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4. 23:38ㆍ단상
- 하늘 한 편을 붉게 물들이는 일몰, 멋있게 자란 나무, 굽이치는 강물,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서 우리는 더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기억으로 바뀌고 그 기억이 즐거움으로 지속되기를 바랄 때, 그 같은 즐거움이 반복되기를 바랄 때 바로 우리의 혼란과 불행이 시작된다. 우리 모두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즐거움을 경험하면, 그것이 반복되고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본능적인 것이든, 이성적인 것이든,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이든 그 즐거움이 되풀이되기를 바란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거짓된 가치를 창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을 제거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누구도 즐거움을 없앨 수 없다. 그러므로 즐거움의 본질과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즐거움과 함께 다른 거짓 가치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 우리의 삶에서 욕망이 그토록 강한 영향을 끼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욕망이 발휘하는 힘은 올바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욕망은 기실 우리 몸의 건강하고 정상적인 반응일 뿐이다. 이런 반응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욕망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욕망이 우리에게 즐거움뿐만 아니라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욕망의 문제다. 그러므로 욕망은 더 이상 대상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이 욕망을 부추길 뿐이다. 그러므로 욕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생각에 간섭받지 않고 욕망을 간직할 일이다. 그러면 된다.
- 혹시라도 작은 즐거움을 위해 목숨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이 다가올 때 자신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도 죽음은 다가와 우리를 데려간다. 그러므로 자살을 제외한 모든 죽음은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지금 이 순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기실 우리의 이상이나 즐거움, 또는 야망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응 우리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착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들에 무심해지면 된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사소한 즐거움을 그냥 지나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날에는 기계가 우리의 기억까지도 떠맡고 있지만 인간의 정신은 모든 것을 그냥 기계적으로 연상하고 기억하는 그 이상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소한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의 정신은 단순한 기계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젊은 마음, 단순히 시간의 場에서 제어되지 않는 열린 마음이다. 젊고 열린 마음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이 같은 버림의 참된 효용을 알아야 한다. 버림이 갖는 진정한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안다면 그저 귀 기울여 듣기만 해도 진리의 씨앗은 뿌려진다. 그리고 이 씨앗은 결국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의미의 뿌리를 내릴 것이다. 표층적인 의식은 물론이고 무의식의 심저까지 모두 통어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인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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