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2. 12:47ㆍ단상
·- 정말 중요한 것은 두려움과의 직접적인 대면이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나 수단이 아니다. 두려움이 자리한 세계의 문을 여는 순간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시간의 결과이고, 시간은 곧 언어다. 시간은 또한 생각이고 생각은 모든 두려움을 생성한다. 그러므로 생각을 의미하는 시간 그 안에 복잡하고 미묘한 세상의 모든 두려움이 존재한다.
-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 해서 두려움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려움의 원인을 이해하면 두려움은 자연히 정체되거나 사라진다. 사물이나 사람, 생각에 대한 의존이야말로 두려움의 근원이다. 이런 의존성은 삶에 대한 무지와 자기인식의 결여, 내면의 빈곤함으로부터 비롯한다. 두려움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과 이해를 방해한다. 철저한 자기인식 만이 이 같은 모든 두려움, 표면적일 뿐만 아니라 근원적이고 오래 축적된 두려움까지 그 원인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다.
- 두려움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고 관념은 생각으로서의 기억의 반응이다. 그리고 생각은 경험의 결과물인 까닭에 생각을 통해 공허를 숙고하고 지각할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다. 외로움은 고통과 두려움의 기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새롭게 경험하지 못하게 한다. 말은 곧 기억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면, 경험자와 피경험자 사이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둘 사이의 관계가 말이나 기억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때 경험자는 곧 피경험자가 된다.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바로 이럴 때만 가능해진다.
- 우리는 흔히 분노를 분노에 찬 관찰자의 위치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나 화가 났어’라고 말하지만 그 분노의 순간 오히려 ‘나’는 거기에 없다. ‘나’는 그 분노 이후 비로소 등장한다. ‘나’는 시간에 의해 제어되고 생성되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시간적 요소를 배제한다고 해서사실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그것은 관찰자 혹은 객관적 시각을 버릴 때만 가능하다. 분노가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지켜보면 일체의 선입견 없이 사실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인식할 수 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신과 분노의 실체를 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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