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31. 20:16ㆍ단상
- 갈망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실체는 없다. 이는 오직 갈망만 있을 뿐 갈망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갈망은 그 관심과 대상에 따라 매번 다른 양태로 나타난다. 이런 다양한 관심과 대상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을 만나면 갈등이 생기고, 기존의 자신의 갈망과는 다른 별개의 실체로 확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실체가 기존의 갈망과 다른 특질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곧 갈망과 실체는 동일하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느끼는 외로움의 근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자신과 다른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는 한, 우리는 부질없는 환영과 갈등으로부터 헤어날 수 없다. 우리의 외로움이 바로 자신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두려움은 관념 속에 존재하고, 관념은 생각으로서의 기억의 반응이다. 그리고 생각은 곧 경험의 결과물인 까닭에 생각을 통해 외로움과 두려움을 숙고하고 인지할 수는 있어도 직접 알 수는 없다. 말을 또한 기억이다. 그러므로 말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면 경험자와 피경험자 사이의 관계는 완전히 변질된다. 둘 사이의 관계가 말이나 기억을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 경험자는 곧 피경험자가 된다. 두려움으로 부터의 자유는 바로 이때에만 가능하다.
-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지난한 일이다. 우리는 욕망의 충족을 통해 비로소 기쁨과 고통을 모두 내포한 열정을 얻기 때문이다.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선택도 없어야만 한다. 욕망을 선악과 귀천으로 판단해도 안 되고 이 욕망은 괜찮지만 저 욕망은 안 된다는 식으로 선택해서는 절대 욕망의 실체를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욕망의 실체를 보기 위해서는 그것의 아름다움이나 추함,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그 자체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 욕망은 흔히 자기 모순적이고, 사실을 왜곡하며 우리를 전혀 상반된 방향으로 이끈다. 욕망이 야기하는 고통, 혼란과 불안, 그 절제와 통제는 절대 가늠할 수 없다. 욕망의 실체를 인식하기 위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욕망을 온갖 형태로 왜곡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 그러나 욕망은 우리의 어떤 왜곡이나 오인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기다리고 밀치면서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든, 그것을 승화시키든 이탈하든, 부정하든 인정하고 방임하든 언제나 거기에 있다. 어떤 이는 우리가 욕망을 버려야 한다 하고, 초연한 자세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모두가 어리석은 말이다. 욕망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버려야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파괴하면 우리의 삶도 파괴된다. 욕망을 왜곡하거나 구체화하거나 통제하거나 지배하거나 억압하면, 우리가 정말 간직하고 전승해야할 경이롭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영원히 망실하고 만다. 우리가 욕망을 그 자체로 이해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욕망을 비난하지 않아야 한다. 좋거나 나쁜 것으로 구분하지 말고 그냥 알아차리기만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냥 알아차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 대부분은 무엇을 잘 알아차리는 일에 매우 서툴다. 무엇이든 비난하고 구분하며 평가하고 동일시하거나 선택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익숙한 이런 일은 오히려 우리의 분명한 자각을 가로막는다. 선택은 늘 갈등의 결과를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무엇을 알아차리는 것, 어떤 구분이나 판단도 없이 그냥 알아차리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어떤 판단도 없이 사람이나 사물을 그저 바라본 적이 있는가? 욕망도 이런 식으로 바라본다면, 부정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말하지 않고 특정한 이름이나 상징을 부여하지도 않고, 말로 가리거나 표현하지 않고 그저 그대로인 채로 더불어 살아간다면, 욕망은 우리에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욕망을 파괴하거나 버리고 싶어 한다. 서로 상반된 욕망은 수시로 충돌해 불필요한 갈등과 불행 모순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부질없다. 어느 누가 자신의 욕망을 성공적으로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면 욕망의 전체적 특질을 이해하고 자각해서 적절히 수용하는 일이 훨씬 더 수월하고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지 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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