판결에 불복할 경우 한 달  이내에 최고 법원에 상고할 수 있습니다."

 ㅇ씨가 딸에게 보내는 펀지를 쓰다 말고 자신의 결심공판을 생각하고 있을 때 건너펀의 같은 사형수 독방에서 ㅅ은 얼룩진 벽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었다.

 

 나는 계층의식이란 말이 선동가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올바른 모습이며.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이미 단순히 노역을 위한 짐승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ㅅ이 열차에사 만난 ㅇ과 함께 처음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모두 스무 살의 젊은이였다. 그들은 여러날 동안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허기를 견디지 못해 쓰린 배를 움켜쥐고 딱딱한 인도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어찌어찌 ㅅ은 식당 주방 보조로 들어갔으며 그때까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ㅇ은 정처없이 이웃 항구도시로 떠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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