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4

2012. 11. 18. 11:03논설

 20년 전 우리 100대기업의 고용 부담율은 58%에 달했으나 오늘날에는 38%에 미달한다. 따라서 대기업 중심의 투자와 성장이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부터 우리는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기업 프랜들리를 외치며 대규모 감세를 통해 부자와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려 했던 현 정권의 정책실패가 그것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제전문가와 정치인들은 아직도 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경제의 양적성장이나 규모의 확대가 곧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미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의 생산성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과 공정 자동화는 수많은 근로자를 거리로 내몰았고 이는 결국 중산층의 급격한 붕괴 신 빈곤층의 출현을 초래했으며, 당연히 실업률 또한 증가했다. 정년을 한참이나 남겨놓아 아직도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어중간한 나이에 일터에서 내쫓긴 근로자들 대부분이 얼마 안 되는 퇴직금과 저축, 주택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프랜차이즈와 같은 손쉬운 창업에 뛰어들었고(그들의 80%가 창업 3년 이내에 폐업) 이러한 연유로 우리 주변에는 월 소득이 도시근로자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600만 영세 자영업자를 속출하고 있다.

 청년실업의 경우 그 원인과 배경이 훨씬 더 복잡하다. 1930년대의 대공황기에 등장한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 이론이 성공적으로 공황을 극복함으로써 고전적 자본주의와 근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완할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매김 되자 이 학설을 맹신하는 수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나고 그들에 의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들의 경제정책과 개발계획이 주도되면서 세계 각국은 경제규모의 확대와 성장을 국가발전의 유일한 지표로 삼았다.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수정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로, 경제체제가 이행되어 오는 동안 우리 사회는 대량 생산과 그에 부응한 대량소비가 미덕이 되는 체제 개편이 이루어졌고, 이는 당연히 대규모 양질의 노동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산업 환경을 조성했다. 따라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통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인프라 구축과 그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고, 이 시기의 교육 연령 군에 속하는 청소년들은 당연히 그 같은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소정의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친 청년들은 취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산업 전 부문에 걸쳐 인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으므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과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산업사회가 고도산업사회로, 다시 지식산업사회와 금융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새롭게 조성된 산업 환경은 더 높은 수준의 전문고등교육을 이수한 고급 인력을 필요로 했고 이는 교육비용의 폭등을 불러왔으며, 천문학적인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국가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워 필요한 비용을 교육수용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보다 좋은 일자리와 안락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개인이 지불해야하는 비용은 보통의 시민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상회함으로써 학업을 마친 청년들 대부분이 융자받은 학자금 상환에 시달리는 채무자의 신분으로 인생의 첫발을 내딛어야 했다. 금융자본의 탐욕과 신자유주의는 승자독식의 룰을 강요함으로써 기업들로 하여금 무한 경쟁을 통한 이윤 창출과 생존게임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도록 압박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기업들은 신기술개발과 설비자동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제고해야만 했고, 그 결과 고용 부담률이 저하됨으로써 인건비가 현격하게 절감되고 그만큼 이윤이 증가했다. 물론 기업들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이제 막 취업전선에 나선 젊은이들 에게는 크나큰 재앙이었다. 경제 규모의 확대와 고도성장의 신화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기존의 어떤 일자리도 그들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가까운 시일 안에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의 젊은이들은 실업과 빈곤의 바다로 내팽개쳐 졌고 그들은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노력이 부족해서도, 열정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잘못된 관행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청년실업 원인과 실상이다.

 이상 열거한 사안들은 우리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며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궁구하고 깊이 천착하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하고 습득한 어떤 사례와 지식도 이 일을 푸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이나 제도로도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세분되고 다원화된 사회의, 그보다 더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이해가 상충하고 대립하는 복잡한 현상에 적용할 경제이론이나 방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